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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식당합니다-124화 (124/125)

124화. 설마

이제 칼로스도 내 뜻을 척척 알아차린다.

“그래. 너는 마군을 이끌어 여기 나머진 바눔들을 처리해라. 그리고 게이트를 통해 지구와 대륙으로 넘어가려는 마물들을 막는 것도 네가 할 일이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미 넘어간 것들은….”

“당연히 내가 가야지.”

“네, 알겠습니다!”

칼로스가 늠름하게 어깨를 펴며 대답했다.

“이놈들은 점차 약해질 거다. 자신들을 만든 근원이 모두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날뛸 거야. 알아서 잘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점차 시력이 돌아오는지 바눔의 시선이 대화 중인 우리를 향한다.

허우적거리던 다른 마족들 또한 비슷한 속도로 시력이 돌아오는 것 같다.

칼로스가 특별한 경우였겠지.

나는 칼로스의 어깨를 툭툭 치고 뒤돌았다.

게이트를 만들고 넘어가려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칼로스가 검을 치켜들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거였다.

마족들은 빠릿빠릿하게 대열을 재정비하고 우렁차게 소리치며 내달렸다.

이제 이곳은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솔직히 여기보다는 지구의 상황이 걱정되었다.

지구는 나의 고향이자, 가족과 추억이 있는 곳.

마계와 아스키나 대륙이 무사하다고 해도, 지구가 초토화되어버린다면 지금껏 해온 일이 나에게는 그리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크리판을 잡고 파괴자들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처리했지만 그런데도 시일이 꽤 많이 지나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2~3주 이상은 흐른 것 같은데.

혹여나 넘어가서 볼 지구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을까 봐 내심 걱정됐다.

파괴자들이 넘어오며 만들어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고, 그로 인한 균열 또한 생각 이상이었다.

예상했던 상황이고 헌터관리국을 비롯한 전 세계 헌터계에 경고한 그대로였지만, 그 강도가 훨씬 강했던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인데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최초의 순간에 한 번에 넘어왔을 엄청난 양의 마물들을 막아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길 바라지만….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게이트로 몸을 밀어 넣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하늘.

허공에 몸을 띄운 나는 찬찬히 아래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

휘릭!

황진성의 손동작에 맞추어 길게 늘어난 식물 줄기가 마물의 목을 졸랐다.

빠져나가려 이리저리 몸을 뒤틀던 검은 마물은 어느 순간 견디지 못하고 펑 터져버렸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파편이 후드득 땅에 떨어졌다.

“잘했어!”

유희진이 황진성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황진성은 뿌듯함에 광대가 한껏 치솟았다.

“뭐, 별것도 아니었는데요.”

“아냐.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어리바리하던 막내가 엄청나게 성장하여 활약하는 모습에 유희진은 속으로 흐뭇해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몇 주 전 제2의 대격변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로 인해 전 세계가 완전히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설마설마하던 시민들은 길 한가운데 등장한 마물과 몬스터에 기겁하며 달아났다.

도시건 시골이건 관계없이 모든 장소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도 정부와 헌터관리국에서는 미리 대비해뒀던 헌터 부대와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특수부대를 곧바로 투입했다.

길드의 헌터들도,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헌터들도 모두 나섰다.

시민들은 자신의 집이나 피난처에 대피했다.

황진성은 대격변이 발생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형 황진규를 도와 대광 정육점에서 한창 고기를 썰던 중이었다.

하필이면 정육점 안에 생긴 게이트로 마물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마물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황진규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기까지 했다.

황진성은 침착하게 놈들을 처리하고 그를 가까운 피난처로 피신시켰다.

며칠 전부터 방송과 기사를 통해 대격변이 또다시 일어날 경우의 행동 방침을 반복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확신이 있었고, 그 시기까지 어느 정도 예측한 듯했다.

한편 처음 보는 동생의 늠름한 모습에 황진규는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었다.

한성 길드에서 제 몫을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몬스터를 멋지게 처치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그런 형의 표정에 드디어 진짜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황진성도 묘한 기분이었다.

“위험해!”

고영한이 황진성에게 달려들어 자리에서 밀쳐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마물이 달려들었고, 고영한이 그놈을 패대기쳤다.

“딴생각하지 말고!”

“죄, 죄송합니다!”

선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한눈팔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태는 조금씩 악화하고 있었다.

점점 마물들이 등장하는 주기가 짧아지며 그 양도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골목길에 생긴 작은 게이트로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마물들을 보며 유희진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거지?’

과거, 최초의 대격변이 일어났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족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훨씬 더 싸울 만했다.

간간이 나타나는 지나치게 센 놈들을 제외하고는 던전에서 만나던 놈들과 비슷했다.

게다가 유희진은 얼마 전 S급에 도달하였으니 더더욱 큰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 마물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마구 생겨난 게이트를 막을 기술 같은 건 없었다.

자연히 닫히기를 기다리며 버텨야 하는데, 이대로는 언젠가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초반에, 게이트가 어디에 생긴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마물들에 몇몇 길드원이 희생당했다.

