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관리국
식당을 깨끗이 청소했다.
평소에도 청결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색다른 손님이 찾아올 거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박 씨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대화를 조금 나눈 후, 아저씨가 전해준 말이 있었다.
- 홍재훈 기억하지? 그 녀석이 너 찾아 다니는 것 같더라고. 네가 자기한테
무슨 짓 한 것 같다고 안 좋은 소릴 하던데 뭔 소린지 횡설수설해서 알아듣질
못하겠더라. 연락처 알려달라는 걸 모른 척했어. 안 알려주면 무슨 신고를 하
겠다는데···. 나 원 참, 애가 점점 이상해져서 감당이 안 돼.
아저씨는 혹시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홍재훈이 확실히 고생하고 있나 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신고라··· 사냥을 제외하고 던전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헌터 관리국의
관할이다.
‘곧 찾아오겠네.’
생각보다도 많이 늦었다.
* * *
헌터 관리국 서울본부.
강남웅 과장이 송혜연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던전 식당에 관한 제보가 들어왔는데요.”
“특별한 내용 있어요? 아니면 나중에 볼게요.”
S급 각성자 송혜연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헌터 관리국에서는 몇 주 전부터 던전 식당에 관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던전 식당에 대한 이야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소문만 무성해졌다.
제대로 조사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으나 던전에 랜덤하게 나타난다는 그 식당
을 찾아내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관련 제보를 적극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남웅이 말했다.
“그게, 이건 바로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식당 주인의 정체를 안
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자기한테 무슨 짓을 한 것 같다고.”
“어, 그래요?”
김혜연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강남웅 과장을 바라보았다.
“그게 누구라는데요?”
그리고 일할 때만 쓰는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완전히 믿지는 않는 듯, 별로 놀라는 것 같진 않았다.
그간 비슷한 장난 제보가 한 건 있어 이미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F급 헌터 최현호. 주 무기는 검이고, 기본 스킬 이외에 다른 능력은 없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특이사항이 두 가지 있습니다.”
“F급 헌터···? 흠, 무슨 특이사항이죠?”
“첫째는 각성한 지 이제 3년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F급에 머무르고 있다는
거고요.”
“3년? 활동을 잘 안 했던 거 아니고요?”
“아뇨, 최근 몇 달을 제외하고 각성 후 3년간은 오히려 다른 헌터들의 평균
활동량보다 훨씬 더 많이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특이한 경우긴 하네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진 않
아요. 보통은 1년 정도 버티다가 발 빼버리기 때문에 3년까지 길어지지 않는
것뿐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압구정역 던전 붕괴 사고 기억하시죠?”
강남웅 과장의 말에 송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죠. 내가 현장에 나가기도 했었으니까. 여러모로 이상한 사고였는
데···.”
“그 사고 당사자가 바로 이 최현호라는 헌터였습니다.”
“···그래요?”
송혜연의 미간에 얕은 주름이 잡혔다.
그게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크게 연관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가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겠네요.”
“아, 직접이요?”
“강 과장도 같이 가봅시다. 주소랑 연락처 확인해주시고.”
“네. 지금 바로 가시는 거죠?”
“10분 뒤에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해요.”
“옙.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거짓 제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가민가하지만 그럴수록 직접 확인해봐야 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20분 뒤, 송혜연과 강남웅이 도착한 곳은 연식이 오래된 빌라 앞이었다.
“여기가 최현호 헌터가 사는 집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편이 좋지는 않은 듯했다.
3년간 F급 헌터였다면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벨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문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컥 문이 열렸다.
“최현호 씨?”
“네. 맞습니다.”
훤칠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헌터 관리국에서 찾아왔으니 놀랄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송혜연이 그를 보며 말했다.
“최현호 씨 관련해서 제보가 들어와서 확인을 좀 하려는데요.”
최현호는 싱긋 미소 지었다.
왜 찾아왔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에 송혜연은 잠깐 말을 멈췄다.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인다.
“혹시, 던전 식당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일부러 딱딱하게 질문했는데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송혜연과 강남웅이 도리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전혀 놀라지 않으시네요. 꼭 기다렸던 것처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늦으셨네요.”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뼈가 있었다.
내심 당황한 두 사람에게 최현호가 말했다.
“우선,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계속 이렇게 현관에 서서 얘기할 순 없으니까
요.”
“아, 예에···.”
왜인지 이 남자에게 말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남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는 뭘 마실지 물어보고 커피와 차까지 내주었다.
최현호는 관리국의 눈길을 피해 허가받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던전을 통해 식당을 운영할 일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
했으니 특정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특수한 일을 몇 개월간 제멋대로 벌인 게 옳은 일도 아
니지.’
오히려 빈틈을 파고든 거나 마찬가지기에 더욱 압박하며 추궁하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수긍해버리니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송혜연이 최현호에게 물었다.
“···최현호 씨가 그 던전 식당의 주인이 맞는 거죠?”
“맞습니다.”
“실제로 던전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겁니까?”
“제가 가진 던전만요.”
“게이트도요?”
“어느 정도는.”
송혜연은 실제로 들으면서도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신기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깊은 지식을
가졌다.
