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식당합니다-99화 (99/125)

99화. 침입자

“아오오오올!”

베로를 발견한 구름이가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뒤로 젖히며 하울링 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베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구름이는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 결연하게 다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잘 안 되는 건지 더 힘들게 끙끙거린다.

“삐이잇!”

“삐이이이!”

“삐이이익!”

그 안타까운 모습에 슬라임들이 주먹을 쥐고 더욱 열심히 응원한다.

쩌저적!

응원 덕분인지, 구름이가 이번에는 두 개의 얼음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웡! 웡!”

베로가 깜짝 놀라 펄쩍 뛰며 짖어대고 슬라임들은 환호하며 뛰어다녔다.

구름이는 칭찬해달라는 듯 나에게 달려와 귀를 눕혔다.

신나게 소리치고 즐거워하는 녀석들 덕분에 나는 한참 동안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어느 아침이었다.

오늘은 한성 길드에서 던전을 사용하지 않는 휴일.

여유를 만끽하며 던전에서 혼자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게 뭐지?”

무언가가 던전에 침입했다.

닫혀있던 게이트 하나를 내 허락 없이 뚫고서.

초대한 적 없는 침입자.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이질적인 기운에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이동했다.

그곳에, 억지로 열린 게이트가 스르륵 닫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처음 보는 인물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서 있었다.

적의보다는 호기심이 담긴 눈빛.

그러나 이런 마구잡이식 침입이 좋은 의도일 리는 없다.

게다가 닫힌 게이트를 이렇게 열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 안 된다.

알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자이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뻗어 목을 겨눴다.

상대는 반격하지 않고 두 손을 위로 들었다.

“어이쿠, 엄청 빠르시네.”

그리고 당황한 듯 아니, 당황한 척하며 중얼거렸다.

“누구냐.”

“이 상태로 내 소개를 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찔릴까 봐 좀 무서운데.”

전혀 겁먹지 않은 목소리로, 오히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나는 오히려 검을 들이밀었다.

무기를 꺼내거나 반격하지 않고 뒷걸음질 치던 침입자의 등이 곧 던전 벽에 닿았다.

“아아, 알았어. 얘기할 테니까 찌르지 마. 아프잖아.”

호들갑 떠는 눈앞의 침입자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젊은 얼굴에 염색한 것 같은 회색 곱슬머리, 그리고 복장이 조금 특이할 뿐이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인간이라 생각할 눈앞의 여자는 절대 인간이 아니다.

이건 완전히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각.

‘마족인가? 엘프? 아니면 또 다른 몬스터? 혹시 드래곤인가?’

머릿속에 인간의 모습과 유사한 종족들을 빠르게 하나씩 떠올려보았으나, 이자에게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존재에도 부합하지 않는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있다.

이계에서의 50년을 포함해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와 비슷한 존재를 마주쳐본 적도, 인식해 본 적도 없다.

이건 분명… 내가 아는 범위 밖의 존재다.

“…다른 세계에서 온 건가.”

내 말에 여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말 놀란 듯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오호, 그걸 바로 알아챈다고? 이곳의 초월자는 수준이 높은데?”

“넌 누구지? 왜 내 던전에 침범한 거고? 납득할 수 없는 대답을 하면 바로….”

“잠깐만, 좀 진정해. 나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어. 어디 노크를 하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딴소리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어깨를 으쓱하는 여자에게 나는 다시 한번 경고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목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붉은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 알겠다고. 무서우니까 좀만 진정하라고! 난 너만큼 강하지 않단 말이야!”

침입자는 어느새 여유가 사라졌는지 진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휴우우….”

목을 찌르기 직전이던 검 끝을 살짝 뒤로 물리고, 기운을 갈무리하자 침입자가 숨을 내 쥐었다.

이 예의 없는 침입자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속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굽히고 들어오고 있고, 대화할 의지도 있어 보이니 한번 얘기해볼 만했다.

이곳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이 자가, 어쩌면 지금껏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했던 알 수 없는 외부의 적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침입자는 내가 곧바로 다시 공격할 것 같은지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누구냐고 물었지? 나는 리넬. 아마 네가 알지 못할 다른 세계에서 왔어. 그리고….”

더 얘기해보라는 의미로 계속 눈을 마주치자 침입자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너와 같은 존재야. 내가 살던 세계에서 나 또한 초월자라고 불렸거든.”

“다른 세계의 초월자라고?”

리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 또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완전히 넘어섰지. 아마 너보다도 한참 더 전이었을걸?”

다른 세계가 더 있으리란 것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막연히 그곳에도 사람들, 또는 다른 종족들이 살아갈 거로 생각하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초월자들이 더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긴 하다.

물론 그 초월자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했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왜 찾아온 거지?”

“당연히 너를 만나려고.”

