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46화 (46/163)

〈 46화 〉 대영제국, Great Britain ? 大英? 1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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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애버딘 백작은 동방에서 온 사절단과의 협의를 위해서 회의실의 좌석에 약간은 비스듬하게 앉아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에버딘 백작은 그동안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조선왕국의 전문가라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그는 지금 말하는 음침한 분위기의 젊은 학자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영어나 불어를 구사하지 못해서 조선어로 자신의 주제를 말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는 조선어마저도 능통하지 못해서 이 회의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 그···러니···까,  아, 여기 ···지도···를 보시면 ···이건 저···청내부···일통···여지비···도 (淸內府一統輿地秘圖)라는 것···이 지··도의 ··· 이···곳을 ···. ”

눈앞의 음침한 분위기에 뼈밖에 없는 듯 한 분위기의 조선왕국의 지리학자는 자신이 가져온 수많은 자료 중에서 한 지도를 펼치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젊은 지리학자의 설명을 참을성 있게 들으면서 내용을 정리해서 안드레아라는 조선인 카톨릭 사제가 프랑스어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제시하는 산더미 같은 자료들은 분명 협상과정에서 필요할 것이라 예측하고 가져 왔을 테니 저들은 이번 런던 행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쟁취하기 위하여 모든 상황을 예측했다는 것 아닌가? 확실히 다른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비문명국 사람들과는 다른 대응이다.

수십 년간 직업외교관으로 봉직한 이래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오고,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위해 입을 떼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프랑스의 떠버리들 정도 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미치니 애버딘은 그들의 준비성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준비성이 철저할수록 자신은 피곤해지고 머리 아플 일만 느는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애버딘 백작은 다시 한 번 이런 지독한 인간들에게 걸린 자신의 운명을 마음속으로 저주했다. 역시 이 골치 아픈 사람들은 스탠리 경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중화 대영제국의 남중국 촌뜨기 녀석들이나 요리했어야 했다.

❝ 외무장관 각하, 그러니까 청제국과 청제국의 동맹인 러시아제국의 국경에 관한 항의에 대한 조선왕국의 입장은 전통적으로 중원으로 지칭되는 영역은 최대한 넓게 잡아도 요하 서편, 막남(고비사막 남쪽)의 영역이므로, 조선은 중원과는 별개의 문화와 정체(政體)를 가진 자주국임을 확인하며, 우리 조선왕국의 영역은 우리 측 전문가인 고산자(古山子)선생이 제시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김대건이 통역하는 가운데 흥선군과 고산자의 손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논거에 대한 증거로 제시하는 지도를 짚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  여기서 만주문자로 표기된 영역은 청이 우리 조선의 별종에서 유래하였고, 400년 전에 그들의 조상이 조선인이었음에 유래하여 중원과 다른 영역권임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에 우리 측의 주장은 조선왕국의 국경은 요하(遼河)동편과 막동지역의 전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청제국과 러시아제국의 국경에 관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 그러니까 귀측의 주장은 현재 청나라와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영역이 불법적인 점유이고, 그 영역에 대한 조선왕국의 지배권에 대한 승인(承認)을 요구하시는 거잖습니까? ❞

평생을 외교관으로 봉직한 애버딘 백작 또한 그에 지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확실히 정리해서 반박을 했다.

❝ 하지만, 귀측의 주장대로라면 청나라 황실 또한 그 영토에 대한 영유권이 있는 것이잖습니까? 최근까지 실효적인 지배(Effective control)를 한 것 또한 청나라인 것이고요. ❞

❝ 그 점에 대해서는 아까 제시한 문서의 해당 면에 보시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는 중원에 대한 반역에 성공한 후 조선과의 영유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봉금(封禁)하여 의도적으로 만주 일대를 무주지(無主地), 라틴어로는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라는 상태로 선언했습니다.

그 때 우리 조선은 일본과의 전쟁 후에 만주의 반란자들에게 기습을 당하여 그에 대하여 권리회복을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은 정당한 상태의 회복을 위한 주둔이지, 결코 불법점거 중인 상태가 아니란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 조선은 관리를 파견하여 실제적으로 행정력을 복원하여 청나라가 방치하여 행정력 투사조차 못하고 있던 곳의 질서를 회복한 행위일 뿐입니다. ❞

애버딘 백작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친구들을 보내면 오늘 일정상 조-청간의 국경문제에 대한 안건으로 다시 러시아전권공사의 압박을 당해야 하는데 이 쇠고집 친구들은 자신들의 목적도 잊고 자신들의 국경선이 지금 점령지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현재의 점령지보다도 훨씬 서쪽과 북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금 신물이 올라오는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

미친!!

