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대영제국, Great Britain ? 大英? 2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메리, 메리에요. 메리 앤 에반스 (Mary Anne Evans), 기억해 주세요. ”
급하게 뛰어가려던 그녀가 등을 돌리고는 대답을 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다시 몇 걸음 걸었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다시 되돌아 왔다. 그러고는 서류봉투의 귀퉁이를 뜯어내어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낸 연필로 뭔가 적어서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 워릭셔(Warwickshire)의 코번트리(Coventry)로 오셔서 찰스 브레이(Charles Bray)씨의 로즈힐(Rosehill)을 찾아오시면 돼요. 모두들 반겨 주실 거예요. 전 그럼 이만,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손을 흔들며 그녀는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멀리 뛰어가는 정신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김병한은 살짝 옆의 종제(從弟)를 쳐다보았다. 녀석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 얼이 빠져 있었다. 이국의 여인에게 반하기라도 했는지 말이다. 별로 미인도 아니었는데 이 녀석은 그녀에게 무엇을 느꼈기에 저러는 건가?
••••••••••••••••••••••••••••••
연합왕국 외무성 건물에 한 젊은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 오늘은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 ”
사주의 사위라서 항상 자신만만한 빌어먹을 편집장만 아니면, 이렇게 한량없이 밖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어딘가의 식당같은 데서 접대를 받으면 편하게 기사를 작성할 수도 있을 텐데. 뒷배 없는 한같 기자인 자신의 신세가 오늘따라 조금은 처량하다 느껴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연합왕국 외무성에서 실무 조정을 위해서 상국 관리들과 회담을 한 박규수는 연합왕국 외무성 관리들과의 회담을 마치고 나서, 윤경(倫京)시내를 돌아보기 위하여 외무성을 나섰다.
김대건을 대동하고 나서는데 그의 뒤에서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
그들을 불러 세운 사람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한손에는 수첩을 들고 있는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지갑을 꺼내어 그 속에 있던 명함을 김대건에게 건넸다.
❝ 저는 모닝 크로니클(The Morning Chronicle)의 기자 윌리엄 하워드 러셀(William Howard Russell)이라고 합니다. 잠시만 저희 신문과 독자를 위하여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
그가 건넨 명함을 받아든 김대건은 명함에 기재된 그의 이름과 소속을 살피고는 옆의 박규수에게 말했다.
“ 부사영감, 이곳의 신보(新報)에 소속된 정탐꾼이라는데 어쩌시겠습니까? 지난 몇 달간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이자들은 이곳 상국에서는 정식 관원은 아니지만 꽤나 대접받는 자들입니다. 상국 백성들에게 우리 조선에 대해 좋은 말을 써준다면 앞으로 상국이 우리 조선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는 할 겁니다. ”
“ 그렇게 하세나. 여기 서서 환담을 나누기에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으니 어디 한적한 곳을 찾아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나. ”
박규수의 말을 들은 김대건은 그들의 앞을 막아 선 러셀을 보며 말을 했다.
❝ 저희 부대사 각하께서 이곳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니 가까운 커피하우스에라도 가서 앉아서 취재에 응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디 가까운 곳에 대화를 나눌만한 적당한 곳이 있을까요? ❞
❝ 예, 제가 마침 이 근처에 제가 아는 좋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죠. ❞
。
。
。
。
。
❝ 그럼, 부대사 각하께 마지막 질문을 여쭤보겠습니다. 저희 신문이 취재를 통해 조선왕국의 역사를 알아보았더니 조선 국왕께서 만츄리아와 조선왕국 두 영지의 계승권을 가진 군주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만츄리아의 경우 청나라에서 아시아대륙 북동방면의 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 지역에 대한 해법은 따로 있으십니까? 본지 취재에 의하면 러시아제국에서 파견된 전권공사인 브룬나우 백작(Ernst Philipp Graf von Brunnow)이 우리 외무성에 이에 관련된 항의서한을 접수했다고 합니다. 조선왕국 측에서 주장하듯이 빅토리아 여왕폐하의 수위권을 인정하신다면 여왕폐하의 지시로 그 지역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실 의향도 있으신가요? ❞
접견 내내 독자들에게 조선왕국에 대한 소개기사를 준비 중이라면서 조선왕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질문만을 하던 러셀이 마지막으로 민감한 질문을 치고 들어 왔다.
통역을 하던 김대건은 러셀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박규수에게 통역을 하였다.
