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대영제국, Great Britain ? 大英? 0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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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9월 조선. 강화도
“ 이보게, 모두 다 실었나?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은 하였고? ”
“ 예, 빠짐없이 다 실었습니다. 이제 출발해도 될 듯합니다. ”
“ 알겠네. 여 보게. 그렇다면 다시 한 번만 빠진 짐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배에 탈 사람들이 모두 탔는지 확인하고 이상 없으면 그만 출발해도 된다고 선장에게 말을 전해주게나. ”
“ 예, 알겠습니다. 대감 ”
분주히 배에 여러 가지 물품을 실어 나르던 인부들 간에 소리가 오간다. 포구에 묶여 있던 마카오 선적의 영길리국 상선 포르투나 호를 위시한 선단은 닻을 올리고 출항을 했다.
선장에게 출항해도 된다고 말을 전한 후 청년 김대건은 서서히 해안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배의 선수에서 육지를 아무런 말도 없이 뚫어지게 쳐다본다. 포르투나호를 필두로 선단에 소속한 배들이 하나씩 포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김병한은 육지를 보다가 옆의 김대건을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자신보다 겨우 2살 위의 젊은 청년인 김대건은 믿음이 흔들려서 결국 귀국했던 그와는 달리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이번일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김대건은 순교했으리라.
“ 안젤로 교우님,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될까 걱정이 되십니까? ”
한 때 마카오에서 같이 신학을 공부한 사이였지만,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는 세례명을 부르며 서로 공대하는 두 사람이었다.
“ 안드레아 신부님.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걱정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도 천주님의 품 속일 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 ”
김대건은 싱긋 웃으며 김병한의 말을 받는다.
“ 남아 계신 페레올(Ferreol, 高) 주교님과 다블뤼(Daveluy, 安) 신부님께서 걱정이지요. 남아 있는 천주님의 어린 양들을 보살피는 일을 모두 떠맡았으셨으니 말입니다. ”
“ 그래도 교우들에 관한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번 일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박해가 다시 시작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 집안이 지난번 일 이후로 위세가 다소 꺾였지만 이번 일에 대한 보증을 하였습니다. ”
김병한 안젤로는 친우이기도 한 김대건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씁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전교의 자유는 아직 못 줘도, 신교의 자유는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조정과 상께서 약조하셨으니 남아 있는 사람들도 고초를 겪을 일이 없겠지요. ”
“ 신교의 자유란 게 진정으로 허용될까요?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천주님의 품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이 언제나 올까요? ”
묵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눈을 감고 김대건은 기도를 한다. 비장한 표정의 김대건과는 달리 김병한은 점점 멀어지는 육지를 쳐다보며 각오를 다졌다.
이번 입조사행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신앙의 자유와 내 나라 조선에 천주의 은총이 가득하도록. 그간 흔들리던 자신의 믿음도 바로잡아 주기를 말이다.
“ 무얼 보십니까? ”
먼 바다를 선수에서 쳐다보고 있는 흥선군에게 천희연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 이태 전 이후로 다시 바다로 나서니 기분이 묘해서 말일세. 그 때 저 방향으로 갔었지. ”
이년 전 동지사행을 위해 서해바다를 떠났을 때 갔던 천진 방향을 가리키며 흥선군이 말했다.
“ 전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합니다. 흥선군 대감나리 ”
중원의 정세를 탐망하기 위해 강남지방에 잠입했을 때를 생각하며 천희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 빠져나오려다가 계명(繼明)의 북정군에 징집되는 바람에 북경까지 행군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을 생각하니까 그 때 했던 고생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 때 청나라 팔기가 북경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을 때 운 좋게 동지사행에 나섰던 조선군관들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연고 없는 시체가 되어 짐승 먹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하하하, 그래도 그 때처럼 머리를 빡빡 밀지는 않았으니 이번이 더 낫지 않겠는가? ”
그 때 강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청나라 만주 팔기 기인들이 하는 것처럼 금전서미에 기인들이나 입는 만주복장을 하고 강남에 들어갔던 일을 상기시키며 놀리는 흥선군이다.
“ 그럼요. 설마 영길리 군대에 끌려가는 일은 없겠죠? ”
“ 그럼 그 때는 위험한 일인걸 알고 갔지만, 이번에는 위험한 일은 오직 바다를 건너는 것 외에 없을 것일세. 그나저나 하서방하고 장서방을 두고 가게 되어서 심심하겠네? ”
흥선군의 가솔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며 흥선군이 같이 가자고 하는데도 하정일과 장순규는 조선에 남았다. 그래서 흥선군의 잡무를 이번에는 천희연이 홀로 돕게 되었다.
