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실패한 요리 (26/125)

      실패한 요리

“위로하려고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습니다.”

“하하, 압니다. 좋아한다고 말할 때 눈빛이 굉장히 진지하셨거든요.”

내 말에 헌터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편해 보이는 진짜 웃음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잠시 기다리세요. 만들어 드릴 테니까.”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두고, 요리를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고 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콰직!

팬 위에 계란 하나를 깨트린다. 단,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계란이 익는 동안 뜨끈뜨끈한 밥을 덜었다.

비벼 먹어야 하니까 일반 밥그릇보다는 좀 큰 그릇이 좋다.

거기에 마가린 한 덩어리를 올리면, 밥의 열기에 녹으며 미끄러진다.

흰자만 적당히 익은 계란을 밥 위에 올리고, 간장 한술, 깨, 참기름만 올려주

면 끝이다.

맛있는 간장계란밥 완성이다.

* * *

43세, D급 헌터 이형우.

그의 앞에 간장계란밥과 김치가 놓였다.

아이들에게 해줬던 것도 벌써 한참 전의 일.

때문에 그에게도 참 오랜만인 메뉴였다.

짭조롬한 간장과 고소한 깨 냄새와 후각을 자극했다.

분명 죽고 싶었는데 이걸 보고 입에 침이 고이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이형우는 그렇게 말하고, 탱글탱글한 노른자를 톡 터트렸다.

흰 쌀밥이 노랗게 물들었다.

크게 한 숟가락 떠먹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간이 딱 좋네요. 몇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자라면 더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였어요.”

이형우는 손을 저으며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부엌 너머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그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던전 안의 식당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공간 자체도 그 분위기에 한몫했지

만, 태도도 이상했다.

죽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도 말리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다.

무슨 변덕인지 이형우는 갑자기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오히려 털어놓고 싶어진 것이다.

“저한테는 아들이 셋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내뱉었다.

“다복하시군요. 집안이 시끌벅적하겠네요.”

“그렇죠. 엄청난 말썽꾸러기들이에요. 특히 둘째는 동네에 개구쟁이로 소문날

정도로 활발하고요.”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와이프와는 6년간 연애하고 결혼했고요. 성실하고 착하고, 참 좋은 사람입니

다. 저한테는 과분할 정도로요.”

“화목한 가정일 것 같군요.”

뜬금없이 꺼낸 가족 이야기를, 기묘한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그런데 막상 저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실패자거든요. 인생이 실패의 연속입니다.”

회사에서 잘린 것이 본격적인 실패의 시작이었을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직도 어렵겠다 싶어서 비슷한 처지의 친

구와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뒤돌아보니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업에 맞는 사람

이 아닌데요. 돈 문제가 생기니 현실이 지옥이 되더라고요. 와이프 볼 면목도

없고, 부모님, 아이들, 온 가족한테 부끄럽더군요.”

남자는 접시를 닦으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 침묵은 비난도, 위로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듣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아닌 듯했다.

어쩐지 계속 입이 열렸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그때, 정말 오랜만에 행운이 찾아왔어요. 각성을

한 겁니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헌터로 열심히 살면 되겠다 싶었어요. 이제는

무리한 일은 벌이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정말

로, 정말 열심히 헌터로서 일했는데···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아십니까? 이

번엔 암이랍니다.”

이형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 한창 아이들한테 돈 들어갈 시기인데, 돈을 벌기는커녕 또 축내게 생겼

습니다. 수술하고, 치료를 받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요.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던전에서 헌터로 죽어서 가족들 보상금

이나 받게 하는 게 더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말할수록 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실패로 점철된 인생도, 이런 것도 버티지 못하는 약한 정신력도.

이형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쓸모없는 인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진단받고 3일간 머릿속에 이 생각만 가득했다.

이제 겨우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중에 이런 일이 또 벌어졌다.

아내에게 말도 못 꺼냈다.

의욕이 하나도 없었지만, 약속된 일정이 있어 꾸역꾸역 던전에 나왔다.

다른 헌터들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

열심히, 나쁜 짓 안 하고 살았는데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렇게 흘러갈까.

어쩌면 조금은 홧김에 혼자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던전의 게이트를 발견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이중 던전이 눈앞에 나타나는 거 보고, 아, 여기서 죽는

게 내 운명이겠구나 했습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 순간엔 정말 그랬다.

온 세상이 죽어라, 죽어라 하며 자신을 등 떠민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으니까.

“그렇게 죽으려고 들어왔는데, 지금 밥 먹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네요. 나 원

참. 나란 인간은 대체 뭔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속 얘기였다.

무겁고 우울한 얘기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밑바닥까

지 보여주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이야기하고 나니 별 얘기도 아닌 것 같기도 같았다.

분명 지독하게 괴로웠는데, 소리로 덜어낸 만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모르겠습니다. 뭐가 뭔지···.”

이형우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남자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저도 뭐가 맞는지 모릅니다."

“······아. 그, 그렇겠죠···.”

이형우는 이야기 털어놓은 게 조금 머쓱해졌다.

