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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맛이야 (49/125)

      뭔 맛이야

마계 제1군단장 칼로스.

위엄있어 보이는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그에게 스켈레톤 한 마리가 다가왔다.

“크륵. 크르륵.”

“또 왔구나···.”

희한한 케르베로스와 슬라임들.

녀석들이 자신의 구역을 넘나드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한때는 이런 보고를 들을 때마다 히스테릭하게 스켈레톤에게 화를 쏟아부었지

만, 이제는 체념하여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차피 놀다 돌아갈 테니까 내버려 둬. 아니, 혹시나 다치지 않게 지켜보거라.”

그놈들이 죽건말건 알 바는 아니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괜한 불똥이

튈 것이다.

혹시나 죽기라도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를 일이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의 끔찍한 고통을 겪을 것이고.

사실 그쪽 구역의 여러 몬스터들은 이미 주기적으로 마계를 탐방하는 베로와

슬라임들을 그냥저냥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초반에 지시했던 놀라서 도망치는 척해서 즐겁게 해주기도 종종 수

행하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칼로스는 자신의 구역을 얼쩡거리는 그 거슬리는 놈들의 안전까지

생각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통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도 그때 그 초월자의 기운을 떠올리면 잠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깰 정도였으니까.

그때, 또 다른 스켈레톤이 급하게 칼로스에게로 달려왔다.

“크르르륵. 크륵! 크르륵!”

“뭐? 성 쪽으로 오고 있다고? 인간과 함께?”

칼로스는 벌떡 일어서며 사자후를 내뱉듯 소리쳤다.

오랜만의 호통에 스켈레톤들이 뼈를 달그락거리며 떨었다.

칼로스는 그 초월자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왜 마계를 들락거리는 건지, 그를

어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마계를 멸망시킬 셈은 아니겠지?’

감각이 없는 뿔에까지 소름이 삐죽 솟는 느낌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넓디넓은 마계,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이 장악한 이곳이 누군

가에게 점령되거나 멸망한다는 생각은 마족으로서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마계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것 같았다.

휙 휙.

칼로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호통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스켈레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 초월자를 막을 자는 이곳에 없는 것이다.

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도 그자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몰살할 것이다.

자신이 손도 못 쓰고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을 지경이니···.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겁을 먹어 상상력이 과도하게 뻗어나간 것 같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마계 1군단장 칼로스의 꼴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그는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나설 수 있는 건 오직 칼로스 자신뿐.

지난번 대화를 생각하면 싸우려고 오는 게 아닐 확률이 높다.

잘 지내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칼로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날개를 펴며 뚫린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 * *

“웡! 웡!”

“삐이이이!”

“삐이익!”

“그래, 그래. 앞으로 쭉쭉 가보자.”

예전부터 이 근방에 있는 성의 위치는 미리 파악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에 만났던 마족 칼로스의 거라는 것쯤은 쉽게 예측할 수 있

었고.

나는 지금 베로와 슬라임들을 데리고 함께 성을 향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산책도 하고, 성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칼로스도 만나볼 목적이다.

“키이잇? 키이이익!”

“크르륵!”

“키에에에엑!”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는 길에는 일부러인 듯 자꾸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질리지도 않는지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슬라임들은 삑삑거리며 신나 했다.

나는 저 멀리까지 달아난 몬스터들 쪽을 바라보며, 눈과 귀에 마나를 집중시

켰다.

“키르르륵. 키르륵.”

“키이키익. 키잇!”

“크르륵!”

놈들은 도리어 힐끔힐끔 이쪽을 보면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웃고 있는 것 같다.

‘···저놈들도 이걸 재밌어하는 건가.’

이게 몬스터들의 감성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양쪽다 만족스러워하니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마나를 이용하지 않아도 성의 윤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였다.

머리 위쪽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땅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

‘왔군.’

살짝 놀라 하늘 위를 올려다보는 베로와 슬라임들에게 차분히 말해주었다.

“별거 아니야. 괜찮아.”

고개를 든 베로는 나에게 신뢰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타앗!

놈은 내가 선 곳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착지했다.

몸집은 육중한데 움직임은 상당히 가볍다.

“칼로스.”

“···무,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말을 더듬으며 눈치를 살핀다.

첫 만남 때는 당당하게 펼치고 있던 어깨도 한껏 구부러져 있다.

하찮은 미물이 어쩌고 하며 씩씩거릴 때와는 영 딴판이다.

역시 마족이고 뭐고 손맛을 보여줬더니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학습은 된 것 같다.

“그냥, 이 근처에 자주 돌아다니는데 여기까진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것 같아

서. 심심하기도 하고,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하고 싶고, 개인적으로

너한테 궁금한 것도 있고.”

“저, 저한테 말입니까?”

칼로스가 짐승의 것처럼 두툼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묻는다.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라는 건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코를 벌름거린다.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닙니다. 누추한 곳에 찾아주시는 것이 면구스러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

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세워둘 거냐?”

“그럴 리가요! 당장 같이 가시지요.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걸

어오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마중 나온 거였습니다.”

“아, 그래? 그거 좋네.”

붉은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걸 모른 척했다.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스스로 무

덤을 파고 있는 거였다.

“···등에 타십시오.”

결국, 칼로스는 어부바하는 자세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등을 내주었다.

날개를 펼친 등짝이 꽤나 넓다.

“난 됐고, 얘네만 네가 태워줘라.”

