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식당합니다-97화 (97/125)

97화. 예외

숨기려 하는 듯하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게 보인다.

딱히 호감을 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럴 때 보면 역시 물질적인 게 효과가 즉각적이긴 하다.

눈알을 굴리던 황진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럼 이제 가봐도….”

“잠깐만. 시간 있으면 얘기 좀 하자.”

“좀 바쁘긴 한데….”

“다음 사냥은 내일이잖아?”

“아, 그, 형 일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요….”

“진규한테 아까 물어봤는데 이번에 알바 한 명 구했다면서? 너 헌터일 하느라 피곤하다고 해서 최대한 안 시키기로 했다던데?”

“아, 하하…. 맞다. 그랬었죠.”

웃는 얼굴이 거의 울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어설픈 핑계로는 벗어날 수 없지.

“큰 부탁은 아니고 그냥 전에 만났던 그 몬스터 있잖아.”

“…네.”

“걔랑 가끔 만나서 놀아줬으면 해서 말이야.”

“제가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황진성은 꽤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웃음을 참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되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거든. 너도 알잖아? 그날도 네가 좋아서 꼬리 흔들고 난리 났었는데.”

“…그거 진짜 좋아서 그런 거였어요? 더 이해가 안 가는데요…. 걔는 대체 왜 저를 좋아하는 건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거기까지는 말해줄 수 없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었지만 떳떳하게 얘기하기는 좀 어렵지.

황진성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거절할 수 있는 겁니까?”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해. 네 맘이지.”

…라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많은 생각이 들겠지만 마음은 수락하는 방향으로 끌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휴…. 알겠어요.”

“좋아. 그럼 지금 바로 가보자.”

“네….”

밥때가 아니라 식당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황진성을 부엌 뒤쪽 복도로 데리고 가서 벽으로 위장된, 숨겨진 문을 열었다.

잠깐 놀라는 듯했지만, 이미 다른 공간이 있는 걸 알고 있어서 빠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네….”

나는 던전 안쪽 깊은 곳에서 혼자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로를 불렀다.

사실, 황진성을 데리고 들어가거나 다른 몬스터들을 보여줘도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만 너무 다른 세계에 혼자 충격받을 수도 있기에, 멘탈 보호를 위해 더는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귀를 쫑긋거리며 따라오던 베로의 축 처져있던 검은 꼬리가 점점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홀로 서 있던 황진성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만난 친구에 베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니, 친구라기보다 좋아하는 놀잇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만.

“웡! 웡!”

베로가 풀쩍 뛰어 뒷걸음질 치는 황진성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자, 잠깐! 이, 이게 맞아요?!”

황진성은 당황하여 버둥거리지만, 깜짝 선물에 베로의 기분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

한편 그 시각, 헌터 관리국에서는 며칠 전 사건으로 인한 수수께끼가 전혀 풀리지 않는 탓에 여러 직원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에휴….”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던 김윤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맞은 편을 지나던 송혜연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심란해요?”

“…어떻게 끼워 맞춰서 그럴싸한 척 결론 내긴 했는데, 솔직히 이게 맞나 싶어요.”

“블랙 옥토퍼스 건이요?”

“예, 그거요. 너무 대충 마무리된 게 아닌가 싶어서…. 그 괴물이 최초 목격자들이 말하는 검은 늑대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맞아요. 아예 별개의 몬스터일 가능성도 있죠. 사실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결론을 내놓고 근거를 끼워 맞춘 거나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그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고…. 이러다가 갑자기 큰일 터질까 봐 무섭네요. 차라리 사람들한테 좀 더 제대로 알려주고 대비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지…”

김윤정은 헌터 관리국에 입사한 지 겨우 1년 조금 넘은 초짜였다.

업무적으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이번과 같은 일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헌터 관리국에 들어오기 전의 그녀는 다른 평범한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뉴스나 정부, 헌터 관리국에서 발표하는 근황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막상 동경하던 관리국에 들어와서 보니,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생각보다 체계적이지 않은 면도 많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도 많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 싶지만 그래도 처음엔 실망스러웠다.

지금은 뭐, 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싶지만, 이번 일은 많이 놀라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태로운 세상에서, 진실을 공유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었다.

송혜연은 빙긋 웃으며 김윤정에게 물었다.

“윤정 씨는 일반인들이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 음….”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 집 안에 숨어있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될까요? 일도 하고, 회사도 가고, 학교도 가야 하는데. 확실하지 않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걸 중단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이번처럼 어차피 대응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이게 최선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윗분들이요?”

송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하게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야 많이 익숙해졌지만, 비각성자들의 몬스터에 대한 공포심은 윤정 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거든.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해요.”

“…네….”

“괜한 책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이런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게 아니니까.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제대로 조사하고 밝혀내고 해결하는 것까지. 그러니까 다른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제 일에 집중해야죠!”

김윤정은 알아들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잔소리를 조금 하긴 했지만, 송혜연도 김윤정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헌터 관리국에 들어온 직원들은 다들 한 번씩 거쳐 가는 단계였다.