지금은 게이트의 위치를 어느 정도 확인했고, 그에 맞게 인원 분배를 해서 꽤 안정적으로 자신들이 맡은 구역은 그럭저럭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구역도 분명 있었다.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구역의 군부대와도 틈틈이 서로 현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는데, 점점 지원요청이 많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가까운 구역으로 길드원 몇 명을 보내서 더는 이곳의 인원도 줄일 수가 없었다.

‘힐러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시간이 갈수록 부상자와 희생자가 늘고 있었고, 이러다간 한순간에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길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또 게이트가 생긴 것 같습니다!”

나쁜 소식이었다.

상황이 계속 버거워지고 있다.

“알겠어. 지금 갈게.”

“빠, 빨리 오세요. 아니, 도와주세요! 아악!”

심상치 않은 외침에 유희진이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 나갔다.

“너희는 계속 여기를 맡고 있어!”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옆 골목으로 넘어간 유희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껏 나온 마물의 10배 이상은 더 큰 놈이 우물우물 헌터의 상체를 입에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타앗!

단숨에 땅을 딛고 마물에게 달려들었으나 유희진은 놈이 휘두르는 팔에 정통으로 맞고 땅으로 떨어졌다.

공중회전으로 아슬아슬하게 땅에 처박히지 않고 발을 땅에 내디딘 유희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S급으로 승급 후 한 번도 적의 공격에 맞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놈은….

‘다른 놈들과는 수준이 달라.’

반응 속도는 물론이고 가볍게 움직인 것뿐인데 온몸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마력을 외부로 끌어내 몸을 보호하지 않았으면 뼈가 여러 군데 부러졌을 것이다.

다른 마물들보다 유별나게 강한 것들이 종종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그 유별나게 강한 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S급인 자신이 당해내지 못할 정도면….

현실적으로 대책이 없었다.

그녀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판단을 내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가 온다 한들 이놈을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집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긴 팔과 긴 다리를 가진 마물이 입에 욱여넣은 헌터를 다시 한번 덥석 고쳐 물자 헌터가 다리를 버둥거렸다.

‘아직 살아있어!’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유희진은 마물의 입속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가려는 남자의 다리를 붙잡았다.

피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날카로운 이빨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테니 시간을 지체했다간 질식하고 말 것이다.

“조금만 버텨…! 금방 빼내 줄게!”

말을 하며 온 힘을 다해 다리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마물의 아귀힘이 어찌나 강한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목구멍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상체가 먹힌 남자의 발버둥 치는 힘이 점점 더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걸 놓고 다시 저 괴물을 공격해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먹히지 않도록 버텨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어려웠다.

두 가지 다 소용없는 행동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물을 맞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놈이 얼마나 강한지 느껴졌다.

‘너무 강해….’

유희진을 뛰어넘는, 그리고 그녀가 아는 다른 S급 헌터들 또한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촤아악!

앞쪽에서 사람을 당기던 강력한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 힘을 다해 당기고 있던 끈이 끊어진 듯한 상황에 유희진과 먹히고 있던 헌터의 몸이 뒤쪽으로 한참 나뒹굴며 굴러갔다.

“으윽….”

“콜록! 콜록!”

“괜찮아?!”

“괜… 쿨럭! 우욱…!”

거의 잡아먹힐 뻔했던 남자가 기침을 하며 위액까지 토해냈다.

바닥에는 이미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끈적한 액체가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그를 입에 물고 있던 마물의 것이었다.

“어떻게 된…. 콜록!”

“…죽은 것 같아. 말하지 말고 이것부터 먹어. 몸이 정상은 아닐 테니까.”

유희진이 허리춤에서 포션을 꺼내 건네주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온통 끈적한 액체를 뒤집어쓴 남자, 오재영이 숨을 몰아쉬며 포션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어떻게 된 거죠? 선배님 혼자 죽인 건가요?”

“…아니.”

유희진은 조용히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시선이 마물을 향했다.

놈은 상하체가 완전히 분리되어 땅에 쓰러져있었다.

아직 죽지 않고 꿈틀대고 있었지만 점점 움직임이 약해졌다.

칼에 잘린 듯한 깔끔한 절단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까 짧은 순간 검날이 번쩍이는 듯한 모습을 봤던 것 같다.

스스로 자폭한 게 아닌, 이놈의 외부에서 어떠한 힘이 가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S급이 되며 고도로 발달한 동체 시력으로 목격한 것이었음에도 그게 뭐였는지 확실치는 않았다.

‘대체 뭐였지?’

워낙 기이한 상황이었기에 유희진은 조금 전의 순간을 다시 떠올려 곱씹어 보았다.

무언가 번쩍거렸던 찰나의 순간.

뭐가 보였더라…?

“…어?”

“왜 그러십니까? 뭔가 알아내셨어요?”

“아…. 설마…?”

“뭡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아니야. 잠깐 착각했던 것 같아.”

유희진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돼.’

순간적으로 현호 씨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뜬금없는 생각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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