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이, 인간을 왜 나한테···?”
도무지 내 의중이 짐작되지 않는지 칼로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물었다.
“다른 건 아니고 교육 좀 시켜야 할 것 같아서.”
“교육···?”
“아는 동생의 친동생인데, 어린놈이 정신 상태가 엉망이야. 쉽게 말해서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지.”
“···정신 교육···!”
칼로스의 붉은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각성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인데, 이게 신체랑 상성이 맞지 않는
것 같거든.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어쨌든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신체 단련도 시켜줘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신체 단련···!”
칼로스의 날카로운 이빨이 번쩍 빛났다.
이놈, 왜 이렇게 기뻐하는 것 같지?
“크흐흐흐···.”
음산한 웃음을 흘리던 칼로스가 감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드디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주는군···!”
감격··· 할 만한가?
하긴, 그간 내가 칼로스에게 시켰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베로랑 슬라임 애들 안 다치게 잘 돌봐라,
등에 태우고 날면서 놀아줘라.
레비아탄 고기 관리해라.
이런 게 대다수였다.
나름 마계에서의 직위가 있는 놈이었으니 꽤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맡겨만 다오. 내가 이놈의 정신머리를 제대로, 싹 고쳐놓을 테니까!”
가슴을 탕탕 치며 아주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나는 칼로스에게 몇 가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남의 동생을 더 망쳐놓을 수는 없으니까.
“혹시 마족 기준의 정신머리를 제대로 고친다는 건 어떤 방향인 거지?”
“마족 기준?”
“그래. 너희는 인간처럼 규범을 지키며 살지는 않으니까 아무래도 기준이 다
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칼로스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씩 웃었다.
“전혀 걱정할 것 없다. 물론 뭘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다. 아무래도 마족들이
인간들에 비해 과격하고 제멋대로 구는 건 사실이니까, 내 교육이 그 인간을
더 과격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오, 정확해.”
생각보다 똘똘하게 말하는 것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칭찬받아 신이 난 아이처럼 칼로스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나 칼로스는 이래 봬도 마계 제1군단장이다. 내 밑에는 스켈레톤 병사들뿐
아니라 마족 부하들도 여럿 있지. 마계에도 정신 빠진 마족들은 어마어마하게
많거든. 아니, 비율로 따지자면 아마 인간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다. 그
놈들이 처음부터 내 말을 들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아. ”
“오호···.”
“내가 직접 후드려 패며 복종하도록 만들었지. 자다가도 내 목소리만 들으면
당장 일어나 무릎을 꿇을 수 있도록.”
결국 복종시키는 것에 자신 있다는 것이다.
도덕 교사처럼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과는 방향이 조
금 다르긴 한데···.
어쨌거나 해이해진 정신을 바로 잡는 것에는 오히려 이게 더 나을 것도 같다.
“그럼 이렇게 하자. 교육을 시키면서 이놈이 자기 형 말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거야.”
형인 황진규는 이놈과 달리 정신이 똑바로 박힌 녀석이다. 성실하고, 준법정
신 투철하며, 선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기준 필요 없이 형 말만 잘 들으면서 살아도 이놈은 꽤 괜찮은 사회 구
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아주 간단하지. 훈련 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암시를 주면 되는 것이
니까. 아, 언어가 달라도 어느 정도 먹히긴 하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말이 통
하는 자가 암시를 거는 게 더 좋다.”
“알겠어. 나도 가끔 와서 도와줄게. 아, 그리고 중요한 거.”
나는 칼로스의 눈을 똑바로 보며 경고했다.
“절대 죽으면 안 돼. 그리고 회복할 수 없는 영구적인 부상도 입히면 안 되
고. 어린 인간이니까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죽으면 안 되고, 영구적 부상 안 되고, 적당히···. 마족보다 신체가 연약할
테니까 최대한 손은 안 대는 게 좋겠군···.”
내 말을 진지하게 곱씹은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줘. 내가 아주 말 잘 듣는 놈으로 완전히 바꿔놓을 테니까.”
나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는 칼로스에게 축 늘어진 황진성을 넘겨주었다.
* * *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으으······.”
황진성은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몸을 떨며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지?
어질어질한 머리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각성하고··· 사채업자 놈들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능력을 썼는데,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절했다.
‘여긴 병원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럴 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병원이라면 폭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었을 텐데, 지금 그가 누운 곳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딱딱한 돌바닥이었다.
아무래도 기절한 사이 감옥에 잡혀들어온 것 같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망했다.’
형량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일을 벌였으니 간단히 넘어갈 수
는 없을 것이다.
각성하자마자 감방에서 썩게 생겼다.
‘아니지. 그냥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뗄까. 미성년자니까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지도···.’
황진성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실제로 그런 소란을 의도했던 건 아니고, 쓰러진 놈들도 깨끗하지 않은 놈들
이다.
어쩌면 먹힐 만한 핑계가 떠오를지도 몰랐다.
그때, 무언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거칠게 번쩍 들어 올렸다.
강제로 그 자리에 일어서게 된 황진성은 그제야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
었다.
“허억!”
황진성은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핏물이라도 쏟아질 듯 시뻘건 하늘.
