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국장
송혜연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 갑자기가 아니라, 요 며칠 계속 이 일로 연락드렸었어요. 국장님께서 식당에 가보겠다고 하셔서 약속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그랬군요. 바쁜 일이 있어서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고 계신다고요? 연락도 안 되는데?”
- 네. 곧 해외 일정이 있으신데 그 전에 꼭 들러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식당이 안 되면 휴게소라도 둘러봐야겠다고 우선 한성 길드 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그렇게까지 급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 그게… 막상 찾아가려니 연락이 안 닿는다는 말에 뭔가 더 의심하고 계신 것도 같고….
“알겠습니다. 오늘은 영업할 거니까 식당에 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 네. 그럴게요.
어차피 오늘은 평소처럼 식당을 열 생각이었다.
크리판은 찾아뒀고, 당장에 뭔가 하기보다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너무 가게 일에 소홀해도 주변에서 걱정할 테고.
헌터 관리국 국장 박문석이 나타난 것은 송혜연과의 통화가 끝나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친숙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뚜벅뚜벅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도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하다.
워낙 TV와 인터넷에서 많이 본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큰 특색 없는 흔한 인상이기도 하고.
평소 자유롭게 드나드는 한성 길드원들의 식당 출입은 국장의 요청으로 잠시 막아두었다.
박문석은 각성자로 보이는 경호원 한 명만 데리고 들어왔다.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 나머지는 던전 바깥에서 대기하는 중인 듯하다.
그는 느긋한 걸음걸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먼저 허리를 굽히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최현호라고 합니다.”
“박문석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중하게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박문석은 꽤 힘주어 내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국장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내가 뭐라고. 그냥 평범한 손님으로 대해주면 됩니다.”
뻔한 띄워 주기용 멘트에 박문석 또한 호탕한 웃음으로 답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웃음 뒤의 눈빛은 그리 따뜻해 보이지 않는다.
뭔가 꿰뚫어 보고 말겠다는 듯이 그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송 팀장이 하도 좋은 얘길 많이 해서 꼭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오게 됐네요.”
“그러셨군요. 미리 알았으면 특별한 메뉴를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뭐… 사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있는 거로 주시죠.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거고요. 그런 것보다는 직접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온 거니까.”
식당에 식사하러 온 게 아니라 나를 만나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
그러나 진짜로 얼굴만 보려고 왔을 리는 없다.
분명히 용건이 있을 거고, 호의적인 내용은 아니겠지.
말투 자체는 부드러웠지만, 나를 향한 눈빛과 말속에 숨은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게 뻔히 보인다.
박문석은 그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약하게 압박을 가해보려는 듯한데….
이것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보려는 일종의 테스트일 것이다.
“제 식당이 이렇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국장님께 제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자리라니,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 아닙니까. 여기서 제대로 된 음식 대접을 못 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습니다.”
“허허, 너무 그러니까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저 그만큼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하지만 호의는 고맙게 받아들여야겠죠. 감사히 한 끼 먹겠습니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능청맞게 대답하자 박문석도 적당히 맞장구치며 의자를 하나 꺼내 털썩 앉았다.
함께 온 경호원은 자리에 앉지 않고 두어 걸음 물러선 위치에 가만히 서 있었다.
“특별히 원하시는 게 없으면 한정식으로 차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좋지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좀 느려도 됩니다. 오늘은 최현호 씨 때문에 시간 빼서 온 거니까.”
사람 좋게 웃는 박문석을 두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구색 맞추기용 메인 요리 두어 개에 있는 밑반찬만 내놓을 생각이었으니까.
그 정도만 해도 꽤 괜찮아 보일 것이다.
더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딱히 많은 힘을 쏟을 생각은 없다.
조금 전 국장에게 말했던 것처럼 진짜 진심을 다해 식사 대접을 하려는 건 아니었으니까.
박문석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는 것처럼, 나 또한 그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말이 어느 정도 통할지 대충 파악해놓고 본론에 들어가는 게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쉬울 테니까.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결국 둘 다 가면을 쓰고 대화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박문석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박문석의 속내를 알고 있고, 그는 내 속을 모를 거라는 것뿐.
치이이이익!
나는 집에서 먹으려고 재워뒀던 소불고기와 오늘 메인 반찬 중 하나인 고등어구이를 동시에 요리했다.
그리고 남는 화구에는 냄비를 올리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보글.
열린 공간으로 박문석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평범한 손님들처럼 요리 속도에 놀라거나 감탄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시선이었다.
아직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을 발견하지 못해서 좀 더 지켜보려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박문석이 몇 마디 대화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대충 느낄 수 있었다.
‘능구렁이 같군.’
혹시나 했는데, 역시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다.
하긴, 헌터 관리국 국장이라는 자리가 쉬운 자리는 아니지.
