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즐거운 시간 (43/125)

      즐거운 시간

그들은 동대문역 던전의 한성 게이트를 통해 들어왔다.

한성 길드와 계약할 당시 내 손님들이 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협의해

놓았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늦은 시간임에도 길드의 헌터들이 에스코트 해주었다.

“현호 씨!”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들어오는 송혜연과 강남웅.

나 또한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더니 너무 개운하네요. 그리고 강 과장은 더더

욱 잘 지내다 왔어요. 얼굴 좀 보세요.”

송혜연의 장난스러운 말을 듣고 시선을 옮겼다.

강남웅의 얼굴색이 전에 봤던 것보다 좀 어두워진 것 같다.

표정이 어둡거나 혈색이 안 좋은 게 아니라 햇볕에 탄 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등급 재측정 날의 초췌했던 얼굴과 비교하면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어디 놀러갔다 오셨어요? 얼굴이 좀 타신 것 같은데.”

“아, 티가 많이 나죠? 사실 제주도 여행 갔다 왔습니다. 어제까지 일주일 특

별 휴가였거든요.”

강남웅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껏 봤던 것 중 가장 밝은 표정이다.

송혜연이 옆에서 거들었다.

“얘기 들어보니까 아주 제대로 놀다 온 것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제대로 놀았죠. 비성수기라 사람이 북적북적하지도 않고, 남들 다

일할 때 논다고 생각하니까 더 재밌던데요?”

강남웅은 얘기하면서 챙겨온 종이백을 하나 건넸다.

“큰 건 아니고, 그냥 간식거리로 드시라고 산 겁니다. 제주도 특산물로 만든

초콜릿 세트입니다. 다른 좋은 걸 사볼까 했는데 제가 센스가 없어서··· 그냥

기본적인 걸로 골랐어요.”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이건 달달한 걸 좋아하는 슬라임들에게 한 번 줘봐야겠다.

나는 종이백을 받아 들면서 두 사람을 불판이 있는 식탁으로 안내했다.

송혜연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저희 닭발 먹는다고 했었죠?”

“네. 초벌까지 해뒀고, 여기서 여기서 조금 더 익히고 바로 먹으면 돼요.”

매운 음식을 특히나 좋아하는 듯한 두 사람을 위한 메뉴였다.

“스읍. 빨리 먹고 싶네요.”

강남웅이 입맛을 다셨다.

현재 시각 저녁 8시.

밥때가 조금 늦긴 했다.

하지만 술 한잔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점심시간에 들리려 하다가, 아예 퇴근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이렇게 한잔하면서 회포를 풀면 좋겠다면서.

물론 나 또한 달갑게 받아들였다.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금방 만들 테니 잠깐 쉬고 계세요.”

“아, 그럼 저희 한성 휴게소 구경하고 올게요!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온 김

에 들려보죠.”

송혜연과 강남웅이 일어서며 말했다.

헌터 관리국 소속 사람들이니 한성 길드와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보고 오세요.”

자리를 떠나는 두 사람을 두고,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화덕에서 초벌을 끝낸 닭발을 꺼냈다.

시뻘건 양념에서 매콤한 향이 올라왔다.

잡내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참 맛있겠지만 맛있는 음식은 많을수록 좋은 법.

미리 생각해둔, 매운맛을 순화시킬 수 있는 부드러운 사이드 메뉴 몇 가지를

빠르게 만들었다.

몇 분 후, 송혜연과 강남웅이 돌아왔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해놨던데요? 식당이랑은 분위기가 또 다르네요.”

“쉬는 헌터들이 있어서 조용히 보고 왔습니다. 던전 안에서 쉬고 있는 건데

도, 전투 현장 느낌이 조금 나더라고요. 실제로 보니까 뭔가 신기하네요.”

역시 각성자인 송혜연은 던전 그 자체의 모습을 눈여겨본 반면, 비각성자인

강남웅의 눈에는 헌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 같다.