❝ 잠시 쉬었다 합시다. ❞

위통이 심해지자 진정시킬 생각으로 애버딘백작은 잠시 휴식을 요청했다.

“ 허허, 하던 얘기는 끝마치고 하셔야지요. 일을 마무리하고 후련한 기분으로 차라도 마시면서 쉬면됩니다. 나라일이란 것은 일신의 몸이 힘들다고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소임을 게을리 한다면 그 신료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군주에 대한 충성이 아닐 것이오. ”

❝ ···라고 저희 전권대사께서 말씀하십니다. ❞

니네들 나한테 왜이래? 미친 인간들아!

애버딘 백작은 마음속으로 절규하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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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허, 부사께서 고산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 먼 길을 떠나는데 가지고 있던 서책과 지도를 바리바리 챙겨 와서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공을 세우다니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듯 젊어서 경솔한 저를 잘 보살펴 주시니 정말 고산자와 부사께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우신 겁니다. ”

“ 제가 앞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랬겠습니까? 단지 이 친구가 방에 처 박혀서 지리지나 지도만 파고 있길래 견문도 넓혀줄 겸 바깥바람도 좀 쐬게 하려고 강권했을 뿐인데, 그랬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그때는 어찌 알았겠습니까? ”

사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에도 관심이 없고, 성현의 말씀조차 공부하지도 않으며, 각종 지리지와 지도만을 집구석에 틀어 박혀서 공부해온 고산자 김정호는 이번에 가져온 서책들이 무슨 쓸모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멀다는 뱃길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읽으려고 가져온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애초에 고산자 김정호가 사행길에 따라나서게 된 것 자체가 입조사행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예측한 것이라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지도와 지리지만 읽는 학우에게 먼 나라의 실상을 보게 해주고 싶었던 환재 박규수의 바람과 아직 조선에서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의 지리를 직접 알아보고 싶었던 고산자 김정호의 희망이 합쳐진 결과였던 것이다.

아라사와 청이 지난 전쟁 중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서 진주한 조선군에 대한 항의를 조선조정에 하자 그걸 신천명을 지닌 천조에 항의하라며 뭉개버렸다.

그러자 남쪽의 후명잔당-이제는 중국령 대영조정-을 회수 변에서 상대하느라 조선을 직접 손봐줄 여력이 없었던 청나라와 남차이나에서 연합왕국세력을 견제해야 하기에 극동의 전력(戰力)을 조선으로 모두 투사하기에는 부담을 느낀 러시아제국이 차선책으로 연합왕국 외무성에 항의서한을 접수하였다.

이로 인하여 국경 조정에 관한 논의까지 갑작스럽게 튀어 나오면서 뜻하지 않게 연합왕국 외무부장관에게 들이밀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 것이다.

박규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면서 흐뭇한 듯 옆의 김정호를 바라본다.

“ 두···분 ······ 정··부사, 어르신들께 미천한 저의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아까 외무장관 앞에서 말을 더듬기는 했지만 열정적으로 조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료들을 들이밀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평소의 수줍은 태도로 겸양을 보이는 김정호였다.

“ 허허허, 겸양 떨지 마시게, 일만 잘 마무리 되어 조선에 돌아간 후 성상께 이번 입조사행에서의 일을 정리하여 상주하여 올릴 때 고산자의 공을 꼭 적어 올리겠네. 허허허. ”

“ 사실 저··도 이번 사··행길··에 꼭 따라 나서고는 싶었으나, 워낙에 먼 길이라 주저할 때 서장관으로 내정된 위당··이 저에게 꼭 같이 가야··한다고 강권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작게나··마 나··라를 위해 일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니 공이 있다면 위··당에게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의 미··천한 재주를 너무 과··찬하지 말아 주십··시오. ”

자신을 이곳까지 오도록 강권했던 입조사절의 서장관인 위당 신관호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면서 김정호는 수줍게 말을 했다.

“ 그나저나 우리 성상께서 심양왕의 후계자라고 주장한 것이 추후에 문제되지 않을까요? ”

박규수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흥선군에게 말을 건넸다. 그로서는 혹시라도 귀국 후에 흥선군을 포함한 입조사들이 조정에서 탄핵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 제가 과장했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았잖습니까? 요동의 심왕위(瀋王位)가 옛적 원대에 마지막 심왕이 죽은 후 중원이 혼란하여 심왕위의 책봉자가 없었을 뿐이고, 원래 그 자리는 고려의 임금이 원에 입조하면서 책봉된 것이니 그 후 이를 폐한다는 공식적인 칙문(勅問)이 있지 않는 한은 천명을 받은 다른 황제도 전래(傳來)되어오는 예에 따라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니 아무리 명나라 도독이 심양에 주둔하며 다스렸다고 해도 고려에게서 선양받은 우리 태조대왕께 고려의 국왕의 위와 함께 그 권리가 넘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외다.

