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법 육수 (14/125)

      비법 육수

왼쪽 눈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간 큰 흉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치켜올라간 눈 때문인지 고양이 같은 이미지다.

미인이지만 미간에 힘을 빡 주고 있어서 성격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나는 늘상 손님에게 하듯이 밝게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오···!”

휘익!

‘어이쿠.’

또 다짜고짜 덤벼든다.

이런 인간은 이전에도 몇 명 있었으나,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내 육체적인 힘만으로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는···.

타앗! 탁!

마나를 손에 휘감고 목으로 들어오는 단검을 쳐냈다.

하나가 아닌 두 개.

양 손에 단검을 하나씩 쥐고, 일반인이라면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었을 빠른

속력으로 정확히 급소만을 노리는 동작.

‘암살 능력이군.’

각성 클래스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지금껏 던전에 찾아 온 손님들과는 급이 다른 실력자다.

상대를 단 번에 파악한 나와 달리 그쪽에서는 혼란스러운지 동공이 흔들린다.

“어떻게···!”

내가 막아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거 겠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여긴 평범한 식당입니다. 식사를 하실 거면 손님으로

대우해 드리고, 그게 아니라면 쫓아낼 수밖에 없겠네요.”

잠깐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가를 가늠하던 여자가 이내 단검을 든 두 손을 내

렸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손님으로 온 걸로 하죠.”

의외의 반응에 나도 꽤 놀랐다.

지금까지는 내 말을 믿지 않고 한번 더 공격하거나, 내 힘에 놀라 벌벌 떠는

놈들뿐이었으니.

“바로 믿어주시네요?”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요.”

여자가 딱딱하게 대답하며 스스로 자리를 골라 앉았다.

확실히 강한 사람이다.

저런 판단 또한 자신이 살기를 완벽하게 감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거겠지.

물론 강하다고 해서 나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나는 던전 벽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뉴는 저쪽에 적혀있습니다.”

<오늘의 메뉴>

멸치국수 6만 원 (추천!)

비빔국수 6만 원

*1인 1메뉴입니다.

*마석, 포션, 아티팩트로 계산 가능합니다.

이제 그냥 노트가 아니라 벽걸이 메뉴판을 구입해 두 군데 걸어두었다.

깔끔한 블랙보드에 흰 보드마카로 직접 메뉴와 금액을 적어둔 것이다.

작은 디테일로 식당의 분위기가 조금 더 개선되었다.

게다가 얼마든지 지웠다 쓸 수 있으니 내 마음대로 메뉴를 바꾸는 이 식당에

가장 적합한 물건이다.

오늘의 메뉴를 정하는 기준은 딱히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날 먹고 싶은 메뉴일 때가 많고, 좀 귀찮으면 만들기 쉬운

걸로, 의욕이 넘칠 때면 난이도가 높은 음식으로 정하는 식이다.

멸치국수는 사실 오늘따라 설거지가 귀찮아서 선택한 메뉴였다.

하나만 쓰기엔 또 좀 그래서 비빔국수를 추가한 거고.

“멸치 국수 하나··· 하겠습니다.”

“네. 금방 나올 겁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소면을 익힐 물을 끓이는 것.

냄비불을 올려두고, 고명으로 올릴 계란 지단을 부치고 채썬 애호박을 살짝

볶았다.

아주 색이 곱게 나온 지단을 채썰어주는 사이 물이 끓기 시작했다.

냄비에 소면을 한움큼 잡아 넣었다.

한소끔 끓여주다가 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올 때면 찬 물을 확 부어주며 넘치지

않게 진정시켰다.

충분히 익은 소면은 찬물에 찰지게 씻어주며 탄성을 높여주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육수가 나올 차례.

달칵.

이미 끓고 있는 대형 냄비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투명한 갈색빛을 띤 육수가 있다.

일견 평범한 멸치 육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게 나만의 비법 육수지.’

사실 이 국물에는 아주 특별한 채료가 더 들어가 있다.

바로 아스키나 대륙에서 가져 온 말린 레비아탄 가루.

온갖 몬스터로 점철되어있던 그곳에서, 나는 몬스터를 먹으며 살아남았다.

오직 살기 위해서 몬스터의 생살을 뜯고 내장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대부분이 구역질 나도록 맛없었다.

그래도 그것들 중 그나마 먹을 만 한 것을 고르라면 바로 레비아탄이었다.

비린 맛을 제외하면 지구의 소고기와 비슷한 맛이 났으니까.

물 속에 사는 놈이라 자주 나타나지 않아 구하긴 힘들었지만 크기가 워낙 커

서 한 마리만 잡아도 오래 먹을 수 있었다.

최대한 오래 보관하기 위해 바짝 말려 가루를 냈더니 오히려 그 풍미가 몇배

는 더 증폭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몬스터 고기는 인간에게 독에 가깝다.

나야 이세계로 넘어간 직후, 뱃가죽이 등에 거의 붙은 상태여서 몬스터인지

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이 막 먹었었지만.

‘그땐 거의 눈이 뒤집힌 상태였지.’

뭔지도 모를, 맛도 역겨운 그 검은 몬스터 고기들을 생으로 삼켰을 정도로.

그런 걸 먹으면서도 살아남은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다행히도 이렇게 완전히 말린 레비아탄 가루는 독성이 전혀 없다.

수많은 몬스터를 먹어봤던 내가 확신할 수 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팔팔 끓는 육수를 그릇에 옮겨담아 한입 맛보았다.

“으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다.

진하면서도 담백한 풍미가 우러난다.

MSG가 따로 필요 없는, 그보다 더 깊은 맛.

침을 꼴깍 삼켰다.

맛 봤더니 나도 한그릇 먹고 싶어졌다.

