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셨네요
던전, 던전, 그리고 던전.
오늘은 닥치는 대로 몸을 움직여 가까운 던전을 클리어하기 시작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윤설아는 혹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던전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뒤쪽에 놓인 늑대인간들의 사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목표는 몬스터를 죽이고 돈을 버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 그녀의 노력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허공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던전 식당.’
과거보다 더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 보이는 간판이 눈에 똑똑히 보인다.
그토록 찾아다녔던 식당의 입구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찾았다!”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 옅은 기쁨이 드러났다.
윤설아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있구나.’
그녀도 헌터 관리국의 스피커에는 항상 귀를 열고 있었다.
때문에 던전 식당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했다는 것 또한 알았다.
아마도 그 후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식당을 운영하기로 한 듯
하다.
윤설아는 홀 안으로 들어섰다.
“어?”
“뭐지? 저기 봐봐. 저 사람···.”
“눈가에 흉터가 있는데? 그리고 얼굴이··· 윤설아 아니야? S급 헌터?”
“혈영? 진짜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
목소리를 낮춰 말하고 있는데도 다 들린다.
관심은 달갑지 않지만, 또 익숙하기도 해서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두 번 얼굴을 보았던 사장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어? 또 오셨네요.”
“예. 또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한성 게이트로 들어오신 겁니까? 아닐 텐데. 허가받지 않
은 사람은 그리로 올 수가 없는데.”
사장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성 게이트가 어디인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윤설아는 알아들을 수 없
었다.
“그냥··· 던전에서 식당 입구를 발견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우연인데. 한 사람이 세 번이나 입구를 발견할
수도 있는 건가?”
“······.”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 너무 신기해서요.”
“노력했습니다. 여기 다시 오고 싶어서요. 지난번도 마찬가지였고요.”
“노력이요?”
윤설아는 잠깐 머뭇거렸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상해보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에 널리고 널린 게 식당인데, 굳이 이곳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그 난리를
쳤다.
이 식당의 음식은 잊으려 했던 옛 기억들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물론 다른 식당도 몇 번 가 봤지만, 이 집의 국수를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식당 입구를 찾으려고 수많은 던전을 돌아다녔어요.”
“아, 어쩐지···.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었는데 그렇다면 또 가능성이 높
아지긴 하겠네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게까지 다시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분이 좋네요.”
싱긋 미소 짓는 남자의 얼굴에 윤설아도 마음이 놓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과해서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받아주어서 다행이었다.
사장이 친절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전에 그 멸치국수로 드릴까요?”
오늘도 메뉴판에 적혀있지 않은 메뉴였으나 지난번 기억을 토대로 배려를 해
준 것이었다.
“아,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이 정도면 완전히 단골 손님이신데요. 한성 길드 소속도 아닌데 이
렇게 많이 오신 분은 손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립니다. 입맛
에 정말로 맞으셨나 봐요.”
“네···.”
윤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입맛에 맞아서 이렇게까지 집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리
였다.
다시 그 맛을 보고 싶어 찾아온 건 맞으니까.
그런데···.
‘길드? 던전 식당이 한성 길드와 어떤 관계가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여섯 명의 다른 손님들이 있는데 한성 길드의 전투복을 입고 있다.
“한성 길드와 계약하신 겁니까?”
“네. 그렇죠.”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윤설아는 내심 놀라고 말았다.
전혀 몰랐다.
헌터 관리국에서 공표한 이후에도 던전 식당은 기존과 같이 운이 좋아야만 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다른 경로가 있는 줄 알았다면 그리로 뚫어보려 시도라도 해봤을 텐데···.
윤설아는 교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혈연도, 친구도, 지인도 없었으므로 어디서 소식을 듣기도 어려웠고, 정보의
업데이트도 느렸다.
혼자라는 것이 불편하다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아쉬웠다.
“그럼 앉아 계세요.”
“알겠습니다.”
윤설아를 자리로 안내한 남자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사에 열중하는 척 귀를 기울이던 한성 길드원들이 수군거렸다.
“윤설아가 여기 단골이라는 것 같지?”
“어. 대충 들어보니까 많이 찾아왔던 것 같네.”
“국수가 어쩌고 하던데 우리도 그걸로 달라고 해볼까? 메뉴판에는 없던데.”
“물어나 보자. 뭐 얼마나 대단한 국수길래 저러는 건지 궁금하잖아.”
“알겠어. 저, 사장님!”
그들은 정말로 윤설아를 따라 멸치국수를 주문했다.
이미 먹고 있는 음식이 있었기에 한 그릇만 주문해서 조금씩 맛보기로 한 것
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며 윤설아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싸우지 않을 때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지만 애써 모른 척 흘러보내는 게
습관이었다.
