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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있냐 (70/125)

70화. 왜 여기 있냐

“여긴가…?”

주소지를 보며 걸음을 옮기던 황진성이 도착한 곳은 도심의 어느 유명한 클럽 앞이었다.

밤에는 음악 소리와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시끄러운 거리였지만, 낮의 분위기는 평화롭기만 했다.

어리숙하게 두리번거리던 중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은 스포츠 머리의 남자는 키도 크고 눈매도 날카로워서 위압적인 느낌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살짝 움츠러든 황진성에게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황진성 씨 맞습니까?”

의외로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어서 황진성도 긴장이 좀 풀렸다.

“아, 예….”

“저는 장두호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어딜 가든 항상 양아치 취급에 경멸하는 눈빛만 받았던 황진성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아 보이는 남자가 깍듯이 격식을 차리며 대우해주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황진성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역시 능력 있고 볼 일이야.’

장두호는 황진성을 데리고 건물을 반 바퀴 돌아 클럽의 뒷문으로 이동했다.

지나가는 길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을 여러 번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어어, 그래.”

그들은 장두호와 눈도 못 마주치고,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황진성의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갔다.

화려한 바깥쪽 복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름해 보이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뭐야. 생각보다 특별하지는 않네.’

주변을 휙휙 불러보며 평가를 내린 황진성에게 장두호가 손짓하며 말했다.

“여기, 앉아 봐.”

“아, 네….”

갑자기 반말을 하는 것에 당황했으나 황진성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나이 차도 많이 날 테니 아무래도 좀 편하게 대하려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솟아나려는 불안감을 내리눌렀다.

장두호는 옆에 선 뚱뚱한 남자에게 손짓했다.

문신으로 팔뚝의 살이 아예 보이지 않을 지경인 남자가 파일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이름은 황진성, 올해 19살 되고….”

“..네. 맞습니다.”

“무슨, 식물? 그런 거 다루고?”

“네.”

각성 등급은 B급?”

“네.”

“높은 편이네.”

이미 전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절차인 듯했다.

확실히 장두호의 말투가 아까보다 훨씬 껄렁해진 느낌이었다.

“능력 한번 보여줘 봐. 이거면 되나?”

장두호는 의자 쪽으로 등을 기대며 턱 끝으로 탁자 위의 작은 화분을 가리켰다.

황진성은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감지했으나, 묘한 압박감에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식물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 모를 식물은 처음보다 두 배는 크게 자라났다.

“성장시키는 것 말고, 움직이는 것도 가능한 거지?”

“네. 가능합니다.”

“공격력도 좋을 것 같은데. 쉽게 속박할 수도 있겠고…. 확실히 쓸 만한 능력이야.”

장두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식구로 바로 들어와도 손색이 없겠어.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네.”

“…지금 바로요?”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나?”

“그런 게 아니라… 얘기해 보고 협의해서 결정한다고 들었는데요.”

“조직에 들어오는데 그딴 게 어딨어? 이 세계는 그냥 한번 발들여놓으면 끝이야.”

“…저는 좀 더 생각해보고….”

“생각? 무슨 생각?”

“…….”

장두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눈썹이 꿈틀거리며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황진성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이예준도 가볍게 얘기했고, 이 아저씨도 아까는 그렇게 무서워 보이지 않아서 별문제 없이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헤어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황진성은 조금 긴장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능력도 있으니, 타이밍을 노려서 도망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조직에 각성자가 있다고 해도, 도심 한복판에서 큰 소란을 피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장두호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형이 정육점 한다고?”

“……네?”

파일을 한 번 더 쓱 훑어본 장두호가 피식 웃었다.

“가게 이름이 대광 정육점? 뜻이 뭐냐? 큰 빛 뭐 이런 건가?”

“…….”

“형 이름은 황진규.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선해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시고.”

“그걸 어떻게…….”

당황한 황진성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 식구가 될지도 모를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모르고 불렀겠나.”

그 반응이 재밌는지 장두호가 큭큭 웃었다.

뭘 어쩌겠다는 말은 없지만, 이건 분명 협박이었다.

황진성 혼자 여길 빠져나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가족들에게 크게 마음 두지 않고 밖으로 나돌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가족들이 잘못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조폭들이 엄마와 형을 찾아가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섬뜩했다.

‘이, 일단 나가서 신고하면….’

가족들을 보호해달라는 요청까지 같이하고 이놈들이 잡힐 때까지 숨어있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정성적인 방법이었다.

그때 장두호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 신고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도 뒷배가 있거든. 너 같은 놈이 신고하는 정도로는 수사 시작하지도 않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돈에 약하거든.”

속내가 훤히 읽힌 것에 황진성은 또 한 번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너 같은 놈이 생각하는 게 뻔하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허튼 생각은 안 하는 게 서로 편할 거다.”

손끝이 달달 떨렸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찾아온 것인데 이대로라면 인생을 갈아 넣게 될 것이다.

로망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강제로 목줄에 묶이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장두호가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우고 딱딱하게 물었다.

