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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천하, 조선만세-22화 (22/163)

〈 22화 〉 흔들리는 천명(天命)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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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 북경을 놔두고 청주(淸主)의 뒤를 추격하라는 말인가? ”

나대강이 보낸 전령은 이로군 원수 홍방에게 부복한 채로 북쪽으로 도주하고 있는 청조정(淸朝庭)을 추적해달라는 나대강의 요청을 전했다.

“ 예, 일로군 유격 나대강 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

“ 알았다. 나대강 유격에게는 내가 알겠다했노라고 전하도록 해라. 그만 나가봐라. ”

일로군에서 보낸 전령은 홍방에게 목례를 올리고는 군막을 나갔다.

전령이 나가는 모습을 슬쩍 본 부장은 그대로 홍방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 그러면 얼른 병사들에게 진격을 준비 시키겠습니다. ”

“ 아니다. 일단 예정대로 북경성에 진입한다. ”

부장을 향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홍방이 말했다. 그의 오른 손에는 담뱃대가 쥐어져 있었다. 부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연초를 담뱃대에 채워주면서 반문했다.

“ 예? 하지만? ”

“ 위순준이 황제폐하를 구출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그의 위세가 더욱 커지겠지. 그에 맞먹는 전공이라면 청주를 사로잡는 것 외엔 없을 거야. 하지만 그의 수족인 일로군과 함께라면 격이 떨어지지. ”

홍방은 말을 하다말고 무얼 생각하는지 잠시 자신이 하던 말을 멈추고는 부관이 담뱃대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을 깜빡이며 입을 다문 홍방의 모습에 담뱃대에 불을 붙이려던 부관도 멋칫하며 홍방의 눈치를 보았다.

홍방은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다시 말을 하였다.

“ 하지만 북경을 함락시켰다는 영예를 취하면 그에 버금가는 전공이 될 거야. 삼로군이야 투항자 입장이고, 입지가 불안하니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기가 부담스러울 것이야. 아마도 나대강이가 요청한대로 청주를 쫓아서 북으로 진군하겠지······. ”

적어도 지금 신명(新明)군에서 황제와 토만사를 제외하면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위계인 홍방이다. 그런 자신이 아무리 토만사의 관인을 받아 그를 대리한다고는 하지만 고작 유격인 나대강 따위의 말을 따라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청주를 사로잡는 것이 가장 큰 공이 되겠지만, 그 공을 홀로 독식하지 못하고, 투항자로 신명정권에서 기반이 약한 삼로군 원수 여보순이나 일로군, 그것도 유격 따위와 셋으로 나눈다면 빛이 바랠 뿐이다.

자신을 더 큰 자리로, 더 존귀한 자리로 올려줄 빛나는 전공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직 전통적인 도읍이었으며, 원조 이래로 황제의 도시였던 북경성 함락일 것이다. 그게 적들이 비워놓고 간 껍데기일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북경성 함락의 전공은 자신을 홀로 우뚝 서게 해줄 것이다.

“ 그랬다가 일로군 단독으로 청주를 사로잡기라도 한다면······? ”

“ 팔기가 아무리 오합지졸이 되었다곤 쳐도, 일로군 단독으로 ? 어림없는 소리지. 일로군이 우리 군에서는 나름대로 정예라곤 하지만, 팔기에 견준다면? 그것도 황제를 보위하는 금려팔기라면? 글쎄······? ”

홍방은 담뱃대에 연초 잎을 가득 채워 넣어 다진 부관이 불을 붙여주자 그것을 입에 갖다 대고는 쭈욱 빨았다. 그러자 연초에 제대로 불이 붙으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빨아 당긴 연초를 그대로 삼킨 홍방은 곧이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입을 벌려 연기를 허공에 뱉어냈다. 그러고는 연초를 빨아 당기느라 끊겼던 말을 이어서 계속 했다.

“ 삼로군이 끼어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경성 함락을 목표로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온 군사들이다. 북경성을 목전에 두고, 북경성을 건너뛰고 북으로 진군하라 그러면 병사들의 사기가 온전하겠는가? 지금도 쉴 새 없이 행군한 탓에 지쳐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 일로군과 삼로군이 제살 깎아 먹으며 청군과 싸우라 하자. ”

여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연초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는 행위를 반복한 후 자신의 말을 계속 했다.