“딱 맞춰 돌아왔네요.”

타닥타닥.

마침 숯불에 닭발이 구워지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오늘 내 자리는 부엌이 아닌, 테이블이었다.

까드득.

강남웅이 소주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우선, 잔 받으십시오.”

소주잔 세 개가 채워졌다.

이곳에서 술을 먹는 것도, 혹시 몰라서 오래 전부터 가져다 두었던 술잔을 사

용하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의 손님들은 모두 사냥 중 들어온 헌터들이었다.

한성 길드와의 계약 후에는 상주하는 직원이 생겼지만, 엄연히 일하는 곳이란

생각이 있는지 굳이 술까지 먹지는 않았다.

아니, 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메뉴판에 따로 써둔 건 아니었으니까.

짠!

잔을 부딪치고 송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이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별다르게 한 일이 없었죠.”

“에이, 현호 씨가 결정할 거 빨리빨리 확실하게 정해주셔서 생각보다 순탄했

어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닭발이 익어갔다.

“두 분 입맛에 맞게 좀 맵게 만들었습니다.”

“그 맛에 먹는 거죠.”

“더 기대되는데요?”

젓가락을 집어 드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익어가는 닭발에 고정되어 있었다.

타지 않게 여러 번 뒤집어주는 사이 먹기 좋은 정도로 맛있게 익었다.

“이제 드셔도 될 것 같아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젓가락 두 짝이 닭발을 집어 갔다.

오도독오도독.

쫄깃하면서도 꼬들꼬들한 식감의 닭발을 열심히 씹었다.

맵지만, 그냥 맵기만 한 것은 아니고 조금 단 맛도 섞여 있었다.

게다가 감칠맛이 더해져 땀을 닦으면서도 계속해서 손이 가게 하는 매력이 있

었다.

닭발을 맛본 강남웅 과장이 술잔을 털어 넣었다.

“크으. 이 맛이죠!

송혜연은 많이 매운지 후후 숨을 내쉬면서도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입에 불이 날 것처럼 뜨거울 때는 김을 섞어 만든 짭조름한 주먹밥과, 마요네

즈와 치즈로 만든 콘치즈를 먹으며 조금 쉬는 텀을 가졌다.

“너무 맛있어요. 닭발을 오랜만에 먹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들어

가네.”

빈 소주병이 하나둘 늘어났다.

두 사람 다 술에 약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술을 때려 붓는 타입은 아니었고, 각자 주량에 맞춰 적절히 조절하

는 듯했다.

사실 내 몸은 이제 알코올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그냥 기분만 내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그래서 말이죠. 그때 국장님이 팀장님한테 거의 뒤집어엎을 기세로 화를

내셨거든요. 진짜 무슨 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결국 제가 설득했죠. 솔직히 이거 안 되는 건가 싶었는데, 담판 지으

려고 찾아간 그날 딱 갑자기 마음을 바꾸시더라고요.”

두 사람은 던전 식당과 관련한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했다.

또 대화하다 보니 헌터 관리국에 관한 소소한 비화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

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한참 후, 닭발이 반 이상 사라졌을 때, 얼굴이 평소보다 붉어진 송혜연이 손

뼉을 치며 말했다.

그새 취기가 꽤 오른듯 하다.

“아, 맞다. 저 얘기할 거 하나 있었는데 까먹을 뻔했네요.”

“무슨 얘기요?”

“현호 씨! 혹시 도시락 같은 건 안 파시나요?”

“도시락이요?”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송혜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저희 관리국에서 던전 식당에 대해 궁금해하는 직원들이 꽤 많아서요.”

“아아, 그래요?”

“지금은 그래도 좀 잠잠해졌지만 초반에는 이 식당이 큰 이슈였잖아요. 비각

성자라도 관리국 직원들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니까 더 관심이 많아요. 거

기다···.”

말끝을 흐린 송혜연이 옆으로 눈을 흘겼다.

