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징조
지구의 인간들에게 마족의 존재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게 있다더라, 어떻게 생겼다더라 정도의 이야기는 돌았지만 그리 구체적인 건 아니었다.
지구로 연결되는 던전이 마족의 영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마족의 존재가 알려진 걸 보면, 극히 드물게 마족이 던전으로 지정되는 곳에 우연히 휘말리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마족을 마주친 헌터들은 대부분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고, 몇몇 운 좋은 헌터들만 겨우 살아 돌아왔다.
그들을 통해 미족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에 마족은 미지의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또한 다른 몬스터보다도 더더욱 인간과 유사한 느낌이 있으니, 존재 자체만으로도 더 거부감 들 수밖에 없다.
“하나가 아니에요! 셋, 넷, 다섯…. 마족이 대체 몇 명이야…. 말도 안 돼.”
유희진의 말대로, 마룡의 등 뒤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열 개쯤 더 튀어나왔다.
짐승의 얼굴을 한 마족은 당연히 칼로스였고, 다른 하나는 붉은 머리 마족 타론, 나머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놈들이었다.
특별히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거로 봐서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몇 명 더 끼워 넣은 모양이다.
어쨌든, 붉은 드래곤과 열 명이 넘는 마족들이 검은 날개를 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꽤 그럴듯했다.
지구의 건물들과 몬스터가 함께 보이는 풍경은 아무래도 과거의 대격변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헌터들은 몬스터에 익숙하겠지만, 던전에서 보는 것과 도심 한복판에서 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심지어 예고된 던전 브레이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S급 마룡에 낯선 마족들이 나타났으니 이곳에서 완전히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느릿하게 아래의 풍경을 훑어본 칼로스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하늘을 보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
거칠고 우렁찬 소리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마왕의 기운이 실려있으니 듣는 것만으로도 뒷골이 당길 정도로 오싹할 것이다.
디테일한 지시는 하지 않았는데 꽤 그럴싸하다.
의외로 퍼포먼스에 소질이 있는 건가.
“가, 가만히 있지 말고 저 괴물 좀 어떻게 좀 해봐!”
배윤호가 주저앉은 채로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녔다.
헌터들은 뭐라도 해보려는 듯 무기를 다잡았지만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날개가 있는 몬스터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나마 던전은 야외라고 해도 영역이 지정되기 때문에 너무 높이 날아오르거나 완전히 도망갈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경계조차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행 스킬이 있는 헌터가 그리 많은 건 아니었고, 설령 닿을 수 있다 해도 혼자 뭘 할 수도 없으니….
휘이익!
내가 보일 듯 말듯 손가락을 까딱하자 마룡과 마족들이 급격히 아래쪽으로 하강했다.
“온다…!”
콰앙!
콰콰콰쾅!
가로수가 무너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그러나 사실 마족들은 치명적인 사고가 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하고 있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렇게 냉철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다들 아래로 내려온 가운데, 칼로스만은 허공의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고고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무리의 리더로 보였다.
다 같이 우르르 공격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체계적인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의아해하며 돌아보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유희진이 있었다.
“현호 씨! 피해요! 건물 안도 완전히 안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나을 거예요. 최대한 멀리 떨어진 건물로 숨어요!”
내 전투 능력이 F급 수준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니 이러다 크게 다치거나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자기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나와 박문석, 배윤호, 그리고 다른 비각성자들은 유희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강한 바람이 일었다.
“꺄아아악!”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던 유희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족 하나가 그녀를 사냥하듯 낚아채서 날아오른 것이다.
범인은 붉은 머리 마족 타론이었다.
근처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 모두가 경악했다.
“…이럴 수가….”
박문석은 탄식했다.
유희진의 죽음을 예감한 듯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티 낼 수는 없어서 비통한 척 고개를 숙였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강력한 상대와의 목숨을 건 전투는 엄청난 성장의 기회다.
그리고 타론과 유희진의 힘을 비교하자면, 타론이 몇 단계는 더 우위에 있다.
나는 꽤 멀리까지 날아간 타론이 높은 건물 옥상에 내려앉는 것을 확인했다.
미리 당부해놨으니 적정 수준에서 잘 상대해주겠지.
마룡과 마족들의 난동이 한동안 더 이어졌다.
건물 일부가 부서지고, 나무와 가로등이 쓰러졌지만, 잘 따져보면 별로 실속은 없었다.
몇 분 후, 마룡과 마족들이 다시 하늘 위로 동시에 날아올랐다.
한국 경호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철수하려는 것 같은…!”
“쉿! 무슨 소리가 들려.”
박문석 국장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입막음했다.
일부 정전이 일어나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하늘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
마계의 언어는 영어나 한국어와는 발성이 전혀 달랐다.
거칠고 끓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칼로스의 목소리는 웅웅거릴 정도의 저음이라 더 섬뜩했다.