“국수 나왔습니다.”
큼지막한 그릇에 넉넉한 양의 멸치국수가 담겨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비주얼이 특별한 건 아니다.
투명한 갈색 국물에 평범한 고명들이 올라간 멸치국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윤설아는 속으로 잠깐 각오를 다지고 나서야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후루룩.
부드러운 면과 함께 입안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국물맛.
진하고, 따뜻한 국물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데워주는 듯한 느낌이다.
그 사이 한성 길드의 헌터들도 주문한 국수를 받았다.
“오오···!”
“왜? 맛있어?”
“먹어봐. 먹어봐야 알아. 이건.”
“으음! 뭐지 이거?”
“대박이지?”
“진짜 맛있는데? 윤설아가 단골될 만하네. 한 그릇 더 시킬까?”
“두 그릇 더 시키자.”
사람 입맛은 다양하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는 것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거
의 없다.
역시 이 국수는 다른 사람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설아에게 이 국수는 그냥 맛있는 음식 정도가 아니었다.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손이 떠올랐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할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무언가 얹힌 것처럼 갑갑해져 오면서
눈가가 뜨거워진다.
윤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다잡았다.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었다.
그녀는 꾸역꾸역 국수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윤설아는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을 잃었다.
불의의 사고로 혼자가 된 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단 한 사람, 외할머니뿐이었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며 어떻게든 손녀를 잘 키워보고자 노력
했던 할머니.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윤설아 또한 자라나는 시기에는 그 정성과
사랑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속 많이 썩였었지.’
사춘기 무렵부터 공부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그저 남들과 다른,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탓할 사람이 없었다.
사고로 인한 일이었고, 그냥 타고난 복이 없는 거였다.
길잃은 분노는 막연히 주변을 향하게 되었다.
그 대상은 윤설아 자신이기도 했고, 할머니이기도 했다.
그래도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철이 들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돈도 많이 벌어서 늦게나마 효도하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2년 전 돌아가셨다.
나중에, 조금만 더 있다가, 좀 더 돈을 벌고 나서 효도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던 시기에.
급격히 병환이 악화되기도 했고, 최선의 치료를 받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윤설아는 이제 정말로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것이다.
어설픈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일이 그녀에게는 현실이었다.
허탈하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후회와 죄책감뿐.
윤설아에게는 더 이상 소중한 것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그날, 그 시간에 멈춰버린 것 같았다.
우습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윤설아는 S급으로 각성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 있는 특별한 능력.
그러나···.
‘아무 의미가 없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 능력은 그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운명의 장난으로만
느껴졌다.
이제는 그녀를 칭찬해줄 사람도, 많은 돈을 벌어 호강시켜줄 사람도 없다.
죽을 용기는 없고,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몬스터 사냥에 몰두하는 것으로 현실에서 도망쳤다.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몬스터를 찢어 죽이는 순간에
가장 마음이 평온했다.
할머니도, 혼자가 된 현실에 대해서도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잊고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 노력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달 전, 우연히 이 던전 식당을 발견했다.
이끌리듯 이곳으로 들어와 국수를 시키고 맛을 보았다.
깊은 육수의 맛에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국수가 떠올랐다.
그 맛이 그때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었는데, 이제는 아무리 간절히 바래
도 먹어볼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올 줄 알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윤설아는 어느 순간, 자신이 식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고개를 들자 이미 식당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오랜 시간 다른 생각에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지켜보고만 있었던 듯, 사장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물었다.
“아, 네. 잠깐 딴생각에 빠져서···. 죄송합니다.”
“천천히 드시고 가셔도 돼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해서 물어본 겁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정말로.”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윤설아는 숟가락을 들어 이미 식어버린 국물을 한입 떠먹어보았다.
‘설아야, 그래도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녀야지. 할머니가 빨리 국수 해줄게.’
‘아, 싫어. 맨날 국수야. 진짜 지긋지긋해 죽겠어.’
‘오늘은 할머니가 바빠서 그래. 그래도 굶으면 안 되니까 한 그릇만 먹자. 알
겠지?’
철없는 손녀의 볼을 쓰다듬던 쪼글쪼글한 손.
혹시나 굶을까 봐 애달프게 달래던 할머니의 목소리.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국물 한입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슬프고 괴로워 떠올리기 싫으면서도, 그리움에 절실하게 찾게 되는 모순적인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윤설아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때, 물러난 줄 알았던 남자가 다시 다가왔다.
달그락.
그는 따끈따끈한 새 국수를 윤설아의 앞에 놓아주었다.
“이걸로 드세요. 아무래도 식은 건 맛이 영 없으니까요. 면도 다 불었을 거
고···. 속이 안 좋으신 거면 남기셔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