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
손목에 가볍게 스냅을 주었다.
화르륵!
웍 위로 흩날리는 채소에 불이 붙었다.
“오오오···!”
화려한 불 쇼에 헌터 관리국에서 왔다는 송혜연과 강남웅이 시선을 떼지 못하
며 작게 손뼉을 쳤다.
오늘의 메뉴는 해물짬뽕.
얼큰하게 매운 게 먹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선정한 메뉴였다.
두 사람 다 매운 걸 잘 먹는다니 고추기름과 고춧가루를 넉넉히 뿌려주었다.
잠시 후, 새우와 홍합, 오징어가 푸짐하게 담긴 짬뽕이 완성되었다.
나는 짬뽕 두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다 됐습니다.”
“우와···!”
송혜연이 침을 꼴깍 삼키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오···. 냄새부터 너무 좋은데요.”
강남웅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며 말했다.
한입 맛본 그는, 그릇째로 들고서 보기만 해도 땀이 날 것 같은 빨간 국물을
맛깔나게 들이마셨다.
후루루룩.
“크하아아! 얼큰하고 칼칼하고, 진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좋은데요?”
“그래요? 나도 국물 마셔봐야겠다.”
강남웅의 말에 면을 크게 집던 송혜연 또한 그 말에 국물을 후후 불어 한 모
금 마셨다.
“우와아···!”
그리고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는다.
“국물에 진짜 시원한 맛이 있어요. 해물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가.”
“그렇죠. 제가 재료 아끼는 편은 아니거든요.”
“오, 손님 입장에서 너무 좋은 식당인데요.”
나는 입맛에 잘 맞는지 짬뽕 먹는 데 집중하는 그들을 흐뭇하게 보았다.
맵긴 매운지 도중에 손부채질도하고, 물도 벌컥벌컥 마시는데,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며 끝까지 다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너무 잘 먹었어요!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요.”
두 사람이 빨갛게 물든 입술로 밝게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송혜연은 곧바로 던전을 더 살펴보고 싶어 했고 나는 마음대로
보라고 허락했다.
미리 조치는 취해두었다.
던전 전체를 보여주는 건 당연히 안 될 일이다.
안 그래도 사람이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상하다고 여길 것
이다.
그러니 모두 오픈해봤자 좋을 것도 없다.
식당은 던전 전체로 봤을 때 가장자리 쪽에 위치했다.
그래서 내 방 게이트와 연결해놓은 통로 쪽의 갈림길 하나만 막으면 던전 전
체와 완전히 차단될 수 있었다.
나는 그 통로 입구에 마나를 단단하게 응집시키고, 환각 마법을 걸어 자연스
러운 동굴 벽처럼 만들었다.
송혜연과 강남웅은 또 다른 통로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몰라 베로와 슬라임들은 마계로 산책까지 보냈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공개한 것은 식당과 연결된 가까운 방 대여섯 개 정도까지였다.
그 정도로도 그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강남웅은 동굴형 던전 자체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는 거였고, 송혜연은 자신
이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며 놀랐다.
“우와···! 세상에···.”
송혜연은 식료품 창고로 쓰고 있는 냉장방과 냉동방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하나의 동굴형 던전에 이렇게 다른 특성을 가진 공간이
공존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에요!”
“그렇군요.”
“현장에 자주 나가긴 하지만, 이런 곳을 직접 보는 건 저도 처음이네요!”
송혜연은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었고, 나는 사실과 거짓을 섞어 적당히 대
답해주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게이트를 만들면 다른 던전과 연결이 가능한 거군요. 그
렇게 해서 손님이 들어오게 한 거고요.”
“네. 맞아요.”
“그럼 이런 건 가능한가요? 현호 씨가 다른 던전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만들었
을 때, 지금 제가 그리로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시도해봤는데 안 되는 것 같더군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
이유 또한 알고 있다.
게이트를 넘나드는 것은 차원을 넘나든다는 것과 같은 의미.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한 번에 하나 이상의 차원을 넘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 다른 게이트를 넘어가려 하면 게이트 자체에서 그 사람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억지로 밀어낸다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송혜연은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실 상당수의 질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송혜연은 전혀 이상
하게 여기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에요. 부
담없이 아는 만큼 대답해주시면 되는 거죠. 사실 자기 능력에 대해 제대로 아
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냥 각성했고, 능력이 생겼으니 활용하는 것뿐···.”
그렇게 던전을 한 바퀴 둘러본 후, 강남웅 과장은 이제 자기는 볼 만큼 봤다
며 먼저 식당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여전히 눈을 빛내며 동굴 벽을 만지작거리는 송혜연을 두고 그와 함
께 돌아왔다.
아직 한참은 더 걸릴 것 같다.
강남웅 과장에게 차 한 잔을 더 대접했다.
그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하며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정말로 던전에 진심이시거든요.”
“그런 것 같네요.”
어마어마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 감동한 송혜연의 눈빛이 생각나 큭큭 웃으며
대답했다.
강남웅이 홀짝 차를 마시고 입을 열었다.
“우선 저희끼리 구체적인 얘기를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례없는
일이라 생각해야 할 게 많을 것 같거든요.”
이야기는 꽤 복잡했다.
내가 모르는 여러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했고,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꽤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잠시 후 송혜연이 합류하면서부터는
금방금방 결정이 났다.
웬만하면 내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주려는 듯했다.
“이 정도면 중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 결정된 것 같네요. 사무실 들어가서 좀
정리해봐야 하겠지만··· 추가적으로 얘기해야 할 게 있으면 따로 연락드릴게요.”
