소설리스트

케르베로스답게 (13/125)

      케르베로스답게

씩 웃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승급하셨구나. 맞죠?”

“어, 어떻게 알았냐?”

“그냥요. 이제 때가 됐잖아요. 열심히 하셨고.”

내 말에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는 박 씨 아저씨.

만년 F급에 머물렀던 내 앞에서 꺼내기 힘든 말이긴 하다.

실제로 과거의 나였다면 이 소식을 듣고 마냥 축하할 수는 없었을 거다.

괜찮은 척 하면서 자괴감에 빠져 몇며칠을 또 괴로워했겠지.

“축하드려요. 열심히 하시더니 드디어 빛을 보셨네요!”

이제는 정말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

“그게··· 미안하구나. 이렇게 나 먼저···.”

“뭐가요. 좋은 일인데 분위기 왜 이래요. 우리 축하만 합시다!”

물론 이 사람들은 여전히 내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나도 승급했고, 정연 씨도 있고 하니까 너랑 같이 조금 더 높은 등급 던전에

가면 어떨까 해서. 일반 고블린이나, 아니면 오크도 괜찮을 거 같아. 아, 정

연 씨는 B급이라더라고. 대단하지? 아무튼 이 조합이면 너도 충분히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아저씨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고 이후 늘 가던 던전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간 몸이나 정신적으로 어떤

후유증이라도 있어서 쉬는 거로 생각했을 거다.

있는 돈만 까먹고 있을 거라 예측했겠지.

그러니, 금전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직접적인 도움을 내가 받지 않을 걸 아니까, 이렇게 자존심 건드리지 않는 방

법을 제시하는 거고.

귀로 듣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호의였다.

과거의 나는 이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짐만 될 게 뻔한데....

이정연이 아저씨의 말을 거들었다.

“저도 동의했어요. 급을 떠나면 저도 사실 베테랑은 아니니까, 아저씨랑 현호

씨가 함께 하면 든든할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헌터들의 세계에서 각성 등급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본인도 그걸 모를 리 없다.

게다가 이제 헌터 활동을 한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갈 테니, 자신보다 등급 낮

은 헌터의 도움이 필요할 리도 없고.

온전히 나를 돕기 위한 거짓말인 것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 이제 안 하려고요, 헌터.”

“아···.”

“···결국··· 그러기로 했구나···.”

잠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니, 그런 표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괜찮으니까!”

손사레를 치며 말해봐도 두 사람의 표정이 풀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덧붙여 말했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싸우는 건 제 체질에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각성하면 헌터가 되는 게 당연한 세상인데··· 그래서 오히려 제 시야가 좁아

졌던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선택지도 있잖아요?”

이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주었다.

“하고 싶은 일! 맞아요. 그게 제일 좋죠. 저는 사실 별다른 꿈이 없었거든요.

그냥 운좋게 기회가 됐으니 헌터 일 시작한 거지 진짜 하고 싶은 일 있으면

그거 했을 거 같아요.”

진심인지 그냥 위로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박 씨 아저씨의 표정도 풀렸다.

사실 모든 각성자들이 던전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예 그와 별개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헌터로서 어떤 큰 하자가 있는 걸로 생각되었다.

“현호 씨는 뭐 하실 생각인 거예요?”

“그게, 지금 말하기는···.”

“아, 그럼 말 안 해도 되지. 그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해.

“그럼요. 그럼요.”

이정연도 빠르게 동의했다.

그때 박 씨 아저씨가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실 요즘 던전 들어가기 좀 불안한 부분도 있긴 해.”

“왜요?”

“관리국에서도 예상 못한 상황이 좀 생겼거든. 그···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우리 같이 들어갔던 그 던전 말이다. 그 던전이 너 구조되고 얼마 안 있어서

감쪽같이 사라진 거 아니겠냐.”

“아···.”

“분명 며칠 더 있다가 닫힐 걸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게이트가 아무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대요. 누가 안에 있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 했어요.”

“그리고 현호 씨가 좀만 더 늦게 구조됐어도··· 어후, 소름 돋네. 진짜 천운

이었어.”

“아··· 하하하. 그랬군요.”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뒤이어 정연 씨도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S급 던전 관련해서도 이상한 일이 있어요. 한성 길드 아

시죠? 그 길드 관리 구역에 S급 던전이 두 개 동시에 감지됐대요. 그래서 이

거 감당이 안 된다고 주민 대피령 내리고 난리가 났는데요···.”

비밀 얘기를 하려는 것처럼 목소리를 점점 낮춘다.

“그게, 몇 분 안 지나서 클리어 됐다는 거에요. S급 던전이···! 거기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데요!”

“그거 뭐가 문제였던 건지 안 밝혀졌지?”

아저씨도 들어본 적이 있는 듯 아는 척 했다.

“네. 감지기가 문제인 건지 진짜 던전이 이상했던 건지···. 공식적으로 밝혀

진 거 없이 그냥 쉬쉬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래서 좀 걱정이예요. 이런

이상한 일이 우리가 던전에 있을 때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계속 뜨끔했다.

이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한 일들은 모두 나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나는 그저 멋쩍게 대답했다.

