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길드
사막을 돌아다니다 들어온 헌터들의 더위를 가시게 할 시원한 음식.
마침 적절한 게 준비되어 있었다.
“콩국수 어떠십니까?”
“오오! 콩국수요? 너무 좋지요!”
“아, 듣기만 해도 시원하네요.”
헌터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콩국수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다른 대안도 말해보았다.
“혹시 콩국수 안 좋아하시는 분은 냉라면 해드릴 수도 있으니 둘 중에 고르시
면 됩니다.”
그 말에 한성진의 옆에 있던 헌터가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희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맨날 퍼석퍼석한 전투식량만 먹는 사람들인
데 뭐 그렇게 까다롭겠습니까. 그냥 통일해주세요. 콩국수로!”
다른 헌터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싫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배낭을 하나둘 벗어 내려놓는 헌터들을 두고, 부엌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이 먹을 복이 있는지 참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다.
엊그제 직접 콩을 불리고 삶고 갈아 만든 콩국물이 냉장방에 넉넉히 있었다.
커다란 냄비에 불을 올리고 면을 왕창 넣어 삶았다.
움푹한 큰 그릇에 면을 담고 진한 콩국물을 주르륵 부어주었다.
채 썬 오이와 삶은 계란, 그리고 깨를 솔솔 뿌려주면 완성이다.
아, 중요한 걸 하나 빠뜨릴 뻔했다.
나는 얼른 냉장방으로 가서 얼음통을 챙겨왔다.
그리고 국물에 얼음을 네다섯 개씩 띄워주었다.
진짜 완성된 시원한 콩국수를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지 헌터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각자 그릇을 받아 든 헌터들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한 헌터가 식탁 위의 작은 통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소금 있어요. 간 맞춰서 드세요!”
“오, 그래야지. 잠깐, 옆에 설탕도 있네?”
“선배님, 설마 설탕 넣으시려고요?”
설탕통을 집어드는 남자 헌터를 향해 갈색 머리의 여자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남자 헌터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꾸했다.
“뭐? 당연하지. 원래 달달한 국물맛으로 먹는 거야, 콩국수는.”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금을 넣어야죠. 콩국수는 고소하고 짭짤한 맛으
로 먹는 건데!”
“아니, 국물 자체가 고소한데 소금을 더 넣어서 뭐 해? 설탕을 넣어야 달달하
게 맛있지. 그러지 말고 설탕 한 번 넣어 봐. 이렇게 크게 한술.”
“어어어? 아뇨, 아뇨! 넣지 마요!”
남자 헌터가 손수 설탕을 넣어주려고 하자, 여자 헌터가 자기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손을 내저었다.
극구 반대하는 모습에 남자 헌터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이렇게 먹으면 맛있는데, 거참.”
“전 그냥 소금 넣을래요. 설탕은 진짜 아닌 것 같아요.”
“한 번만 먹어보지. 진짜 맛있다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고개를 저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기 취향을 주장했다.
“그런 걸 왜 넣어요. 그냥 국물만 마셔도 담백한데.”
“둘 다 넣어, 둘 다. 단짠단짠이라고 하잖아.”
“둘 다는 너무 이상할 것 같은데요. 그냥 이도 저도 아닌 거잖아요?”
“아냐, 맛있어. 안 먹어봐서 그러는 거지.”
헌터들은 먹는 내내 콩국수에는 소금이다, 설탕이다, 이렇게 먹어야 한다, 저
렇게 먹어야 한다는 얘기로 거의 토론을 했다.
지역별로 먹는 방법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설탕과 소금을 다 놔둔 것인데, 이 정도로 갈릴 줄은 몰랐다.
각자 취향대로 먹으면 될 건데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달달하든 고소하든 아무렴 어떤가.
콩국수 자체의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그리고 담백한 맛은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후루루룩!
후르릅!
서로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주장하면서 또 먹는 건 열심히 먹는다.
진심으로 싸우는 건 아닌 것 같고, 저렇게 장난 반 진심 반 옥신각신하는 게
이들의 대화방식인 듯했다.
시끌벅쩍하면서도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잠시 후, 그릇을 깨끗이 비운 한성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헌터들보다 조금 빠르게 식사를 마친 것 같다.
“먼저 좀 일어날게.”
한성진은 동료들에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살짝 미소 짓더니, 부엌으로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어떤 용건이신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다른 길드와 아직 계약하지 않으셨다면요.”
“흠···.”
괜히 장사하는 데 방해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흔쾌히 대답이 나
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한성 길드에서 이 던전을 통해 뭘 얻고 싶어하고, 또 얼마큼의 가치를 매길는지.
“알겠습니다. 한번 들어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헌터들이 앉은 자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한성진과 마주 앉았다.
한성진이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우선, 미리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태도에서 확실히 굽히고 들어오겠다는 것이 느껴진다.
좀 의외였다.
그리고 사실 3일쯤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어떤 길드와 이미 접촉한 적이 있었다.
아주 우연히 식당으로 들어오게 된 그들은, 이 던전이 마음에 든다며 자신들
과 계약하자고 말했다.
