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필요하지
이윽고 헌터들이 얼굴이 확인될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이 다다다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던전 식당 맞는 거죠? 이건 대체 무슨 능력이에요?”
“진짜 대박이다.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있네?”
“제가 거짓말 아닌 것 같다고 했잖아요!”
“그러네. 난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지.”
‘친구한테 들었나 보군.’
마트에서 직접 듣기도 했고,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손님들은 알아서 식탁 두 개를 붙여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과 물수건을 가져다주었다.
“혹시··· 사장님은 모르시는 거 아닐까?”
“어, 그런가? 알 것 같은데?”
“아냐. 모를 것 같아.”
“현수야, 네가 한번 말해봐.”
“그럴까요?”
헌터들이 살짝 목소리를 낮춰 쑥덕거린다.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사장님도 각성자시죠?”
“그럼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럼 헌터 커뮤니티에도 들어갈 수 있으시죠?”
헌터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네. 거긴 왜요?”
“혹시 글 읽어보셨어요?”
“아뇨, 최근엔 안 들어가봐서요.”
헌터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본래의 목적은 정보 교류와 소통이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거기에는 실질적인 정보보다 별 시답잖은 걸로 아는 척
하고 시비 걸고 손가락으로 싸우는 글들이 훨씬 많았다.
아주 가끔 좋은 정보도 있었는데, 그보다 어그로가 많아서 정보를 골라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도 각성 초반에나 자주 들어갔지 얼마 후에는 시들해졌다.
다른 헌터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는지, 크게 활성화되기보다는 쓰는 사람만
쓰는 사이트가 되었었지.
그래도 던전에 조난당하기 전에는 가끔 들어갔었는데, 다시 돌아온 후엔 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남자 헌터가 아는 척할 기회가 생긴 게 기쁜지 신나게 말했다.
“어, 그럼 진짜 모르셨겠구나! 거기 던전 식당에 대한 글이 올라왔거든요! 조
회수도 높고 댓글로 엄청 싸우고 난리에요.”
“싸운다고요?”
“네. 엄청. 한번 들어가 보세요.”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던전 안에서는 통신이 되지 않으니,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우리 뭐 시킬까요?”
“글쎄, 한 번 볼까?”
헌터들이 주변을 고개를 돌려 가까운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았다.
<오늘의 메뉴>
오므라이스 65,000원
키 큰 여자 헌터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 메뉴가 하나인 거예요?”
“네. 대신 소스를 고르실 수 있어요. 제가 만든 데미글라스 소스나 커리 소스
중에서.”
“오, 맛있겠다. 그럼 잠깐만요.”
뒤로 물러나자 헌터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수영 누나는 뭐 드실 거예요?”
“음··· 나는 커리 소스? 아니다 잠깐만 생각해볼게. 현수, 너부터 말해봐.”
쑥덕이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한참을 이야기한다.
메뉴는 정해져있고 소스 하나 고르는 건데 저렇게까지 고민이 될까 싶었다.
“사장님! 주문할게요!”
잠깐 주방 정리를 하고 있자니, 손님이 나를 부른다.
“저희 오므라이스 6개 하고요, 그 중에 4개는 데미글라스 소스, 나머지 2개는
커리 소스로 해주세요. 그리고 혹시 음료수 있어요?”
“탄산음료 있어요. 콜라, 사이다 뭘로 드릴까요?”
“그럼 콜라 세 개, 사이다 세 개···.”
꾸루루룩.
말하는 도중에 남자 헌터의 위장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하하하···. 그게 저희가 생각보다 사냥 일정이 길어져서, 식량을 좀 아
껴먹고 있었거든요. ”
달리 지적하지 않았는데 민망한지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들 하도 출출해서 음식 얘기가 나오게 됐는데, 그게 커뮤니티에서 봤던 식
당 얘기까지 흘러간 거예요. 우리 눈앞에 딱 나타나면 진짜 좋겠다고. 누구는
그게 진짜 있겠냐그러고 누구는 그 글에서 진실성이 느껴졌다 그러고···. 장
난으로 티격태격하면서 걷고 있는데 세상에. 진짜 저 멀리 게이트가 보이더라
고요. 심지어 식당 간판까지 붙어있고. 당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죠. 아하하.”