이상하게 끈적끈적한 바닥.
죽은 건지 산 건지 모를 거무죽죽한 식물들.
심지어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닿자마자 녹을 것 같은 붉은 용암 같은
것이 흐르고 있다.
마계에서도 유난히 칙칙한 축에 속하는 칼로스의 땅이, 황진성에게는 마치 지
옥의 풍경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그를 내려
다보고 있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고개를 한껏 들어올려야 얼굴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놈은, 정확히 뭐라고 규
정할 수 없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옆에서 솟아난 뿔은 아래로 꺾여있었고, 검은 털로 뒤덮인 몸은 칼날도 비
집고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이뤄진 것 같다.
“이, 이게 뭐야···.”
몬스터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도 매스컴을 통해 꽤 여러 종류의 몬스터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데, 이런
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괴물의 손에는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현실감 없는 장면에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데 순간 몽둥이가 움직이더니 바
람을 일으키며 코앞을 스쳐 갔다.
부우우웅.
“히이이익!”
극심한 두려움에 황진성의 몸이 옴짝달싹도 못 하게 굳어버렸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얼굴이 으깨졌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그때, 눈앞의 괴물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으르렁거리는 것과 비슷한 소리였는데, 뭔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익···! 뭐, 뭐,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
덜덜 떨면서 겨우 대꾸했다.
바로 죽이지 않고 위협만 하고 말을 건다는 것은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
일 것이다.
겁에 질린 와중에도 생존 욕구 때문인지 머리는 더 핑핑 돌아가는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는 능력을 쓸 엄두도 안 났다.
오히려 어설프게 반항하다가는 살 수 있는 실낱같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
괴물이 징그러운 얼굴을 들이밀며 아까보다 더 강하게 소리쳤다.
몽둥이가 황진성의 발밑을 한번 찍었다가 저 멀리 있는 바닥을 가리키기를 반
복했다.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라는 말인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자 괴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움직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슬금슬금 발을 떼는데 또다시 괴물이 또다시 호통치듯 소리쳤다.
황진성은 최대한의 눈치를 발휘하여 그가 원하는 바를 알아챘다.
“뛰, 뛰라고요···? 가, 갈게요···! 뛸게요!”
살기 위해 황진성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말을 듣는 수밖에 없다.
그는 몇 분간 쉬지 않고 달려서 겨우 괴물이 가리켰던 장소에 도달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었다.
폐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중에 검은 날개를 펼친 괴물
이 단숨에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
“허억, 허억···.”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그에게 괴물이 또다시 몽둥이 끝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오르막길이다.
“또··· 또 뛰라고요···? 이제 더는···.”
휘익!
못 하겠다는 말은 몽둥이질 한 번에 쏙 들어가 버렸다.
황진성은 또다시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머리가 핑핑 돌았다.
‘더이상은······.’
신체의 한계를 벗어난 활동에 그는 결국 까무룩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 * *
몰캉.
볼에 닿는 이상한 감촉에 황진성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삐이이?"
검은 두 개의 콩알이 반투명한 푸른색 젤리 같은 것에 붙어있다.
깜빡깜빡하는 게 꼭 눈 같기도 하고....
‘파란 젤리로 만들어진 작은 사람···? 이게 뭐지···?’
정체 모를 생명체가 그의 입가에 뭔가를 부어주었다.
물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목이 너무 말라서 주는 대로 꼴깍꼴깍 삼켰다.
축 늘어졌던 몸이 조금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멍하니 상체를 일으켰다.
모든 게 현실감 없어 꿈만 같지만, 욱신거리는 몸의 통증은 진짜였다.
“으르르르릉···.”
뒤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검은 짐승이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으···.”
“웡! 웡! 웡!”
“으아아아아!”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드는 짐승을 피해 황진성은 또다시 뛰어야 했다.
마계의 거무죽죽한 식물들을 이용해 뭔가 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렇게 검은 짐승에게서 한참을 도망치던 그는 결국 또 한 번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또 쏟아지는 포션에 강제로 눈을 뜨게 되었다.
아까 보았던 붉은 눈의 괴물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으으으···. 살려줘···.”
“%$&$%@%$!”
“으아아아···!”
괴물에게 자비는 없었고, 황진성은 또다시 움직여야 했다.
이곳은 진짜 지옥이었다.
* * *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낮과 밤의 구분도 어려운 이 지옥 속에서 황진성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고
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 죽이지는 않으면서 죽도록 괴롭히는 저 괴물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 그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괴물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만이 목
숨을 연명해나갈 길이었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종종 환청 같은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 말 잘 들어. 성실하게 살고, 다른 사람 괴롭히지도 말고.’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내저으면 사라졌다가도, 또 어느 순간 그 목소리가 다
시 들려왔다.
듣기 싫은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은 몸이 힘든 것과는 다른 차원의 괴
로움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정신을 잃은 그의 귀에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쯤이면 된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수고했다. 칼로스.”
“흐흐흐···. 별말씀을. 오랜만에 즐거웠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시켜주십시오.”
‘뭐라는 거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이제 저 목소리들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황진성은 무의식 속에서도 괴로워하며 귀를 틀어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