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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93/125)

93화. 반가워

황진성은 지금 막 집 앞에 도착한 참이었다.

2박 3일간의 꽤 힘든 사냥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였지만 그의 눈에는 피로보다 생기가 가득했다.

몸이 힘들긴 해도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머리만 굴리고 있는 것보다는 실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훨씬 좋았다.

위험하고 무서워서 잘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처음의 걱정이 무색할 지경으로 헌터 활동은 적성에 잘 맞았다.

그때 황진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성 길드의 유희진에서 온 전화였다.

방금 일을 끝내고 들어왔는데 무슨 용건인지 짐작이 안 됐다.

“여보세요?”

- 진성아, 지금 어디야?

“저 이제 거의 집에 다 왔어요.”

- 그래? 지금 컨디션은 어때? 이번 사냥에서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

“네. 멀쩡해요. 무슨 일 있어요?”

- 지금 몬스터 한 마리가 도심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고, 급하게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거든. 여기서도 몇 명 출동할 건데 위치상 너희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연락했어.

“미친…. 몬스터가 도심에 나타났다고요? 그래도 돼요?”

- 당연히 안 되지! 긴급 사태야, 지금. 던전 브레이크가 발견되지는 않았는데, 아마 아직 못 찾은 것뿐이지 어딘가에 있을 거야. 어쨌든 빨리 지원해줘야 하는 상황이니까 너도 출동해. 도망쳐서 추적하는 중이라 정확한 위치 파악은 안 되고 있어서 몇 군데 나누어져서 추적할 거야. 너는… 하늘공원으로 가 봐. 집에서 가깝지?

“네.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요.”

- 우선 그리로 가봐. 길드원들도 몇 명 그쪽으로 갈 건데 위치상 네가 먼저 도착할 것 같으니까 상황 보고 다시 연락해.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아직 어떤 몬스터인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확인된 건 아니니까 무작정 싸우지는 말고. 혼자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도 안 돼!

“넵!”

그는 꽤 듬직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진성은 얼마 전 신입 헌터 교육을 마치고 이제 막 실전에 투입되어 일하는 중이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는 한성 길드에서 가장 어린 막내였다.

요즘에는 괜히 반항하거나 매사를 꼬아 생각하는 면이 많이 사라졌지만, 객관적으로 황진성이 싹싹하거나 귀염성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그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길드 내에서 꽤 귀여움을 받았다.

몇 번 실수해서 따끔하게 혼이 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그걸로 한심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더 잘해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어디서나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황진성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최근 몇 번의 사냥을 통해 이제 완전히 한성 길드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정신적으로 좀 성숙해진 면도 있었다.

황진성은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몬스터를 추적 중이라고 했으니 혹시 장소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면서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했으나 추가적인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황진성도 조금 전에 받은 것처럼 근방에 사는 주민들 모두에게 비상 대피 문자가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주친 두어 명의 사람들도 급히 피신할 장소를 찾아 도망치고 있었다.

빠르게 달린 황진성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하늘공원에 도착했다.

‘너무 빨리 왔나?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야?’

패기 있게 달려왔으나 막상 정체 모를 몬스터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장소에 혼자 서있으려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든든한 길드원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인 것이다.

황진성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잘 해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 해내고 싶다는 생각과 진짜 몬스터가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두려움으로 심경이 복잡했다.

아직 길드에서 추가적인 연락은 없다.

아마 그쪽도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어디 숨어있을까…?’

혹시 모르니 그게 나을 것 같다.

황진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공터가 아닌 수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스스스스스!

그때 황진성의 귓가에 나뭇잎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듯 점점 커졌는데, 다가올수록 그냥 나뭇잎이 스치는 정도가 아닌, 나뭇가지가 무더기로 우두둑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되었다.

파파파파팟!

아주 커다란 것이, 빠른 속도로 돌진하며 달려오는 소리.

뭔가 다가오고 있다.

‘설마.’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느낌에 황진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형체가 수풀을 뚫고 튀어나왔다.

거의 날아오르는 것처럼 엄청난 높이로 도약한 그것은 정확히 황진성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사납게 자신을 노려보는 맹수의 눈빛.

황진성은 놈이 정확히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차라라락!

황진성의 양옆에 있던 나무에서 대여섯 개의 가지가 길게 늘어나며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급박한 상황이라 치명적인 공격을 하긴 어려워도, 팔다리를 속박하여 이 기세를 저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검은 몬스터는 바닥에 착지하기도 전에 두툼한 앞발을 두어 번 휘두르는 것으로 식물 줄기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회심의 일격이 아무렇지 않게 무효화되자 황진성은 속으로 탄식했다.

강하다.

절대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살아남을 방법은 당장 여기서 도망치는 것뿐.

그러나 이미 늦었다.

뒤돌아 달리고 싶었지만 그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가 꼬여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쿵!

등 전체가 땅에 제대로 충돌하며 온몸에 충격이 가해졌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몬스터의 주둥이와 그 사이로 반짝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만 눈에 들어왔다.

저 맹수의 이빨에 인간의 연약한 피부는 종잇장처럼 쉽게 찢어지고 말 것이다.

황진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그것도 몬스터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겨서…!