“결국 선택은 당신의 몫이고 미래에 어떤 상황이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까요. 다만 제가 궁금한 건···.”

그릇을 닦는 데 집중하는 것 같던 남자의 시선이 이형우에게로 향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죠?”

“네?”

“뭘 위해 살아왔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당연히 가족이죠. 결혼 전에는 철없이 살았고, 결혼하고 첫애를 낳

기까지도 사실 깊은 고민은 없었습니다.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나도 한다는 정

도였죠. 그런데, 첫 아이가 생기면서 제 안의 뭔가가 완전히 바뀌라고요. 그

게··· 삶의 무게가 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형우의 머릿속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둘째, 셋째까지 생기니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 내가 무너지면 절대 안 되겠

다··· 생각했었죠.”

이형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가족들은 당신에게 뭘 원합니까?”

“가족들이··· 저에게요?”

남자가 다시 한번 물었다.

“아이들은 당신에게 뭘 바랍니까?”

“아이들은···.”

이형우가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소리를 냈다.

“···같이 놀아달라고 하지요. 한창 뛰어놀 나이거든요.”

“그럼 아내분은요?”

“건강 챙기라고···. 애들 생각해서라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니까 몸

조심하라고···.”

목소리가 점점 줄었다.

‘한심한 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거냐.’

이형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 땅굴 파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갈 뻔했다.

가족들이 그에게 가장 바라는 것을 허무하게 놓아버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

를 줄 뻔했다.

이런 바보 멍청이가 또 있을까.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이형우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았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식당을 하셨거든요.”

“아아···.”

“그런데 제 머릿속에 깊게 남은 요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제가 초등학생 때, 새로운 시도를 해보신다고 장작불에 드럼통으로 통닭구이

를 해본 적이 있었지요. 몇 시간 뒤에 이제 다 됐을 거라며, 엄청 맛있을 거

라 호언장담을 하며 통을 열었어요. 그런데, 뭐가 잘못됐는지 닭이 아주 시커

멨습니다. 그래도 속살은 맛있을 거라며 집게로 닭을 건드렸는데···.”

남자가 씨익 웃었다.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이 갑자기 소년처럼 보였다.

“건드리자마자 파사삭 부서져 재가 되어 흩어졌어요. 결국, 기대했던 치킨이

아니라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워야 했죠.”

“하하! 재밌는 추억이네요.”

“그래요. 재밌는 추억이죠. 그 후로 몇 년 동안 어머니는 뭔가 불리할 때마다

그 얘기를 꺼내셨고, 그럼 아버지는 애써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죠.”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흐뭇하게 듣던 이형우는 문득 남자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한 요리도 추억이 되는 거네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맛없는 요릴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 요리 자체는 아이들의 기억에 남을

겁니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도요. 어릴 적 아빠가 해줬던 요리에는, 맛있는

간장계란밥도 있겠지만, 밍숭맹숭한 라면, 태워서 못 먹게 된 핫케이크 같은

것도 포함되겠죠.”

“푸훗! 정확히 아시네요.”

“저도 요리 못 하는 가족이 있어서요.”

이형우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삼 형제가 다 자란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애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모습까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이형우가 물었다.

“아이들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저보다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요리 참 못했던 아빠로 기억할 것 같네요.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는 아빠.”

어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뚜렷이 상상하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애들이 그 기억을 추억하며 즐겁게 웃고 있을 것만큼은 확실했다.

“···돌아가야겠습니다.”

이형우가 일어섰다.

처음 식당에 들어올 때와 달리 눈빛에 생기가 생겼다.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눈빛을 바꿨다.

“얼른 가세요. 일행들이 찾고 있을 테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형우는 자신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남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남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리는 재료 바꾸지 말고 레시피대로만 하세요. 불 너무 강하게 켜지 말고

요.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는 게 좋으니까요.”

“···명심할게요.”

이형우는 서둘러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나갔다.

게이트 밖으로 나서자마자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형우 씨!”

“이형우우!”

함께 왔던 파티원들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던전은 클리어 한 모양이다.

이형우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힘있게 달렸다.

* * *

이형우는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결혼 후 홀로, 직접 나서서 장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상황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잃은 돈이 다시 생겨나지도 않았고, 생긴 병이 사라졌을 리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 시간 전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다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다!”

“아빠아아!”

“아바아!”

당연하다는 듯 몸을 던져오는 세 아들들을 힘겹게 받아냈다.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말렸다.

“얘들아, 아빠 피곤해. 그렇게 달려들지 마···. 어? 장까지 봐온 거야?”

“내가 저녁 만들겠다고 했잖아.”

“그러긴 했는데···. 내가 좀 봐줄까?”

아내는 못미더운 눈빛이었으나 이형우는 자신 있었다.

“아니, 괜찮아. 그보다 오늘 저녁에 따로 얘기 좀 하자.”

“얘기? 뭐··· 암튼 알았어.”

그날 저녁, 아이들의 기억 속에 아빠가 만들어준, 꽤 맛있는 볶음밥이 추가되

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