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결 (84/125)

84화. 대결

“죄송할 짓을 왜 하신 겁니까.”

싸늘한 내 말에 성민혁과 이우석은 대답 없이 눈길을 피했다.

할 말이 없겠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벌인 일이니까.

거기에는 설마 S급 헌터들의 행동을 누군가 막아설 리도, 막을 수 있을 리도 없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밑받침되었을 것이다.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무슨 철도 안 든 학생처럼 행동합니까. 그것도 인류의 구원자라 불리는 S급 헌터가.”

“…….”

“…….”

훈계에 가까운 말에도 마땅히 대꾸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했을지 모르지만, 팩트이기 때문에 무슨 대답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 사람들을 앞에 세워두고 혼낼 수도 없는 일.

“됐습니다. 앞으로는 조심 좀 해주시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성민혁과 이우석의 대답과 함께 옆쪽에서 크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아….”

“휴우우….”

주변의 헌터들은 날 선 분위기에 오히려 자신들이 숨을 멈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나 내가 다시 말을 꺼내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런 분위기를 유도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두 사람의 싸움을 중단시킨 것이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나는 성민혁에게 시선을 주고 입을 열었다.

“제 던전 때문에 견제하려고 찾아오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성민혁이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뭐… 그렇죠.”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그런 행동은 달갑지 않군요. 이 던전은 제 소유입니다. 현재는 한성과 계약한 상태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제가 결정할 일입니다. 그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하네요.”

확실히 초반에는 성민혁이 오버한 게 맞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영웅 길드 사람들은 내가 열어준 게이트로 들어온 손님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건 내가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일인데, 이번에 성민혁이 선을 넘었다.

던전에 대한 선택권이 한성이나 영웅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알겠습니다….”

성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눈을 피했다.

반면 이우석은 승리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영웅 길드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이우석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영웅 길드에서 여러 번 연락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다음 계약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요. 혹시라도 지금 또 그런 얘기를 꺼내려던 거라면 미리 거절하겠습니다.”

올라갔던 이우석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이번에는 반대로 성민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S급 헌터가 아니라 동네 초등학생들이라 해도 될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다.

“제 의견은 이 정도면 다 밝힌 것 같고, 이제 두 분 여기 앉으시죠.”

나는 그새 다른 헌터들이 일으켜둔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뭘 하라고요?”

“이대로 흐지부지하게 끝낼 겁니까? 대화로 풀든, 팔씨름이라도 해서 결판을 내든, 싸움의 마무리는 지어야죠.”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이우석과 성민혁이 잠깐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성민혁이 먼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좋아. 나도 이대로는 찝찝해서 잠도 못 잘 것 같군. 그놈의 라이벌 타령도 이제 질리는데, 한 번쯤 누가 위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낫지 않겠어?”

이우석이 피식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재밌게 됐네. 그럼 어떻게 할까, 팔씨름?”

“상관없어. 종목이 뭐가 됐든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내 생각이랑 똑같네. 어차피 내가 이기고 네가 진다는 말, 맞지?”

“말장난하지 말고 시작해보자고.”

역시나, 대화로 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마나는 쓰면 안 됩니다. 던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두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또 다른 대결에 길드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식탁에는 아직 먹지 못한 요리들이 많이 남아있었으나 지금 밥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이건 돈 주고도 못 보는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나는 두 사람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이우석과 성민혁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사실 아까는 일부러 팔씨름이라는 단어를 흘려본 것이었다.

성민혁과 이우석은 내가 각성하기 한참 전부터 S급 헌터로 활동하던 사람들.

항상 라이벌로 비교되던 두 사람의 힘겨루기 결과가 나 또한 궁금했다.

그래서 던전에 해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귀한 인적 자원인 S급 헌터들의 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팔씨름 정도의 미끼를 던져본 것이었다.

당연히 이 팔씨름의 결과로 두 사람의 능력을 온전히 비교할 수는 없었다.

실제 전투에서는 무기를 쓰는 데다가 마나를 비롯해 순발력과 판단력 등 다양한 능력치가 한데 어우러져 실력이 된다.

그러니 이건 그냥 재미로 하는 미니게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 대 힘의 싸움에서 밀리는 것만큼 남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다.

양쪽 누구에게도 치우쳐지지 않은 내가 자연스럽게 심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맞붙은 두 손을 정확히 중간에 위치시킨 다음, 떼면서 소리쳤다.

“자, 그럼… 시작!”

성민혁과 이우석이 이를 악물고 서로의 팔을 넘기려 했다.

“흐압!”

“크으윽!”

한참 동안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힘내요, 민혁이 형!”

“이우석! 좀 더 꺾어봐!”

아슬아슬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에 주변의 헌터들이 손에 땀을 쥐며 응원했다.

누가 이길지 나조차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크으으으윽!”

“으아아아!”

콰지지직!

살벌한 소리와 함께 팔꿈치가 닿아있던 식탁이 두 동강 나며 무너져내렸다.

“헉!”

“아앗!”

자세가 흐트러졌고, 중심을 잡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손을 놓아야 했다.

결과는 무승부.

조금 싱겁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물론 이기면 좋았겠지만 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 본전은 했으니까.

또한 마나를 쓰지 않고도 멀쩡하던 식탁까지 부서트렸다는 점이 두 사람의 막대한 힘을 증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와, 미쳤네.”

