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
“던전 식당? 그게 뭔데?”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 중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친구가 자기 친구한테 들은 건데, 말 그대로 던전 안에 있는 식당이래. 거기
서 진짜로 밥을 사 먹은 헌터들이 있다더라고.”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던전 안에 몬스터가 그렇게 많다면서? 식당을 어떻게
해? 아, 설마 각성자가 하는 가게인가?”
남자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대답하자, 여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반
박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뭐, 그냥 재밌는 소문인 거지. 헌터들 말고는 던전에
대해 잘 모르니까 별의 별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잖아. 가끔 보면 헛소문 내
는 데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니까.”
“어쨌든 재밌긴 하다. 던전에서 밥을 사 먹는다니.”
“진짜 그런 게 있으면 대박이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말이 안 된다. 큭큭. 사실 네가 지어낸 거 아니야?”
두 사람은 물건을 하나 카트에 집어 담고 나를 지나쳐갔다.
내 식당을 다녀간 손님 중 누군가가 주변에 이야기한 모양이다.
얘길 들어보면 정말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어차피 입소문으로 장사할 식당은 아니니 상관없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묘했다.
사람들이 내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달까.
시계를 보니 곧 점심시간이 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쏴아아아-
방금 사 온 생닭 세 마리를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이미 거의 손질되어 있어서 지방과 꽁지, 날개 끝부분만 좀 잘라내면 된다.
속까지 긁어내며 완전히 씻어내자 아까보다 살이 더 하얗고 반질반질해진 것
같다.
미리 불려뒀던 녹두와 찹쌀을 닭의 배에 채워 넣었다.
마늘과 대추도 한 움큼 집어 같이 넣어주었다.
‘누린내가 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
또 잘 익은 마늘과 대추는 그것만으로도 맛이 좋다.
배가 빵빵해진 닭의 뒷다리를 교차시켜 실로 꽉 묶어주었다.
이제 잘 끓여주기만 하면 된다.
냄비에 물을 담고 생강, 양파, 대파 등의 채소를 넣어주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맛있겠지만, 아직 중요한 게 하나 빠졌다.
삼을 넣어주지 않으면 이거 삼계탕이 아니라, 닭백숙이 된다.
그래서, 여기에 인삼 대신 좀 특별한 삼을 넣어주려 한다.
작은 책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던전 창고 방안에 뒹굴고 있던 게 생각나서 챙겨온 거다.
달칵.
뚜껑을 열어보니 검은 천 위에 놓인 인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가 두 개 놓여
있다.
“키에에에엑!”
“캬아아아!”
두 개의 삼이 각각 위협적인 비명을 질러댄다.
“아직도 살아있네.”
흙에서 뽑혀 나온 지 몇 년은 됐을 텐데 목숨 한번 질기다.
이것들의 정체는 맨드레이크.
아스키나 대륙에 있을 적에 얻었던 것이다.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몸보신이라는 게 특별히 필요하지 않
아서 대충 내팽개쳐 놨었다.
최지수가 먹으면 몇 년간 잔병치레할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비명 지르는 맨드레이크 두 개를 껍질이 벗겨지도록 빡빡 씻었다.
“쿠우우루푸우!”
“케으으으르르륵···.”
비명을 지르려던 놈들이 물을 먹고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퐁당!
퐁당!
노란 속살이 드러난 맨드레이크 두 개를 닭고기 옆에 넣어주었다.
기진맥진한 놈들은 이제 반항을 포기했다.
“맛있게 먹어줄게.”
그리고 마치 내 말을 들은 듯 얌전히 눈을 감았다.
이제 진짜 다 됐다.
뚜껑을 닫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이이잉.
핸드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와 있다.
- 30분 뒤에 도착
역시 최지수다.
정확히 언제 오냐는 문자를 몇 시간 전에 보냈는데 이제야 답장을 보낸 거다.
옛날 같았으면 답이 늦은 것에 짜증이 좀 났을 거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무시한 게 아니라 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겠지.