“ 우린 일로군과 팔기가 서로 상잔하여 지쳤을 때 뒤따라가서 지친 팔기의 목덜미를 잡아채면 그뿐이야. 그러면 북경함락의 공과 청의 마지막 목줄을 딴 공 모두 내 손에 쥐게 될 것이야. 그러니. 일단 병사들을 쉬게 한 후 예정대로 북경성에 진입한다. 어차피 지친 병사들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니······. ”

여기까지 말하곤 연초 연기를 들이마신 후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부장의 얼굴을 향해 연초 연기를 뱉어냈다. 갑작스레 연초 연기를 얼굴에 맞은 부장이 콜록 거리는 틈을 타, 홍방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그리고 그 때가 되면 황제 따윈 필요 없게 되겠지. 천하를 내손에 쥐게 될 수도 있겠지. 하하하하. ”

자신의 상관이자 반청운동을 할 때부터의 동지였던 홍방이 웃어 재키자, 연기를 마시고 콜록거리느라 홍방의 마지막 말을 못 들었던 부장은 영문도 모른 채 홍방의 웃음을 따라 웃었다.

••••••••••••••••••••••••••••••

“으음 ······. ”

삼로군 원수 여보순 또한 일로군 원수 서리(署理)임무를 수행중인 유격 나대강의 전령이 전한 말을 듣고는 앉아서 고심하고 있었다.

“ 병사들이 많이 지쳤는데, 이대로 일로군을 좇아 진격하시겠습니까? ”

영길리의 난동에 온건한 대처를 했다가 북경의 청조정으로부터 탄핵을 받게 되자 신명에 투항한 여보순이었다. 그가 신명에 투항할 때 그를 따라 같이 투항한 부장이 고심하고 있는 여보순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우회적으로 상신했다. 그가 보기에는 병사들이 너무 지쳐서 다시 행군을 하기 전에 휴식을 취해야할 것으로 보였다.

부장의 의견을 들은 여보순은 변발한 머리가 자라나 거뭇거뭇해진 자신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며칠간 진군하느라 밀지 않았더니 제법 까슬까슬했다. 탈모라면 이대로 변발을 유지할 텐데. 어차피 청조도 곧 멸망할 테니, 이대로 머리를 길러볼까? 그런데 명조 대까지는 중원인도 했다는 머리를 틀어 올리는 방법을 아는 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라도 변발을 유지해야 하려나? 토만사 위순준처럼 짧게 자른 더벅머리는 보기 흉해서 하기가 싫은데 말이다.

“ 우리 로군의 병사의 절반은 원래 녹영출신이지. 나머지는 다들 아다시피 농사짓던 자들을 끌어 모은 잡졸들이고. ”

어느새 머리에서 손을 뗀 여보순은 부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예, 그렇습니다. ”

“ 다들 북경성만 함락시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인데 ······. ”

“ 하지만 청주의 목을 취하지 않으면 ? ”

부장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이어지지 않아도 알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자신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북경을 향한 강행군으로 병사들은 너무 지쳤다. 그나마 녹영출신으로 어설프게나마 훈련이 된 자들은 덜하겠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을 끌어다 숫자만 채운 나머지들은 지금 더 몰아쳐 봤자 병졸 노릇은 제대로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처럼 청조에서 관직을 살다가 투항한 사람들은 혹시라도 청조의 마지막 숨통을 끊지 못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 다시 청조에 투항한들 받아들일 리 없다. 하지만 여기서 진군하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투항자출신으로 선봉 삼로군원수가 된 자신을 질시하는 자들이 어떻게든 그것을 트집 잡아 자신을 끌어내릴 것이다.

자신만 벼슬자리에서 쫓겨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이 데려온 장수들과 관리들은? 모두 끈 떨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내쳐지다가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겠지. 그나마 조용히 낙향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자칫 역사에서 보이듯 줄을 잘못선 탓에 역모사건에라도 휘말리면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건 여보순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아주 먼 옛적의 일이고, 지금에 와서야 어리석은 자의 대표로 꼽히지만 항우가 투항한 진나라 항병 70만을 그대로 땅에 묻어버린 일도 있지 않은가? 자신이 데려온 장수와 녹영병들이 그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 그게 문제야. 나와 내 병사들은 대명조정이 세워진 후에 투항한 자들이지. 너무 두드러지는 전공을 세우면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다들 솥에 들어가 개장국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그리고 ······. ”

공을 너무 세워도 자신을 견제하는 눈길만 많아지고, 그 공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신명(新明)을 세우는 데 참가한 무수히 많은 강남의 유력자들이 저마다 한자리 받아서 한몫 챙기려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공을 못 세워서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이 찍혀도 곤란하다. 여보순은 여기까지 생각하곤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그려뜨렸다. 고약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말이다.

