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네요
원래는 간단하게 식당에서 낼 밑반찬과 집에서 먹을 것들을 몇 개만 만들 생
각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10종류가 넘는 밑반찬을 만들게 된 것이다.
“와아, 이거 맛있어 보인다···. 어! 장조림도 있네. 대박!”
최지수는 부엌에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달그락달그락 신나게 반찬통 꺼내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봉투를 하나 꺼내 현금을 넣었다.
그걸 들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지수는 접시에 열심히 반찬을 옮겨 담고 있었다.
“그걸 다 먹으려고? 배고프다면서. 몇 개만 꺼내서 빨리 먹어.”
“아니, 그래도 이것저것 맛은 봐야지. 이걸 보고 어떻게 안 먹어 봐.”
통에 든 어묵볶음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피곤하다면서 이걸 또 다 꺼내서 차릴 줄은 몰랐다.
하긴, 이런 부분에서는 또 엄청 부지런하다.
마지막으로 밥을 한 그릇 떠온 최지수가 의자에 앉으며 감탄한다.
“완전 진수성찬이야.”
특별한 메인 메뉴 없이 밑반찬만으로 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완성되었다.
접시에 놓인 반찬들이 알록달록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장조림, 멸치볶음, 어묵볶음, 알감자조림, 깻잎, 진미채 볶음, 김치 등.
다른 거 필요 없이 이런 반찬 한두 개만 해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인 밥도둑들
이다.
최지수가 윤기 나는 밥 위에 깻잎을 한 장 올리더니 한입에 밀어 넣었다.
볼이 볼록한데 또 장조림 메추리알과 알감자, 어묵볶음까지 입안에 쏙쏙 들어
간다.
“으음~ 넘 맛있어.”
햄스터처럼 양 볼이 볼록해진 채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꿀꺽 밥을 삼킨 최지수가 나를 보며 묻는다.
“근데 갑자기 반찬을 왜 이렇게 많이 한 거야?”
“그냥 요리하고 싶어서.”
나는 대충 대답하며 젓가락질하는 최지수 옆에 흰 봉투를 최지수 놓았다.
툭.
힐긋 봉투에 시선을 주고, 별 관심 없는 듯한 투로 묻는다.
“응? 이건 뭔데?”
“열어 봐.”
왠지 민망해서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내 거야? 누가 편지라도 보낸 건가?”
지수는 혼자 중얼거리며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히익!”
그리고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돈? 이게 다 얼마야? 어디서 난 건데? 나 주는 거야?”
한 번에 대체 몇 개의 질문을 하는 건지.
“용돈. 100만 원이고, 굶지 말고 제때제때 챙겨 먹으라고 주는 거야.”
“진짜? 대박!”
지금 주는 용돈은 던전 식당에서 겨우 하루 슬렁슬렁 장사해서 벌 수 있는 돈
이다.
사실 훨씬 더 넉넉하게 줄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최지수가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100만 원 정도로 조
정한 것이다.
이것도 옛날 우리 형편으로 생각하면 과한 용돈이다.
역시나, 좋아서 환하게 밝아지던 지수의 표정에 어느 순간 근심이 드리워졌다.
“아니, 근데 갑자기 어디서 난 돈이야? 요즘 일 안 하는 거 아니었어? 가끔
알바만 하고 있다고···.”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다시 헌터 일을 하거나 아니면 혹시 이상한 일에 손을 댔을지 모른다고 생각
하는 거겠지.
솔직히, 현재 던전 식당에서 버는 돈이 완전히 깨끗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헌터 관리국에 내 능력을 등록한 것도 아니고, 던전이라는 이유로 좀 멋대로
진행해버린 거니까.
나는 별로 문제없이 풀릴 거로 생각하는데, 최지수는 워낙 잔걱정이 많은 애다.
그래서 그냥 모든 것이 깨끗이 정리되고 나면 알려줄 생각이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
“뭐어?! 진짜?”
“응.”