그래서 그게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라는 걸 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강남웅이 질문했다.
“F급 헌터라고 적혀있던데, 기록이 잘못된 겁니까?”
“1년 쯤 전에 마지막으로 측정했을 땐, F급 헌터 맞았습니다.”
“그때는 던전을 다루는 능력이 없었고요?”
“네.”
“······재측정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최현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혜연은 그의 태도에 좀 황당해하며 입을 열었다.
“아예 숨길 생각이 아니었군요.”
“그럼요. 기다리고 있었다니까요.”
느긋하게 대답하는 최현호에게 송혜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럼 왜 진작에 관리국에 알리지 않은 겁니까? 그리고 왜 하필 식당이
죠? 그 능력을 가지고.”
최현호가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걸 알아서요. 저는 제 능력을 활용해 제가 하고 싶은 일
을 할 거거든요.”
“식당이요?”
“네.”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송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미리 관리국에 알리고, 협의 후에 진행했어도 됐잖습니까.”
“던전에서 식당을 하겠다고요?”
“······.”
본인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을 뿐인데 송혜연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헌터 관리국은 그리 융통성 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안전과 관련되었기에 더더욱 그랬고, 파격적인 제안 같은 건 거의 받아들여지
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최현호가 미소 지은 채 말했다.
“가끔은 밀어붙이는 게 나을 때도 있죠. 그렇잖아요.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
을 허가한다고 결정하는 건 꽤 부담이 큰일이죠. 그 검토 과정이··· 엄청 오
래 걸렸을 것 같은데요.”
부정할 수 없는 말에 송혜연이 저도 모르게 살풋 웃었다.
그 옆의 강남웅 과장도 깐깐한 윗사람들이 떠올랐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던전과 식당.
생각해본 적 없는 조합이기에 설령 허가하는 방향이라고 해도 그 절차가 몇
년은 걸렸을 것이다.
눈 앞의 남자는 과감히 ‘던전 식당’을 운영하고 소문이 퍼지게 만들었다.
그게 말이 되는 것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윗사람들 또한 던전 식당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았다.
진짜로 믿든, 거짓이라고 생각하든,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에게는 ‘던전 식
당’이 확실히 각인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백지 상태에서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거부감이 덜한 상태
에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
식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노렸던 걸까?
송혜연은 속으로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던전을 어떻게 쓸지는 그만큼 확고하신 거네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다 생각하셨겠지만, 최현호 씨가 가진 능력은 다른 누가
대체할 수 없는 거지요. 관리국과도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게 서로에게 이
득이고요. 제가 나서서 최현호 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해보겠습니다. 계속
식당 운영을 할 수 있도록요.”
“감사합니다.”
최현호가 빙그레 웃었다.
“대신 최현호 씨도 관리국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다른 S급 헌터들과 마찬가
지로 혹시 모를 긴급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야 하고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이니까요.”
긴급 상황에 던전을 제공해달라는 말이었다.
“그건 당연히 가능하죠.”
“그럼,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것 같은데, 이제 그 던전을 확인해봐도 될까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요.”
“그럼요.”
두근두근.
송혜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사실 아까부터 던전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었다.
던전 마스터인 그녀에게 던전에 대한 새로운 능력의 등장만큼 관심 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수식으로 계산했을 때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능력이 실존한다니.
기대감에 손에 땀이 찰 지경이었다.
최현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르륵.
놀랍게도, 그의 앞에 정말로 게이트가 나타났다.
아공간 창고와 달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게이트였다.
“들어오세요.”
송혜연과 강남웅은 놀란 마음을 감추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 팀장님. 저는 어떻게···.”
송혜연과 달리 강남웅은 비각성자였다.
안전상의 문제가 있기에 비각성자는 게이트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강남웅은 제발 나도 들어가게 해달라는 눈빛을 마구 쏘아보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던전 식당을 구경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같이 들어갑시다. 내가 허가할게요.”
송혜연의 말에 강남웅 과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두 사람은 떨리는 마음으로 게이트로 들어갔다.
정말로 동굴형 던전이 나타났다.
“세상에, 진짜였어.”
송혜연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최현호를 따라 걸었다.
강남웅은 신기한 듯 홀로 계속 감탄하며 두리번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의 끝에 도달했고,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정말로 식당이 있었다.
“여기가 던전 식당이군요. ···정말 이게 가능했다니.”
“어떻게 이런···.”
최현호는 놀라는 그들을 보고 재밌다는 듯 살짝 웃었다.
송혜연이 아까보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또 다른 게이트는 어디 있는 거죠?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거고요? 아, 좀 조
사를 해봐도 되겠죠?”
던전 덕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던전에 진심인 그녀였다.
지금까진 나름 무게를 잡아보려 했지만, 막상 던전과 관련한 놀라운 스킬을
목격하고 나니 그게 어려워졌다.
“그 전에,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손님이시니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
은데요.”
최현호가 부엌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벌써 12시가 지나 있었다.
던전에 정신이 팔려서 잘 몰랐는데 그 말을 들으니 급격히 배가 고파왔다.
이래도 되는 건지 잠깐 생각하던 송혜연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먹으면서 이야기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