“···네.”

내 손짓에 따라 베로와 슬라임들이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칼로스의 등짝에 올

라탔다.

베로의 덩치가 크다지만, 이 짐승처럼 생긴 마족만 하지는 못해서 안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망설이던 슬라임들도 내가 하나하나 올려주자 서로의 손과 베로의 털을 붙잡

으며 자리 잡았다.

“가자.”

파앗!

칼로스가 날아올랐고, 나 또한 땅을 박찼다.

“삐이이이!”

“삐이이이이잇!”

“삐이이이익!”

“우워우워우웡!”

놈의 등짝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

“야야, 평행하게 날아야지. 기울어지면 위험하잖아.”

“예, 옙!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내 지적에 칼로스의 비행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바뀌었고, 불안해하던 탑승객

들도 비명을 멈추었다.

금방 안정을 되찾은 녀석들은 하늘에서 새롭게 목격한 마계가 신기한지 눈이

빠져라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순간 옆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씨.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칼로스가 흠칫 나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인 것 같다.

잘 보니까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무슨 군단장이니 뭐니, 꽤 높은 자리에서 군림했던 놈인데 갑자기 하급 몬스

터 택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탄할 만하긴 하지.

이 정도는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는 딱히 지적하지 않고 스윽 고개를 돌렸고, 칼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 * *

쫄쫄쫄쫄.

앙상한 스켈레톤 한 마리가 찻잔인지 뭔지 모를 흰 그릇에 검은 액체를 따른다.

맞은 편에 앉은 칼로스에게도 또 다른 스켈레톤이 조심스럽게 그릇을 채우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양의 그릇은 아무래도 어떤 몬스터의 뼈가

아닐까 싶다.

뭐, 마족이 식사에 신경 쓰진 않을 테니, 이 정도가 최선의 대접이 아닐까.

사실 이것도 손님이 왔는데 뭐 내놓는 것도 없냐는 내 말에 급히 챙겨온 것이

었다.

칼로스의 스켈레톤 부하들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뒤로 물러났다.

“그,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나보다 높은 눈높이에서 날 내려다보며 아까보다 훨씬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칼로스.

긴장했는지 말을 살짝 더듬긴 했지만, 그래도 풍채에 걸맞은 위엄있는 태도였다.

몇 분 전과는 천지 차이인 모습이었다.

자기 성에 돌아와서 갑자기 미친 듯이 자신감이 솟은 것은 아니었고, 사실 성

에 들어오기 전에 얘기를 좀 나눴었다.

‘제발 부하들 앞에서 체통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지.’

자기가 더 서열이 높아보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고 거의 애원을 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이놈에게는 부하들의 시선과 평가가

상당히 중요한가 보다.

성 안에서 자존심 좀 세워주는 정도야, 해줄 주 있는 일이었다.

고개를 약간 돌려 힐끗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베로와 슬라임들, 그리고 이 성의 스켈레톤 몇 마리가 함께 있었다.

어차피 같은 몬스터들인데다가 스켈레톤보다는 베로가 훨씬 강하다.

잠시 얘기를 나누는 동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놈이 내놓은 차는 과연 어떤 걸까.

미친 게 아니라면 이제 와서 독살을 시도하진 않겠지.

어차피 어떤 맹독도 인간을 초월한 육체에 통하지 않을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킁킁.

그릇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나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한약재 같은 느낌이 조금 나는 것 같다.

후릅.

푸우우웁!

한 모금 마시자마자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온 검은 액체.

그것은 칼로스의 얼굴에 직격으로 나아갔다.

“우웨웩! 이게 뭔 맛이야!”

“···왜, 왜 그러는 거지?”

스켈레톤 하나가 달그락거리며 천 조각을 가지고 달려왔다.

칼로스는 그걸 받아 얼굴을 닦으며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독성 같은 건 없다.

문제는 맛이었다.

시궁창 물을 100년은 더 썩히면 이런 맛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맛.

0.1초라도 입안에 담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 혀를 씻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빨리 물 가져와!”

스켈레톤이 헐레벌떡 가져온 물로 가글하며 입안을 행궜다.

다행히 물은 먹을 만한 정도로 깨끗하다.

진하기는 또 어찌나 진한지, 입안의 역겨운 맛이 사라질 때까지 여러 번 헹궈

야 했다.

“후우···. 이딴 걸 먹으라고 내온 거냐? 진심으로?”

“무슨··· 무슨 말을 그렇게···. 이건 마계에서도 쉽게 구하기 힘든 검은 바이

콘의 뿔과 돌연변이 샌드웜의 쓸개즙을 함께 달여 만든 차다. 내 성에서 가장

귀한 차를 내놓은 것인데···.”

“이게?”

더러운 기분을 감추지 않고 되묻자 당황하여 두 손까지 내저으며 대답한다.

“그, 그렇다. 고위 마족들 중에서도 이걸 먹어 본 자들은 드물 거란 말이다.”

“맛이 쓰레기보다도 못한 것 같은데.”

“한 모금만 마셔도 기력을 채워주는 효능이 있는 거라 대접할 만한 거라고 생

각해서 가지고 나온 거였다. 원래 혼자 몰래 챙겨먹는 건데···! 정말이다!”

내가 오해라도 할까봐 두려운지 필사적으로 말한다.

거짓인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신체 컨디션이 미세하게 좋아지는 느낌이 있었다.

비록 입은 썩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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