“ 아닙니다. 남아서 흥선군 대감댁 일을 돌볼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다들 고맙네. 내 언젠가는 자네들에게 꼭 신세를 갚을 날이 오지 않겠는가? ”
저번 강남에 다녀온 후에도 이들 세명은 군관자리를 준다고 해도 지금 군관이 되면 북벌에 종군해야하니 흥선군의 가솔들을 도와야 한다며 사양했었다. 그래서 흥선군은 더욱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 괜찮습니다. 이번에 영길리에 다녀오면 아전 자리라도 하나 받게 힘써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하가 놈이랑 장가 놈도 자리 하나 받을 수 있게 힘써주시면 됩니다. ”
“ 알겠네. 언젠가는 내 꼭 그리 하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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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5월 대브리튼 런던
연합왕국 하원의원인 글래드스턴은 자신의 집무실에 잠시 들려달라는 총리대신인 로버트 필(Robert Peel)경의 요청을 받고는 의회 내에 마련된 로버트 필 총리의 집무실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그는 일전에 아일랜드의 카톨릭계 신학교인 메이누스 대학에 대한 보조금 지급문제(Maynooth Grant issue)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과 내각일원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 갈등하다가 로버트 필 총리가 주도하는 보조금 지급에는 찬성표를 던지고, 그 행위가 자신의 각료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성공회 신자로서의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각료직인 상무원 총재직(President of the Board of Trade)을 사임한 후 오랜만에 로버트 필 총리와의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을까? 이제 각료도 아닌 일개 평의원 신분인 자신에게 할 말이 무엇일까? 현안 가운데 현재 필이 평의원에 불과한 자신에게 협력을 요청할 일은 마땅히 없었다.
그의 정치적 협력이 절실한 쟁점사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혹 의회 내에서 첨예한 대립이 있는 쟁점이 있다고 해도 로버트 필 총리의 파벌로 분류되는 자신보다는 토리의 강경파나 휘그 쪽의 온건파를 설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 말이다. 의례적인 안부를 묻기 위해 자신의 저택도 아닌 집무실로 불러들일 리도 없었다.
집무실에 들어서며 총리의 비서에게 모자를 벗어서 가볍게 인사를 한 뒤에 그의 안내를 받아서 총리집무실의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 어서 오게나? 그동안 잘 지냈겠지? 저 쪽으로 가서 앉게나. 이 봐. 왓슨군, 여기 차 2잔만 가져다주게나. ”
피곤한 표정의 연합왕국 수상인 로버트 필은 글래드스턴이 들어오자 서류를 보기위해 코끝에 걸쳤던 돋보기를 벗어서 눈을 비비며 자신의 비서인 왓슨에게 차를 부탁하고는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나 집무실 한가운데에 놓인 응접용 탁자를 향하며 글래드스턴에게 자리를 권했다.
“ 일단 앉게나. 오늘 자네에게 방문해달라고 호출한 것은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기 때문일세. ”
최근 글래드스턴은 메이누스 법안(Maynuth College Act, 1845) 관련하여 상무원 총재직 을 사임하여 내각에서 사퇴한 뒤로 여전히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의 딱딱한 표정 때문인지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 교부금 문제로 여전히 불만도 많고 자숙하는 의미에서 활동을 줄인 것은 알겠네만, 지금 여러모로 현안 사안이 많아서 각료로 앉아 있는 동료들은 모두 바쁘다네. 그래서 오늘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 종류의 일을 따로 맡아줄 적절한 사람이 없다네. 뭐 사실 믿을만한 사람도 별로 없고 말일세. 그래서 자네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줄 여유도 없이 이렇게 자네를 불렀다네. ”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부터 꺼내는 필 총리의 입을 글래드스턴이 주시했다. 로버트 필 총리로서는 완고한 이 젊은 친구를 앞에 두고 이것저것 둘러대는 말 해봤자 설득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직설적으로 용건부터 꺼내는 것이다.
“ 내가 부탁하려는 일을 맡기에 적당한 사람이 없네. 자네가 최근에 그나마 한가하고 믿을만해서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기에 불렀다네. ”
로버트 필 총리가 계속 말을 하지만, 글래드스턴은 듣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전히 재미없는 친구로군. 필은 자신의 젊은 동료를 쳐다보며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 최근에 저 동방에서 온 거지 떼들에 대해서는 자네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 테고. 바로 그 작자들 관련된 이야기 때문에 자네를 불렀네. 그래도 한 때 각료로서 내 내각에 연관되어 있었기도 하고 솔직히 다른 늙다리들에게 맡길만한 종류의 일도 아니고 말일세. 아무래도 늙으면 새로운 지식에는 무관심해지기 마련이거든 ”
동방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호출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글래드스턴은 관심을 표하며 장갑을 낀 자신의 왼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수상의 말에 흥미 있음을 표했다.
