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변화
붉은 눈의 못생긴 괴물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침을 질질 흘리며 두꺼운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입을 벌려 머리를 입에 넣으려고 한다.
그렇게 괴롭히더니 드디어 끝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근육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질긴 고기를 먹고 싶었나 보다.
“으으…. 으아아…! 아아아악!”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던 황진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헉, 헉….”
팔딱팔딱 심장이 뛰었다.
눈앞이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보였다.
가출하기 전, 형과 함께 살던 집 안이었다.
“진성아! 왜 그래!”
문이 철컥 열리며 들어오는 남자.
그의 형인 황진규였다.
엄청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잠깐 그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형?”
“괜찮아? 무슨 악몽이라도 꿨어?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난 거야.”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지옥 같은 곳에서 눈이 시뻘건 괴물이랑….”
“형님 말이 맞네. 아직 네 힘이 불안정해서 정신도, 기억도 좀 혼란스러울 거라고 했거든.”
“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정신과 기억이 불안정하다고?
그럼 방금 전까지 생생했던 그 지옥 같은 풍경과 괴물 놈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말인가?
“너 각성했던 날 이후로 딱 일주일 지났는데, 그건 알겠어?”
“아니…. 그것밖에 안 됐다고?”
체감상 한 달은 넘게 그 지옥에 갇혀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정신을 잃고 눈뜨기를 수십 번 반복해서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때문에 그런 착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현실 같은 강렬하고 선명한 꿈을 꾸고 나서도,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는 것처럼, 지옥에서 있었던 일도 디테일한 부분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혼란스러워하는 동안에도 점점 더 흐려져서 이미지만 어렴풋이 남았다.
‘그게 진짜 꿈이었던 건가?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진성아, 형이랑 진지하게 얘기를 좀 하자.”
“어? 어….”
황진규의 말에 황진성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우선 네가 사고 쳤던 건 어떻게 잘 수습했어. 고맙게도 도와주신 분이 있었거든. 원래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조직이기도 하고, 막 각성한 네가 능력 조절이 미숙하다는 것까지 증언해주셨어. 정말 감사하게도.”
“…그래? 다행이네….”
멍하니 대답하면서 황진성은 각성하고 사고 쳤던 것까지는 꿈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어쨌든, 지금부터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인데….”
황진규가 잠깐 뜸을 들이며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무리 각성했어도 최소한의 학업은 다 마쳤으면 좋겠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준비해서 검정고시치고, 그다음에는 각성 능력 살려서 헌터로 사는 거야. 만약 그게 싫으면 형 일 도우면서 살면 되는 거고. 그런 건 네 선택에 맡길 테니까 일단 공부는 마저 마치자.”
말을 하면서도 황진규는 한 마디 한 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동생은 이런 말을 하면 소리부터 빽 지른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달랐다.
“알았어.”
“뭐라고?”
황진규는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알겠다고.”
“…….”
간절히 원하던 대답이긴 한데, 너무 쉽게 수락하니 도리어 이상했다.
황진성 또한 자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게 황당했다.
언제부터인가 형의 말에는 무조건 반박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맞든 아니든 관계없었고 반항심으로 인해 그런 습관이 생긴 거였다.
평소의 그였다면 헛소리하지 말라며 당장에 집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
“…….”
대답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지금 이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내가 왜 그런 거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왜 그렇게 순순히 대답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자기가 형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황진성은 빠르게 앞의 말을 취소하고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 말 잘 들어.’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뇌 안쪽에 녹음기라도 박힌 듯 그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분명 실제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귓가에 맴도는 중독성 있는 음악 소리처럼 반복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였다.
동시에 끔찍한 붉은 눈동자가 환각처럼 눈앞을 아른거렸다.
본능적으로 거부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입이 저절로 열렸다.
“하, 할게. 형 말대로….”
“드디어, 드디어 네가 철이 들었구나!”
황진규가 벌떡 일어서며 황진성의 양 팔뚝을 붙잡았다.
동생의 팔뚝이 기억 속에 있던 것보다 훨씬 딴딴한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잘 생각했어! 그래, 이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보는 거야. 넌 아직 어리니까 늦지 않았어!”
황진성은 신이 난 형의 손짓에 따라 힘없이 팔랑거렸다.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의문이 들었으나 답을 알 수는 없었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형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도 고기를 좀 사러 대광 정육점에 들렀다.
종종 다른 곳도 들러보았지만, 역시 이 동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정육점은 이곳이었다.
다른 손님의 고기를 썰던 황진규가 밝은 얼굴로 인사한다.
“형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요즘 좀 어때?”
“하하, 아주 좋습니다!”
“얼굴이 완전히 폈네. 폈어.”
“다 형님 덕분이죠.”
황진규는 웃는 얼굴로 다른 손님에게 검은 봉지를 건네며 게산을 끝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형님, 대체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어떻게 하긴, 뭘?”
“아시잖아요. 진성이 얘긴 거. 진성이가 완전 새사람이 됐어요. 어릴 때도 이 정도로 말을 잘 듣진 않았는데, 애가 착해도 너무 착해졌습니다.”