그냥 복권이라도 당첨됐다고 할까 하다가, 눈치가 또 엄청 빠른 애라 더 티
날 것 같아서 이렇게 둘러댔다.
“언제부터?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건데?”
“아직 정식으로 들어간 건 아니라서 나중에 말해줄게.”
“어? 그런데 이렇게 줄 돈이 있어?”
예리하기는.
“이 정도 비상금은 있어. 이제 안정적으로 벌 수 있으니까 미리 주는 거야.”
“오오오···.”
거짓말할수록 빈틈이 보일 거라 그냥 대충 넘겼다.
원래라면 조금 더 캐물었을 텐데, 지금의 최지수는 눈앞의 현금에 판단력이
조금 흐려진 것 같다.
여기서 마무리하자.
“준 사람 기분 좋게 아껴 쓰지 말고 팍팍 써라. 다 쓰면 더 줄 테니까.”
“진짜로? 그래도 돼?”
“돈 관리는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주는대로 써.”
“아싸! 사실 시험 끝났으니까 애들이 같이 여행 가자고 했는데 나는 안 된다
고 했거든. 이거면 나도 갈 수 있겠다!”
지수는 진심으로 기쁜지 밥 한술 먹고 다시 돈 봉투를 들여다보고, 또 반찬
입에 넣고 돈을 헤아렸다.
지금껏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이 녀석도 돈 걱정하는 게 지긋지긋했을 거다.
게다가 저 나이대면 제일 놀고 싶을 때니까 더.
하도 먹는 데 집중을 못해서 결국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봉투를 뺏었다가 다시
주었다.
이런 상황이 어이없어 웃기면서도 뿌듯해서 저녁 내내 웃음이 났다.
* * *
함께 마계 구경을 하고 온 이후로, 베로와 슬라임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나와 베로가 함께 슬라임들을 만나러 개천으로 가면, 세 슬라임이 차례로 벌
떡 일어선다.
“삐잇!”
“삐이익!”
“삐이!”
반가운지 밝은 표정들이다.
이제 슬라임 인간들은 베로를 보고 오들오들 떨지 않는다.
여전히 조금 긴장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생긴
모양이었다.
물론 동등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슬라임들은 여전히 베로가 자기들보다 상위의 존재라 인식하는 듯했다.
다만, 이제는 자기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지켜주는 존재로 여기게 되어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정도면 굉장한 성과인 것 같은데, 베로는 조금 아쉬운 모양이었다.
녀석은 가끔 세 슬라임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세 마리의 슬라임 사이에 끼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케르베로스와 슬라임이 동등한 친구가 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또 모를까.
나는 베로가 왜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 건지 조금 생각해보다가 나름의 답
을 얻었다.
‘베로의 형제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케르와 로스.
케르베로스는 태어날 때부터 세 개의 머리가 하나의 몸을 공유한다.
세 개의 머리는 몸만 함께 쓸 뿐 각각 다른 개체로, 세쌍둥이라 보면 될 것이다.
케르베로스라는 몬스터는 그렇게 세 형제가 평생동안 함께 살아간다.
보통의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그런데 베로는 그 소중한 형제들을 모두 잃었다.
‘당연히 함께였어야 했는데.’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을 거로 생각했을 형제들을 잃고 베로는 혼
자 살아남았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
영원히 다시 채워지지 않을 듯한 공허함.
나도 부모를 잃었고, 한때 동생마저 잃은 줄 알았다.
그래서 베로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아, 혹시···.’
문득 나란히 서 있는 호빵이, 찐빵이,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왜 더 가까이 오지 않고 멈춰섰는지 궁금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고
있다.
‘셋.’
딱 셋이다.
케르베로스 머리 개수처럼.
‘그래서였나.’
슬라임들 사이에 그렇게나 끼어들고 싶어 하는 이유.
하필 딱 세 마리라 더 형제들과 옛날 기억이 떠오른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혼자 너무 멀리 간 걸 수도 있겠지만, 전혀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
“베로.”
“웡?”
이름을 부르자 베로가 흰자가 보이게 나를 올려다본다.
