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식당합니다-116화 (116/125)

116화. 불안

한성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게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저요?”

내가 뒤에서 만들어낸 결과가 맞았으므로 나는 살짝 뜨끔하며 대답했다.

잘못하기는커녕 잘한 일이지만, 설마 숨기고 있던 걸 들켰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성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던전 식당과 계약한 후로부터 한성 길드가 쑥쑥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순간 유희진 헌터 승급에 관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성진 길드장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던전 식당을 알게 되고, 계약한 이후로 정말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운이 좋은 부분도 있지만, 현호 씨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과찬이십니다.”

“아뇨. 오히려 부족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준비만 하는 게 아니라 파티에 참석해서 즐겨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군요.”

“그럼 저도 좋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마냥 웃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 닥칠지 모를 일 때문에 마냥 떨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다간 지쳐서 막상 때가 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한성진이 조금 민망한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아예 다른 곳에서 준비해서 초대할까 생각도 했는데, 워낙 길드원들이 사장님 요리를 좋아해서….”

“기분 좋은 말이네요. 대신 길드원 몇 명을 보조로 좀 써도 되겠죠? 혼자 하기에는 버거울 것 같아서.”

“물론입니다.”

한성진 또한 흔쾌히 대답했다.

***

던전 식당 내부가 왁자지껄 시끄럽다.

“선배님, 혹시 소금 못 보셨어요?”

“여기 있어. 양파는 다 썰었어?”

“네. 한참 전에요. 아, 여기 대파도 드릴게요.”

“그거 끝내고 도마랑 칼 씻고, 그릇도 정리해야 돼.”

“네. 알고 있어요. 어휴, 진짜 정신없네요.”

부엌은 부엌대로 바쁘고, 홀에는 한성 길드원들이 서서히 모여들고 있다.

아마 오늘 사냥 일정이 있는 헌터들과 비상사태를 대비한 대기 인원을 제외한 모든 한성 길드원들이 던전 식당에 모인 듯하다.

“사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묵묵히 바쁘게 움직이던 고영한이 다가와서 말했다.

그의 옆에는 신입 헌터.... 아니, 아니 이제 신입이라기엔 더는 풋풋하지 않은 배현지와 오재영이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바쁠 때면 종종 가게 일손을 돕곤 했다.

주기적으로 일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그런 날들이 하루씩 쌓이다 보니 이제 식당 종업원처럼 능숙하게 일을 도왔다.

“이 인간들이 헌터인지, 종업원인지…….”

“헌터 그만두고 가게라도 차릴 생각인가? 뭐 저렇게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거야.”

길드장 한성진과 S급 헌터 성민혁이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종종 가게 일을 돕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황당해하는 그들의 모습에 고영한과 신입 티를 벗은 헌터들은 조금 민망해했다.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

이렇게 많은 길드원이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사람들은 다들 들떠있었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밝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대화 중간중간에 정적이 생기기도 했고, 웃는 얼굴 속에 흔들리는 눈빛들이 언뜻 보이기도 했다.

‘역시 불안한 거겠지.’

앞으로 다가올 대격변이나 마족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입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희진의 승급이 마족과 관련 있는 것이었음에도 그랬다.

다들 의도적으로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소문만 돌았던 거라면 설마 아닐 거라고 흘려넘길 수 있겠지만, 실제 미국에 마족들이 나타났다는 걸 모르는 헌터는 없을 것이다.

외부 상황이 그러니 다들 마음껏 기뻐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노련한 길드장 한성진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처져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일 거다.

“자, 여러분 오늘은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즐깁시다! 맛있는 식사와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이 순간을 어영부영 흘려보내면 너무 아쉽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웃고 떠들기만 하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달려봅시다. 그리고 1년 후에 제가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때는 재밌는 게임도 하고 상품도 크게 걸겠습니다.”

느긋하면서도 단정적인 말투는 묘하게 믿음직스러웠다.

“네!”

“좋습니다!”

호응하는 길드원들 사이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상품은 길드장님 사비로 사시는 겁니까?”

S급 헌터 성민혁이 짓궂게 웃고 있었다.

“뭐, 여러분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원해요!”

“길드장님, 기대하겠습니다!”

상품을 원한다기보다 길드장을 털어먹을 기회가 온다는 것에 더 크게 반응하는 듯했다.

한성진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길드원들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풀어졌다.

대신 사람들의 눈빛에 결의가 차올랐다.

짧은 순간 사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원하는 미래가 올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바뀐 것이다.

단순히 내년에 있을 행사나 상품이 탐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길드장이 던져준 1년 후의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화두가 각자가 원하는 긍정적인 미래를 무의식중에라도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이 자리의 주인공인 유희진은 신이 나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밝았다.