“에이, 한번도 틀린 적 없는 시스템이라잖아요. 아마 사람이 실수한 걸 거예

요. 길드에서나 관리국에서나 그걸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내부에서 처리하는

거겠죠. 윗선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런가? 그것도 말이 되긴 한다.”

얼렁뚱땅 꺼낸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오래된 친구처럼 떠든 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 * *

오늘로써 영업 17일째.

여전히 던전에 들어오는 헌터들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몇 번 물어봤는데 아직까지는 식당의 존재를 들어봤다는 손님은 없었다.

아직 소문이 나지는 않은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식당 홀에서 멀지 않은 던전의 작은 방.

여기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던전 밖에서 흘러들어와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개천에서 나는 지금 설거지를

하고 있다..

정령계에서 흘러와 정령계로 빠져나가는 이 물은 평범한 물과 달리 정화력이

굉장히 강하다.

딱히 세제 없이도 슥슥 문질러주기만 하면 새것처럼 깨끗해지니까 설거지 하

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열심히 그릇을 씻는 나를 옆에 앉은 베로가 엎드려 앉아 구경하고 있다.

듬직하게 주인의 곁을 지키는 녀석이 좀 기특하다는 생각에 흐뭇하게 미소 짓

는데···.

할짝할짝할짝.

흐르는 물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축축한 소리.

베로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각도로 혀를 내밀며 식기를 핥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아직 안 씻은 그릇이 너무 깨끗하더라니.

“쓰읍! 베로!”

내 호통에 베로가 움찔 놀라며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누가 보면 내가 너 굶기는 줄 알겠다!”

나는 틈 날 때마다 베로에게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다.

뭐, 사실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긴 한다.

종종 베로 혼자 마계에 산책 나갔다 돌아올때면 입안에 뭔가 잔뜩 묻히고 질

겅질겅 씹고 있다.

그러니 배고파서가 아니라 그냥 식탐 때문에 이러는 거다.

내 눈치를 보면서 먹으려던 걸 보면 베로 자신도 뭔가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알

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다른 개들처럼 사람의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는 이유로 혼을 내는 건 아

니다.

마계에서 온갖 것을 다 주워먹으며 살았던, 상상 이상의 튼튼한 위장을 가졌

을 녀석이다.

뭘 먹든 탈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남이 먹다 남긴 걸 그렇게 핥아 먹어서야 되겠어? 명색이 지옥의 파수꾼인데

최소한의 체통은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웡!”

퍼뜩 정신을 차린 베로가 갑자기 각잡고 자세를 바로 했다.

듬직한 덩치에 신뢰감 넘치는 용맹한 눈빛.

그래봐야, 방금 전 닿을듯 말듯한 우스터 소스를 향해 혀를 쭉 빼고 있던 모

습을 본 나에게는 우습게만 느껴진다.

물론 여기서 비웃으면 삐칠 것이기에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케르베로스답지.”

“월!”

칭찬에 기쁜지 꼬리를 살랑살랑거린다.

갈수록 평범한 강아지처럼 되어가는 베로였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한마디씩 던져주면 자기가 케르베로스라는 걸 자각하곤

한다.

베로는 나를 주인처럼 따르고 있지만, 엄밀히 내 펫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몬스터를 펫으로 테이밍하는 사람들처럼 시스템상에 명확히 기록된 관계는 아

니란 말이다.

베로 스스로의 의지로, 또는 베로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내 곁에 머물고 있지

만 언젠가 떠날 날이 올지도 모를 일.

아무리 귀여워도 몬스터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은 지켜야지, 진짜 강아지 같아

지면 안 된다.

나는 다시 접시를 들고 남은 설거지를 시작했다.

“으음···.”

요즘들어 새삼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요리는 좋아하지만 뒷정리는 싫어한다는 거였다.

요즘 세상에는 식기세척기라는 좋은 제품이 있지만 그걸 던전에서 쓰는 건 무

리다.

희귀하게 전기를 발생시키는 마석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전력이 많이 드는 가전제품에 쓸 정도로 구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이렇게 그릇 하나 하나 손수 씻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직원을 고용해야 하나.”

설거지를 끝마치고 빨간 고무장갑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뒷정리하기 귀찮아서 손님을 안 받게 되는 대참사가 벌

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뭔가 대안이 필요할 것 같다.

그때였다.

‘왔군.’

아까 던져놓은 게이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손님이 들어오는 것이다.

서둘러 식당 홀로 돌아가 기운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오호···.’

속으로 감탄했다.

이번 손님의 마나의 기운은 지금까지의 헌터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대충 대여섯 명의 헌터가 모여있을 거라 짐작하고 게이트를 열어두었는데 그

게 이 사람 혼자만의 기운이었던 거다.

기운을 갈무리해둔 거라 예상하면 잠재된 힘은 더욱 크겠지.

‘이 정도면 A급인가? 아님 S급?’

S급 몬스터를 만난 적은 있어도 S급 헌터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마나 느낌이 아예 다르다 보니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홀로 들어선 사람은 나와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아, 물론 이세계에서 보낸 50년을 제외하고 계산한 나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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