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어렵다
두 개의 그릇 중 하나는 선생님의 몫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을 살피느라 아예 밥 먹을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달그락!
그때 한 아이 앞의 떡볶이 그릇 하나가 위로 둥실 떠올랐다.
“아아앗! 안 돼!
선생이 잽싸게 그릇을 잡아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얘가 염력을 다루는 데 미숙해서 맛있으면 순간 힘 주체를 못 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돌봐줘야 해요…. 쏟지 않게 제가 잘 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좀 쏟아도 치우면 되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말에 교사가 고마운 듯 웃었다.
그러나 손으로는 계속 위로 올라가려는 그릇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편, 손대지 않은 다른 한 개의 그릇은 물의 정령을 다루던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그 아이는 식탁도 아니고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었는데, 교사는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그냥 둘 수가 없어, 떡볶이를 들고 아이에게로 향했다.
일부러 기척을 내며 다가갔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고 훌쩍이고 있다.
손끝으로 툭툭 팔을 건드렸다.
“흐윽….”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오히려 더 서럽게 흐느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꼬마야. 떡볶이….”
“흑…. 꼬마 아니거든여!”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것에 웃음이 날 뻔한 걸 참았다.
꼬마라는 말이 어지간히 싫은가보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될까?”
“…다은이요….”
훌쩍이면서도 대답은 한다.
조금 마음이 풀린 건가 싶어서 다시 말을 걸었다.
“다은아, 아저씨가 만든 떡볶이 안 먹을래? 다른 애들 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안 먹을래요….”
입술을 삐죽인 아이가 작게 웅얼거리면서 다시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어렵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이후로 애들을 대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어릴 때를 떠올려보려 해도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모르겠다.
살짝살짝 건드려 봐도 이제 별 반응이 없다.
아까는 훌쩍거렸는데 지금은 울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그냥 고집을 피우는 건가?
그때, 교사가 급히 다가왔다.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제가 해결할 테니까 들어가셔도 돼요. 다은아, 다은아!”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교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또 혼내기도 하면서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정다은은 빨개진 눈으로 코를 훌쩍이며 의자에 앉았다.
“자, 먹어봐. 다른 애들 그릇 싹 다 비웠잖아. 되게 맛있어.”
입을 작게 벌려서 교사가 집어 준 어묵을 찔끔 베어 문다.
먹긴 먹는데, 이건 자의가 아니라 억지로 먹는 거라는 티가 팍팍 났다.
우물.
그래도 입에 뭔가 들어갔으니 씹어 삼키기는 한다.
교사는 딱 한 번만 먹여준 다음, 젓가락을 손에 쥐여주고 스스로 먹도록 두었다.
한 아이만을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다은은 떡볶이를 노려보았다.
꽤 진지한 표정이었는데, 입을 앙다물어 볼이 더 통통해지는 바람에 귀여워 보였다.
이걸 먹을지 말지 갈등하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떻게 할지 괜히 나까지 긴장해서 몰래 지켜보았다.
푸욱.
1분여간 고민하던 정다은은 결국 떡을 젓가락으로 찍듯이 집어 베어 물었다.
한번 먹기 시작하자 속도가 붙었다.
더는 고민하지 않고 입이 빌 때마다 떡볶이를 집어 입에 넣는다.
그때, 교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이들은 지치기도 하고 배도 불러서 소란스럽지 않게 노닥거리고 있었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지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었고.
드디어 교사에게도 여유가 좀 생긴 것이다.
“오늘 던전 체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요청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좀 놀랐어요.”
“큰 부탁도 아닌데요, 뭐. 일곱 명이면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휴게소 소개는 길드 사람이 하는 거라 저는 신경 쓸 것도 없었어요.”
농담인 척 진실을 말하자 교사가 눈을 휘며 미소 지었다.
“오늘 체험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거예요. 이 정도 나이대 애들에게 던전에 대해서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거든요. 훈련이야 그냥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해왔었는데…. 어린애들이라도 자기 생각들이 있어서 의외로 그런 게 영향이 있거든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좀 시끄러웠죠? 최대한 조용히 시키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네요. 매일 이렇게 싸우지는 않는데 오늘 좀 기분이 안 좋았나 봐요.”
“괜찮습니다. 애들이 원래 다 싸우면서 크는 거죠. 그런데, 저 아이는 부모가 없는 건가요?”
눈짓으로 다은이라는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교사도 그쪽을 살짝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아까 애들 싸우는 소릴 다 들으셨군요. 다은이는 보육원 출신이에요. 갓난아기 때 보육원 앞에 버려진 아이여서 부모님을 아예 모른다더라고요. 몇 주 전에 갑자기 각성을 해버려서 각성자 학교에 오게 됐는데, 바뀐 환경에 적응이 쉽지 않은가 봐요.”
교사는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부모는커녕 먼 친척조차 없는 천애 고아.
아직 어려서 크게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길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 앞길의 돌을 골라주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끌어올려 주는 부모가 있는 다른 아이들보다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나마 각성이라도 한 것이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 각성하게 된 게 오히려 시련이 될 수도 있고.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교사가 정다은에게 다가가며 다정하게 말했다.
