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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식당합니다-105화 (105/125)

105화. 고민

“다음을 위한 준비. 더더욱 강해져야 한다.”

“여기서 더요? 그게 될까요?”

“안 돼도 되게 해야 하는 상황이지. 너뿐만 아니라 네 휘하의 마족들, 마족들이 다룰 수 있는 몬스터들, 싸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강해져야 해.”

“싸울 수 있는 모든 것들…. 대체 우릴 노리고 있는 게 뭐길래 초월자님이 그렇게까지….”

“나 같은 놈이 더 존재하고, 그들이 마계를 노리고 있지.”

“……!”

칼로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럴 수가….”

“믿기 어렵겠지만, 하여튼 그래. 마왕이고 뭐고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거지. 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건 하나도 없는 상황이야.”

“…알겠습니다.”

“결론은 전반적으로 재정비를 해야 하니 바쁘겠지만, 힘을 키우는 데 더 주력했으면 좋겠다는 거. 알아들었지?”

“명심하겠습니다.”

칼로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자박자박.

그때, 멀리서부터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벽 너머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은 흰 털이 보송보송한 얼음 여우 구름이였다.

구름이는 이제 다 큰 진돗개 정도로 커졌다.

쑥쑥 잘 자라던 녀석이 최근 몇 주간 거의 그대로인 걸 보면 이게 다 자란 상태인 것 같다.

그러나 몸만 컸지 털은 새끼 때나 마찬가지로 부드러웠고, 딱히 의젓해지거나 어른스러워지진 않았다.

이쪽을 바라본 구름이가 잠깐 멈칫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칼로스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등을 낮추고 꼬리를 흔들며 소리높여 울었다.

“아오오올!”

언제 돌아오나 매일 들락거리며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나를 보러 와줬구나…!”

칼로스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구름이의 소리를 들은 베로와 슬라임들도 뒤늦게 달려왔다.

그 모습에 칼로스는 꽤 많이 감격한 듯, 눈썹을 팔자로 찡그렸다.

삑삑거리는 슬라임들과 우당탕 뛰어다니는 베로, 그리고 배를 까고 좋아하는 구름이 때문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되었다.

중간중간 칼로스가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귀가 썩을 것 같았으나, 오늘만큼은 참아주기로 했다.

그때였다.

“….!”

내 던전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오늘은 한성 휴게소를 열어놓은 날.

그러나, 이건 헌터가 아니다.

낯설지만 왠지 익숙하기도 한 이 느낌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굳어버린 내 표정에 칼로스가 당황하며 허리를 세웠다.

“먼저 가봐야겠다. 여기서 애들 좀 돌보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던전으로 이동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

이곳은 한성 길드 헌터들이 드나들지 못하는, 던전 안쪽의 공간.

그곳의 바닥에 시뻘건 무언가가 쓰러져있었다.

살아있는 거라고는 보기 힘든 몰골의 그것은 다름 아닌 리넬이었다.

“리넬?”

엎드린 피투성이 몸을 돌려 앞모습을 확인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

심지어 본래의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과 몸이 피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에 엉망으로 흐트러진 은발 때문에 알아봤을 뿐, 얼굴만 봐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그마저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특히 목과 복부 부분의 상처는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각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상황임에도 초월적인 힘으로 간신히 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두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던전 창고에 둔 포션을 왕창 가지고 와서 닥치는 대로 뿌리고 먹였다.

외부의 존재라 이 포션이 제대로 먹힐 거라는 확신은 없었으나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겉으로 보이는 끔찍한 외상은 조금씩 아물어가는 게 보였다.

목과 복부에 살이 조금씩 차오르며 피가 멎었다.

‘자체 회복력이 좋은 건가.’

힐링 포션으로 재생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 같은데,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억지로 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힘을 잃어가는 리넬 고유의 기운을 압박하여 충격을 주고자 한 것이다.

힐링 마법이라기보다 심폐소생술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보통 사람에게는 통할 방법이 아니지만 이미 한계를 극복한 초월자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잠시 후, 나는 리넬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숨소리가 더 크고 고르게 바뀌었다.

우선 위급상황은 넘긴 것 같다.

전투에 자신이 없다고는 했지만 리넬 또한 초월자였다.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S급 헌터는 물론이고 현재의 칼로스 또한 리넬에게 이 정도의 상처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리넬을 이렇게 만든 건 아마도….

‘파괴자들.’

분명 그들과 한 번 더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뭔가 더 알아낸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꼴로 돌아온 걸 보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수도 있겠다.

‘이다음이 문제인데….’

병원에 데려가거나 힐러를 불러 추가적인 조처를 해야 할 건지 고민이 되었다.

리넬은 인간이지만, 엄연히 다른 세계의 존재이다.

외적으로도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는 느껴지는데, 모든 것이 지구의 인간과 동일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파괴자가 만든 상처에 힐러나 병원의 치료가 크게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리넬의 몸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몸을 치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치료하겠다고 더 건드리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우선 이 던전보다는 포근한 침대가 있는 집으로 데려가는 것.

