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뭐 하는 겁니까 (83/125)

83화. 뭐 하는 겁니까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한성 길드와 영웅 길드가 차가운 시선으로 서로를 견제할 뿐이었다.

그런데 성민혁의 등장과 함께 긴장이 극도로 치솟아 올랐다.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성민혁, 그리고 지고는 못 산다는 이우석.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S급 헌터 두 사람이 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심지어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할 상황도 아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것이다.

‘내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왔나 보군.’

당황하지 않는 성민혁을 보고 이우석이 짐작했다.

“…….”

“…….”

성민혁은 식당 입구에 서서, 이우석은 식탁 앞에 앉은 채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아서 주변의 헌터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먼저 입을 연 건 한성 길드 성민혁이었다.

“오랜만이네.”

이우석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게. 몇 년 만이지? 국제 헌터 컨퍼런스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1년 반 정도 된 것 같군.”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입은 미소 짓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고 서로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성민혁과 이우석.

두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동갑내기인데다가 둘 다 S급으로 각성했고, 각성 시기마저 비슷했다.

공통점이 많은 만큼 친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사실 두 사람은 사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S급 헌터다 보니 공식 석상에서 몇 번 마주칠 일이 있었고, 그때 통성명하며 말을 놓게 되었을 뿐.

이들이 처음 각성했을 때부터 언론에서는 두 사람을 항상 희대의 라이벌 관계로 묘사했다.

세세한 능력치는 물론이고, 헌터로서의 행보 또한 항상 비교되었다.

[S급 헌터 성민혁 “이우석은 내 아래”]

[이우석 새로운 스킬 발현, 성민혁보다 빠른 성장세]

[이우석 비켜! S급 헌터 성민혁, 한성 길드 창설]

[영웅 길드 이우석 “한성은 아직 중소, 영웅 길드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이런 식의 기사가 각성 직후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판국이었다.

언론이고 주변이고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가다 보니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혈기왕성한 20대 시절,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악수를 하다가 힘겨루기를 시작해서 여러 헌터들이 달라붙어 떼어내야 했다는 비화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흐른 만큼 둘 다 철이 들어서 그런 해프닝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내심 경쟁심을 느끼고 라이벌로 여기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후 성민혁이 입을 열었다.

“뭐, 그건 그렇고… 여긴 왜 온 거냐?”

“여기? 식당이잖아. 당연히 밥 먹으러 왔지.”

이우석의 대답에 성민혁이 입술을 비틀었다.

속셈이 뻔한데 딴소리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리고 성민혁은 그런 감정을 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밥만 먹고 갈 거 아닐 텐데? 쥐새끼처럼 뒤에서 수작질 부리려는 거 아니야? 여긴 우리 구역이라는 거 모르지 않을 텐데?”

“쥐새끼라니, 말이 좀 험하다?”

“쌍욕 한 것도 아닌데 엄살은.”

드르륵.

이우석이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식당 내의 모든 헌터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당장에 서로를 공격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실제로 성민혁은 옆구리 쪽의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고, 이우석은 등 뒤에 맨 장창을 뽑아 들기 직전이었다.

라이벌로 여겨지는 두 사람이 실제로 맞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생뚱맞게도 던전 식당 내부에서 그들의 맞대결이 벌어지려 하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누가 이기나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그럼 누가 무서워서 물러날 줄 알았어? 나도 바라던 바다.”

S급 헌터 두 사람이 싸우기에 마땅한 장소는 아니었으나, 싸움이 붙으면 앞뒤 가리지 않는 두 사람에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듯했다.

스릉.

두 사람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헌터들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무기를 뽑은 S급 헌터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휘익!

챙!

첫 공격은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가벼운 힘겨루기였다.

가볍다는 것은 S급 헌터들의 기준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가까이에 있던 식탁과 의자가 풍압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저기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렸으나, 이미 서로에게 집중한 성민혁과 이우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다음 공격을 주고받았다.

콰앙!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성민혁 누가 불렀어! 이렇게 해결할 일이 아니었는데!”

“나도 몰라.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고, 빨리 말릴 방법이나 생각해봐.”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두 S급 헌터가 맞붙을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공교롭게도 지금 그들을 제어할 만한 주변 인물들이 없었다.

콰앙!

콰아앙!

검과 창이 맞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민혁과 이우석 둘 다 이곳이 던전 식당의 내부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던전 내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케일 큰 공격보다는, 상대를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둘 다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승부가 날 수 없는 상대였으니, 이대로 아무리 부딪쳐봤자 애들 장난 같은 싸움만 계속될 거고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아챘다.