“ 부사영감, 이 질문에는 답을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칫 대답에 실수하기라도 하면, 윤경(倫京, 런던) 전체에 신문이 인쇄된 후에 영길리 사대부(젠트리)들에게 퍼지게 되었을 때 수습하기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
“ 아닐세, 저 탐보꾼에게 대답을 피하기라도 하면 온갖 억측에 더 어려운 상황에 쳐할 수도 있을 터이니 이럴 때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일세. ”
박규수와 김대건은 서로 속삭이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곧이어 러셀기자에게 박규수는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 미스터 러셀,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질문으로 시간을 끄셨구려. ❞
❝ 그건 저의 의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희 신문의 독자들이 궁금해 하실 질문만 하다 보니 부대사 각하께서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답변을 통해 연합왕국 여론에 조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가능한 솔직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러셀의 형식적인 사과와는 별개로 박규수는 어차피 답변해야할 것 크게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 일단 해삼위에 대한 아라사의 주장은 정당한 영토주권자인 조선왕국을 배제한 청과 아라사 양측간의 거래가 제국법(Law of Nations)상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거래이므로 이런 불합리한 주장에 조선왕국이 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 조선왕국과 조선외교사절단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
❝ 그렇다면 부대사 각하의 개인적인 견해는 어떻습니까? 러시아제국 측이 강하게 조선왕국 내각에 압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
러셀기자는 뭔가 자극적인 입맛을 맞춰줄 수 있는 박규수의 실수를 원하는지 한 번 더 박규수의 개인적인 견해는 어떠한지 물어왔다.
❝ 저 개인적으로도 천하만방의 천자가 되신 황상폐하께서 여황폐하의 자애로움에 감화되어 스스로 찾아온 조선에게 그런 부당한 칙유(勅諭)를 내리시지는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공동체 맹서문(커먼웰쓰 조약) 조인에 있어서 조선이 내·외정에 있어서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주국임을 확인하여 주셨으니 설혹 황상의 칙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조선왕국에 그 칙유를 따라야할 의무는 없는 것이지요. ❞
물었다. 이건 대어다. 러셀은 박규수의 이런 발언을 놓치지 않고 다시금 물어왔다.
❝ 그렇다면 이번에 조인한 커먼웰쓰 조약의 효력이 사실상 실질이 없는 형식상의 것이었다라고 해석한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
“대감, 아무래도 여기서 접견을 마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속셈을 너무 쉽게 밝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아라사의 위협을 피하려고 형식적으로 입조를 한다는 비난으로 민심이 들끓게 되면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
통역을 하던 김대건이 조용히 박규수에게 이만 접견을 마치고 자리를 뜰 것을 권했다.
“ 아닐세, 이럴까봐 내가 이 질문에 응한 것이니 여기서 끝을 봐야지. ”
❝ 실질이 없다니요? 공동체 맹서문의 먹이 마르기도 전에 그 맹서의 형해(形骸)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 조선은 황상의 자애로움을 밝히기 위해 부렬전 본국과 함께 천하만방의 어떠한 고난도 함께 해쳐나갈 것이외다. 그런 조선에게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처우를 해야 할 부렬전 조정과 황상께서 그런 칙유를 내릴 리 없다는 말이외다. 그러니 가정으로라도 그런 질문은 하셔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그리고 이런 내 뜻에 왜곡됨이 없게 분명하게 기술하여 부렬전 사대부들에게 제 뜻이 전해지도록 해주시오. 그렇지 않을 경우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외다. 그럼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으니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합시다. ❞
야만국에서 온 미숙한 외교사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강경하면서도 원칙적인 말로 무난하게 마무리하다니. 대개의 경우 이렇게 비꼬면 스스로 격분해서 말실수하기 마련인데 무난하게 답변을 했다. 러셀은 애매하다고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 부대사 각하께서 마지막 질문이 불편하셨다면 기사에서는 빼겠습니다. 그리고 부대사 각하께서는 곤란하지 않고, 우리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게 적절하게 구성해서 기사를 내지요. 그럼 오늘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조선왕국에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특파원으로 조선왕국에 가게 되면 그 때는 저를 잊지 마시고 편의를 부탁드리지요. ❞
❝ 허허허, 내 발언이 곡해만 되지 않는다면 기사에 실어도 상관은 없소이다. 그리고 머나먼 원방(遠邦)에 찾아오신 객이라면 정성을 다해서 모실 테니 언제 한번 우리 조선에 직접 내방하셔서 부렬전에 우리 조선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시면 좋겠소이다. ❞
❝ 물론입니다. 기사내용은 아주 호의적으로 써드리지요. 대신 조선에서 예쁜 아가씨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것 잊지 마십시오. ❞
조선인이라면 조금은 천박하게 느낄 수도 있는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조선사절단의 부대사인 박규수와 러셀기자의 접견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잠깐이면 된다던 러셀기자의 말과는 달리 벌써 2시간이 넘게 소요된 후였다.