“ 우리들로부터 여왕폐하를 납치하기 위해 왔다는 남차이나의 도적놈들과의 교섭이 끝나기도 전에 말이야. 또 다른 동방왕국으로부터 온 사람들 때문에 자네를 불렀다네.
그 영국 사람들(당연하겠지만 연합왕국이 아닙니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말고도 하늘의 자식(天子)의 은총을 받들기 위한 사절이라고 주장하는 극동의 조선왕국 사람들을 자네가 만나 봐주게나. ”
“ 조선왕국, 말씀이십니까? ”
“ 며칠 전에 버킹엄 궁 앞에서 엎드려 쭈그려 있던 영국(따잉) 사람들과 여왕폐하를 예방하기 위하여 버킹엄 궁에 방문하였던 조선왕국 외교사절단 사이에서 일어난 폭행상해사건에 대해서 들었겠지? ”
며칠 전에 벌이진 버킹엄궁 앞에서의 동아시아 외교사절단끼리의 쌍방 폭행상해사건은 더 타임즈 같은 간행물에도 실려서 현재는 거의 모든 연합왕국 젠트리(gentry)들에게 알려지고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들이 퍼져나가서 요즈음 연합왕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었다.
“ 아, 고맙네. 왓슨 ”
마침 수상이 부탁했던 차 세트를 가져온 왓슨에게 글래드스턴은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는 수상에게 답을 한다.
“ 제가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떠도는 소문만 들어보니 제법 재미있는 사건이더군요. 할 일없이 차나 마시면서 위선적인 고상을 떠는 그런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그런 종류로 말이죠. ”
“ 후훗, 자넨 여전하군.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연합왕국시민들이 피해를 입은 게 없고, 그들이 나름대로 외교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라 조용히 덮고 넘어 가기로 했지만 말일세. ”
총리는 잠시 자신의 볼을 슬쩍 만지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 그러면 내 솔직히 말함세. 지금 나는 파머스턴과 동인도회사 장사꾼들이 싸재낀 똥을 치우려니 머리가 아프다네. 뜬금없는 조선인들의 브리튼 방문 덕분에 그 영국(따잉)놈 들과는 어느 정도 합의가 빨리 끝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나쁜 일도 아니네만, 문제는 조선왕국일세. 그들은 뭔가 특별한 외교관계를 주장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지. ”
자신의 잔을 들어 홍차를 후루룩 마신 후 총리대신은 계속 이야기했다.
“ 하늘의 자식 운운하는 것이 인디언들이나 아프리카의 토인처럼 우리 여왕폐하를 자신들의 종교적 상징으로 여기는 것인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네. 휴우,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연합왕국 정부에는 조선왕국 전문가가 없으니 말일세. 그런데다가 최근에 청나라가 우리 연합왕국에 대항하기 위해 끌어들인 러시아 놈들 문제까지 얽혀있어서 아주 신중하게 해결해야하거든. ”
“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하원의 의원직만 갖고 있는 제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연합왕국과 여왕폐하의 내각을 위한 일이라면 혹시 저를 외교사절로 조선에 파견하실 생각이신가요? ”
“ 그러자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 지금 브리튼에는 우리와 교섭을 하기 위한 사절단이 벌써 와있다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외교사절로 조선에 가는 것보다는 쉽고 단순한 일이라네. ”
자신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총리는 글래드스턴을 바라보면서 계속 말을 하였다.
