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버섯
내가 F급 헌터였을 때에도 잘 대해줬던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 터라, 마음에 많이 남았다.
좋은 인연인 만큼 나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해주고 싶었다.
메인 메뉴는 소불고기 버섯전골.
날이 점차 쌀쌀해지는 중이라 뜨끈한 국물 요리가 좋을 것 같았다.
재료는 시간 맞춰 미리 다듬어놓았다.
얇고 부드러운 소불고기와 각종 채소들.
그리고 고기와 더불어 중요한 재료인 버섯.
이 버섯들은 아스키나 대륙에서 받은 선물 중 일부였다.
어린 엘프가 고사리손으로 직접 채취하여 보내준 것이었다.
이걸 어디에 써먹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거면 손님 초대 요리로도 딱 좋을
것 같았다.
널찍한 냄비 바닥에 무와 양파를 깔고, 가장자리에 배추, 청경채, 대파 등의
채소와 당면, 그리고 대륙에서 가져온 여러 종류의 버섯을 채워 넣었다.
가운데에는 양념한 신선한 붉은색을 띤 소불고기를 올렸더니 보기에도 먹음직
스럽다.
거기다가, 육수에는 레비아탄 가루를 섞어주었으니, 맛은 완전히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
식탁 위에 가스버너를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렸다.
전골은 끓여가면서 먹는 게 아무래도 맛있지 않은가.
“우와! 진짜 현호 씨가 이걸 만든 거예요?”
이정연이 나와 전골냄비를 번갈아보며 놀랐다.
“그러게. 요리 실력이 이렇게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 잠깐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야지.”
박 씨 아저씨가 핸드폰을 꺼내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이정연도 덩달아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는 사이, 가스레인지 위의 전골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린 이정연이, 허공에 대고 코를 씰룩거리더니 감탄했다.
“버섯 향기가 엄청 좋아요.”
“구하기 힘든 버섯들이거든요. 조금 생소할 수는 있는데 맛은 장담합니다.”
“구하기 힘든 거요?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다 많이 본 것들인데
요?”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곳에서 난 버섯들이에요. 보기에는 익숙해도 맛
은 좀 다를 겁니다.”
“같은 종류인데도요? 신기하네요.”
이정연은 수긍하는 대답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아스키나 대륙의 자연산 버섯.
일상적으로 마트에서 접하는 버섯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팔팔 끓는 육수의 색이 더욱 진해졌다.
“이제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현호 씨!”
두 사람은 각자 앞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전골을 듬뿍 덜어갔다.
나 또한 크게 한 국자 퍼담았다.
뜨끈한 국물을 입에 넣자마자 엄청난 풍미가 퍼져나갔다.
채소와 소고기와 버섯, 그리고 레비아탄 가루까지 섞인 육수는 구수하면서도
담백하여 자꾸 한술 더 떠먹게 되는 맛이었다.
“이야. 무슨 이런 맛이 다 나지? 진짜 진하고 맛있는데?”
“그러니까요. 자꾸 손이 가네요.”
나는 국물만 먹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고기랑 버섯도 많이 드세요.”
“아, 그렇죠. 국물맛에 빠져서 이것만 먹고 있었네요.”
“좋아, 제대로 먹어보자고.”
박 씨 아저씨가 팔뚝까지 걷어붙이며 말했다.
나도 고기와 청경채, 버섯을 함께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부드럽고 아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한 번에 느껴진다.
“와···!”
옆에서는 이정연이 입을 우물거리며 감탄을 내뱉었다.
“고기도 고기인데, 버섯이 진짜··· 와, 이렇게 쫀득쫀득한 버섯은 처음 먹어
봐요.”
확실히 그랬다.
아스키나 대륙의 버섯은 생각 이상으로 탱글탱글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다.
요리한 나조차 놀랄 정도로 뛰어난 식감에 씹을 때마다 향긋한 향이 올라왔다.
