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가능해 (22/125)

      불가능해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헌터들이 왁자지껄하게 일어선다.

내가 요리하는 동안 다들 치료는 물론, 몸단장까지 한 건지 들어오기 전보다

상당히 멀끔해졌다.

처음부터 헌터 커뮤니티의 글을 믿었다던 현수라는 남자가 지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혹시 식당을 발견할까 봐 현금도 충분히 챙겨왔어요.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다들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제 말이 맞았네요. 후후.”

우쭐해하는 그 모습에 주변의 헌터들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

었다.

그렇게 그들은 계산까지 흔쾌히 하고 한결 가벼운 뒷모습으로 떠났다.

* * *

잠시 던전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들고 헌터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진짜 오랜만인데.’

이세계에서 보냈던 날을 제외하고도 1년은 된 것 같다.

스크롤을 내리기도 전에 댓글이 유독 많은 베스트 글이 보인다.

올라온 날짜는 3일 전.

제목은···.

‘던전에서 사냥하다가 식당 발견해서 밥 사먹음···. 이 글인가 본데?’

그냥 봐도 내 던전 식당에 대한 글이다.

내용을 슥 훑어보았다.

제목 그대로 던전에서 게이트를 발견해 들어갔는데 식당이었고, 밥을 사 먹었

다는 이야기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써두었을 뿐인데···.

‘댓글이 진짜 난리네.’

초반에는 당연히 드립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던전 안에 식당이 있다는 말에···

나는 던전에서 포장마차도 봤다.

나는 던전에서 마트를 발견해서 쇼핑을 했다.

나는 사실 던전에서 살고 있다.

이런 식의 장난 댓글만 줄줄 달리다가, 글쓴이가 거짓말 취급 억울하다는 댓

글을 달면서 싸움으로 번졌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공격당했다고 봐야겠다.

- 당연히 뻥이죠 아니 이런 개소리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휘둘리는지 모르겠

네요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저런 스킬 있으면 다르게 활용하지

무슨 식당을 하겠습니까

ㄴ (글쓴이) 아니 내가 진짜 경험한 거라니까? 혼자 간 것도 아니고 우리 파

티원들 다 같이 갔다고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 이 사람 왤케 진지해? 자꾸 이러니까 헷갈리는데

ㄴㄴ 또 속는 사람이 있네 이래서 이런 글이 올라오는 구나 ㅋㅋㅋㅋ

이런 식의 댓글들이 가득했다.

또 어떤 두어 개의 댓글 아래에는 욕과 비웃음이 여러 개 달려있었다.

내용을 대충 짐작해보면 자기도 거기 가봤다고 진지하게 썼다가 욕만 먹고 삭

제한 것 같았다.

“재밌네.”

피식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역시 이 식당의 존재 자체가 직접 와보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

는 거겠지.

실제로 인간의 힘을 초월한 것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렇게 커뮤니티에 올라왔으니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알고 오는 사람의

비율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지금은 못 믿고 비웃고 의심해도, 막상 식당 게이트가 눈앞에 나타나면 그게

진짜였구나, 깨닫겠지.

‘이제 다짜고짜 덤비는 사람은 좀 줄어들겠군.’

불필요한 소모전이 없어지면 한결 편해질 것 같다.

나는 핸드폰을 놓고, 다시 던전 게이트로 발을 내디뎠다.

* * *

헌터 관리국.

대한민국의 게이트, 던전, 헌터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단순히 게이트와 던전뿐만 아니라 길드, 협회와 관련된 일들, 헌터와 관련된

치안 문제 등등 복합적인 일들이 모두 관리국의 몫이었다.

헌터 관리국 서울 본부.

강남웅 과장이 옆자리의 S급 헌터 송혜연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그 글 보셨어요?”

“네? 무슨 글이요?”

“헌터 커뮤니티에 며칠째 베스트로 올라왔다가 삭제된 글인데···.”

“아, 뭔지 알아요. 그 식당 이야기요?”

“역시 읽어보셨네요.”

별다른 재미는 못 느끼지만 그래도 헌터 커뮤니티 모니터링은 종종 하고 있었다.

뜻밖의 정보를 얻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헌터 커뮤니티에서 힌트를

얻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송혜연이 대답했다.

“주말에 읽어봤어요. 그거 삭제됐구나. 하긴 욕을 그렇게 먹었으니 웬만한 사

람이면 못 버티고 지웠겠네요.”

“그렇긴 하죠. 큭큭.”

작게 웃은 강남웅 과장이 다시 되물었다.

“그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던전 식당이요?”

“네. 혹시 진짜일 수도 있을까요?”

헌터 관리국 소속의 S급 헌터이자 던전 전문가 송혜연.

던전 마스터라는 특수 클래스와 관련 학문의 박사학위까지 지닌 그녀였다.

던전에 관해서 만큼은 능력도, 지식도 대한민국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송혜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어떻게 생각해도 불가능해요. 그 글에 따르면 던전 안에, 또 다른 던전

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 누군가 식당을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일단 식당을 할 정도로 큰 던전이 한 사람의 소유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특수 능력은 정말로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공간을

다루는 능력은 굉장히 특별하죠. 마나를 밖으로 표출하는 다른 전투 능력과는

결이 다르거든요. 희귀하게 아공간 창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건 알고 있죠?”

“네. 그건 알아요.”

“그 사람들이 가진 아공간 창고는 아무리 커도 캐리어 하나의 크기를 넘어가

지 못해요. 아,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메리트긴 한데, 지금은 그 던전

식당이라는 데랑 비교하려는 거니까.”

