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27화 (27/163)

〈 27화 〉 흔들리는 천명(天命) 2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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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동안 잘 지냈더냐? ”

북경성의 혼란이 너무 커지자, 연합왕국 원정육군은 천진까지 후퇴하기로 하고 해하(海河)에 대기시켰던 양륙선을 이용해 철수하고 있었다.

북경공략을 관전할 목적으로 그들을 따라온 조선 동지사 일행은 처음에 육로로 동지사행을 계속하여 청황제를 알현할 것인가와 이대로 영길리 군대를 따라 천진으로 간 뒤에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의논을 했다.

더 이상의 일정이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다수인 데다가 혼란한 북경성에서 구해낸 김병한 덕에 청나라 사람으로 위장한 천희연 등 조선 밀정까지 구하게 되었기에 이번 동지사의 주요 목적인 중원정세 탐망은 충분히 이뤄졌다는 정사 흥선군의 의견으로 영길리 군과 함께 해하에서 천진으로 가는 배를 타고 천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 예, 이역만리 험한 전쟁터에서 형님께 목숨을 구명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

사촌 형님인 김병기가 김병한을 알아보고는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모두들 다 같이 있을 때는 사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 몇 년간 밀린 회포를 배에 탄 후에 이렇게 풀고 있었다.

“ 내가 구했더냐? 난 그저 정사이신 흥선군께 멀리 보이는 조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

“ 어쨌든 감사합니다. ”

김병한은 마조각(媽祖閣, 마카오)에서부터 데려온 친우의 유골이 들어 있는 봇짐을 껴안고는 다시 김병기에게 감사를 표했다. 종형이신 김병기가 아니었다면 친우의 유골과 함께 중원 땅에서 고향을 잃고 고혼(孤魂)이 될 뻔했다. 아무리 감사를 표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 아니다. 우리도 조정에서 중원 정세에 대해 탐망하라는 명을 받았는데, 중원에서 오래 기거한 네게 도움 받을 일이 많으니 오히려 득이 된 것 아니겠냐? 이제 그만 조선으로 돌아갈 테니 그동안의 일은 천천히 이야기하자꾸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테니, 잠시 눈 좀 붙이도록 해라. 나는 바깥에 나가봐야겠구나. ”

지친 김병한의 얼굴을 본 김병기가 그를 좀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휴식을 권하면서 말을 끊었다.

조선에 돌아가면 사적인 환담이야 얼마든 할 텐데,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종제를 좀 쉬게 해야겠다.

“ 예,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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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코삭 주둔지

털옷을 두툼하게 입은 붉은 수염의 사내가 청나라 황제 애신각라 민녕(愛新覺羅 旻寧)이 러시아제국 차르에게 보내는 사절들의 앞에 서서 자신의 막사를 향하고 있었다.

서쪽을 향해 급하게 말 달리던 사절들은 시베리아 코삭의 한 무리를 만난 후 그들의 인도에 따라 이곳까지 온 것이다. 화급을 다투는 일 때문에 급하게 이동하던 그들이었으나, 원군을 청하는 입장에서 이들과 실랑이할 이유가 없었기에 일단 그들의 두령이 있는 곳으로 따라온 것이다.

❝ 일단 막사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

시베리아 코삭의 아타만인 알렉세이 페테로비치 보브코다브는 타타르 대추장의 사신들을 자신의 막사로 데리고 들어갔다.

막사로 들어서며 그는 시베리아의 추운 날씨를 타박하며 겉에 입은 털가죽 옷을 벗었다.

방한 목적의 털가죽 옷을 벗자, 녹색의 상의와 시베리아 코삭 특유의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녹색 바지에 붉은색 견장의 군복이 드러났다.

❝ 더럽게 춥군. 뭐, 겨울이니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안 그런가? 허. ❞

보브코다브는 나름 청나라의 사절과 어색함을 풀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찬 공기와 페치카가 뿜어내는 열기가 만나며 입에서 김이 나왔다.

❝ 당신들도 추울 텐데 페치카 앞으로 와서 몸을 녹이게나. ❞

청나라 사절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보브코다브가 권하는 대로 페치카 쪽으로 다가섰다. 이 추운 겨울 말달리고 여기까지 온 덕에 꽝꽝 언 몸을 녹일 기회이기에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청나라 사신들을 흘끔 본 보브코다브는 왼손으로 자신의 얼어붙은 수염을 부러지지 않게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 그러니까······ 그대들, 타타르의 대족장께서 우리 챠르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는데, 그대들이 그 전령이라는 건가? ❞

❝ 그렇소. 그러니 우리를 어서 통과 시켜 주시오. 화급을 요하는 일이오. ❞

청나라 사신은 자신들의 용무가 급한 것임을 주지시킨 후 시베리아 코삭의 영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가를 다시 한 번 요청했다.