버섯이 전골 전체의 맛과 향을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 같았다.
전골에 푹 빠져 이것저것 맛보는 데 집중하던 두 사람은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 씨 아저씨가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현호 씨가 그 던전 식당 주인이라는 게 사실이 맞나봐.”
“진짜라니까요.”
웃으며 대꾸하자 이정연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도 그냥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이 집에 딱 도착하자마자 아,
진짜구나, 깨달았죠. 솔직히 말해서 F급 헌터가 살 만한 집은 아니니까요.”
이 사람들을 초대하기 전에 미리 얘기해준 사실이었다.
어차피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홍재훈을 비롯해, 두어 번 과거의 나와 안면이 있는 손님들이 우연히 던전 식
당을 방문했었다.
다들 F급이었던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아는 척하기 머쓱한지 슬쩍
눈길을 돌렸었다.
그렇지만 밖에 나가서 내 얘기를 안 하진 않겠지.
그런 사람들까지 입막음할 수는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봤자 나는 연예인급으로 취급받는 S급 헌터도 아니고, 좀 특이한 식당 사
장일 뿐.
일반인들의 관심까지는 받을 일이 없고, 기껏해야 몇몇 길드에서 연락이 올
뿐이다.
가뿐히 무시했더니 더 연락은 없다.
어차피 한성 길드와 독점계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으니 더 집요하게 굴지
는 못하는 것이다.
“그럼 네가 한성 길드랑 계약한 것도 맞는 거네?”
“그렇죠. 식당 자체를 계약했으니까.”
박 씨 아저씨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너 F급이라고 깔보던 애들이 들으면 배 아파 죽을 거다. 내가 다 통쾌하네.”
“한성 길드면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길드 중 하나니까요. 아, 미리 알았으
면 저도 한성에 지원해보는 건데.”
이정연은 얼마 전 영웅 길드와 계약을 끝냈다고 한다.
사실 영웅 길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이기 때문에 그리 아쉬워할
것도 없긴 하다.
철컥.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손님 오셨네?”
동생 최지수가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헌터분들이세요?”
“아, 네. 현호 씨, 이분은?”
“제 동생입니다.”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올 거라고 했는데 약속이 취소됐나 보다.
“오오, 맛있는 거 먹네? 저도 껴도 되나요?”
“아니, 너는···.”
그냥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하려는데, 이정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요. 사람 많으면 좋죠. 아, 아저씨는요?”
“현호 동생인데 친해지면 좋지. 같이 먹어요.”
“앗싸!”
최지수는 신나서 이정연의 옆에 털썩 앉았다.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참 넉살도 좋다.
말술일 것 같은 이미지의 박 씨 아저씨는 의외로 술이 약했고, 이정연도 마찬
가지였으므로 맥주만 간단하게 한 캔씩 하기로 했다.
다들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라 간단하게 나초와 치즈를 안주로 먹었다.
최지수는 나한테는 묻지도 않던 던전과 헌터에 대한 질문을 그들에게 쏟아부
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중이었다.
흠칫.
눈에 띄게 몸이 굳은 이정연의 모습에 박 씨 아저씨가 놀라서 물었다.
“정연 씨,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갑자기?”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아요.”
“어디를?”
“마당 쪽에···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느낌이 이상해요.”
이정연이 뭐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미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통유리 너머, 컴컴한 나무 뒤쪽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잠깐 밖에 뭐 좀 보고 올게요.”
“분명 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정연이 팔뚝을 쓸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에이, 집에 위험할 게 뭐 있어요. 길고양이가 들어온 거 아니겠어요?”
눈치 빠른 최지수가 이정연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섬뜩했는데···. 내가 예민했나···.”
작게 중얼거리는 이정연을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베로.”
거실 통유리로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베로를 부르자, 그림자처럼
검은 덩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내 앞에서 브레이크를 잡는다.
오늘따라 슬라임들은 이른 저녁부터 옹기종기 모여 잠들어버렸다.
