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대영제국, Great Britain ? 大英? 2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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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렇게 자칫 잘못하면 다치니까 여기서 조심하고 ······ ”
신관호는 오늘도 그를 찾아온 이국 소년에게 활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제 오늘로 이녀석을 가르치는 것이 마지막이구나. 상국의 도성이 예전처럼 조선에서 가까운 북경이여도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아쉬워할 판인데 바다를 몇 달씩 건너서 와야 하는 이곳 부렬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이 다시금 이 땅, 부렬전에 올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니 다시 올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다시 올 때에 맞춰서 이 아이가 자신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자신이 쓰던 습사용 향각궁(鄕角弓)을 소년에서 주었지만, 다시는 못 볼 어린 제자에게 주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다.
“ 아저씨, 그래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아, 제가 팔 힘만 좀 더 쌨다면 좋았을 텐데 진짜 어렵네요. 정말 이활은 신기해요. 우리 잉글랜드 롱보우보다 작아서 이정도면 아직 어린 저라도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작은데도 롱보우만큼 강한 팔 힘이 있어야 제대로 다룰 수 있다니 말예요. 그래도 이 작은 게 롱보우 만큼의 위력을 내니 제가 아저씨한테서 좀 더 훈련 받으면 보우 마스터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죠? ”
이 녀석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아직 말을 못했다. 신관호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말 해줘야한다. 지금도 이 녀석은 내가 이곳에 계속 있을 거라 짐작하고 종알거리고 있지 않은가?
“ 저 ······ 얘야, 내가 할 말이 있구나. ”
“ 예? 뭔데요? 빨리 말하세요. 저 연습해야 하니까요. ”
이별을 고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구나. 이런 녀석에게 이별을 말해야 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구나.
“ 오늘이 너를 가르치는 마지막 날이로구나. 내 다시 내 나라로 떠나야 한단다. ”
“ 예? 인도로 다시 가시는 건가요? ”
아이는 동방의 나라라면 인도라고 생각했다. 장차 꿈이 인도에 가서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 아니, 인도가 아니라 조선이란다. 이곳에서 동방으로 배를 타고 몇 달간 가야하는 아주 먼 곳이란다. ”
“ 그러니까 인도로 가신다는 말씀이잖아요? 인도에 있는 조선. ”
이곳 부렬전 사람들이 조선이 어디에 붙어 있는 땅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천하에 손꼽힌다는 국력을 가진 대국인 부렬전조차도 조선 사람들은 입조하기 전까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으니, 대국 사람들이 소국인 조선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걸 말해 무엇 하리 ······.
“ 저, 아저씨. 안가시면 안 되나요? 집이 없으시면 우리 집에서 사시면서 저한테 활 가르쳐주면서 살면 되잖아요? ”
자신의 옷소매를 붙잡은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난 나랏일로 이곳에 온 거란다. 그러니 이제 공무가 끝났으니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 원래 사람의 일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란다. ”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한 신관호는 그만 자신도 눈물이 나버렸다. 잠시간 기특한 마음에 활만 잠깐 가르쳐 주려고 시작한 것이 얼떨결에 제자로 삼게 된 것이었다. 단지 그런 것일 뿐이건만 이렇게 슬프다니 ······.
“ 울지 마라. 어디에 있어도 넌 내 제자이니, 일생동안 다시 못 보더라도 내가 가르친 것을 네가 기억을 해준다면 우리는 어디든 이어진 것이니라. 그리고 이것, 너에게 주려고 만든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열심히 활을 익히도록 해라. 글공부도 열심히 익히고. ”
신관호는 품에서 활 쏘는 모습과 활을 관리하는 모습을 세세히 그린 교본을 아이에게 건넸다.
“ 그리고 이건 네게 가르쳐주지는 못했지만, 그림으로는 그려 놓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익혀보도록 해라. 위험하니 항상 조심하도록 해야 한다. 활이 능숙해진 후에 익히도록 해라. ”
그는 소지하고 있던 통아와 애기살까지 전해 주었다. 혹시라도 입조를 위해 부렬전으로 오는 물길에 수적이라도 만나게 되면 쓰려고 특별히 챙겨 왔던 물건들이었다.
“ 아저씨, 감사해요. ”
아이는 꺼윽꺼윽 서럽게 울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고는 받은 선물을 소중한 듯 품에 꼬옥 안았다.
“ 그리고 이것은 내가 아끼는 것이니 습사할 때는 쓰지 말고 기념으로 가져라. 귀한 것이니 나를 잊지 말라고 주는 것이다. 손질은 항상 해야 한다. 내가 가르쳐준 손질방법은 잊지 않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교본에 그려두었단다. ”
신관호는 원래는 줄 생각이 없던 흑각궁(黑角弓)까지 아이에게 주었다. 이것은 평소 신관호가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다. 그로서도 아이와의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웠기에 귀한 물건도 선뜻 내주게 되었다.
“ 아, 그러고 보니 아저씨,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절대 잊지 않을게요. 가르쳐 주세요. ”
그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차피 금방 헤어질 것이라고 통성명도 하지 않았구나.