주변 헌터들은 동료의 모습이 그저 재밌는지 웃음을 참고 있다.
나도 싱긋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양 많이 드릴게요.”
“오, 진짜요?”
“네. 넉넉하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다 잘 먹는 사람들이거든요. 하핫!”
농담처럼 덧붙이는 말을 뒤로하고,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채소를 다지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둔 게 있는데 6인분을 한번에 하기엔 좀 모자랄 것 같아서 추가로
썰어야 한다.
탁탁탁탁탁!
칼질 속도는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다.
빠르지만, 너무 인간 같지 않은 느낌은 안 나도록.
볶음밥에 넣을 베이컨도 조금 더 썰어주고···.
다음으로 팬에 기름을 돌리고 불을 켠다.
살짝 달구어진 팬에 다진 파부터 익힌다.
지글지글.
파가 익으면서, 대파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차르르르륵!
풍미가 생긴 파기름에 남은 채소들과 햄을 몽땅 부어주었다.
살짝 홀을 보니 손님들은 짐을 모두 내려놓았다.
“이야, 너무 좋다.”
키가 큰 여자 헌터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한다.
“그러게요. 이렇게 몬스터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던전이 있다는 걸 누가 상상
할 수 있겠어요.”
갈색 머리 남자 헌터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 맞다.”
여자가 뭔가 생각난 듯 상체를 세웠다.
“아까 너 다치지 않았어? 지금 빨리 치료하자.”
“아아, 네. 그게 좋겠네요.”
“다른 분들도 몸 좀 살펴보세요. 모르는 사이에 어디 긁히거나 했을 수도 있
잖아요. 지금 미리 치료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합시다. 밥 나오기 전에 빨리!”
그러고는 모두 주섬주섬 자기 몸을 살핀다.
험한 길을 걸어온 건지 다들 팔 다리에 멍든 상처, 찰과상이 있다.
여섯 헌터가 모두 포션과 연고로 상처를 치료한다.
‘좋은 생각이네.’
나가면 또 몬스터들 때문에 마음 편하게 못 있을 테니까, 여기 있는 동안 자
잘한 거라도 해결하는 게 좋겠지.
적당히 볶아진 채소들, 거기에 밥을 한가득 퍼담고 또다시 볶기 시작했다.
휘릭, 휘릭!
손목 스냅을 이용해 팬을 살짝씩 위로 튕겨주었다.
밥과 채소들이 흩어져 솟아올랐다가 다시 팬 위로 안착한다.
금세 밥알과 다진 채소들이 고루 섞였다.
여기에 준비해둔 데미글라스 소스를 약간 넣고 조금 더 볶아준다.
아무래도 밥에도 양념이 좀 들어있어야 더 맛있으니까.
이제 밥 위에 올릴 계란을 구울 차례다.
계란 한 판을 꺼내고 양손에 계란을 한알씩 들었다.
그리고 양손의 계란을 조리대 모서리에 톡톡 쳐주고, 두 계란을 동시에 뽀각
쪼개준다.
한 번에 두 개의 계란을 깨는 기술이다.
이렇게 하면 수십개의 계란도 금방 깰 수 있다.
물론 양손 다 섬세하게 힘조절을 해야 하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오오! 누님! 저거 보세요. 완전 신기해요!”
“와, 진짜네? 어떻게 저게 된대? 나는 한 손으로도 못 깨는데.”
치료가 끝난 헌터들이 주방을 빤히 보고 있다.
내가 요리를 좀 화려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도 보통은 다들
주방을 보고 있다.
던전에는 핸드폰이 필요없다.
통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으니 무게만 차지하는 핸드폰을 굳이 들고 다니는
헌터는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격렬하게 싸워야 하니 분실할 확률도 높고.
그래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할 만한 거라고는 헌터들끼리 대화하는 건데,
주로 팀을 이뤄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제 별로 나눌 얘기도 없다.
멍하니 두리번 거리다가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는 곳은 개방형 주방이 되는 것
이다.
화륵.
화구 3개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켰다.
팬 위에 기름을 휘휘 둘러주고 달궈질 때까지 잠깐 기다린다.
