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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식당합니다-125화 (완) (125/125)

125화. 일상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됐을까?’

두 번째 대격변이 발생한 후로 던전 식당 사장 최현호를 만나지 못했다.

연락이 닿진 않았지만, 자신의 던전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니 그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길드 활동을 할 때처럼 던전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지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그렇게 활용하기 어려운 듯했다.

‘잘 피해 있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전투 능력은 F급이지만 다른 면은 비범한 사람이니.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다른 방면으로 활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봤을 때 밝히지 않은 몇 가지 능력이 더 있는 것도 같고….

그렇다 쳐도 방금의 이상한 일을 그가 한 거로 생각하는 건 너무 과한 발상이었다.

조금 전 마물의 죽음은 헌터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식을 벗어난 일의 하나로 봐야겠지.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니까.

‘……어?’

문득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숨기고 있는 힘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가 가진 던전에 관한 힘의 범위를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장시켜 본다면….

지금껏 있었던 기묘한 일에 관한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던전 식당이 등장한 것과 이상한 일들이 특히 많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한 것도 같다.

생각의 조각이 퍼즐처럼 짜 맞춰지려는 도중에 오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또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엔 벌레처럼 생긴 놈들이 여러 마린데요?”

순간 집중력 흐트러지며 하나의 결론을 향해가던 생각이 뿌옇게 흐려졌다.

유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그 사건들과 연결하려면, 한 사람의 인간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수준의 능력을 갖췄다는 말이 될 테니까.

유희진은 생각을 떨쳐내고 고개를 까딱이며 몸을 풀었다.

“몸은 어때? 이제 싸울 수 있지?”

“네. 당연히.”

그들은 또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마물들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이후, 세계 여러 전장에서 이들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반토막이 나서 죽어버리는 일.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나왔고, 짧은 시일 동안 마물들에게 거의 점령당했던 약소국들의 전세도 역전되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제2의 대격변으로 인해 생겨났던 무수히 많은 게이트가 하나둘 모습을 감추었다.

약 1년이 지나서 제2의 대격변이 종료되었다는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사람들은 다시 예전의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

정말 오랜만에 던전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한성 길드 사람들을 비롯해 내가 초월자가 되기 전부터 알았던 박 씨 아저씨와 이정연 씨, 대광 정육점의 황진규, 그리고 헌터관리국의 지인들….

조금 있으면 국장 박문석까지 이 자리에 올 것이다.

엄청나게 바쁠 텐데도 시간을 쪼개어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오늘이 던전 식당 재개업일이기 때문이었다.

제2의 대격변과 함께 생겨났던, 마물과 몬스터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수많은 게이트는 모두 닫혔다.

거의 1년이 걸렸으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오래 걸렸다.

이 부분은 내가 힘을 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일시적인 충격으로 벌어진 차원의 틈이 저절로 아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대륙과 지구를 넘나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칼로스 또한 마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었고.

희생된 사람도 상당수 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터졌던 대격변의 규모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피해로 마무리되었다.

제2의 대격변은 3일 전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게 모든 던전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제2의 대격변과 함께 생겨난 게이트가 사라졌을 뿐, 그 이전, 마계와 연결된 던전 게이트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생겨나고 사라지기도 했다.

아마 이것들 또한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미 고착되었기에 꽤 오랜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던전과 헌터 사업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산업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재개업 축하드립니다.”

한성 길드장 한성진이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악수했다.

“감사합니다. 또 같이 일하게 되었군요.”

“네. 저희 길드를 선택해주신 것,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한성진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개업 며칠 전, 한성 길드와의 재계약을 끝냈다.

이전처럼 휴게소를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계약이었다.

수많은 길드에서 앞다투어 나에게 접근했었다.

엄청난 조건을 들이밀며 다음 계약을 제안하는 곳도 여럿이었고, 그중에는 해외의 유명 길드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또다시 한성 길드를 선택했으니 길드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금전적인 조건으로 따지면 한성 길드도 아주 좋았지만 백지수표를 내민 길드도 있으니 내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이 초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질 만큼 가졌으니 돈이 1순위는 아니었다.

지난 계약 기간 동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리고 1년이 꽤 피로했기 때문에 익숙하고 좋은 사람들을 선택한 거였다.

한성진은 앞으로 뭘 더 개선하고, 뭘 더 해주겠다는 등의 말을 이었다.

벌써부터 나를 다음 계약에도 붙잡아두고 싶다는 티를 팍팍 낸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핑계를 대며 그에게서 잠시 벗어났다.

왁자지껄한 던전, 맛있는 음식과, 그걸 맛있게 먹는 사람들.

그걸 지켜보며 웃을 수 있는 일상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생각에 이제서야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

***

정다은은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을 입었다.

[다은아, 왜 벌써 일어났어? 잠은 제대로 잔 거야?]

“아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잠이 안 왔어. 너무 설레!”

정다은은 갑자기 옆에 나타난 엘시스에게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오늘은 중학교 입학식이었고, 입학하게 될 곳은 각성과 관계없는 일반 중학교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일반 중학교에 다니며 방과 후에만 각성자 학교에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졌고, 정다은은 망설임 없이 일반 중학교를 선택했다.

각성자 학교의 학생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정적이라 몇 년 내내 매일 보는 얼굴만 보며 살아왔다.

이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으니 정다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참 동안 시계만 보던 정다은이 마침내 벌떡 일어나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학교로 향했다.