“어때?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결론 내렸나?”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황진성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잘 생각했어.”

두꺼운 손이 황진성의 어깨를 친근하게 툭툭 쳤다.

“일어나. 지하에 형님들 계시니까 인사드리러 가자고. 뭐든 빨리빨리 해치워야지. 나도 그렇고, 형님들도 그렇고, 뭉그적거리는 거 안 좋아하시거든. 너도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하하. 능력도 괜찮으니까 말만 잘 들으면 이뻐해 주실 거야.”

순간 황진성은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안쪽부터 지끈거리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환청이 다시 들려왔다.

‘형 말 잘 들어. 성실하게 살고, 다른 사람 괴롭히지도 말고.’

이러면 안 되는 거다.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들어서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이 느껴졌다.

장두호가 황진성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하냐?”

“자, 잠깐, 어지러워서….”

“이제는 꾀병이냐? 그딴 거 안 통해. 여기가 무슨 학교인 줄 아는 건지. 쯧.”

“제가 끌고 가겠습니다. 형님.”

“그래. 데리고 따라와.”

팔뚝에 문신이 있는 남자가 거칠게 얼굴을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야, 정신 차려, 인마.”

그러나 대답을 하거나 얼굴을 반대로 틀 힘도 없었다.

그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황진성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처럼 끌려들어 갔다.

정신이 없어서 어디로 향하는지 방향도 알 수 없었다.

철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황진성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으아아악!”

“크허헉!”

“어어억! 저리 가! 이 괴물놈ㅇ… 크흑.”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람들.

예상치 못한 광경에 황진성을 끌고 온 남자와 장두호도 당황한 듯했다.

“잠깐. 이게 무슨…!”

“형님! 조심…!”

휙!

집채만 한 검은 덩어리가 날아와 장두호를 쓰러트렸다.

장두호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히이익!”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기겁하며 도망쳤으나 도약한 검은 괴물에 의해 손쉽게 바닥에 쓰러졌다.

“크르릉….”

검은 짐승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얼어붙은 황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황진성의 머릿속에 이상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보랏빛 하늘 아래에서 날개 달린 못생긴 괴물과 거대한 검은 늑대에게 쫓기는 자신의 모습.

극심한 공포감에 숨을 몰아쉬던 그는, 결국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고 말았다.

“끄어어어억….”

털썩.

바닥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어가는 황진성의 귀에 뚜벅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뭐야? 얘가 왜 여기 있어?”

파드득.

귓가에 내려앉는 낮은 목소리에 황진성이 몸을 크게 떨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최현호는 발밑에 쓰러져있는 생뚱맞은 인물이 황당할 뿐이었다.

“요즘 말 잘 듣는다고 하지 않았나?”

황진규가 마주칠 때마다 너무 기특하다고 칭찬하는데.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놈이 왜 이런 범죄조직 사이에서 보이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툭툭.

최현호는 쪼그려 앉아 황진성의 뺨을 건드렸다.

“으음….”

“너 왜 여기 있냐?”

“친구가… 소개….”

잠꼬대하듯이 대답하는 황진성.

완전히 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라 다소 강제적으로 답을 끌어낼 수 있었다.

최현호는 쓰러진 황진성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결론을 내렸다.

전에 걸었던 암시가 풀린 건 아니다.

그냥 형의 감시가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서 철없는 짓을 저지르다가 자기 생각 이상으로 휘말리게 된 것 같다.

“살려주세요…….”

웅얼거리던 황진성은 이대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거라는 공포 속에서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나 참. 이놈은 무슨 망아지도 아니고 뭐 이렇게 사고를 많이 쳐?”

여기서 발견 못 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그냥 나쁜 길로 들어서서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게 문제가 아니다.

형의 말과 충돌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신과 신체에도 타격을 준다.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을 경우 꽤 심각한 중태에 빠지게 됐을 것이다.

그 사이, 베로는 쓰러진 황진성에게 코를 대고 씰룩거렸다.

킁킁.

베로의 꼬리가 점점 위로 솟았다.

“웡! 웡! 웡!”

“알아보겠어?”

“웡!”

베로가 풀쩍풀쩍 뛰며 꼬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너무 반가울 때 하는 행동이다.

긴가민가하다가 냄새로 완전히 확신을 얻은 모양이다.

베로는 황진성 주변을 빠르게 몇 바퀴 돌고 얼굴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할짝할짝.

“어허, 입 대면 안 돼, 베로야. 깨끗한 거 아니야.”

“헥헥헥.”

고개를 든 베로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반가운 건 알겠는데 데리고 가진 않을 거야. 그냥 여기서 잠깐 인사하고 돌아가자.”

“우우웅.”

베로는 아쉬운 듯 울상을 지었다.

최현호는 베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신 다른 사냥감 많으니까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또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베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황진성을 다시 마계로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말을 잘 들어야 하는 형이 있으니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거다.

아무래도 가정 교육이 제일 기본적인 것 아닌가.

베로는 황진성의 옆에서 나름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현호와 함께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사냥감을 직접 선택한 후, 던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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