‘딱 한 번만 제대로 공격해보자.’

성민혁은 마나를 검에 집중시켜 바깥으로 퍼지지 않는 불꽃이 검날을 감싸도록 했다.

그리고 이우석 또한 눈치를 채고 창끝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들에게 이미 싸움을 시작했던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십수 년간 비교 대상이 되어왔던 상대와 처음으로 맞붙게 되었고,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그때였다.

휘릭!

챙!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언가가 맞붙은 두 헌터 사이로 날아들었다.

동시에 검과 창이 볼품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뭐야. 어떻게….”

전투 중 무기를 놓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무기는 곧 목숨이며, 그것을 손에서 놓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두 헌터는 타의에 의해 무기를 놓쳤다.

각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흐름이 깨어지고, 성민혁과 이우석이 당황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멀어졌다.

S급 헌터의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바닥에는 성민혁의 검과 이우석의 창, 그리고….

“식칼?”

부엌에서나 쓸 식칼이 함께 떨어져 있었다.

이우석과 성민혁,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주변의 헌터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던전 식당의 주인, 최현호에게로.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듯 편안한 목소리.

“이거… 사장님이 던진 겁니까?”

성민혁이 침착하게 물었으나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S급 헌터 두 사람이 맞붙었는데, 정확하게 그 사이를 겨냥해서 누구도 보지 못하는 속도로 식칼을 던지고 무기를 떨구게 했다고?

자신이 겪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에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최현호는 성민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지금 두 분 뭐 하는 겁니까, 제 식당에서?”

언성을 높이지도, 표정을 찌푸리지도 않았지만 같은 공간 안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화났다…!

항상 평온해 보이던 식당 사장 최현호가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는 것 또한 느껴졌다.

움찔.

이우석은 순간 뒷걸음질 치려 하는 자신의 몸을 이성으로 붙잡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무의식적인 본능이 이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감이 상당히 좋았다.

실전에서도 오직 느낌만으로 위험을 직감하여 살아남은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몬스터와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도망쳐야 할 만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위기감은 여태까지 헌터 생활을 하며 느껴왔던 것 중 가장 강했다.

감이 좋다고 해서 그게 백 퍼센트 맞는 건 아니었고, 가끔 빗나가는 일도 있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상황, 그리고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의 강력한 위기감에 이우석은 오히려 이 감각을 착각으로 치부해버렸다.

최현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제 식당 안에서 쌈박질하는 거 용납 못 합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든지, 무기를 치우든지 둘 중 하나만 하세요.”

존댓말이었으나 명령처럼 강압적인 태도였다.

성민혁이나 이우석이나 실력만큼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헌터들이었다.

평소의 그들을 생각하면 상황이 어떻든, 일차적으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반발심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들이 잘못한 게 맞기도 하고, 최현호에게 잘못 보이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기에 큰 위화감은 느끼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든지, 싸움을 중단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게이트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나갈 때도 다른 던전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봤자 중단된 싸움을 연이어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던전 식당 때문에 싸운 것인데 밖에 나가서 또 약속 장소를 정해 정식으로 싸울 것도 아니었다.

성민혁이 먼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고 검집에 넣었다.

열이 올랐던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말로만 경고해도 됐을 일인데 너무 나갔다.

어차피 지금 영웅 길드가 끼어든다고 해서 이미 쌓아둔 한성과 최현호의 관계에 쉽게 금이 갈 것도 아니었는데, 지나치게 견제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 일 때문에 될 일도 안 될 수가 있다.

성민혁은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했던 자신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놈의 성질머리를 이제 좀 죽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이우석 또한 바닥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어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도 성민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실수했습니다.”

“저도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켜보던 헌터들은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라이벌이라는 타이틀에도 십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맞붙은 적 없는 S급 헌터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무기를 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 특수 능력이 있지만 전투 능력은 F급인 헌터가 식칼 하나로 저지했다.

여기에서, 자존심 강한 두 S급 헌터가 F급 헌터에게 고개 숙이며 사과까지 한 것이었다.

여러 헌터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토록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성민혁과 이우석 둘 다, S급 헌터로서의 명예가 실추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 이곳에 있는 헌터들 모두가 한성 길드, 또는 영웅 길드 소속이었다.

밖에서 이번 일에 대해 입방아를 찧지는 않을 것이다.

***

‘남의 영업장에서 뭐 하는 짓이지?’

무기를 꺼내 드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끼어들지 않고서는 멈출 기미가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했다.

내 식당인데 내가 지켜야지 어쩌겠나.

나는 내 앞에 나란히 서서 눈치를 살피는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직 죄송하다는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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