조금씩 텀을 주면서 열이 오른 팬 위에 계란물을 두국자씩 부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란이 익기 시작했다.
‘이제 기술이 필요하지.’
젓가락으로 프라이팬의 계란을 찍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조심스럽게 한 방향으로 회전시킨다.
이렇게 하면 익어가는 계란에는 회전하는 모양이 그대로 남게 된다.
회오리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윗면의 계란이 완전히 익기 전에 불을 끄고 밥 위에 올려주면 끝이다.
아래는 바짝 익고 위는 살짝 덜익어 촉촉한 느낌의 계란이 이 오므라이스의
핵심이다.
사실 이건 연습을 좀 했다.
계란의 회오리 모양도 완벽하게 만들고 소스도 이것저것 만들어보느라 며칠
연달아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연습하면서 만든 음식의 절반은 당연히 동생 최지수의 몫이다.
처음에는 맛있는 거라면서 신나게 먹었는데 연달아 오므라이스만 줬더니 오늘
아침에는 좀 질려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걸 왜 하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 또 시작이냐는 눈빛을 받았을 뿐.
‘난 원래도 그랬으니까 이상할 게 없겠지.’
헌터로 살 때도, 헌터로 살기 이전에도 요리에는 진심이었다.
심심하면 요리 잔기술을 연마하거나 실험적인 음식을 해보는 게 내 취미였다.
그래서 뭔가 연습한다고 같은 메뉴를 연달아 내놓는 건 우리집에서 별로 특별
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지수가 주는대로 잘 먹는 편이라 편하긴 해.’
음식 투정도 없고, 조금 실패해도 그냥저냥 잘 먹어서 요리 실험 대상으로는
아주 적격이다.
회오리 계란이 얹어진 여섯 개의 오므라이스가 완성되었다.
뒤쪽에서 살짝 끓고 있는 두 개의 소스.
하나는 오므라이스에 일반적으로 곁들여먹는 데미글라스 소스, 다른 하나는
커리로 만든 소스다.
‘둘다 오므라이스에 잘 어울리지.’
그러고 보니 나한테 하나만 고르라고 해도 선택하기 힘들 것 같다.
가장자리에 둥글게 소스를 부어주고, 마지막으로 파슬리를 솔솔 뿌려주면 데
코까지 완벽하다.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주었다.
오므라이스가 등장하자마자 반응이 좋다.
“와, 너무 예뻐요! 사진 찍고 싶은데 아쉽다.”
“오오! 양 진짜 많은데요? 감사합니다!”
원래 쓰려던 그릇보다 훨씬 큰 그릇에 담았다.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줄 수 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에!”
허겁지겁 숟가락을 드는 헌터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배가 고프긴 했나보다.
숟가락으로 촉촉한 계란을 가르면 아래쪽의 볶음밥이 드러난다.
동시에 가장자리에 둘러져있던 소스가 그 사이로 스며든다.
살짝 설익은 촉촉한 계란, 그리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볶음밥에 소스가 하나
로 어우러진다.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게다가 함께 나온 아삭한 무절임으로 중간중간 상큼한 맛이 더해지면 정말 부
족할 게 없는 한끼가 되는 것이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맛을 떠올리니 괜히 군침이 돈다.
헌터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음식 맛과 식당에 대한 이야기라 살짝 귀를 기울였다.
“으음! 계란이 너무 부드러워서 사르르 녹는 것 같네.”
“맞죠? 무슨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느낌이에요.”
“그니까. 분명히 던전인데 분위기도 되게 좋다.”
편한 자세로 앉아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식사를 한다.
이 장면만 본다면, 이게 던전 공략 도중의 점심이라는 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금 전에 들은 단어를 떠올렸다.
‘분위기라···.’
사실 인테리어 자체로는 다른 식당에 비해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대량으로 박아넣은 발광석의 은은한 빛이 분위기를 살려주
는 것 같다.
‘비싼 값을 하긴 하네.’
또한 이곳에서는 몬스터를 견제할 필요 없이 마음이 편안하니 더 좋게 느껴지
는 거겠고.
잠시 후, 헌터들이 주섬주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을 상당히 많이 줬는데 여섯 헌터 모두가 그릇을 싹싹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