그때 뒤쪽에서 낮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흠.”

일부러 기척을 내기 위한 인위적인 소리에 사무실 모두가 그쪽을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강남웅 과장을 비롯한 여러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국장님!”

“다들 그냥 앉아있게. 그렇게 한꺼번에 일어나면 내가 일 방해하러 온 것 같은 기분이잖나.”

“아, 전혀 아닙니다.”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굳을 필요 없어.”

국장 박문석이 강남웅 과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허허 웃었다.

그래도 강남웅 과장은 쉽게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가 헌터 관리국에 들어온 지도 수년이 흘렀건만 국장이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신년 행사 때나 멀리서 한번 보는 정도였기에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국장을 마주해본 적도 없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헌터 관리국의 가장 뛰어난 던전 전문가인 송혜연은 종종 국장과 독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등장에 조금 놀라면서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다.

“국장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냥 송 팀장이랑 이야기할 것도 있고 해서 말이지.”

“그런 거면 그냥 절 부르셔도 되는 건데….”

“어떻게 일하는지도 궁금하고, 직원들 얼굴도 한번 볼 겸해서 겸사겸사 와 봤네.”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박문석이 털털하게 웃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영 부담스러운 눈치였기에, 송혜연은 그를 이끌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국장이 궁금해하는 블랙 옥토퍼스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보고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전달되었지만 급하게 언론에 보도부터 한 터라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박문석은 특히 중요하다 싶은 일이 있으면 실무진과 대화하며 사태를 꼼꼼히 파악하곤 했다.

헌터 관리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래라저래라 사람을 쪼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송혜연은 박문석의 그런 점을 내심 존경할 만하다 여기고 있었다.

질의응답까지 마친 후, 박문석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로군. 만약에 대비해 감시 인력을 계속 유지하라고 해야겠어.”

고개를 끄덕이던 박문석의 시선이 송혜연을 향했다.

“혹시 송 팀장 개인적으로 의심 가는 건 없나? 논리적이거나 근거 있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감이 어떤지 묻는 거야.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주게.”

“…감이요…. 그냥 제 느낌만 말씀드릴 테니 그냥 흘려들으세요.”

“알겠네.”

“일단 새벽에 발견된 블랙 옥토퍼스와 며칠 전 CCTV에 찍혔던 검은 몬스터는 동일 개체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거는 없고요. 그리고….”

“그리고?”

“그 몬스터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에 관해서는… 음… 글쎄요. 이건 정말 모르겠습니다. 근방에 나타났던 게이트와 던전을 모두 확인해봤지만 그 몬스터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만약 감지기에 감지되지 않는 게이트가 나타났다면….”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감지기가 개발된 후로 기기 이상으로 게이트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딱 하나 있긴 해요.”

“예외라면…?”

“국장님도 알고 계실 텐데, 전에 보고드렸던 던전 식당 게이트요.”

“아. 던전 식당.”

박문석은 예전에 보고받았던 그 특이한 능력의 헌터를 금방 기억해냈다.

“그 식당 주인인 헌터가 집에 만드는 게이트는 감지되지 않거든요.”

“그럼 그 헌터가 이 사건과 뭔가 관계가 있을 수도….”

“저도 잠깐 생각은 해봤는데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건 의심되어서 얘기 드린 게 아니라 예외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한 것뿐이었어요. 그날도 한성 길드에서 던전을 드나들고 있었고, 다른 손님들도 계속 있었거든요.”

“흠…. 그렇군.”

“지금 당장 특별히 다른 게 더 생각나지는 않네요.”

“잘 알겠네. 고생했어.”

박문석이 시간을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봐야겠네. 조만간 그 던전 식당이라는 곳 진짜 한번 들러봐야겠어.”

처음 던전 식당에 대해 알게 됐을 때도 했던 얘기였다.

박문석은 던전 식당 헌터의 특별한 능력에 흥미는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바쁜 일이 많고, 이미 송혜연이 이야기를 잘 끝냈다기에 우선순위에서 미뤄둔 상태였다.

그렇게 거의 잊어가고 있던 차에 다시 한번 식당에 대해 상기하게 된 것이었다.

“거기 다른 걸 떠나서 일단 음식이 진짜 맛있습니다.”

“그래? 송 팀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기대되는데. 시간 날 때 갈 게 아니라 시간을 한번 만들어봐야겠군.”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박문석은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

붉은 머리 마족 타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유리병 하나가 놓여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참을까, 말까….”

세상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사실 그의 고민은 사과잼으로 인한 것이었다.

칼로스의 영역에서 초월자에게 받아왔던 인간의 요리인 사과잼 세 병.

이걸로 인간의 음식은 당연히 역겨울 거라는, 그간 당연하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다.

놀랍도록 맛있어서 어찌나 아껴먹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땅으로 돌아와서 어떤 마족들에게도 잼을 보여주지 않고 몰래 혼자 먹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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