“그거 잘됐네.”
“정말 안 알려주실 겁니까?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정신 차리게 만드신 건지 진짜 궁금해 죽겠습니다. 진성이한테 물어봐도 진짜 기억이 잘 안 난다고만 하고….”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그냥 지인 중에 이런 쪽으로 전문가인 사람이 있어서 맡겼다니까.”
“예예, 알겠습니다. 더는 안 물을게요. 어차피 안 알려주실 테니.”
서운한 척하면서 말하는데 그래도 올라가는 입꼬리는 감출 수가 없다.
황진규는 곧 다시 싱글벙글하는 표정이 되었다.
“어제는 협회에 등급 측정하러 나갔는데, 어머니 병문안까지 갔다 왔어요. 지금까지는 제발 좀 가자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싫다고 버텼었는데…. 갑자기 찾아갔더니 어머니가 놀라고 기뻐서 눈물까지 흘리셨다니까요. 아무튼 저는 요즘 이게 진짜 현실인지 믿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하하!”
말하면서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고기를 마구 봉투에 집어넣는다.
그때 가게 안쪽에서 노란 머리 소년이 스티로폼 용기를 잔뜩 들고 걸어 나왔다.
황진규가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
“황진성, 이리 와서 인사드려. 너 이 형님 기억은 해?”
“아니. 모르겠는데…. 안녕하세요.”
황진성이 고개를 젓고 나에게 인사했다.
확실히 예전에 처음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샛노란 머리카락은 그대로이지만 표정 자체에 반항기가 빠지고, 순해졌다.
‘칼로스가 제대로 하긴 했네.’
불균형했던 몸과 능력의 밸런스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장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마계에서 머물렀던 일주일간의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점점 더 흐릿해질 것이고.
나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만나서 반갑다.”
“…….”
내 목소리를 들은 황진성이 눈에 띄게 흠칫 놀라며 스티로폼 용기를 후두둑 떨어뜨렸다.
“어어! 조심해야지. 이걸 떨어뜨리면 어떻게 해.”
“미, 미안….”
황진규가 서둘러 용기를 주워들고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나와 동생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분은 최현호 형님이셔. 우리 정육점 단골손님인데, 너 각성하고 사고 친 거 다 수습해주신 게 이 분이야. 그리고 그, 각성 능력 네 뜻대로 안 됐던 거 그것도 이 형님이 잘 해결해주셨고. 요즘 몸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지?”
“어어….”
“감사한 줄 알아야 해, 너.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쓰러져서 돌아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
황진성은 아주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쓰러진 너를 데리고 온 것도 이분이야. 진짜 고맙게 생각해야 해.”
“아, 감사합니다….”
황진성이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다.
“됐어. 뭐, 나는 별거 한 것도 없는데.”
내 목소리에 황진성이 또 한 번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형님, 이거 가져가세요.”
황진규가 묵직한 봉지를 내 손에 넘겨주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평소 많이 사 가시는 것들로 챙겼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요. 그냥 가져가세요.”
“에이, 이건 너무 많아. 좀 빼자.”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뭘 그렇게까지….”
“진심입니다. 제 동생 사람 만들어 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말하면서 울컥하는지 눈가가 촉촉하다.
하긴, 속 썩이는 가족만큼 감당하기 힘든 문제도 없다.
친구나 먼 친척 정도면 그냥 끊으면 되겠지만, 친동생이 문제면 내치기도 어렵고.
어쩌면 황진규는 엇나가는 동생 때문에 평생 속앓이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한 방에 완벽하게 해결해줬으니 이렇게 감격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힐끗 시선을 돌리니 머쓱하게 뒤쪽에서 진열장을 정리하는 황진성의 노란 머리가 보인다.
순순히 형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하지만, 표정에는 언뜻언뜻 불만스러운 표정, 의아해하는 표정이 스쳐 가는 게 보였다.
칼로스의 일주일 특별 정신 교육을 통해 그의 머릿속에는 형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프로세스가 새겨졌다.
그러나 원래의 그 삐딱한 사고 회로는 그대로인 상태.
한동안 자기가 왜 이러는 건지 알지도 못한 채,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 하는 모순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겠지.
황진규는 동생이 잘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노력해서 이뤄내는 것들이 하나둘 생길 거고 옳은 일을 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일도 있겠지.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여가면서 황진성은 변화할 것이다.
행동을 통해 얻는 좋은 경험이 곧 그의 정신에 다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말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황진성의 표정이 지금과 얼마나 다를지는 좀 궁금하다.
“그럼 난 이만 갈게.”
“네! 또 오세요, 형님! 진성아,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히 가세요….”
나는 꾸벅 인사하는 두 형제를 뒤로하고 미소 지은 채 정육점을 떠났다.
***
“웡! 웡! 웡!”
“삐이이!”
“삐이이이잇!”
“삐이이익!”
던전 내부가 시끄럽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슬라임들과 녀석들을 쫓는 베로의 소리였다.
요즘 들어 술래잡기에 빠져서 던전에서도 종종 이러고 놀았다.
이게 다 칼로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