“그러니까 왜?”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리넬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릴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기 얼굴의 미간을 문지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봐. 인상 좀 펴. 나는 네 적이 아니야. 네가 적으로 여기고 경계해야 할 놈들은 따로 있다고. 이렇게 굳이 힘 뺄 거 없다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어차피 난 널 못 이겨.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인간 이상의 힘이 느껴지지만, 그게 공격력이 강하다는 말과 같지는 않다.

일반적인 S급 헌터보다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 싶은데….

앞에 선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특별히 더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뭔가를 더 숨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마. 싸움에 약하다고 무능력한 건 아니니까.”

자기 입으로 약하다고 말한 게 걸렸는지, 혼자 변명을 덧붙인다.

나는 말없이 무기를 아공간 창고에 집어넣었다.

“여기에 계속 서서 얘기할 건가? 어디 앉을 자리라도 내줘야 대화를 하든 말든 하지.”

리넬이 다시 능글맞은 태도로 말했다.

무기가 사라지자 분위기가 좀 풀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따라와.”

나는 손님 대접을 바라는 뻔뻔한 침입자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

리넬은 내가 내어준 차를 마시지 않았다.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면서 경계도 놓지 않는 듯한 묘한 태도였다.

혹시 몰라 베로와 다른 애들은 마주치지 않도록 마계로 내보냈다.

리넬도 내가 뭔가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는 건 눈치챈 것 같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 보며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다는 게 뭔데?”

“그렇게 적대적으로 굴 필요 없다니까.”

딱딱한 내 목소리에 리넬이 여유로운 척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가 전혀 반응하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조만간 네가 사는 이 세계에 위험이 닥칠 거야. 이곳을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있거든.”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어.”

“어, 진짜로? 어떻게?”

리넬이 당황하며 반문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진 것 같은 일들이 있었거든.”

나는 과거 마계를 뒤흔들고, 지구와 아스키나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일들에 대해 말했다.

막연한 짐작이었지만, 바깥의 세계가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침입자의 등장으로 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까지는 몰랐던지 리넬이 귀 기울여 내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그들의 정확한 목표는 네가 말하는 마계라는 곳이겠어. 뭐, 이미 세 개의 차원이 연결되었으니 못 막아내면 다 같이 끝나는 거긴 하지만…. 이미 앞선 두 번의 공격으로 마계의 껍질이 약해져 있으니, 다음번에는 분명 그들이 들어오게 될 거야.”

“네가 말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지? 왜 이곳을 노리는 거냐? 뭘 얻으려고?”

이 부분은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물으면서도 내 앞의 이 자가 답을 알고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렇게 나를 만났으니, 아마 예상은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초월자들인가?”

“맞아. 역시 이해가 빠르네.”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리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초월자가 된 존재 중 일부가 오래전부터 세계를 하나씩 파괴해오고 있어. 그리고 바로 다음 차례가 바로 네가 사는 이곳인 거고. 그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만 그건 착각이지. 생명을 창조해낼 수도 없는데 신은 무슨 신이야? 그냥 닥치는 대로 세상을 부수고 다니는 파괴자들일 뿐이야. 지금까지 없앤 세계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야.”

“왜? 왜 그런 짓을….”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그냥 재미있어서 그러는 거야.”

“재미? 생명체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파괴하면서 얻겠다는 게 고작 재미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놈들이 이곳을 노리는 것에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더 강대한 힘을 얻어야 한다거나,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나름의 이유가.

그런데 재미라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게 하는 답이었다.

리넬은 씁쓸함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았어. 나보다도 훨씬 전에 초월자가 되었지. 무료하고, 심심한, 끝이 어딘지 모를 기나긴 생…. 너무 지루한데 그렇다고 당장 소멸하기는 싫고, 이대로 버티기만 하는 것도 싫으니 어떤 목적을 찾게 되는 거지.”

“그 목적이 세상을 부수는 거라고?”

“…그렇게 정한 모양이더라고.”

우두둑.

손으로 쥐고 있던 탁자 한 귀퉁이가 험악한 소리를 내며 부스러졌다.

나도 모르게 힘을 준 것이었다.

리넬은 내가 분을 가라앉히도록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은 열 받는다고 분노를 분출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나는 리넬에 하는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그녀도 모든 걸 알지는 못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때?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아?”

“뭐, 그럭저럭 괜찮네.”

적당히 대답했는데도, 리넬은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여기로 온 거지? 네가 말한 파괴자들은 바로 들어오지 못했는데.”

“그게 내 능력이거든. 나는 다른 초월자들보다 쉽게 차원을 넘나들 수 있어. 그리고 여긴 이미 파괴자에 의해 껍데기가 많이 약해져 있어서 더 쉬웠고. 게다가 그놈들은 어마어마한 세력을 이끌고 오는 거고, 나는 혼자 다니는 거라 많이 다르지.”

납득할 만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아직 의문점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왜 너는 이런 걸 나에게 알려주는 건데? 들어보니까, 지구나 마계, 대륙이 망하건 말건 넌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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