‘조금만 참자.’

그래도 돈 받고 파는 건데 손님 게 먼저지.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식욕을 누르고 요리를 마무리했다.

둥글게 담은 소면에 육수를 붓고, 계란 지단과 볶은 애호박을 올렸다.

김가루도 약간 추가해주면···.

‘이제 완성이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멸치국수와 작년에 직접 담근 김치를 옮겼다.

툭.

“맛있게 드세요.”

탁자위에 그릇을 올리면서 말하자 여자는 젓가락을 집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

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간장이나 다른 양념은 필요없다.

이 멸치국수는 깊고 담백한 육수 맛으로 먹는 게 최고였다.

부엌으로 돌아가 뒷정리를 하며 슬쩍 여자 쪽을 보았다.

은근히 반응이 궁금했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소면을 집어 한번 후 불더니, 깔끔하게 면을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듯 하던 여자가 갑자기 눈을 부릅 떴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입 떠먹었다.

후릅.

여자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언뜻 험악해보이는 표정이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눈알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심지어 눈가가 촉촉한 것이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것 같다.

“할머니······.”

남들이라면 듣지 못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를 나는 캐치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 사람은 레비아탄 가루를 넣은 국수에서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고 있는 것

이었다.

할머니가 정말로 어린 시절, 레비아탄 육수로 만든 멸치국수를 해줬을까?

‘그럴리가 없지.’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할머니가 S급 헌터였다고 해도, 레비아탄으로 육수를

내서 손녀에게 국수를 해줬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앞서 말했다시피 일반적인 몬스터는 인간의 몸에 독이고, 그걸 굳이 먹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할머니의 손맛이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재료 자체가 다른 이 육수의 맛을 따

라오지는 못했을 거다.

뭐, 대충 어떤 흐름인지는 알 것 같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은 온전히 맛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날의 분위기, 주변의 환경, 함께 먹은 사람, 기분 등이 종합되어 하나의 추

억이 된다.

행복했던 추억 속 맛은 그 모든 것을 종합한 만큼, 원래의 것보다 훨씬 맛있

었던 것처럼 기억에 남는 것이다.

즉, 저 여자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할만큼 내 국수가 맛있다는 의미.

여자는 후루룩 후루룩 소면을 흡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 한 그릇 더. 곱빼기로요.”

어느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으나, 왠지 이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소면을 크게 한움큼 집

어 또한번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자는 국수를 곱배기 한 그릇 먹고, 또 한 그릇을 더 먹고 의자에 눕

듯이 기댔다.

국물까지 싹 비운 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본인의 정량보다 많이 먹었는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의자를 밀며 일

어섰다.

어느새 처음의 쌀쌀맞은 표정으로 되돌아와있었다.

“얼마죠?”

“멸치국수 2개에 곱배기 하나해서 19만 원입니다.”

정확히 계산한 금액을 불러주었다.

“마석으로도 계산 된다고 했죠?”

“네. 가능합니다.”

여자는 가방 속에 손을 쑥 넣어 마석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놓은 내 손 위에 올렸다.

‘···!’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다.

이건 분명 A급 마석!

이 정도 크기면 100만원은 받을 수 있겠다.

“이걸로 계산하겠습니다. 거슬러줄 필요는 없어요.”

‘아니, 이럴 거면 얼만지는 왜 물어본거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물론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거 받았다고 확 태도를 바꿔버리면 너무 없어보이지 않은가.

분명 마석을 자기 눈으로 보고 확인한 다음에 나에게 건넸다.

이게 A급 마석인 건 분명 알고 있을 것이고.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석을 주머니에 챙겨넣고, 절제된 미소로 화답했다.

“···또 오지요.”

여자는 짧게 한 마디를 남기고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그건 힘들텐데.’

고작 멸치국수 몇 그릇을 먹고 1급 마석을 지불한 손님에게 태클 걸 생각은

없기에 굳이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 * *

여자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다시 마석을 꺼내들었다.

영롱한 빛깔에 가공되지 않았음에도 깨끗하게 절단된 것처럼 보이는 단면.

아까 언뜻 생각했던 대로 A급 마석이 맞다.

광대가 저절로 위를 향해 치솟았다.

“베로!”

손님들 올때마다 근처에서 구경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베로? 어딨어!”

한번더 외치고 난 다음에야 처벅처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렇치 않게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평소와 뭔가 다르다.

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 있고 슬쩍슬쩍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걸

본다.

“너 겁먹었구나?”

흠칫.

내 말에 녀석이 아니라는 듯 더 어깨를 편다.

그래봤다 다 걸렸다.

베로는 던전 몬스터로서는 A급 보스 정도의 능력치를 가질 것이다.

그런 놈이 쫄아서 숨어있다 돌아왔다는 건 방금 전의 손님이 이 놈보다 더 강

하다는 의미.

“그럼 S급이겠네.”

나도 어느 정도 상대의 능력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100% 확실하지는 않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베로의 감이 더 좋을 거다.

이 녀석은 짐승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파악할테니.

우리나라의 웬만한 S급 헌터들은 거의 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져 있다.

각성자들이 가진 힘 자체만으로도 일반인들에게는 마치 다른 종족처럼 신기하

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S급 헌터는 다른 헌터들조차 선망하는 급이 다른 능력을 가졌으

니, 일반인들은 어떻게 여기겠는가.

게다가 그 힘으로 끔찍한 몬스터들을 물리쳐주기까지 하는 영웅들인 것이다.

그들이 없으면 종종 열리는 무시무시한 S급 던전에 의해 지구는 애저녁에 멸

망했을 것이다.

그러니 매스컴이 발달한 이 시대에 그들의 인기는 너무나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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