아까 만난 시베리아 코삭 병사는 자신들의 급한 용무를 말해도 자신들의 아타만을 만나서 허락을 받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눈앞의 코삭 아타만은 그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대청 사직의 명운이 자신들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절은 시간을 여기서 허비할 수는 없었다.

“ 드미트리,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그 대족장의 서신을 확인해봐라. 일단 이들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아봐야지. ”

아타만은 청나라 사절들의 초조함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부관에게 타타르 대추장이 차르에게 보낸다는 친서의 내용을 확인토록 했다.

차르에게 모욕을 가하는 국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러시아제국 영내를 침입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타타르 도적들 몇이 영내에 들어오는 것은 두렵지 않은 일이지만, 눈앞의 타타르인들의 말이 진실인지 궁금한 보브코다브였다.

❝ 이놈들이 황제 폐하의 서신을 함부로 펼쳐 보려 하다니? 너희들의 대추장에게 전달할 때까지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

아타만의 부관인 드미트리가 그들이 휴대하고 있는 황제의 친서를 빼앗아 내용을 확인하려 하자, 청나라 사절들은 반발했다. 황상께서 아라사의 대추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감히 변방의 절도사 정도밖에 안 되는 자가 함부로 펼쳐보려 하다니, 그런 불경을 행하려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청나라 사절들이 반발하자 보브코다브는 두 눈을 부릅뜨고는 청나라 사절들에게 말했다.

❝ 이봐, 나도 차르께 가는 서신이 무엇인 줄 알고 너희를 통과시키란 말이냐? 너희가 말한 대로의 내용이 아니면 너희를 통과시킨 내게 책임이 돌아올 텐데? 너희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싶으면 입 다물고 조용히 그 서신을 보여주도록······. ❞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사절단을 도적 따위의 혐의로 억류해버리면 그뿐이다. 급한 것은 차르에게 서신을 보내야하는 타타르 사절이지, 보브코다브 본인이 아니다.

“ 드미트리, 내용은? ”

“ 이들의 말이 사실입니다. 연해주를 차르에게 내어주고, 뤼순이라는 곳에 차르를 위한 항구를 세울 수 있게 해주겠답니다. ”

부관의 말을 들은 보브코다브는 보드카 병을 들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한 후에 앞에 있는 타타르 황제의 사절에게 보드카 병을 건네면서 말했다.

❝ 좋아, 당신네들의 말대로군. 서쪽 끝으로 가게나. 내가 주는 증명서면 우랄을 건너기 전까지는 편의를 제공 받을 수 있을 걸세. 급한 건 알겠지만, 적당한 곳에서 총독을 찾아서 증명서를 다시 발급받도록 하게나. 아니면 당신네 타타르가 우리 영내를 말달리는 것만으로도 바로 당신네들 목숨을 보장 못할 걸세. ❞

보브코다브가 건넨 보드카 병을 받아서 한 모금 마신 청나라 사절은 표정의 변화 없이 보브코다브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가 황제의 친서를 함부로 개봉해 보는 불손을 범하기는 했지만, 서방 먼 곳, 성피득보(聖彼得堡, 상뜨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데 편의를 봐준다는 데 그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고맙습니다. ❞

자신들의 임무가 급한지 쉴 곳을 마련해달라는 말도 없이 타타르 사절단은 감사의 묵례를 하고는 막사를 나섰다.

“ 이 사절들을 호위하고 길을 안내할 기병 중대 하나 붙여주도록 하게나. ”

청나라 사절이 감사를 표하는 것을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은 보브코다브는 부관을 쳐다보며 지시를 내렸다.

누가 봐도 타타르인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자들이 호위도 없이 상뜨페테르부르크를 향해 간다면 서신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 분명 도적떼나 침입자로 생각한 누군가의 총탄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베리아 코삭의 영역 안에서라도 호위가 필요하다. 그 너머는 다른 아타만이나 지방 총독이 알아서 하겠지.

아타만은 타타르 대추장의 사절이 막사를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시베리아 코삭의 아타만은 호위를 붙여주라는 말에 이어서 새로운 지시를 덧붙였다.