무능력한 사람이 앉았다가는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거기에다 정부 부처나 기업들과 부딪힐 일도 많고, 아래 직원들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니 사람 대하는 데도 도가 튼 것 같고….
예상은 했지만 직접 만나보니 허수아비 같지는 않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수년째 그런 자리를 꿰차고 있을 정도의 노련함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능력 있는 것이 멍청한 것보다 훨씬 낫다.
그래야 말이 좀 통할 거 아닌가.
금세 음식이 모두 익었고 나는 밥과 메인 요리, 그리고 밑반찬을 빠르게 내어갔다.
“벌써 다 됐습니까? 혼자인데 생각보다 빠르네요.”
“제가 손 빠른 게 장점이거든요.”
“하긴 밖에서 보니 엄청나더군요. 이것저것 동시에 하면 헷갈릴 것 같은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움직여서 신기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냥 늘 하는 일이라 손에 익어서 그렇습니다.”
대충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을 차리고 나니 생각 이상으로 그럴싸한 상차림이 되었다.
박문석은 이제야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요.”
“더 준비하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이 정도면 넘칠 정도로 충분합니다.”
아까는 별로 안 먹어도 될 것처럼 굴던 박문석 국장은, 막상 수저를 들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했다.
내 요리가 입맛에 꽤 맞는 듯했다.
뒤쪽에 선 경호원에게도 식사를 권해보았으나 그는 딱딱한 얼굴로 거절했다.
안타깝게도 국장이 밥을 먹는 내내 그의 시선은 식탁에 꽂혀있었다.
또한, 몇 번이나 목울대가 요동치도록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도 보였다.
내심 먹고 싶어 하는 게 확실하지만, 지침상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박문석은 별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반찬 종류가 많아서 양이 꽤 많았는데 그릇을 거의 비웠다.
“크흠. 송 팀장이 맛있다고 그렇게 여러 번 얘기했는데, 그럴 만했네요.”
“국장님께서 맛있게 드셔주시니 뿌듯합니다.”
“이거 원, 이야기를 나누려고 온 거였는데 혼자 밥 먹는 데만 열중해버렸네.”
국장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봅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현호 씨를 좀 알아가고 싶어서 말입니다. 허허.”
“이야기야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커피라도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하시죠.”
***
물이 끓는 동안, 박문석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지난주에 계속 연락이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뭐 때문에 바빴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듯 가벼운 말투였지만 수상한 점이 있는지 더 떠보려는 것이었다.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집에서 좀 쉬었습니다. 억지로라도 나와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몸이 따라주질 않더라고요.”
“저런.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죠. 무리하게 일하다가 몸만 축내면 자기 손햅니다. 젊을 때부터 건강에 신경 써야 나이 들어서 후회할 일이 적지요. 나는 그걸 늦게 깨달았지만,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박문석이 소탈하게 웃었고 나 또한 싱긋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전혀 믿지 않는 듯 눈에는 의심의 빛이 가득하다.
쪼르르르륵.
뜨거운 물로 잔 두 개를 채워 커피를 탔다.
잠시 던전 안에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박문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더 낮아진 목소리였다.
“최현호 씨.”
“네, 국장님.”
“혹시 블랙 옥토퍼스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알죠.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 일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심지어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그렇지요. 모른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운이었으니까.”
“관리국에서 잘 해결해주셔서 다들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문석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럼요.”
태연하게 대답하자 눈썹을 까딱거린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박문석은 한 손을 들며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물러나라는 의미인지 경호원이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듣는 귀가 아예 없어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네.”
“지금 저 혼자만 여기 함께 들어온 것도 수칙을 어긴 겁니다. 그런데 저까지 나가라고 하시면….”
“문제 생기더라도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잠시 나가 있게.”
“그래도…….”
“이건 명령이야.”
“…그럼, 10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20분.”
“알겠습니다….”
경호원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그는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사라졌다.
그러나 그 기척은 다시 뒤돌아 움직여 홀 입구 쪽에서 멈췄다.
떠나는 척하면서 은신 상태로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얕은수를 쓰네.’
경호원이 자의로 저러는 건지, 국장과 경호원이 마치 입을 맞춰놓은 건지는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둘 다 연기력이 상당하다.
경호원이 사라진 방향을 보던 박문석이 고개 돌렸다.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최현호 씨. 우리 툭 터놓고 얘기를 해보죠. 정말로 그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까?”
“…….”
“추궁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음….”
“최현호 씨?”
“…있다면요?”
“……!”
덜컹!
박문석이 벌떡 일어서서 나와 거리를 벌리며 소리쳤다.
“빨리!”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닐 거고… 뒤쪽에 숨은 경호원에게 하는 말이겠지.
아까의 대화가 미리 짜인 각본이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박문석의 외침에도 경호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당황한 그의 동공이 지진 난 듯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