아무리 알아서 치료가 되고 있는 것 같다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이 던전 바닥에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리넬을 안아 들고 게이트를 열어 집으로 곧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잘 쓰지 않는 손님방의 침대에 눕혀주었다.

얼마 후, 집에 돌아온 최지수가 작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오빠!”

“왜?”

“집에 누가 있어! 오빠 손님이야? 설마….”

“설마 뭐?”

“여자친구?”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대체 누군데? 깰까 봐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스타일이 특이하던데.”

머리카락 색이 은발인 걸 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외상은 아물었으니 그냥 보기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 거로만 보였을 것이다.

“크게 다쳤는데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우선 우리 집에서 좀 재워주려고.”

“진짜? 아니 이젠 사람까지 주워오는 거야?”

“주워오다니….”

황당한 말이었지만 당당하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베로도 새끼였을 때 주워온 거나 마찬가지고, 슬라임 인간들은 내가 만들었지만 지수가 보기엔 큰 차이 없을 거고, 최근에는 구름이까지 새로 데려왔으니….

“흠흠, 아무튼 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사정이 있어서 병원에 데려갈 수는 없고. 깨어나면 놀라지 않게 잘 대해줘.”

“그런 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뭔가 사연이 복잡한가 보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지수의 표정에 동정심이 깃들었다.

가끔 말을 안 들을 때도 있지만 본성은 착하고 단순한 애였다.

“가능하면 네가 좀 돌봐줘. 공격당해서 피도 많이 흘렸고 옷도 엉망이거든.”

“몬스터한테 당한 거구나…. 불쌍해라…. 알겠어. 시간 있을 때 내가 봐줄게. 아무래도 같은 여자인 내가 더 편할 테니까.”

지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

리넬은 3일째 깨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상태는 호전되어 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경이로울 정도의 회복력.

이것 또한 초월자로서 리넬의 능력일 것이다.

나는 마계에서 칼로스의 보고를 들었다.

내 명령을 곧장 실천하여 벌써부터 마족 군단 전체를 훈련시키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고 한다.

“낭비하는 시간 없이 단기간에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해. 언제 그놈들이 쳐들어올 건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니까.”

“우선 현호 님이 저에게 주었던 가르침을 바탕으로 훈련 내용을 짜고 있습니다. 다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잘 따르고 있고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을 잘해놓아서 불만을 느끼거나 비협조적인 놈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도 아직 네 한계에 도달한 게 아닌 것 같으니 전에 알려줬던 대로 조금 더 훈련해봐.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네 그릇이 큰 것 같네.”

“정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전에 네가 데리고 왔던 마족들이 현재 마계에서 너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놈들이겠지?”

“맞습니다.”

“그럼, 혹시 그놈들이 더 강해진다고 해서 네 자리를 넘볼 수 있을 정도가 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너보다 그릇이 훨씬 작고, 또 내가 직접 가르쳤던 것만큼의 성과는 어려울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들은 제가 새롭게 임명한 군단장들입니다. 타론이 제1군단장이고요.”

대충 보기에 타론이 가장 강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마 가장 적극적으로 칼로스를 도왔던 것에 점수를 준 모양이다.

이 정도면, 마계는 계획한 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오히려 나만 안주해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리넬은 내가 제대로 대비하면, 파괴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현재로서는 이길 수 없지만, 희망이 또 없는 건 아니라는 건데….

어쨌거나 나 또한 더 강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나는 내 한계를 돌파했고 또 다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현재로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특별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조언을 얻을 데도 없고 말이다.

“에휴….”

“……! 고민이 있으십니까?”

“그냥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하네.”

“아니, 거기서 더 강해지고 싶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뭐 좋은 거 없냐? 숨겨진 영약이라든가, 도움이 될 만한 거 어떤 거든.”

“……!”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에 칼로스가 잠시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숨기는 건 아닌데….”

뭔가 있다.

나는 칼로스를 압박하며 캐물어 보았다.

칼로스는 눈알을 굴리며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말을 꺼내시니까 생각난 게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냥 소문일 수도 있어서요.”

“상관없으니까 빨리 얘기해봐.”

“마계의 서쪽 끝 가장 깊은 협곡 어딘가에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도 모를 마물이 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있습니다. 크리판이라고 불리는데, 거의 수만 년 정도 살았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놈의 심장에 쌓인 마력이 어마어마하고, 그걸 섭취할 수만 있으면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뭐라고? 이 자식이! 그런 게 있으면 미리미리 알려줬어야지!”

“저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잊어? 네가 꿀꺽하려고 했던 거잖아!”

“아, 아닙니다, 진짜!”

퍽!

결국 오랜만에 한 대 얻어맞은 칼로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녀석은 커다란 덩치를 움츠린 채, 뒤통수를 문지르며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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