••••••••••••••••••••••••••••••
『 ······ 조선왕국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이 주창했던 철인정치를 현세에 구현하고자 하는 고대 중국에서 발현된 통치철학과 규범론의 토대에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철학과 같이 우주(universe)의 성립과 이치에 관한 고찰을 주로 탐구하는 일단의 철학자 집단이 관료가 되어 통치하는 국가입니다. 역시 조선국왕은 그자신이 철학자이기도 하며, ··· 중 략 ··· 조선의 국왕은 만츄리아와 조선 두 영지를 다스리며 옛날 몽골제국의 선제후회의(Imperial Electoral college)인 쿠릴타이(Quriltai)의 구성원입니다. ··· 중 략 ··· 그들의 국가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중재자의 지위로서 입조라는 전통적인 외교행위를 통한 그들의 승인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는 차이나 황제의 권위가 결정되어 왔던 것입니다. ··· 중 략 ··· 이러한 조선의 젠트리(Gentry)들은 사대부라고 불리우며 그들은 자신의 굳은 정신과 충성의 상징으로 작은 도끼를 소지하며 이를 빼앗는 것은 그들의 명예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봄 버킹엄 궁 앞에서의 동방 아시아인들 간의 쌍방폭행사건!! 그 때 도끼를 휘두른 동방 아시아인들이 바로 조선의 젠트리들이었다. 그들에게 남차이나인들이 모욕적인 언행을 해서 그들의 정신의 상징인 도끼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행위에는 우리 유럽의 기사도정신(Chivalry code)에 비견할 고결한 정신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 중 략 ··· 이를 야만으로 매도했던 우리의 오해를 반성해야할 것이다. ··· 중 략 ··· 이러한 동방왕국 조선의 연합왕국에 대한 입장은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선 부대사인 박규수경의 발언을 인용하자면 연합왕국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온다면 조선왕국은 언제든지 동맹국으로서 커먼웰쓰 조약에 의한 의무를 다할 것이며, ··· 중 략 ··· 연합왕국과의 협력증진을 통하여 여왕폐하와 연합왕국의 영광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
커피하우스의 실외 테라스에 앉은 젊은 독일인은 펼쳐서 보고 있던 신문 ‘The Morning Chronicle’을 접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는 스콘 한조각과 커피 한잔이 놓여 있었다.
“ 이 순진한 동양인들은 욕심 많은 부르주아들에게 박해받는 노동자들의 참상을 목격하지 않아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브리튼을 찬양하고 있는 거지. 철학자 집단이 통치하는 나라라고? ”
이렇게 중얼거린 사내는 자신의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서 코에 갖다 대고는 향을 음미했다.
“ 흠, 향이 좋군. 원두를 어디 것을 쓰지? 나갈 때 원산지가 어디인지 알아봐야겠군. ”
브리튼 어딘가의 방적공작에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결코 싸구려로는 보이지 않는, 아니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고급원단을 소재로 만든 신사복을 차려입어서 말쑥하게 꾸민 이 사내는 행동마저도 그 옷차림에 어울리게 부르주아적으로 고상을 떨고 있었다.
“ 그들은 이곳의 실체를 알면 결코 이곳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품을 리 없을 거다. 이 순진한 학자들과 만날 수 있다면 추악한 진실을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을 텐데 ······. ”
커피잔을 손에 쥔 채로 작은 원을 그리면서 그는 코로 향을 맡는 행동을 계속하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노동자의 참정권운동인 차티스트운동에 관여하고 있던 그는 원래 예정대로라면 작년에 독일로 돌아가서 모국에서 노동자운동을 조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에 차이나에서 연합왕국 여왕을 황제로 모시겠다는 사절단이 왔다는 소식에 재미있을 거란 생각으로 연합왕국 체류를 조금 늘렸다.
그러던 것이 올해 있었던 타타르군의 런던 진군 소문으로 인한 혼란사태에 휩쓸려서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도 이곳 런던에서 시간을 죽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곧 1846년이 된다. 더 늦기 전에 유럽대륙으로 넘어가기는 해야겠다. 그전에 이왕 늦은 것, 간악하고 타락한 자본가들에게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어쩌면 동포들을 위선적인 자본가들의 착취에 넘기게 될지도 모를 저 동양의 젊은 철학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