송혜연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자기 자리에 손을 뻗어 종이와 펜을 가져오더니 선을 찍찍 그었다.

수학 수업 때나 본 x, y, z축이 등장하자 강남웅 과장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

졌다.

‘···괜히 물어봤나.’

종종 대학에 강연도 나가는 사람이라 설명도 꼭 교수처럼 한다.

송혜연의 펜촉에서 복잡한 숫자와 기호가 그려졌다.

“던전과 각성자를 마나 이론으로 풀어본 거예요. 모든 게 추정일뿐이니 평균

값으로 가정하고 계산해봤는데···.”

말이 길어질수록 강남웅의 동공이 동태눈이 되어갔으나 송혜연은 알아채지 못

했다.

“···그래서 각성자가 던전을 소유할 수는 없다! 이게 제 결론이에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100% 완벽한 이론은 아니에요. 현재까지 나온 수식 중에 가장 잘

들어맞지만 예외가 또 없는 건 아니라···. 그렇다 쳐도 결과값이 이 정도로

튀는 건 설령 S급 헌터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마나량이 아니죠. 이해를 돕

기 위해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전화라도 한 통 왔으면 좋겠다···.’

라고 강남웅이 생각하는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커피를 저으며 걸어오던 김윤정이 불쑥 끼어든 것이다.

“어! 그 던전 식당 얘기하시는 중인가 봐요?”

“맞아요. 윤정 씨도 알고 있네요?”

“그럼요. 그런 재밌는 이야기를 놓칠 순 없죠.”

김윤정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윤정 씨도 그 얘기를 믿는 거예요?”

“네!”

송혜연의 질문에 김윤정이 해맑게 대답했다.

송혜연은 살짝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헌터 커뮤니티 모니터링하는 건 좋은데 거기서 나오는 가짜 정

보에 너무 휘둘리는 건 좋지 않아요. 그런 거 제대로 못 걸러내면 일을 효율

적으로 할 수가 없으니까요.”

“어? 팀장님, 아니에요. 저는 글을 읽은 게 아니라 헌터 친구한테 직접 들은

거예요!”

“······직접? 친구 본인이 그 식당에 갔었다고요?”

“네!”

김윤정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송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믿을만한 친구인가요?”

“당연하죠! 어릴 때부터 친했는데 그런 거짓말 하는 애는 아니에요!”

“···인터넷에서만 떠도는 이야기는 아닌 건가···. 그럼 조금 더 주시할 필요

는 있겠는데요. 음··· 제 생각엔 실제 그런 식당이 있을 확률보다는, 항상 똑

같은 환각을 보여주는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싶은데.”

강남웅 과장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환각에 제대로 당했는데 아무런 부상도 없

이 돌아온 거잖아요.”

“음···. 마석을 챙겨갔다고 했죠. 그럼 마석만을 노리는 몬스터인 건가···.

그것도 영 이상한데.”

골똘히 고민하던 송혜연 팀장이 곧 결론을 내렸다.

“좋아요. 일단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좋겠어요. 두 사람 다 그 식당 관련해서

새로 알아내는 거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았다.

송혜연은 던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잠시 상상해보았다.

만약 진짜 그런 게 있다면, 여러모로 파장이 클 것이다.

그녀는 곧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지. 아무리 높은 등급의 각성자라고 해도 그런 건 불가능해. 일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야.’

지금으로서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 고민한다고 다른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에휴, 일이나 하자.”

송혜연은 생각을 멈추고 밀린 서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 * *

“어서 오세······ 어라?”

손님이 들어오길 기다리던 나는 약간 놀란 소리를 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등장한 사람은 내 가게를 두 번째로 방문한 거였으니까.

눈가에 큰 흉터가 있는, 암살 클래스 S급 헌터로 추정되는 여자.

얼마 전 멸치국수를 먹고 1급 마석을 내고 갔던 손님이었다.

어쩐지 게이트로 들어오는 기운이 강하다 싶었다.

상대는 별다른 말 없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좀 놀랐는데 이 헌터는 그냥 덤덤해 보인다.

하루에 대한민국 전체에서 활성화되는 던전만 수백 개인데 겨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또 만나게 된다고?

뭐, 확률이 굉장히 낮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지···.

“와, 엄청난 우연인데요.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또 보게 됐네요.”

“···네.”

반갑게 인사했는데 대답이 미적지근하다.

이 손님은 역시 사장과의 대화를 선호하지 않는 타입인 것 같다.

“편하신 데 앉으시죠.”

굳이 그 얘기를 더 이어가지 않고 자리를 가리켰다.

여자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착석한다.

“메뉴판은 이쪽에 있습니다.”

손으로 벽면의 메뉴판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여자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여기 멸치국수는··· 이제 안 하는 겁니까?”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가까스로 참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오늘의 메뉴거든요. 메뉴는 보통 매일, 길어봐야 이틀 간격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안 한다기보다 오늘의 메뉴가 아닌 것뿐이지요.”

“아··· 그럼 혹시···.”

“드시고 싶으면, 만들어 드릴게요.”

그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확 핀다.

“그럼 곱빼기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가볍게 수락하고 주방에 들어왔다.

오히려 다른 것보다 만들기 훨씬 쉬운 메뉴였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조금 손이 많이 가는 메뉴였더라도 기꺼이 해줬을 거다.

지난번 내 요리 맛을 못 잊어 더 먹고 싶어 하는 손님인데 오히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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