단지 태조대왕께서 그것을 주장을 안 한 이유는 그것을 주장했다가는 새로이 중원의 천명을 쥔 명나라 황제에 의해 혹여라도 그 권리가 박탈되거나 명과의 전쟁이 있을까봐 아무 말도 안한 것이었지. 애초에 그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더군다나 저들이 지난 전쟁 때 우리 조선이 저들, 천조의 대의에 호응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넌 의군(義軍)을 아라사와의 화평을 위하여 물리라 함은 도리가 아닌 것이지요.

이에 관해서는 제가 입조사의 정사를 맡을 때 성상께서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신 것이니 걱정할 바 없을 것입니다. ”

“ 그래도 기록에 남아 있는 사실을 우리 좋은 대로 해석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너무도 침소봉대하여 주장한 것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

“  정도는 해야 저들도 우리를 얕보지 않겠지요. 그리고 주장하는 거야 우리 마음 아니겠소이까? 그걸 공박하려면 공박하려는 자가 준비해서 논박해야지.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요. 허허허. ”

담담한 말로 흥선군은 박규수를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그 항상 고집스런 표정으로 그들과 회담을 하는 영길리 노신의 낯빛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던 것이 생각났다.

흥선군은 싱긋이 웃으며 자기 앞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마실수록 씁쓸하면서 조선의 차보다 향이 강한 게 오묘하다.

우리 땅에선 누우렇게만 우러나던 차가 이렇듯 벌겋게 우러나며 깊은 맛을 내다니 말이다. 어차피 조선에 돌아가면 종친으로 명예직이나 다시 전전할 몸인데 조선 차로 이렇듯 벌겋게 우릴 방법을 한번 궁리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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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직업 외교관인 브룬나우 백작(Ernst Philipp Graf von Brunnow)은 항상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브룬나우 백작은 자신이 외교관으로 봉직하는 러시아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독일인이었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소양을 갖추고 있었기에 러시아 태생이 아님에도 러시아제국 차르의 신뢰를 받아서 제국의 이익을 위해 유럽 각국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성실한 독일 사람은 연합왕국의 외무장관인 애버딘 백작의 수명이 줄어들게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푸석한 얼굴로 수상에게 오늘 브룬나우 백작과 조선 사절단을 상대한 회담을 보고하는 에버딘 백작은 최근 몇 달간 부쩍 늙어 보였다.

“ 차라리 프랑스의 짜증나게 하는 뻔뻔한 수다쟁이들과 협상하는 것이 훨씬 쉽겠습니다. 휴우~ ”

“ 동감이오. 문명국 간의 외교에 익숙지 않은 동방사람들이나 러시아 야만인들에 비하면 프랑스 떠버리 놈들은 짜증이 나긴 하지만 훨씬 순한 맛이지요. ”

“ 일단 브룬나우 전권공사와는 조청간의 국경에 관한 분쟁은 우리 소관이 아님과 추후의 논의 과제임에 합의 했습니다. 그로서도 동방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적힌 몇 장의 공문가지고 우리와 협상하기에 난감했겠지요. ”

“ 러시아의 항의를 동아시아의 외교관례를 들어 우리 쪽에 떠넘기다니? 국력으로는 러시아를 상대하기에 벅차니까 교활한 친구들이에요. 조선 사람들은 말이죠. ”

“ 입에서 나오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태도를 보면 그렇지요. ”

“ 일단 조선과의 외교관계를 정리해야 러시아 친구들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겠군요. ”

“ 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동안 제 불쌍한 위장이 버텨낼 수 있다면 말이죠. 아메리카의 건방진 녀석들과의 국경분쟁도 협의해야하는데 말입니다. ”

총리는 자신의 눈에 걸친 돋보기를 자신의 왼손으로 벗으면서 나폴레옹전쟁 때부터 30여년을 연합왕국의 외교관으로 성실하게 봉직한 자신의 내각 외무장관을 살짝 연민의 눈빛을 담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 애버딘 백작, 좀 미안한 얘기인데, 요즘처럼 경의 얼굴표정에서 인간다움이 보인 적이 없소이다. ”

“ 뭐, 상식을 벗어난 사건이 연속되니 그만 제가 절제력을 잃었었군요. 죄송합니다. ”

“ 아니, 그런 뜻은 아니오. 어찌되었건 동방에서 온 손님들의 접대를 잘 해주리라 믿소. ”

총리집무실에서 두 사내는 연합왕국을 위한 다른 외교 사안에 대해서 대화의 주제를 넘기며 일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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