그 시선에, 코끝이 빨개진 강남웅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허허 웃었다.

“그게, 제가 자랑을 좀 하고 다녔거든요. 그 식당 저는 가봤다고요. 맛도 좋

았고, 또 남들은 못 해볼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말이 나오더라고요.

업무랑 관련된 거였으니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

해서··· 하하.”

송혜연이 주먹밥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숨겨야 할 게 아닌 건 맞아요. 그런데 비각성자인 강 과장이 가봤다고 하니

까 다른 직원들도 혹시나 싶어서 계속 식당에 대해 물어보는 게 문제예요.

아, 물론 안 된다고 말은 다 해놨어요. 아무리 비각성자 출입을 일부 허가하

기로 했지만, 그냥 음식이 먹고 싶어서, 던전 구경을 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다 들여보내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맛 정도는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들어올 수 없으니까 반대로 여기서 만든 음식을 밖으로 가져가려는 거군요.”

“그렇죠. 도시락 단체 주문, 괜찮을까요? 그렇다고 거창한 메뉴 같은 게 필요

한 건 아니고요. 그냥 늘 하시는 것처럼 만들고 싶은 걸로 해주세요. 던전 식

당 음식 먹어봤다,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오, 정말요?”

긍정의 말에 송혜연이 눈을 빛냈고,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아직 날짜나 개수가 확정된 거 아니죠?”

“네. 그냥 혼자 생각해보고 현호 씨한테 먼저 물어본 거라서. 큰일도 아니고

점심식사 한 끼라 현호 씨가 된다고 하면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요.”

“그럼 이틀 정도 전에만 미리 말해주세요.”

이야기를 듣던 강남웅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이, 비각성자로서 던전 식당 음식을 맛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아

쉽네요.”

송혜연이 검지를 입에 어정쩡하게 가져다 대며 목소리를 줄였다.

“강 과장, 오늘 여기 술 마시러 온 건 말하고 다니지 말아요. 이건 업무도 아

니고, 진짜 그냥 놀러 온 거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프로젝트 끝나고 뒤풀이

하는 거에 가깝긴 하겠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더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그거야 물론이죠. 던전 식당에서 술을 마셔본 단 한 명뿐인 비각성자 타이틀

까지 놓칠 수는 없으니까.”

강남웅 또한 조금 혀가 꼬인 말투로 얘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시콜콜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닭발을 비롯해 준비한 음식과

술이 모두 동났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까먹은 두사람은 밍기적거리며 일어섰다.

많이 아쉬운지 가기 싫은 티가 팍팍 났다.

나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자리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고.

“금요일에 올 걸 그랬습니다. 그럼 좀 더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었을 건데요.”

강남웅의 말에 송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 못하고 그냥 강 과장 돌아오자마자 빨리 보면 좋겠다

싶어서 오늘 온 건데···.”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나는 내일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두 직장인을 게이트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 * *

“자, 얘들아. 이쪽으로 와볼래?”

“삐이이?”

“삐이이익?”

“삐잇?”

내 부름에 호빵이, 찐빵이, 만두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손 내밀어봐.”

세 슬라임이 두 손을 붙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녀석들의 손바닥 위에 초콜릿을 하나씩 까서 올려주었다.

“삐이?”

“이건 초콜릿이라는 건데, 보자··· 세 개 다 한라봉 맛이네. 한번 먹어 봐.

맛있을 거야.”

강남웅 과장이 주고 갔던 제주도 기념품이었다.

슬라임들이 초콜릿을 꼬옥 쥐고 입에 가져다 댔다.

킁킁.

옆에서 베로가 불쑥 코를 들이밀었다.

우리끼리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베로도 줄까?”

베로의 주둥이 가까이에 초콜릿을 갖다 대 보았다.

개에게 초콜릿이 치명적이라는 건 알지만, 그게 베로에게까지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베로는 초콜릿에는 영 관심이 없는지 고개를 옆으로 스윽 돌리며 눈을

피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