나는 놀 상대가 없어 심심해하는 베로를 마당에 꺼내놓고 있었다.
돌발행동을 하는 애도 아니고, 큰 덩치에 비해 은신 능력도 좋아서 별다른 걱
정은 없었다.
놀다가 던전에 들어가라고 게이트도 열어뒀는데, 돌아가지 않았았던 것이다.
“웡!”
내 얼굴을 봐서 기쁜지 베로가 웃는 얼굴로 짖었다.
“쉬잇. 여기서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고 했잖아. 괜히 오해받는다고.”
“끼잉···.”
우는 소리를 내는 베로의 입가에 침이 뚝뚝 흐르고 있다.
이 녀석, 마당의 나무 뒤에 은신한 채로 유리창 너머의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쁜 의도는 없지만, 이쪽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 자체로 감이 좋은 사람은
놀랄 수 있다.
그러니 박 씨 아저씨나 비각성자인 최지수보다 등급이 높은 이정연이 그걸 감
지했던 것이고.
“너도 뭐 먹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끼잉···.”
침을 뚝뚝 흘리며 우는 소리를 내는 베로.
아까 먹을 거 다 먹어놓고 이런다.
배가 고픈 건 아닐 텐데, 요즘 자꾸 먹을 걸 자주 탐내는 것 같다.
베로는 내가 고민하는 걸 알아채고 불쌍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웅, 이잉, 끼이이.”
“···알겠어. 기다려 봐.”
눈을 이렇게 초롱초롱하게 뜨고 애절하게 울면 매정하게 굴 수가 없다.
뒷문으로 들어가서 남은 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베로는 고기를 입에 가져다주는 대로 텁텁 소리를 내며 잘도 받아먹는다.
“이제 됐지? 다 먹었으니까 던전에 들어가 있어.”
“끼이잉···.”
“아직도 부족한 게 있어?”
털씩.
베로가 옆으로 풀썩 넘어졌다.
배를 보이며 누운 건 나에게 쓰다듬어달라는 의미로 하는 행동이다.
덩치가 워낙 커서 두 손으로 이리저리 배를 쓸며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아예 하늘을 보며 누워버린다.
“오늘따라 어리광이 심하네.”
“히유우웅.”
이상한 소리를 내는 베로를 더욱더 열심히 만져주었다.
녀석은 몇 분을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니 그제야 만족스럽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게이트
로 돌아갔다.
나는 서둘러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호 씨, 뭐 발견한 거 있어요?”
“아뇨.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나간 김에 쓰레기 버릴 게 있어서 정리 좀
하고 온 거예요.”
“그래요? ···이상하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았는데.”
“고양이가 맞을 거에요. 원래 담 넘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애들이 몇 마리
있거든요.”
“그럼 그게 맞겠죠···? 괜히 제가 분위기를 망친 것 같네요.”
“에이, 아니에요, 언니. 아, 언니라고 해도 되죠?”
“어, 당연하죠.”
이정연은 여전히 조금 찜찜한 표정이었으나, 살갑게 구는 최지수에게 넘어가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저녁 늦게 수다를 떨고 던전 식당까지 가볍게 구경했다.
박 씨 아저씨와 이정연은 취기가 올라 불그스름한 얼굴로 웃으며 떠났다.
* * *
‘벌써 12년째라니.’
한성 길드의 S급 헌터 성민혁은 새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인식했다.
각성한 지 12년째, 한성 길드를 창립한 지도 12년째.
그 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헌터로 활동해온 그는, S급 헌터들 중에서도 베테
랑에 속했다.
그는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루었다.
부와 명예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고,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온 길드장 한성진과는 아주 깊은 신뢰로 이어져 있
었다.
한성진이 있었기에 성민혁은 오직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만 전력을 다할 수 있
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길드장의 선택을 웬만해서는 믿고 따르는 그였으나··· 최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