“던전 식당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내 질문에 송혜연이 머릿속으로 잠깐 계산한 후 입을 열었다.
“서류상으로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절차가 많아서 최소 두 달, 아니,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겠어요. 오롯이 던전에 대한 게 아니라 식당이라는 업
종이 걸려있어서, 헌터국 내에서만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그동안 영업을 하면 그것도 위법이 되는 겁니까? 마냥 기다리기엔 너무 먼데
요.”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불만을 드러내며 말하자 송혜연이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일주일. 일주일만 기다려주세요.”
“일주일이요?”
“네. 이후 영업 시작해도 문제없도록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시켜 볼게요. 제일
중요한 것만 우선적으로 처리해서.”
그녀의 말에 강남웅이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공수표를 날리는 것 같아 되물었다.
“두 달이라면서, 일주일로 줄이는 게 가능합니까?”
송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생각보다 능력 있습니다. 관리국의 몇 안 되는 S급 각성자예요. 제가 원
해서, 제 능력을 썩히기 싫어서 실무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임원급 권
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꽉 막힌 분들이 있어서 좀 부딪쳐야 하겠지
만, 그래도 마음먹고 추진하면 가능해요.”
헌터 관리국 직원이 내부의 트러블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내 편의를 봐줄 이유
가 있나?
나라면 굳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거란 생각으로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자신만만하던 말투가 약간 조심스럽게 바뀌었다.
“종종 던전에 찾아와도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던전에 관한 연구
를 많이 하는데 이곳을 살펴보면 굉장히 크게 도움 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온전하고, 또 안전한 던전은 없으니까···. 특수 능력이지만 실제 몬스터들이
사는 던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고···.”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살펴보세요.”
“······!”
송혜연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나에게 나쁠 건 없다.
관리국과 이래저래 엮일 일이 생길 경우 최대한 내 편에서 처리해줄 사람이
있는 게 좋으니까.
어차피 내 능력을 넘어설 수 없으니 숨겨둔 부분을 알아채지는 못할 거고.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연락드리죠.”
송혜연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밝게 웃었다.
나는 두 사람과 차례로 악수하고 그들을 배웅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주일 사이에 내가 할 일은 등급을 재측정하는 것뿐이었다.
* * *
송혜연과 강남웅이 빌라 밖으로 나왔다.
던전 식당이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식당의 주인과 원만하게 이야기도 끝냈다.
큰 숙제가 하나 해결되었으나, 이 다음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에 해야 할 복잡한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강남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거 엄청나게 바빠지겠는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
리고 일주일··· 가능한 거 맞아요?”
“해내야죠. 내가 잘 처리해볼 테니까 서포트만 좀 잘 해줘요. 한동안 정시퇴
근은 물 건너갔네요.”
그렇게 말하는 송혜연은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강남웅은 그의 상사가 거의 일 중독자에 가깝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확인했다.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생기자 더 강한 목표 의식이 생긴 것 같다.
물론 그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기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부담스러울 뿐이
었다.
한숨을 푹 내쉬자 송혜연이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강 과장님.”
“···예?”
“이번 일 잘 마무리 하면 특별 휴가 일주일. 어때요? 수당에 휴가비도 두둑히
얹어서.”
“일주일이요?”
강남웅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일상이 고달픈 평범한 직장인에게 휴가와 돈만큼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있을까.
“네. 최현호 씨랑 한 약속 우리가 제대로 지켜내면 제가 책임지고 휴가 보내
줄게요.”
“진심이세요?”
“네. 진짜로.”
그 말을 듣자 강남욱도 갑자기 의욕이 급상승했다.
눈동자에 반짝 생기가 돌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같이 잘해보자고요.”
그렇게 함께 헌터 관리국으로 돌아가던 중에, 강남욱이 무언가 생각난 듯 송
혜연을 보았다.
“참, 팀장님.”
“네?”
“아침에 한 번 말씀드렸는데, 제보자가 최현호 헌터가 수상하다면서 자기 몸
에 무슨 짓을 한 것 같다고 했거든요. 직접 만나보니까 좋은 사람 같긴 한데,
그 부분도 확실히 짚어야 할 것 같아서요.”
송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처음부터 관계를 어그러뜨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능력치는 재측정할
거니까 그때 다시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말은 안 꺼냈어요.”
“그게 맞겠네요.”
대화하면서도 두 사람은 내심 최현호가 정말로 수상한 일을 저질렀을 거란 생
각은 하지 않았다.
제보자의 말처럼 그가 던전 식당의 주인은 맞았다.
그러나 미리 제보자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정확히 최현호가 자신에게 뭘 했
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아마 어떤 오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그들은 꽤 즐거웠던 외근을 끝내고 다시 헌터 관리국으로 돌아갔다.
물론 이제부터는 일이 폭탄처럼 쏟아질 예정이었다.
* * *
마계 제1군단장 칼로스.
그는 최근 상당히 저기압 상태였다.
요즘 주기적으로 그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놈들 때문이었다.
발로 한번 밟으면 존재도 없이 사라질 것들인데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는 것 같은 갑갑함에 속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스켈레톤들이 멀찍이 서서 주인을 바라보며 서로의 뼈를 쿡쿡 찔렀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불호령이 떨어지는 일이 유독 많아져 서로 보고하기를 꺼
리는 것이었다.
힘에서 밀린 스켈레톤 한 마리가 앞으로 툭 튕겨 나갔다.
눈짓 손짓으로 빨리 네가 가라고 종용하는 동료들을 보며, 스켈레톤은 하는
수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