“ 자네가 직접 조선왕국에서 사절단으로 온 사람들과 교류를 트고, 그들의 습성이나 관습, 문화, 생각들을 알아내어 주게. 그리고 그들이 우리 연합왕국의 동아시아전략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말일세. 지금 나로서는 우리 연합왕국의 전문가라는 놈들을 믿을 수가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 놈들은 장사꾼이나 무분별한 확장주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이 저 극동왕국에 대해서 떠드는 게 사실인지도 의심스럽단 말일세. 어떤가? 이정도의 일이라면 자네가 맡아 줄만하지 않나? 자네는 지난번 전쟁결의에서도 그들, 동아시아인들에게 온정적이지 않았는가? ”
“ 그들에게 온정적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연합왕국의 일원으로서의 누군가는 지켜야 할 인간의 양심에 따랐을 뿐입니다만 ······. ”
글래드스턴은 눈앞의 수상에게 한마디 대꾸를 하고는 몇 년 전의 총기사고로 인하여 생긴 부상부위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지자 왼손을 주무르면서 수상의 제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조선이라는 동방왕국의 외교사절단은 연합왕국에 도착해서부터 호사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연합왕국이 유니언 잭을 앞세우고 진출(進出)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스스로 먼저 연합왕국과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브리튼으로 사절단을 파견한 사람들은 글래드스턴의 지식 범위 내에서는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유럽의 국가도 아닌 먼 동방의 왕국이 연합왕국이 자기들에게 외교관계를 먼저 요청하지도 않고, 아직 직접적인 접촉이나 이해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빗장을 열고 우리에게 접근해 온 것이었다.
그것도 연합왕국의 수위권을 인정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가지고서 말이다.
물론 그들로서도 러시아의 위협적인 팽창정책에 두려움을 느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비기독교도 국가의 야만인 정부들은 그들의 알량한 자부심을 자기국가의 이익보다 우선해서 내세우기에 우리에게 먼저 외교교섭을 요청한다는 결정은 그동안의 경험상 파격적인 것이었다.
때마침 각료직에서 물러나기도 했고, 몇 해 전에 자신이 자신의 양심을 걸고 반대했던 그 추악한 전쟁의 결과물로 생긴 동방사람들의 연합왕국 방문에 관심이 일기도 하니 오후의 티타임에 즐길 소일거리로 수락해 볼까 싶기도 했다.
다른 엉터리들이 이일을 맡았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려되기도 했고 말이다.
“ 좋습니다. 수상각하. 마침 저도 호기심이 생기니 그들을 만나 보도록 하지요. ”
“ 고맙네, 굳이 보고서의 형식으로 꾸며서 보내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들과 만나서 교류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한 통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네. 대신 이일과 관련해서는 외무성에 연락해서 모든 편의를 봐달라고 말해 두겠네. 혹시라도 비용이 든다면 그것도 청구하면 보전해 주도록 하지. ”
“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갖고 연락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용건이 더 없으시다면 오늘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
용건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면서 수상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떠나는 글래드스턴을 향해 로버트 필 총리는 자리에서 늘어지며 마지막 한마디를 한다.
“ 그럼 살펴 가게나. 난 연합왕국의 영광을 위해 계속 이 빌어먹을 일들을 계속 해야 하니. ”
수상의 집무실을 나가면서 글래드스턴은 생각한다. 그들과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인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외양을 가지고 전혀 다른 언어를 쓰면서, 전혀 다른 관습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이 나와 만나 주려 고는 할까?
글래드스턴이 그동안 들었던 차이나나 베트남 같은 동방의 나라들에 대한 인식은 스스로 빗장을 굳게 닫아걸고는 조용히 숨을 죽인 체 자신들 서방 유럽인들을 엿보기만 할 뿐인 사람들의 나라란 것이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접촉을 한 사람들은 브리튼인을 필두로 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그것도 마치 연회장에서 싫다는 몸을 피하는 레이디들에게 독주를 마시고서 분별력을 잃고 치근대는 호색한 마냥 천박하게 말이다. 물론 그러한 추근거림의 기저에는 금과 은에 대한 저열한 탐욕이 깔려있음을 글래드스턴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조선 사람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동방왕국 조선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먼 곳, 브리튼까지 다른 동방왕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스스로 찾아 온 것일까?
잠시 용변을 보고 출발하겠다는 마부의 청에 그러라 하고는 글래드스턴은 마차의 좌석에 앉아서 차창 밖의 풍경을 살펴본다. 타고 있는 마차의 옆을 지나가는 마차의 바큇살을 멍하니 쳐다보니 뭔가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조선이라 ······. ”
그들은 무엇을 위해 다른 미지의 국가들이나 종족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몇 달간 거친 바다를 건너서 런던까지 왔을까?
그들과의 만남은 연합왕국과 글래드스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들의 운명은 우리와의 만남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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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연합왕국 의회에서 결의된 청제국과의 전쟁은 그 전쟁을 결심하고 실행한 연합왕국의 의지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적당한 거점의 조차 또는 할양과 적당한 수준의 배상금, 자유로운 무역시장의 개방 정도를 목표로 적당한 성과를 거둬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청제국 정부와 외교교섭을 목표로 시작된 전쟁은 그 전쟁의 성과를 자신한 담당자들조차도 당황스럽게도 소수의 연합왕국 인도파견군과 동인도회사와 개별 상인들이 인도현지에서 고용한 세포이(sepoy)라 불리던 용병대만으로 청제국의 정규군과 의용병 상대로 연전연승을 하였다.