구수한 냄새가 작은 집안을 가득 채울 즘에 현관문이 열렸다.
철컥.
“나 왔어······.”
좀비처럼 걸어들어오는 여자.
동생 최지수였다.
그냥 걸음걸이만 좀비 같은 게 아니라, 얼굴이 완전히 찌든 게 진짜 좀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으응?”
고개를 갸웃한 최지수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뭐 만들고 있어? 백숙인가? 맛있는 냄새 난다.”
“삼계탕이야.”
“오···! 삼계탕! 나 삼계탕 좋아하잖아! 언제 먹을 수 있어? 지금 진짜 배고
프거든. 시간 애매해서 밥 안 먹고 왔어.”
“지금. 손 씻고 식탁에 앉아 있어.”
“오예!”
신나서 소리친 지수가 화장실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커다란 대접 두 개를 꺼
내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뿌연 김이 솟아오른다.
그 안쪽에 보이는 통통한 닭 두 마리.
한 마리씩 그릇에 담고 국물도 부어줬다.
마지막으로 맨드레이크 한 마리씩 닭 옆에 놓아주면 끝이다.
그릇을 식탁으로 옮기고 나니 최지수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와! 비주얼 대박이다! 잠깐만 이거 사진 좀 찍자.”
“그러든지. 어차피 뜨거워서 빨리 못 먹어.”
“아니? 난 완전 빨리 먹을 거야.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 같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며 진지하게 대답한다.
“잘 먹겠습니다!”
좀비 같은 몰골로 힘차게 소리친 최지수가 닭다리를 잡아당기자 결따라 살이
찢어진다.
몸통에서 분리된 닭다리는 소금에 살짝 닿은 후 지수의 입으로 곧장 들어갔다.
닭다리부터 공략하는 지수와 달리,
나는 다리를 묶은 끈을 풀고 배부터 먼저 갈라보았다.
배가 열리며 안쪽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찹쌀이 흘러나온다.
국물과 밥을 함께 푸고 닭살을 길게 찢어 소금에 찍은 후 위에 얹어 한 번에
입에 넣었다.
담백하고 진한 국물과 찰진 찹쌀, 탱글탱글한 닭살이 조화롭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다.
최지수는 벌써 두 번째 닭다리를 손에 쥐고 열심히 뜯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살이 부들부들해? 입에서 살살 녹는 거 같아. 국물도 맛있고.”
“고기만 먹지 말고 옆에 그거도 먹어 봐.”
젓가락으로 맨드레이크를 가리키며 말하니 지수가 얼굴을 찌푸린다.
“인삼?”
“그래. 그거 제일 중요한 거야.”
“이런 거 잘 못 먹는데. 너무 쓰잖아.”
“네가 아직 앤 줄 아냐? 너도 곧 몸 생각할 나이야.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
야지.”
“나 20대야. 아직 튼튼하거든?”
“딱 한 입만 먹어 봐. 더 먹으라고 안 할 테니까.”
부모님이 할 법한 잔소리가 내 입에서 나가고 있다.
나이 차도 꽤 나고 어릴 적부터 내가 키우다시피 했던 터라 이런 말이 자연스
럽게 나오게 된다.
“이런 건 별론데···.”
최지수가 툴툴거리면서도 젓가락으로 맨드레이크를 집어 아주 조금 베어 물었다.
아그작.
쓴맛을 예상하는 듯 씹기도 전에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입안의 맨드레이크 조각을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겠지.’
나는 흥미진진하게 지수의 반응을 구경했다.
“이상하네?”
“맛있지?”
“···뭐야, 이거? 쓰다기보다 씹을수록 달짝지근하다고 해야 하나···. 신기한
맛이야.”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맨드레이크를 입에 넣는다.
방금 전까지 싫다고 인상 찌푸리고 있던 애가 이제는 스스로 맨드레이크를 스
스로 씹어 먹고 있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내 접시에 있는 맨드레이크를 입에 넣고 씹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은근히 단맛이 나는 게 중독성 있다.