“역시 S급들은 다르다니까. 무슨 팔씨름을 하다가 식탁을 부숴.”

“심지어 마나를 쓴 것도 아니고, 식탁을 내려친 것도 아닌데. 하여튼 대단하다.”

구경하던 헌터들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식탁은 한성에서 물어드리겠습니다.”

“아뇨. 영웅에서 더 좋은 거로 사서 보내겠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반반으로 하세요. 이런 거로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죠.”

순순히 대답하는 성민혁과 이우석, 그리고 아직 팔씨름 대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나는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식사마저 하시죠!”

그제야 밥을 먹던 중이란 걸 깨달은 한성 길드와 영웅 길드 헌터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성민혁과 이우석도 몇몇 동료들과 함께 엉망이 된 자리를 정리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

영웅 길드 헌터들의 등장으로 날카롭던 분위기가 이제 완전히 풀어졌다.

여러 무리로 나뉘어 앉아있지만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민혁과 이우석이 눈앞에서 보여준 희대의 라이벌 매치에 대한 것이었다.

무승부로 끝났기에 양측 길드 모두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마 한동안은 모일 때마다 오늘 일에 대한 감상을 나눌 것이다.

그만큼 놀라운 구경거리였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테니까.

“잠깐만요.”

그때 성민혁이 곁을 지나가던 나를 붙잡았다.

“네?”

“아까는 어떻게 한 겁니까?”

“뭐 말이죠?”

“그, 식칼 던진 거….”

“식칼 던진 걸 어떻게 했느냐고요? 마침 손에 쥐고 있어서 그냥 던졌죠, 뭐.”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걸 정확히, 창과 검의 맞닿으려는 부분에 끼워 넣은 것 아닙니까. 그것도 힘이 상쇄되어 밖으로 튀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회전을 주면서요. 그건 솔직히 저보고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 걸 신경 쓰진 않았어요. 그냥 두 분이 식당에서 소란 피우는 게 화가 나서 홧김에 던진 겁니다. 어차피 두 분은 S급 헌터니까 제가 던진 칼에 맞아 다칠 리가 없잖아요. 알아서 잘 쳐낼 거로 생각했죠.”

“그냥 막 던졌다고요?”

“네. 대충 방향 맞춰서.”

“그럴 수가…. 우연히 그게 될 수 있는 건가.”

성민혁이 못 믿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이우석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화를 모두 듣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우연이었다는 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하하, 제가 그걸 다 계산하고 힘 조절, 방향 조절 모두 정확하게 해서 던졌다고 생각하시는 게 더 신기한데요.”

“그건 그렇지만….”

“S급 헌터분들도 못하겠다는 걸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성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끝냈다.

이우석도 그럭저럭 받아들인 듯 다시 수저를 들었다.

미심쩍은 듯한 깨끗하게 납득한 것 같진 않지만, 어쩌다 우연히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에 더 마음이 기운 것 같다.

어차피 속으로 나에 대해 의심을 한다고 해도 확인할 길도, 증명할 방법도 없다.

나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이 사람들은 내 육체의 힘을 짐작할 수도, 마나를 읽을 수도 없으니까.

마침내 식사를 마친 영웅 길드 헌터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큰 이벤트가 있었지만, 사실 내 식당의 헌터들은 모두 사냥 도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러 온 것이었다.

6명의 영웅 길드 헌터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이우석에게서 아쉬운 듯한 기색이 보였지만 나에게 던전이나 계약에 대한 말을 따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까의 내 말을 제대로 인지한 모양이다.

짐을 챙겨 드는 이우석의 앞에 성민혁이 걸어가 섰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며 씩 웃었다.

“다음에 한 번 더 붙어봤으면 좋겠군.”

“언제든 환영이지. 그땐 더 튼튼한 탁자에서 붙어보자고.”

터업.

거친 두 손바닥이 허공에서 부딪쳐 단단하게 서로를 잡았다.

구경꾼들이 아닌, 두 라이벌에게도 오늘 일은 꽤 인상 깊게 남은 듯했다.

‘보기 좋네.’

저렇게 서로 견제할 만한 라이벌이 있는 것도 꽤 즐거운 일 아닌가.

혼자 독보적인 힘을 가진 것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 심심한 부분이 있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떠나는 이우석과 영웅 길드 헌터들을 웃으며 배웅해주었다.

***

거대한 덩치의 마족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무릎을 꿇고 상체를 완전히 바닥에 뉜 덩치는 마계 제1군단장 칼로스였다.

그가 평생에 누군가의 앞에서 이렇게까지 몸을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대 마왕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 충성을 표하는 정도였는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건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새끼 얼음여우 구름이었다.

“우쭈쭈, 우쭈쭈!”

“끼이이잉….”

“어이구 그래, 그래. 쫌만 더!”

“끼힝….”

“할 수 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이리로 와보거라!”

칼로스의 응원에 넘어졌던 구름이가 바들바들 떨며 일어섰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던 구름이는 마침내 칼로스가 뻗은 양손 앞까지 도착했다.

손끝에 흰 털이 닿자마자 낚아채듯 구름이를 집어 든 칼로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했다! 너무 잘했어!”

“끼잉, 끼이잉!”

“어이구! 힘들었어? 그랬쩌여?”

“끼히이잉…!”

기기기긱.

스켈레톤 부하들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척했다.

존경하는 주인의 저런 모습까지는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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