“ 그리고? ”

“ 북경성을 목표로 구슬려 여기까지 오게 된 병졸들에게 북경성 구경도 안 시키고 진격하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녹영출신의 병졸이나 농군출신의 잡졸이나 다 마찬가지지. ”

대공은 일로군이나 이로군에게 넘겨주자. 일단 자신을 믿고 따라온 병졸들에게 북경성 구경을 시켜주고, 휴식을 취하게 한 후 진격하면 적당한 군공은 세우고, 다른 자들의 견제는 덜 받을 것이다.

“ 아 ······. ”

“ 일단 예정대로 북경성에 진입한다. 군율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병사들의 일탈을 적당히 눈감아 주게나. 어차피 군율을 내세웠다간 성난 병졸들에게 군관들이 무슨 꼴을 당할지도 모르니 말일세. 군율을 엄정히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삼로군이 너무 정예해 보이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눈엣가시로 여기게 될 수도 있어. ”

여기까지 말한 여보순은 여태껏 보이던 진지한 모습을 풀고는 부장을 향해서 눈을 찡긋 거리며 웃어보였다. 결심이 서고, 고민을 털어내서 그런가?

“ 적당히 물욕(物慾)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게. 그게 우리 모두의 안위에 더 도움이 될 거야. 적어도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는 말이지. 내 말을 알아듣겠나? ”

“ 예,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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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어리석은 자들이!! ”

이로군과 삼로군이 일로군을 따라 진격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하고만 있다는 전갈을 받은 나대강은 진격중인 말위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 어쩌시겠습니까? ”

원래 위순준이 아편장사를 할 때부터 곁에 뒀다던 부장이 물었다. 나대강과는 그 후에 만났지만, 나대강의 능력을 높이 산 위순준이 정해준 위계와 나대강 자신의 능력으로 항상 나대강을 공손히 대하는 자다.

“ 황상폐하와 토만사 대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이 때, 두 분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군이 유지가 될 것 같은가? 이대로 진격이다. 어차피 금려팔기가 강대하다해도 기세가 꺽인 지금 적들이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들이닥치는 것이 승산이 더 높다. 우린 그대로 직격한다. 다시 전령을 이로군과 삼로군에 보내 진격을 재촉해라. ”

최악의 상황이 오면 그들의 제국, 대명은 그대로 붕괴된다. 입에도 올리기 싫은 가정이지만,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저 가증스러운 청나라의 만주족 황제는 사로잡아야 한다.

나대강은 이렇게 생각하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생각했다. 여기서 이로군과 삼로군을 따라 자신도 진격을 멈추면 저 간악한 만적들이 군대를 추스르고 반격할 여유를 주게 된다.

저들은 저 척박한 요동 산림 속에서 힘을 길러 몇 만이 되지도 않는 군세로 중원천하를 정복한 놈들 아니던가? 힘을 키워 정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대명의 군대는 숫자만 많지 대다수가 농민들에게 몽둥이 하나 쥐어준 꼴이 아니던가?

하지만 일로군은 그나마 위순준 대인이 아편밀상을 할 때부터 양이(洋夷)상인들에게 사들인 총포 따위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제법 훈련이 된 병사들도 다른 로군에 비하여 더 많았다. 이대로 기세를 몰아서 들이닥치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청조의 뿌리를 뽑아버릴 기회다. 일로군이 대공을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로군이나 삼로군도 똥구멍에 불이 붙은 듯 뛰쳐나올 것이다.

“ 제 놈들도 언제까지고 궁둥이를 바닥에 뭉개고 있지는 못할 것이니. ”

탐욕스런 이로군 원수 홍방이나, 투항자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줄 전공이 필요한 삼로군 원수 여보순, 각자 다 유격에 불과한 나대강 자신이 청조를 멸망시키는 대공을 세우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예,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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