“방금 저놈이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지 않습니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냥 으르렁거린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라고 한 걸까요?”
“아마도… 경고겠지.”
박문석이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경고….”
“그래. 이대로 끝일 리가 없잖은가. 분명 우리의 전력이나, 이곳의 환경 등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찾아온 걸 거야.”
“국장님은, 이걸 다 예상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럼 아까 앞에서 했던 말도 다 사실이었던 거군요….”
경호원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박문석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렸기를 바랐는데…. 이것 참, 거짓말쟁이 신세는 벗어났지만, 전혀 기쁘지 않군.”
경고라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변을 보니 박문석 국장뿐 아니라 다른 외국 인사들 또한 비슷하게 판단한 것 같고.
사실 방금 칼로스가 한 말은 전혀 위협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나에게 마계의 언어로 이 정도면 된 거냐고 물은 것뿐이었다.
나는 칼로스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살짝 까딱하며 대답해 주었고.
‘돌아갔군.’
칼로스와 마족들이 내 게이트를 통과하는 기운을 확인하고, 게이트를 닫았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 사이의 공간에 게이트를 만들어뒀었다.
수상한 게이트를 미리 발견하면 극적인 효과가 덜할 테니 일부러 숨겨둔 거였다.
마룡 같은 경우는 내 동굴형 던전에 들어오기에는 너무 큰 사이즈라 약간의 요령이 필요했다.
바로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와 마계로 통하는 게이트를 빈틈없이 붙여서 생성한 것이다.
그랬더니, 내 던전을 통하지 않고 바로 마계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귀찮은 일이었지만 마룡 또한 이번 작전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모두가 S급 몬스터로 인식하고 있는 마룡이 있었기에 더 빠르게 사람들이 위험을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
“…….”
이것저것이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 그리고 싸우는 소리가 사라지니 도시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와, 완전히 떠난 게 맞는 건가?”
배윤호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도 악악거리며 소리를 질러대서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질문에 누구도 명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놈들이 갑자기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복구 작업은 몇 시간이나 더 흐른 후에 시작되었다.
***
국제 헌터 회담은 전에 없이 엉망으로 마무리되었다.
개최국인 미국은 각국의 귀빈들을 모은 국제 행사에서 크나큰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헌터 강대국이라는 명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실종자 한 명과 다수의 부상자가 있었다.
다행히도 중태에 빠진 사람은 없고, 대부분이 경상이었으며 가장 크게 다친 사람도 꾸준히 치료만 받으면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각 나라의 주요 인사들도 모두 무사했다.
뛰어난 헌터들이 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돌발적인 사고였던 것치고는 가벼운 피해였다.
온전히 운이 좋았던 것이기에 이 사실이 미국을 향한 비난을 크게 줄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국제 헌터 회담의 일정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이틀이 흘렀다.
배윤호 대통령과 몇몇 한국 관계자들은 원래 일정대로 이미 미국을 떠났다.
그러나 박문석 국장과 나는 아직 미국에 남아있었다.
유일한 실종자 한 명이 한국인 헌터 유희진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수습하며 실종자도 수색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사람이 하늘로 솟아버린 상황이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마크 앤더슨이 나와 박문석 국장을 불렀다.
[……지금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군요.]
말문을 연 앤더슨의 얼굴은 며칠 사이 엄청나게 수척해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건지 다크서클이 짙고 얼굴이 퀭했다.
앤더슨은 불과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눈빛에 오만함이 사라지고 혼란스러움만 보였다.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예. 힘들어요. 어떻게 힘들지 않겠습니까. 온통 확인할 일, 수습해야 할 일투성이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힘든 건 별거 아니에요. 그냥 견디면 되는 거니까. 그것보다는 전 세계의 비난이 미 헌터 관리국 국장인 나에게로 쏟아지고 있는 이 상황을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권력이 큰 만큼 그 책임도 큰 자리다.
기존에도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 정도로 심했던 적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런 일이 익숙한 사람이라도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겠지.
[제가 스스로 사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더군요.]
박문석은 같은 헌터 관리국 국장인 앤더슨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앤더슨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직 물러날 생각은 없습니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내가 씩 미소 지으며 말하자, 박문석 국장이 나에게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냈다.
어떻게 하는 게 옳다, 그르다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라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앤더슨은 불쾌해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때, 연회장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틀 전 나타난 그자들이, 당신이 말했던 그 징조입니까?]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지기로 확인할 수 없는 어딘가에서 나타난 존재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하겠죠.]
[당신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겁니까? 연회장에서 그렇게 무리한 행동을 했던 게 이런 이유였다면….]
[정확히 어떤 일이, 언제 일어날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잠시 머뭇거리던 앤더슨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일은 미안합니다. 당연히 분탕을 치려는 거로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