상상해본 적도 없는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였다.

20년도 채 되지 않은 황진성의 짧은 인생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화내고 싸우고 반항하고 매일 투덜거리기만 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매사에 불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각성 이후 최근 몇 달간은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그의 짧았던 인생은 끝나고 테니까.

황진성이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던 그때.

할짝.

축축하고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그의 볼을 쓸어올렸다.

“히익…!”

황진성은 기겁하며 몸서리를 쳤다.

몬스터가 머리를 통째로 입에 넣으려는 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음으로 찾아왔어야 할 고통이 없다.

그저 축축하고 뜨끈뜨끈한 것이 계속 볼을 쓸고 있을 뿐.

할짝. 할짝.

실눈을 뜨고 슬쩍 앞을 보았다.

시커먼 몬스터의 큼직한 분홍빛 혀가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핥고 있었다.

곧바로 머리를 뜯길 줄 알았는데 잡아먹기 전에 먼저 맛이라도 보려는 것 같다.

농락당하는 기분에 빽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냐! 이 괴물놈아!”

“웍! 웍! 웍!”

베로는 그 목소리가 반가워 기쁘게 대답했으나 그걸 알아챌 리가 없었다.

황진성은 낑낑거리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가슴팍을 누르는 강한 앞발 앞에서는 무의미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휘릭!

휘리리릭!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주변 식물들을 이용해 공격하려 했으나, 또다시 휘두르는 앞발에 힘을 잃고 축 처지고 말았다.

베로에게는 위협적인 공격이 아니었으므로 황진성이 놀아주는 거로 여겼다.

그래서 또 한 번 반가움에 얼굴을 핥았다.

“이런….”

황진성은 반격을 포기하고 몸에 힘을 빼고 누워버렸다.

온몸이 베로에게 짓눌려 길드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아니면 다른 헌터들이 빠르게 이곳을 발견하고 도와주기를, 그리고 그때까지 몬스터가 이 상태를 유지해주기를 바랄 뿐.

“헥헥.”

할짝.

그런데 이상하게도, 몬스터가 얼굴을 핥는 이 느낌이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검은 짐승 자체도 어디서 마주친 적 있는 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고, 지금 그런 부정확한 느낌에 골몰할 때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

자포자기 상태로 황진성은 눈을 감았다.

그저 핥는 것뿐이니 아픈 건 아니었지만 이건 또 이것대로 괴로웠다.

언제든지 변덕을 부려 갈가리 찢길 수 있는 상황이니 그저 공포심에 떨며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

그로부터 몇 분 전, 각성자 학교에도 현 사태에 관한 소식이 닿았다.

도심에서 발견된 몬스터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상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상황.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사태였기에 근방에 전력이 될 만한 헌터들은 총동원되어야 했다.

각성자 학교의 교사와 학생도 상당한 실력자들이었으므로 전력 지원 요청을 받은 것이었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연락이 온 건 각성자 학교가 설립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복도에 선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을 데려가는 게 맞을까요? 너무 어리잖아요. 실전에서 싸워본 적도 없는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따라야겠죠. 저도 찜찜하긴 한데… 그만큼 긴급상황 아니겠어요? 정확히 어디 있는지, 어느 정도 급의 몬스터인지만 알아도 여기까지 요청이 오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일단은 그놈이 어디로 숨었는지 알아야 하니까 최대한 많은 각성자가 흩어져서 찾아야 하는 거죠.”

“하긴 비각성자끼리 수색해서 발견해봤자 피해 규모만 더 커질 테니 할 수 없겠죠. 후우…. 그럼 선생님 먼저 출발하세요. 제가 애들 데리고… 어머! 다은아!”

교사는 교실의 열린 문틈 안쪽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는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어!”

“아까부터요. 저희 출동해야 하는 거지요?”

똘망똘망하게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빛에 교사는 마음이 따끔 아파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놀아야 할 이 어린 애를 몬스터 앞에 끌고 가서 싸우게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게… 지금 상황이….”

“선생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소리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 먼저 갈게요! 어딘지 알 것 같대요.”

“뭐? 그게 무슨… 다은아!”

황당한 소리에 되물어보려 했으나 정다은은 듣지도 않고 복도를 가로지르며 뛰었다.

“다은아! 정다은! 어디 가는 거야!”

교사는 정다은의 뒤를 쫓으려다가 곧 멈춰 섰다.

그냥 달려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짧은 다리로 물 위를 달리듯이 빠르게 미끄러지며 달리는데 그 속도가 엄청났다.

교사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다은.

각성자 학교의 학생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데도 각종 시험에서 두각을 보이는 뛰어난 인재.

등급 측정기로 확인되는 능력치보다 더 뛰어난 아웃풋을 낸다는 점이 아주 놀라웠다.

그 때문에 능력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이 천재적인 수준이라 평가되고 있었다.

실제로는 아직 계약하지 않은 엘시스가 조금씩 도와준 것이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퍼뜩 정신을 차릴 교사가 서둘러 정다은이 먼저 나가버렸다는 사실을 다른 교사에게 알리고, 아이들을 모아 학교 밖으로 나섰다.

정다은에게도,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도 큰 사고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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