나 또한 오늘만큼은 긴장을 좀 풀고 편히 보내려고 노력했다.

***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은 휴일이었다.

베로와 구름이는 옆에서 배를 까고 쿨쿨 잠들어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며칠간은 마족에 대한 속보와 앞으로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매스컴이 떠들썩했다.

사람들 또한 모일 때마다 마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입에 올렸다.

일부 일반인들은 비상식량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으로 마트에서 온갖 생필품을 사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나자 사회적 혼란도 조금 잠잠해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힘을 발휘한 것도 있었고, 직접 와닿는 일이 없으니 사람들 또한 막연한 불안감에 점차 무감각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머지않았어. 이제 곧….’

차원 전체의 기류가 바뀌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을 위한 준비단계로 마계의 틈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헌터 관리국에 비밀리에 이 사실을 전했다.

물론 파괴자들이나 외부 차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마계의 마족들이 제2의 대격변을 일으키려는 거로 알고 있으니까.

괜히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해봤자 이해시킬 수도 없고 오히려 싸울 의욕만 잃을 것이다.

살짝 포장해서 그럴싸하게 하는 말을 헌터 관리국에서는 전혀 의심 없이 신뢰하며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로 나는 완전히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한국 헌터 관리국에서 알게 된 이 정보는 곧장 전 세계 헌터 기관으로 전달된다.

‘준비는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이미 친분이 있는 헌터 관리국 송혜연을 통해 정부와 헌터 관리국 측의 상황을 편하고 빠르게 들을 수 있다.

무감각해져 가는 일반인들과 달리 헌터들과 국가기관들은 긴밀히 협조하며 제대로 된 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제 송혜연으로부터 들은 믿을 만한 정보였다.

어차피 몬스터와 싸울 수 있도록 훈련된 특수부대를 제외한 비각성자인들은 몬스터와의 전투에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잘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뒹굴.

거실에 편안한 자세로 배를 까고 누운 베로가 옆으로 굴렀다.

그 옆에서 구름이가 베로를 흉내 내듯 똑같은 방향, 똑같은 자세로 굴렀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하루였다.

한동안 게스트룸에 머물렀던 리넬은 내가 미국에 다녀오는 사이에 떠나버렸다.

마족이 등장하기 전, 지수가 풀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었다.

리넬이 계속 방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갑자기 말없이 꾸벅 고개를 숙이던 것이 작별 인사였던 것 같다고 했다.

깊은 관계는 아닐지라도 이것저것 해주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훌쩍 떠나버린 게 많이 서운한 것 같았다.

‘멀리 가진 않았겠지.’

파괴자들을 두려워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

직접 복수하지도 못하고, 내가 이길 거라는 확신도 없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파괴자들이 파멸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

“웡…!”

베로가 내 얼굴을 보며 짖었다.

다른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주의를 끌려는 것이었다.

“알겠어. 이리와, 베로.”

내 손짓에 베로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왔다.

구름이도 베로를 따라 내 손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때였다.

머나먼 곳에서 느껴지는 감각.

오랫동안 던져둔 섬세한 결계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드디어.’

크리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몇 mm 정도의 미약한 움직임이었으나 지금까지 꼼짝도 안 하던 놈이었기에 이 정도면 엄청난 것이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죽어있던 마력 또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참 희한한 생물이었다.

천만다행히도 파괴자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이놈의 마력을 모두 흡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강렬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것 또한 마계에서 느껴지는 것이었으나, 조금 전 크리판의 움직임에 의한 감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설마….’

불쾌한 예감.

그리고 초월자가 된 후의 예감은 대체로 다 맞는 편이었다.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파괴자들의 침입 또한 시작된 것이다.

생각할 것도 없이 헌터 관리국 국장 박문석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몇 번 울리기도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지금입니다.”

안부 인사도, 그 어떤 서론도 없이 다짜고짜 내뱉은 말에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른 목소리와 상황으로 지금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지, 지금…. 화, 확실한 겁니까?]

“믿고 싶지 않겠지만 확실해요.”

[…결국 진짜로 일어나게 되는 거군요. 두 번째 대격변이….]

“이렇게 전화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국장님이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수화기 너머로도 그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붙잡고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듯했던 그는 곧 정신을 차린 듯 또렷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해야 할 일…. 우선 이 사실을 국제 헌터계에 빠르게 알려야겠군요. 아, 잠깐만요.]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는지 국장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다급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시스템상에 이상 파동이 감지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물론 던전이 생기는 곳이 이상 파동이 생기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 송혜연 팀장이 보기엔 뭔가 이상한 모양입니다.]

“아마 관계있을 거예요. 송혜연 씨가 이상하다고 하는 부분은 주시하고 헌터들을 대기시켜 놓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야겠군요.]

수화기 너머로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거지만 많이 긴장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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