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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식당합니다-102화 (102/125)

102화. 성장

칼로스의 붉은 눈이 진지한 빛을 띠었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성장에 목말랐다는 의미도 되겠지.

“기본적으로, 너는 너무 힘에만 의존하는 타입이야. 알고는 있지?”

“......! 그, 그렇습니까?”

“설마 몰랐던 거냐?”

“아니, 그건 아닌데.... 저 혼자 생각하기에 그런 면이 있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누군가에게 들어본 건 처음이라서....”

“아, 그래? 누가 얘기해준 적이 없어?”

“...예. 성장은 각자의 몫. 마족들 간에 조언을 주고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 너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줬다거나, 뭘 가르쳐준 사람 아니, 마족은 하나도 없는 거네?”

“그야 당연히.... 마족이라면 당연히 모든 것을 스스로 익히고 깨우쳐야지요.”

하긴, 마족들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더 어색하긴 하다.

칼로스는 기대감이 담긴 표정으로 내가 다시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조언을 듣고 싶은 것 같다.

칼로스는 얼굴만 짐승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신체 또한 짐승 같았다.

나보다 머리 몇 개만큼은 더 큰 키에 수북이 덮인 검은 털로도 감춰지지 않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기로 절반 이상의 마족들이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칼로스처럼 동물이나 몬스터가 융합된 듯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형보다는 이런 동물형 마족들이 육체적으로 더 뛰어나기 마련이다.

대신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나 순발력 같은 다른 능력이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보통 그렇다는 거고, 칼로스는 힘 이외의 다른 능력들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거고.

그래도 역시 막강한 힘을 활용한 공격이 칼로스의 장점이었으니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이상 그쪽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겠지.

“흠....”

칼로스를 위아래로 훑으며 새삼 관찰하는 사이, 놈이 그새를 못 참고 입을 열었다.

“어.... 여기서 뭘 좀 보여드릴까요? 아무래도 제가 실전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직접 보는 게 더 파악하기 좋을 것 같은데...!”

상당히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이게 엄청난 기회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모양이었다.

“됐어. 네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애초에 다 파악했으니까.”

“언제 말입니까?”

“전에 그 붉은 머리 마족이랑 죽기 살기로 싸웠었잖아.”

“아, 타론!”

“마계에 올 때마다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모를 수가 있겠어?”

“그, 그렇군요....”

칼로스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네 신체에서 발달시킬 수 있는 최대치의 힘에는 이미 도달했으니 그쪽으로는 손대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는 게 좋겠어. 아주 약간만 좋아져도 네가 체감하기에는 엄청난 차이일걸?”

“어.... 그런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 이미 제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해서....”

칼로스의 눈빛에 약간의 존경심이 깃들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힘을 길렀지? 항상 실전에서 직접 싸우면서 깨우친 건가?”

“그렇습니다.”

“따로 수련 같은 건 해본 적 없고?”

“네. 수련하는 마족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 건 연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거라....”

인간과 달리 전투에 적합한 신체와 본능을 타고난 마족들이었다.

게다가 언제든지 싸울 기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적합했겠지.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오면 확실히.”

칼로스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가타부타할 것 없이 대답하는 칼로스의 모습이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좋아. 그런데 시간은 좀 있어? 몇 주 정도는 여기에만 매진해야 할 텐데.”

“엊그제 영역과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에서 작은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시작인 건가.”

“네. 그렇지만 타론에게 전해 듣기로 저를 치려는 놈들에게 내부적인 문제가 생겨서 시간적 여유는 조금 생겼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라고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바뀌면 타론이 바로 알려줄 겁니다.”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네.”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요구한 대로 그의 영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고 튼튼한 동굴로 안내했다.

***

“헉헉....”

돌바닥에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쓰러져있는 거대한 짐승은 다름 아닌 마족 칼로스였다.

“조금만, 쉬었다가....”

“겨우 이 정도로? 지금 마계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강한 마족이... 너무 근성이 없는 거 아닌가?”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숨, 숨 좀 고르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리자 발끈하며 상체를 일으킨다.

평생 힘이 없다거나 체력이 달린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을 칼로스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바닥을 기어 다니는 이유는 내가 이놈이 힘을 마음껏 쓰지 못하도록 몸에 마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과거 홍재훈의 능력을 억제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나는 그런 칼로스의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공격을 받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치명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공격하기도 하며 방향을 잡아주었다.

원래도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기존의 힘과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수십, 수백 배는 더 힘들 것이다.

뭐라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생각 이상의 근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텐데 말이다.

“헉헉.... 진짜 이걸로 되는 겁니까?”