올려다본다고 해봤자, 나와 머리 높이가 그렇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나는 녀석이 안쓰러워져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털이 거칠어 보이는데 막상 만지면 부들부들하다.
베로는 기분 좋은지 고개를 치켜들며 헥헥 입을 벌린다.
그때였다.
던전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 느껴진다.
‘손님이군.’
베로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난 식당에 갈게. 너희끼리 쉬고 있어.”
“웡웡!”
“삐이이!”
함께 대답하는 녀석들을 두고 나는 식당 홀로 향했다.
* * *
두리번거리며 등장한 것은 수척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수염 자국이 보인다.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홀을 둘러본다.
“여긴···.”
간판을 제대로 안 보고 들어왔나 보다.
가끔 이런 손님들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대답해주었다.
“식당입니다.”
“식당··· 이요?”
헌터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간 후, 식당에 대해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커뮤니티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헌터들과 깊이 교류하지 않거나, 그런 허무맹
랑한(?) 소문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듯했다.
남자가 나에게 질문했다.
“혹시 몬스터는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럼 저를 공격하지 않겠네요?”
“당연하죠.”
그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
꼭 한숨처럼 들리는 웃음이었다.
“이거, 쉽지 않네요.”
아주 작게 혼자 중얼거린다.
무언가 체념한 것 같은 표정이다.
‘약하네.’
D급 정도 되려나?
혼자 던전에 들어온 건 아닐 거다.
이렇게 약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게이트를 연결하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일부러 일행들과 떨어진 겁니까?”
“아···.”
정곡을 찔린 듯 잠깐 당황해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죽으려고요?”
“······.”
이번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맞나보군.’
약한 헌터가 던전에서 일행과 완전히 멀어지는 건 그냥 죽겠다는 거나 마찬가
지였다.
들어오자마자 보인 체념한 태도와 정황을 미루어 짐작한 건데 정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말없이 굳어있는 남자에게 내뱉듯이 말했다.
“살아야 한다, 죽는 건 나쁜 짓이다 같은 설교는 할 생각 없습니다. 표정 푸
세요.”
“아···.”
내 말이 의외였는지 약간 놀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른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인생에 훈수 둘 생각은 없다.
그런 말로 마음을 돌릴 수도 없을 거고.
“앉으시죠.”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헌터가 두 손을 내젓는다.
“아, 아닙니다. 뭔가 먹을 생각은 없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음식 한 끼 먹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해드리죠.”
“···뭐든지요?”
“제 능력 한에서는 최대한 해볼게요. 만약 제가 모르는 능력 밖의 메뉴면 라
면 하나 끓이는 걸로 하고요.”
재미없는 농담에도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깐 고민에 잠겼다.
“마지막···. 잠깐만요.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라서 바로 생각을 좀 해봐야겠
는데···. 아, 그게 먹고 싶네요.”
그래 놓고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연다.
“그··· 간장계란밥이요. 말해놓고 보니 마지막 식사로는 너무 초라한 메뉴 같
네요. 하하.”
민망한지 자기가 말해놓고 어색하게 웃는다.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초라한 음식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조리 방법이 쉬우냐 어려우냐로 그
요리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라면처럼 간단한 요리를 레스토랑
의 비싼 코스 요리보다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요.”
진심이었다.
몬스터를 물어뜯고 살던 시절, 나는 눈앞에 흰쌀만 한 움큼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내 앞에 썩은 사과가 놓여있었더라도 나는 그걸 진귀한 요리처럼 귀중
하게 여겼을 것이다.
“초라한 음식은 없다···.”
내 말을 곱씹던 헌터가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정말 그럴까요?”
“네. 저도 좋아합니다. 간장계란밥. 그것만큼 간단하면서도 맛있고, 친근한
것도 많이 없지요.”
“그거 기분 좋은 말이네요. 제가 사실 요리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한
테 직접 만들어주고 맛있다는 소리 들은 게 간장계란밥밖에 없거든요. 이게
초라하지 않다고 말해주시니 위안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