“다은아, 다 먹었네! 그러게 선생님이 맛있을 거라고 했잖아. 맛있었지?”
“…….”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한번 까딱거렸다.
그리고는 안 그런 척 고개를 돌린다.
쪼그만 게 제 딴에 자존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이에게 교사가 장난스럽게 몇 마디 더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이는 못 이긴 척 배시시 웃고 말았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각성자 학교 아이들은 곧장 던전을 떠났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가냘파 보이는 정다은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
“현호 님!”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푸른 덩어리.
물의 정령왕 엘시스가 반가운 얼굴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지 한 달 정도 지났던가?
생각보다 더 일찍 찾아왔다.
“또 라면 받아 가려고 온 거냐?”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묻자 엘시스가 화들짝 놀라며 즉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맨날 얻어먹으러 오는 줄 아십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먹는 모습이나 라면을 다 먹었다며 헤헤 웃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던 엘시스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아무튼 이번에는 아닙니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은 들어가자. 여기 서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정말입니다! 그리고 전에 계속 왔던 건 꼭 먹으려고 왔던 것만은 아니고….”
어쩌고저쩌고 열심히 해명하는 걸 흘려들으면서 2인용 식탁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가져갔던 라면은 다 먹었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간 너무 과하게 지구의 음식에 집착했던 것 같아 자제해보려 하는 중입니다.”
의외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번뇌와 그들이 수행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욕망을 참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은 저보다 실피드가 많이 먹습니다.”
실피드 얘기를 하면서는 고자질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다.
“과자는 어땠는데? 입맛에 맞았어?”
“물론입니다! 대륙의 쿠키와는 또 다른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바삭바삭하고 짭짤하고 달달한 것이 자꾸 입에 붙어 순식간에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특히 겉면에서 달콤한 꿀맛이 나는 것이 참 맛있…….”
신나서 떠들던 엘시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 좋은 푸른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앗, 이, 이게 아니라…. 오늘은 어쨌든 다른 용건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 무슨 용건인데?”
모노드라마를 관람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느긋하게 물어보았다.
엘시스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아스키나 대륙의 자연 복원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 말을 하려고 굳이 찾아왔다고?
축하할 일이긴 하다만… 솔직히 나에게 크게 감흥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 잘됐네.”
“자잘한 일들은 남았지만, 그건 다른 정령왕들의 몫입니다. 저는 이제 여유가 많이 생겼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밍망한 내 반응을 알아챈 엘시스의 눈썹이 팔자로 기울어졌다.
“기쁘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 뭐…. 그냥 잘됐구나 정도?”
“그래도 구해주신 세계라서 관심이 있으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불필요한 소식을 알려드렸나 봅니다….”
엘시스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너무 솔직했나?
“잠깐만 기다려봐.”
아까 들어오자마자 올려뒀던 물이 때마침 팔팔 끓기 시작했다.
머그잔을 하나 꺼냈다.
쪼르르륵.
뜨거운 물을 붓고 갈색 가루를 몇 스푼 타 주었다.
가루가 표면에서부터 퍼지면서 스르륵 녹아내렸다.
투명했던 물이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다.
가져다주니 엘시스가 거절하지 않고 머그잔을 받았다.
“이건 무엇입니까?”
“핫초코라고 하는 건데, 한 번 마셔봐.”
어느새 한겨울이 되었다.
찬 바람이 부는 날, 뜨거운 김이 나는 핫초코 한잔은 난로나 마찬가지다.
계절에 맞춰 던전 식당에서도 식후 핫초코를 한 잔씩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물론 헌터들은 사막, 설산, 동굴 등의 다양한 환경에서 사냥하기에 사실 날씨와 큰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호로록.
“……!”
“어때?”
“와아…. 너무 따뜻하고 달콤하고 너무 좋습니다!”
대답 후 다시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신다.
호로로록.
맛을 음미하던 엘시스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아무래도 단맛은 기분을 좋게 해주니까.
정령 특유의 순수함인지 그냥 엘시스의 성격이 그런 것인지 단순하면서도 회복력이 빠르다.
뜨거운 핫초코를 절반 정도 마신 엘시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컵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저, 현호 님. 용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뭘 드리고 싶어서 준비를 좀 해왔습니다.”
“준비해왔다고? 뭘?”
엘시스가 컵을 쥐지 않은 빈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서 뽀글뽀글 물방울이 솟아났다.
물방울은 한점으로 응집되며 점점 단단히 뭉쳐졌다.
그리고 바닷물처럼 푸른 빛을 띤 작은 돌이 되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정령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야심 차게 말하며 푸른 돌조각을 나에게 내밀었다.
“정령계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거면 정령 친화력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도 정령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정령석은 물의 정령왕인 제 기운이 담긴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계시면 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부르실 수 있을 겁니다!”
엘시스는 아주 대단한 것인 양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고맙긴 하지만… 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 그런……!”
전혀 생각 못 했던 반응인 듯 엘시스의 푸른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