“네가 하기 나름이지, 뭐. 못 하겠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런 건 아닙니다.”

생각만큼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자꾸 의문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따라오긴 할 것이다.

“너한테 모자란 순발력과 민첩성을 길러주려는 거야. 이렇게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지.”

휘익!

말을 끝냄과 동시에 놈이 있던 자리에 단검 세 개를 한 번에 날렸다.

“으아아악!”

숨을 고르던 칼로스가 옆으로 바르게 굴렀다.

파파팟!

마력이 담긴 단검 세 개가 바닥에 차례로 꽂혔다.

마지막 단검은 아슬아슬하게 칼로스의 등을 스쳐 검은 털 몇 오라기가 흩날렸다.

“예고라도 좀 해주면...!”

“그런 게 어딨어?”

“아악!”

말하는 도중에 단검 하나를 더 날리자 칼로스는 기겁하며 뒤로 굴렀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투우 소처럼 씩씩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이래야 나도 재미가 좀 있지.‘

나는 미소 지으며 돌진하는 칼로스를 상대해주었다.

***

그렇게 3일이 흘렀다.

내가 직접 굴려주는 건 이 정도까지만.

다음은 스스로 깨우치고 성장해야 한다.

“이해했지?”

“이해는 했습니다. 똑같이 따라 하는 건 안 되지만.”

“그건 네가 연습해야 하는 거고. 이해했으면 됐어.”

칼로스는 마력을 능숙하게 다루었지만, 내 기준에서 볼 때는 분명히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다.

낭비되는 마력을 조금만 더 잘 갈무리하고 힘으로 이용하면 몇 배는 더 효과적인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마력을 신체의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었던 것이다.

“그럼, 일주일 뒤에 보자.”

“...알겠습니다.”

칼로스가 비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거대한 바윗덩이로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쿠웅...!

혹시 모를 몬스터나 마족이 칼로스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름하여 폐관 수련.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지는 당연히 전적으로 칼로스에게 달려있다.

***

칼로스를 동굴에 넣어둔 지 5일이 지났을 때였다.

붉은 머리 마족 타론이 그를 찾아왔다.

“칼로스 님은 어디에 가셨습니까? 분명 전투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셨는데!”

대신 나타난 나를 보고 타론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생각보다 좀 일찍 왔네?”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혹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마족들 일은 마족들끼리 해결해야지.”

“아.......”

은근한 기대를 담은 질문에 고개를 젓자 타론의 낯빛이 급격히 나빠졌다.

“우선 따라와. 칼로스에게는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네....”

최소 2주 정도는 수련에 집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거였다.

폐관 수련에 들어가고 일주일 후에 내가 상태를 보고 조금 더 수련하도록 둘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아직은 안 될 텐데....”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다.”

마력 수련을 시작한 지 겨우 5일째.

처음 생각했던 만큼의 성장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현 상태를 보고 필요하다면 뭔가 더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론과 함께 칼로스가 있는 동굴 앞으로 찾아왔다.

“칼로스 님이 이곳에 있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타론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칼로스 님! 타론입니다! 지금 놈들이 이쪽을 진군해오고 오고 있습니다! 빨리 나오십시오!”

잠깐 기다려보았지만, 동굴 안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타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칼로스 님! 다른 마족들은 이미 출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칼로스 님만 나오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답이 없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닙니까? 아니, 대체 왜 저런 곳에 혼자 들어있는 거죠? 설마 무서워서 숨은 건 아닐 테고.”

타론은 이제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그때였다.

우르르릉...!

동굴 안쪽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울림.

칼로스가 움직이고 있다.

타론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뿐만 아니라, 입구의 일부마저 박살 났다.

쿵...! 쿵...! 쿵...!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검은 마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카, 칼로스 님?”

겉보기에는 전과 다를 게 없지만 뭔가 달라진 듯한 분위기에 타론이 어색하게 그를 불렀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인 듯하다.

‘기대 이상이잖아?’

기간이 훨씬 단축되었는데도 칼로스는 많은 것을 깨우친 것 같다.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칼로스는 뒤쪽에 선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반가움과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여전히 놀라서 그를 보고 있는 타론에게 말했다.

“...가자. 타론.”

“아... 네, 네...!”

두 마족이 동시에 검은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나는 땅 위에 서서 잠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청 무게 잡네.”

굳이 그렇게 입구를 저렇게까지 다 때려 부수면서 나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게다가 저 근엄한 표정과 내리깐 목소리는 평소와 너무 달라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번 수련의 성과가 어지간히 자랑스러운가 보다.

또 타론이 여기까지 왔으니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오늘의 칼로스는 좀 기특했기에 내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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