“ 그리고, 지금 우리 시베리아 코사크 군단(Siberian Cossacks Host) 전체에게 집결 명령을 내리도록 ”

“ 시베리아 총독의 명령도 없이 말입니까? ”

상뜨페테르부르크의 차르가 명령을 내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시베리아 총독마저 무시하고 출전하려는 아타만에게 부관이 말했다. 추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 타타르 대추장의 똥구멍에 불이 붙었다는데 출전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나? 그 정도는 추인 받으면 되네. 뭐, 그래도 통보는 해야겠지? 드미트리, 그런 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나. ”

“ 그럼 수비 병력으론 몇 개 연대를 남겨두면 되겠습니까? ”

“ 모두 모아. 우릴 따라오고 싶어 하는 사냥꾼들이 있으면 그들도 따라 붙으라 하고. ”

“ 호스트(Host) 소속의 16개 연대와 4개 포기병 중대 모두를 말입니까? ”

“ 그래, 우리 군단(Host)소속 만이천기 전체 다 소집하게. 모두들 추운 겨울에 담비 따위나 사냥하느라 좀이 쑤셨을 텐데, 따뜻한 곳에서 몸 좀 풀자고 하면 다들 좋아할걸? ”

가뜩이나 척박한 시베리아였다. 그동안 협정 때문에 침범할 수 없었던 따뜻한 남쪽 타타르 대추장의 영역에 갈 수 있다면 시베리아 코삭 호스트에 속한 이들은 모두가 환영할 것이다.

타타르 대추장의 적을 처리해주고 그 대가로 전리품을 잔뜩 가져올 좋은 기회다. 코삭 사나이들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출진은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

“ 내일 정오로 하지. 늦는 놈들은 그냥 두고 간다고 전하도록 하게. ”

깍지를 낀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몸을 푸는 아타만, 보브코다브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 그럼 오늘은 푹 자볼까? 내일을 위해. "

부관에게 윙크를 하며, 보드카 병을 입에 무는 아타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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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여름 휴양지인 승덕(承德)의 겨울 풍경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여름에 보여주던 청량한 풍경은 간데없고, 모든 것이 바스러질 듯한 황량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숭덕을 코앞에 둔 대명북정군은 진채를 거두지 않은 채 그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뭐라? 청군이 북경에 우리 이로군과 삼로군을 가둬놓고 두들겼단 말인가? ”

북경에서 온 소식을 들은 대명북정군 일로군 원수 서리 나대강은 침울한 표정을 지우지도 못한 채 자신이 들은 보고를 다시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일로군이 석장구 벌판에서 청장(淸將) 양방이 이끄는 대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한 이제, 승덕을 넘어 봉천으로 파천하고 있는 청주(淸主)를 사로잡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일로군이 양방의 청군을 격파하는 그 때, 석장구 전투 내내 경계하고 있던 청군의 별동대가 일로군을 친 게 아니라 북경에 집결해 있던 이로군과 삼로군을 격멸시켰다는 전갈은 나대강이 잠시간 말을 못 하고 입술만 파르르 떨도록 만들었다.

“ 예, 공성지계로 우리 군대가 입성하도록 유인한 후에 성 안팎으로 숨어 있던 군세가 갑자기 나타나 북경성 주변에 갇혀서 싸우다가 삼로군 원수 여보순 장군께서는 흉탄에 숨을 거두셨고, 이로군 원수 홍방 장군께서는 아직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

이로군과 삼로군의 최고지휘관인 홍방과 여보순이 없는데다가 그 휘하 장수들 상당수가 행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대패했다고 한다.

일로군이 양방의 대군을 적은 희생만으로 분쇄했다고 좋아했지만, 청군의 목표는 후방을 차단해서 일로군을 말려 죽이는 것이었다. 어제 작은 승리로 기뻐했던 나대강 자신을 포함 일로군의 장수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 버린 청군이었다.

상대방의 장수가 누구인지 정말 장대한 계략을 성공시켰다. 양방의 대군이 미끼였다니 말이다. 북경성 전투 결과가 사실이라면 청주를 쫓아 진격할 때가 아니었다. 어서 후퇴하여 이로군과 삼로군의 패잔병을 수습해서 적과 맞설 태세를 정비해야 한다.

“ 거기다 북경성은 전장이 되어 자금성을 비롯해 성내의 시설들이 아직까지도 불타고 있다 합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

부장은 조심스러운 어투로 나대강에게 말했다. 어제까지의 기세는 모두 사라졌다. 지휘부에 모여 있는 장수들의 마음속에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 조금만 더 쫓아가면 청주를 사로잡을 수 있는데, 하, 홍방과 여보순, 이 어리석은 자들이 적의 매복에 속아 넘어가 버리다니······ ”

뜻밖의 패배로 인한 분함에 못 이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나대강이었다. 한참을 분노를 참아 넘기던 나대강은 머리를 들어 휘하 지휘관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 어쩔 수 없구나. 퇴각한다. 모두들 진채를 철거하고, 남쪽으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만나는 이로군과 삼로군의 패잔병을 최대한 수습한다. 알겠나? ”

나대강의 명에 부복하는 휘하 지휘관들의 표정은 일순 밝아졌다. 무리하게 청주를 사로잡겠다며 북상한다고 고집을 부리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이다. 일단 병사를 수습해서 후일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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