주변에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학생 몇몇이 부모와 함께 다니는 것이 보였으나 크게 부럽진 않았다.

엘시스가 항상 곁에 있으니까.

자꾸 잠을 못 자서 어떡하냐고 잔소리하는 건 좀 듣기 싫지만….

정다은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물방울의 모양으로 귓가에서 쫑알거리는 엘시스의 잔소리를 흘려들으며 버스를 타고 가다 목적지에 내려 몇 분간 걸음을 옮겼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눌러쓴 모자에 신경 쓰면서.

그리고, 앞으로 3년간 다니게 될 학교 건물을 발견했다.

정다은은 도착하여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짧은 인생의 새로운 서막이 열리는 것이다.

“왔다!”

“저쪽에! 정다은!”

“아, 좀 비켜보세요!”

누군가의 외침을 기점으로 앞다투어 정다은을 향해 인파가 몰려왔다.

정다은은 당황하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귀찮지만 익숙한 일.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고, 몇 가지 질문에는 무난한 대답을 해주었다.

수년 전, 제2의 대격변에서 보인 활약으로 정다은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각성자 학교의 뛰어난 학생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갖춘 어린 천재 헌터.

당시 놀라운 활약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그때의 유명세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입학식이 끝났다.

아직 많은 얘기를 해보진 못했지만, 친해지고 싶은 아이도 있었고.

여전히 들뜬 마음으로 간 곳은 집이 아닌 게이트였다.

자연스럽게 두 개의 게이트를 거치자 천장에 발광석이 박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던전이 드러났다.

정다은은 던전 복도를 마치 제집처럼 자연스럽게 걸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불쑥 식당 홀에 들어가며 정다은이 신나게 소리쳤다.

“아저씨 없는데?”

기대했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에이….”

“에이? 얘 봐라? 대놓고 차별을 하네. 나한테도 좀 반갑게 인사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예… 뭐, 반갑네요.”

“참나…. 됐다. 엎드려 절받기지. 네가 찾는 아저씨 냉동고에 갔으니까 곧 올 거야.”

황진성이 어이없어하며 자리를 떴다.

정다은은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냥 보기에도 손님이 꽤 많고, 황진성이 일을 돕는 걸 보니 오늘 꽤 바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몇 아는 얼굴과 반갑게 인사하고, 정다은은 주방 옆자리에 앉아 아저씨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제는 해외에 생기는 던전과도 종종 연결되어 외국인 손님도 몇몇 보였다.

‘음? 저 사람도 외국인인가?’

혼자 앉아있는 이국적인 얼굴의 여자.

한국인이냐, 외국인이냐 물으면 당연히 외국인이라고 대답할 만한 외모이긴 한데….

이상한 이질감이 느껴져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다은의 생각을 용케 알아차린 엘시스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 사람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지구도 아니고 내가 살던 세계도 아니고… 아주 머나먼 곳에서 온 것 같은데…. 나도 더는 모르겠네.]

“우와….”

정다은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곳에 가끔 묘한 존재들이 오간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말을 걸어봐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뒤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저씨!”

단숨에 누구인지 알아챈 정다은이 벌떡 일어서며 그를 보았다.

세월의 흐름이 비껴가는 듯한, 아직도 수년 전 모습 그대로인 잘생긴 남자.

그는 싱긋 웃으며 반가움을 표하고 손으로는 계속 주방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언제 왔어? 입학식은 잘했고?”

“네! 너무 재밌었어요. 몇 명 얘기도 했는데 좋은 애들인 것 같았어요!”

“그거 잘됐네.”

“그리고 선생님은….”

재잘거리며 오늘의 설렘을 전하는 그녀의 앞에 빨간 그릇이 하나 놓였다.

붉고 진한 양념 속에 윤기가 흐르는 떡과 어묵.

입맛을 다신 정다은이 크게 외치며

“잘 먹겠습니다!”

익숙하지만 먹을 때마다 맛있는 떡볶이였다.

양이 꽤 많았는데도 한창 성장기인 정다은은 눈 깜짝할 새 그릇을 비워버렸다.

‘조금 더 먹고 싶다고 할까? 아니야.’

더 달라고 하면 흔쾌히 더 주겠지만, 당장은 다른 할 일이 있었다.

“아저씨, 저….”

“들어가고 싶다고? 알았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그녀가 원하는 바를 눈치챈 현호가 주방 뒤쪽의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정다은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두리번거렸다.

얼마 전 이곳에서 마주쳤던 동물의 얼굴을 한 털북숭이 덩치를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급하게 도망가는 걸 보니 많이 놀란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 없는 것 같다.

정다은은 던전 안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웡! 웡!”

그녀의 등장을 알아챈 베로가 빠르게 달려와 점프했다.

뒤따라온 얼음 여우가 볼을 핥았다.

물가에서 그릇을 씻던 슬라임들도 삑삑거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얘들아, 간식 가져왔다.”

“삐이이이!”

“삐이잇!”

어느새 뒤따라온 최현호가 베로와 구름이를 위한 고기와 슬라임을 위한 과일 디저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음식에 정신이 팔린 몬스터들이 그릇으로 달려갔다.

신난 듯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밥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까르르 웃었다.

문득 든 생각에 정다은이 입을 열었다.

“여긴 한결같이 편안한 곳인 것 같아요.”

“갑자기?”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거 듣기 좋은 소리네.”

최현호는 정다은의 말을 곱씹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던전에서 식당합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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