그들은 마치 나를 고용하는 갑의 입장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제시하는 금액은 내가 던전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적었다.
되도 않은 협상 시도가 황당해서 밥도 주지 않고 쫓아버렸었다.
그런데 4대 길드 중 하나인 한성 길드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성 길드에서는 내 던전의 가치를 꽤나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성진이 말했다.
“아무리 정보를 좀 달라고 해도 관리국에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더군요.
협회에서도 따로 자료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식당의 입구를 찾기 위해 길드
원들을 총동원해서 엄청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식당을 발
견해 들어오게 된 거고요. 운 좋게도 길드장인 제가 딱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
군요.”
“원하는 게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저를 찾으신 겁니까?”
“이 던전 내부에 식당 말고 또 다른 공간도 몇 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헌터 관리국에서 샌 정보인 것 같다.
내 신상만 지켜달라고 했으니 그런 건 큰 상관은 없지만.
“맞습니다.”
“그리고 던전과 연결되는 게이트를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맞습니까?”
“네.”
“혹시 특정 던전을 지목해 게이트를 연결하는 건 가능합니까?”
“방법은 있죠.”
한성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습니다. 저희 측에서 원하는 건 그 남는 공간의 일부를 저희 길드의
전용 공간으로 쓰는 겁니다. 식당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원하
시면 일주일에 며칠 정도로 정해서 쓰게 해주셔도 되고요. 가능한 편의를 맞
춰드리겠습니다.”
이건 좀 솔깃한 제안이었다.
식당 운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
괜히 계약에 얽혀 식당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껄끄러웠는데 그 부분이 해결된
다면 괜찮을 지도···.
어차피 이들이 모르는 장소에 진짜 넓은 내 공간이 남아있으니, 일부 내어주
는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다른 조건은 어떻게 되죠?”
“상세한 건 조율을 해봐야겠지만, 저희가 생각해둔 조건은···.”
한성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중요한 내용인 만큼 혹시라도 다른 헌터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모양이었다.
“3년 독점계약에 100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되물었다.
“3년간 저희와 독점계약하신다면 100억 원을 지불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 사람이 너무 막 지르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거 길드 쪽이 너무 손해 아닐까요? 사실 이 던전 없이도 계속 잘 사냥해오
지 않았습니까?”
“손해··· 이 조건을 다른 길드에서 들었으면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희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성진이 자신 있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좀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길드 쪽에서는 돈을 주겠다는데 내 쪽에서는 그게 좀 과한 거 아니냐고 말리
는 듯한 모양이다.
이쯤이면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던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해서 내 던전은 들어온
게이트로만 돌아나갈 수 있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만약 계약을 한다면 어떻게 활용할 생각이지요? 어떻게 해서 그만한 숫자가
나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여러 세상으로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소중한 던전이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에게는 사냥 중 쉬어가는 공간 정도밖에 될 수 없다고 생
각했기에 100억이라는 숫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저희 길드가 이 공간을 활용했을 때 어떤 이득이 있는 건지 궁금하신 거군
요.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성진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계약을 하게 된다면, 저희는 이 공간을 사냥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휴식 공간
으로 사용할 겁니다. 지칠 때 들어와서 쉴 수 있고, 위험할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요. 이곳이라면 영양가 없는 전투식량이 아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몬스터 걱정 없이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따라
헌터들의 부상과 사고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겠지요. 이를 통해 값비싼 포션과
의료비, 또 외부 힐러들을 부르는 비용이 절약되는 겁니다.”
“흠,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요?”
“방금 말씀드린 건 가장 기본적인 부분입니다. 이곳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두면 사냥시 들고 다니는 짐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더 가벼운 몸으로 움직
일 수 있으니 싸움의 능률이 확 오를 거고요. 또 던전 안의 상황을 밖으로 전
달할 수도 있겠죠. 원래라면 알 수 없었을 위험한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더
투입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겁니다.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던전의 문제
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몇몇 힐러들은 직접 사냥을 하지 않
고 던전에 상주시킬 수도 있고, 부산물을 옮기는 것도 이 던전을 통하면 인력
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길드 홍보 효과까지 생각하면···.”
“충분하겠군요.”
한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외에도 직접 이용하다 보면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 판단
했습니다.”
“아예 작정하고 찾아오셨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장님께서 하시는 식당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사실 그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 남자는 그걸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예리하시네요. 제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셨군요.”
“보통의 헌터들은 자신의 능력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면 길드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죠. 정보를 숨긴다
는 것 자체가 누군가 건드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무래도 사장님께서 돈보다는 현상 유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로 생각했
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성 길드를 이렇게까지 키운 건 결코 그냥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얘기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계약하더라도 불쾌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우선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며칠 내로 한성 길드로 직접 찾
아가겠습니다. 그때 제대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성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지금까지 잔잔한 미소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는데, 그게 조금 깨어진 느낌이
었다.
“생각을 정리해서 3일 안에 찾아가겠습니다.”
“혹시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그건 완전히 계약이 성사되면 알려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한성진은 조금 아쉬워 보였지만 더 조르지 않고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