지수가 한 개 더 먹는다고 몸에 더 좋았으면 굳이 내가 먹지 않았겠지만, 이
맨드레이크가 그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반인인 지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딱 맨드레이크 한 개 정도다.
“나 원래 이런 거 잘 못 먹는데, 이 인삼은 맛있네?”
“그거 엄청 귀한 거니까 남기지 말고 뿌리 끝까지 다 먹어.”
“진짜? 이런 걸 어디서 구했대?”
“운 좋게 얻은 거야.”
지수는 더 토 달지 않고 정말로 맨드레이크의 잔뿌리까지 완전히 다 먹었다.
그리고 남은 삼계탕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그걸로 모자라겠지?”
“어···. 아마도? 뭐 더 있어?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잠깐 기다려 봐.”
이럴 줄 알고 닭을 한 마리 더 삶았었다.
나는 조리대로 이동해 빠른 손놀림으로 하나 남은 닭의 살을 쭉쭉 찢어 뼈와
분리했다.
달그락.
냄비 뚜껑을 열었다.
짙은 육수가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에 불린 찹쌀과 방금 찢은 닭고기를 모두 넣어주고 불을 올렸다.
닭죽을 하려는 것이다.
특별히 다른 재료도 없고, 어렵지도 않은데, 삼계탕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금세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눌어붙지 않게 잠시 휘저어주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잘게 썬 대파를 올려주면···.
“이제 먹어도 돼?”
슬쩍 다가온 최지수가 은근히 묻는다.
항상 느끼는 건데 얘는 몸에 비해 확실히 많이 잘 먹는 편인 거 같다.
“어. 다 됐어.”
지수가 신나게 닭죽을 한 그릇 퍼서 자리로 돌아갔다.
뜨거운 죽을 한술 떠서 후후 불고 입에 넣는다.
그래도 뜨거운지 손으로 부채질한다.
최지수는 만든 사람이 뿌듯할 정도로 맛있게 닭죽을 클리어했다.
함께 뒷정리를 끝낸 후, 방으로 돌아간 지수가 크게 소리치며 거실로 나왔다.
“오빠!”
“왜?”
별일 아닌 일로도 저렇게 불러댔기에 나는 그냥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지수가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묻는다.
“내 피부 왜 이렇게 좋아? 봐봐.”
“네 피부를 왜 나한테 물어.”
“좀 이상해. 요 며칠 피곤해서 분명 트러블도 나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싹 사
라졌어.”
“사라질 때가 됐나 보지.”
“그런가? 이렇게 갑자기?”
정말로 의아한 듯 계속 손거울을 보며 말한다.
“완전 꿀피부가 됐다니까? 다크서클도 없어진 거 같고. 다시 봐봐.”
“아까랑 똑같아. 난 모르겠으니까 더 묻지 마.”
“···진짜? 내가 뭐 착각한 건가?”
그럴 리가.
최지수는 자기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지금의 저 매끄러운 피부는 맨드레이크의 효과가 당장에 발휘된 거였다.
오장육부의 기능이 향상되었으니, 그게 당연히 겉으로도 드러나는 거지.
의아해하면서도 만족스러운지 지수가 거울을 감상하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걸 보며 웃음을 참으려 애써야 했다.
* * *
3일 만에 찾아간 슬라임 방.
그곳에는 열심히 달리며 자기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는 세 마리 인간 모양의 슬
라임들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처음 인간형 몸을 가지게 된 날에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비척거리던 뒷모습
을 보다 나왔었다.
그랬던 녀석들이 이렇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 몸에 상당히 적
응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호빵이, 찐빵이, 만두를 불러 던전 안 시냇가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이미 설거짓거리가 한가득 쌓여있다.
“자, 지금부터 너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게.”
“삐이!”
세 슬라임 인간은 공손한 자세로 대답하며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