머나먼 동아시아까지 병참에 대한 확신이 없던 연합왕국 전쟁지도부는 현지에 남차이나의 광둥 지방에 국한한 작전을 펼치도록 훈령을 내렸지만 거리의 장벽은 그 훈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연합왕국의 군대가 광둥을 넘었다. 수정된 훈령을 수차지시해도 훈령상의 작전한계점을 번번이 넘어서는 성과를 현지의 지휘관인 조지 엘리엇은 본국의 훈령으로 인한 진격제한이 예상됨에도 교묘하게 정부훈령의 지연수령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 때 병참이라도 끊겼으면 연합왕국성립 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 발견한 영토를 연합왕국과 국왕의 영토로 선언하는 충성스런 신민인 연합왕국의 사나이들은 예상되는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청제국군을 연파하여 거대한 제국의 숨통을 조였다.
이 때 청나라 정부의 피정복민이었던 남차이나인 들은 몇 백 년 전에 이미 멸망한 그들의 옛 제국의 부활을 선언하고 연합왕국군의 진격로를 확보하고, 후방의 지방행정을 장악하여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연합왕국군의 전쟁을 도왔다.
충격적인 포로학살 사건 이후 차이나인들과는 달리 이질적인 종족으로 구성된 청나라정부를 전복하고 반란자들의 정부를 승인한 후 이권을 취하는 것으로 전쟁목표를 수정한 연합왕국정부는 갑작스런 사건으로 그들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841년 남차이나 반란자들의 정부는 고귀한 혈통을 주장하는 새로운 황제를 내세웠다. 그리고 야만인의 압제에서 탄압받는 모든 동포의 해방을 선언한 부활한 명제국의 황제는 야만인들의 토벌을 위한 100만 명의 의용병을 이끌고 북쪽을 향해 직접 진군했다.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의용병이긴 해도 단순한 반란자들의 정부가 100만 명이라는 군대를 편성한 것에 전 유럽이 경악을 할 정도였다. 연합왕국의 전쟁에 한발 걸쳐서 불로소득을 취하려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이 그것을 보고 한발 빼고 중립 선언을 해버렸다.
남차이나인 들의 새로운 황제 주걸륜은 정본(政本)이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는 의용병과 함께 야만족의 정벌을 선언하고는 직접 진격에 나섰다. 현지 사령관은 빠른 전쟁종결과 외교협상을 위하여 천진상륙과 북경공략을 실행했다. 주걸륜의 의용병은 10갈래로 갈라져서 청제국의 행정망을 접수하며 북진하였다.
북경공략을 위한 천진상륙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청제국 최정예병력인 몽고팔기의 역습에 주걸륜이 이끄는 의용병부대는 참패하였다. 주걸륜은 패주대열에서 그의 가까운 친족들과 함께 휩쓸려서 행방불명되었다. 아마도 현지에 있는 관계자들의 말로는 전사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한 참패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걸륜의 의용병부대들은 그 혼란을 필사적으로 수습한 반란수뇌들의 노력으로 와해되지 않고 북경까지 도달하였다. 연합왕국군은 반란자들의 의용병과 함께 북경을 함락시키고, 청제국의 황제를 북방의 그들 제국의 고향으로 쫓아냈다. 이 때 도주한 청제국의 황제는 러시아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연합왕국 원정군에 협력한 남차이나 반란자들은 그들의 지도자의 전사로 인한 후계자 선정에 내부적인 알력으로 청제국에 대응할 동력을 잃어 버렸다. 그 점을 파고든 청제국과 러시아 군의 압박에 연합왕국도 북차이나를 포기하고 황하 이남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남차이나 신정부군은 러시아와 청제국의 군대에 황하방어선마저 지키지 못하고 회수까지 밀려나는 추태를 벌였다. 러시아가 개입하는 바람에 연합왕국은 막대한 전비만 쓰고, 아무런 이권을 취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몰렸다.
러시아는 연합왕국과는 달리 차이나 대륙과 육지로 이어진 차이나의 이웃국가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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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용변을 마치고는 허겁지겁 마차의 마부 석에 올라타며 마부가 하는 말에 글래드스턴은 조선에 관한 상념에서 벗어났다.
“알았네. 빨리 가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