“ 신관호, 신관호라고 한다. ”
“ 쉰쿠안호우? 쉰칸허우? ”
아이는 조선말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해서 마치 중국말을 하는 것처럼 발음을 했다. 이 아이와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텐데 이름자를 잘못 기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신관호는 잠시 생각한 후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 아니다. 그냥 신헌(申櫶)이라고 기억하도록 해라. 내 너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앞으로 신헌이라 칭하겠다. ”
“ 쉰 헌? ”
“ 그래, 그게 내 이름이다. 기억해 두도록 해라. 그러고 보니 나도 너의 이름을 모르는구나. 그래,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
“ 제 이름은 존이에요. 존 플레밍 처칠(John Fleming Churchill)이에요. 저 성인이 되면 반드시 인도에 취직해서 아저씨 찾아 갈게요. 그 때 다시 만나요. 그리고 활 쏘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세요. 아니 제가 보우마스터가 되어서 아저씨한테 도전할 테니 기다리세요. 알겠죠? ”
“ 그래, 그러자꾸나. 얘야. 존, 내 너의 이름은 절대 잊지 않을 테니 다시 만나게 되면 꼭 그리하자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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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내일이면 조선사절단이 귀국을 하게 되는 군요. ”
의회에서 곡물법(Corn Act)폐지나 관세조항의 부분적 개정을 위하여 반대파들을 설득하던 로버트 필은 잠시 쉬던 중 조선관련 외교업무 때문에 몇 달간 위염에 시달렸다는 외무장관 애버딘 백작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 러시아의 남방위협만 아니었으면 그자들에게 그렇게 시달릴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그자들을 돕지 않으면 자칫 거대한 중국대륙과 태평양이 러시아세력권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입니다. ”
“ 단순히 청왕조와 조선왕국간의 국경분쟁 따위였으면 그깟 동방왕국이야 우리 대브리튼에서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겠지요. 하지만 러시아가 끼어들었으니 ······ 그들의 나라는 운 빨이 기가 막혀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등한 파트너의 자리를 요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
내각수상은 말끔하게 면도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애버딘 백작에게 대꾸했다.
“ 뭐, 그래도 아프리카 토인국 추장이나 인디아의 라자들보다는 말이 통했습니다만, 덕분에 지난 몇 달간 살이 10파운드나 빠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그치들에게 복수를 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 작자들이 제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도록 만들 겁니다. 하하하하. ”
수십 년 동안 연합왕국의 외교전선에서 싸워온 애버딘이 패배한 몇 안 되는 상대였던 조선 전권대사와의 재대결을 말하면서 애버딘은 즐겁게 웃어재꼈다.
“ 하하하, 연합왕국의 외무장관은 원래 그런 자리죠. 지구를 양 어깨로 감싸고 있는 대브리튼의 핵심 요직 아닙니까?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 자리는······. ”
총리의 추켜세워 주는 발언에 기분이 좋아진 애버딘 백작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 태평양에서 태평양까지, 대서양에서 대서양까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가이지요. 수상각하 ”
“ 그렇지요. 해가 지지 않는 제국 ······,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 좋은 별명이 되겠군요. 해가지지 않는 제국. ”
필 총리는 의자의 팔걸이에 어깨를 걸친 채로 계속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을 읊조렸다.
“ 헤로도토스 인가요? 아마도 그 비슷한 말이 나오는 게? ”
로버트 필은 자신이 읊조리던 말의 원전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그 말을 옆에 있는 애버딘 백작에게 확인하려고 물었다.
“ 뭐, 충분히 쉬었으면 제국의 신민들을 위해 계속 일을 해볼까요? ”
애버딘 백작을 그렇게 말하고는 총리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업무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를 보낸 후 총리는 과중한 업무에 지쳐 피곤해진 눈을 두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읊조렸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 그렇다면 그 제국의 해가 지는 날은 언제가 될 것인가? 그게 우리 브리튼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명제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영광은 누구를 위한 영광인가?
제국에 닥쳐오고 있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필사의 힘을 짜내고 있는 총리로서는 업무에 치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털면서 자신의 다음 업무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에 올라탔으면 달릴 수밖에 없다. 그 말이 멈출 때까지 말이다. 프린스 흥선과의 마지막 예방에서 그가 건넨 말이었다.
중국 속담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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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면 여러분들은 공식적으로 외교사절이 아닌 유학생이 되는군요? ”
“ 예, 덕분에 그렇게 되었네요. 이곳에서의 날들이 기대가 됩니다. ”
“ 이보게, 사영(思穎), 나는 이곳에 관원으로서 남아 있는 걸세. 따로 이곳에서 하고픈 공부는 하도록 허락받기는 했지만 말일세. ”
“ 경범(景範, 조병준)께서 공무로 이 땅에 남으신 것이야 잘 알지요. 흥선군께서 경범의 일을 애써 힘껏 도우는 조건으로 저희를 이 땅에 남겨둔 것 아닙니까? 부렬전 천조에 사신이 상주하는 관헌(官憲)을 설치하는 중임을 말입니다. ”
조선에서 온 젊은이들과 친우가 된 글래드스턴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지난 몇 달간 보아온 그들은 훌륭한 인품을 갖춘 문명인이었다.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신의 뜻이 있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리라.
그들의 땅에 선교사도 가지 않았는데 스스로 신의 뜻을 받아들인 카톨릭 신자들이 있다지 않는가? 우리 브리튼의 성공회도 조선에서 언젠가는 뿌리를 내리리라. 글래드스턴은 그 앞의 친우들도 그 길을 걷기를 소망하며 잠깐 눈을 감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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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군은 뱃전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항구를 쳐다보았다. 이제 그가 지난해부터 몰두했던 입조사의 일이 끝났다. 당초에 임금이 자신에게 명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으니 자신의 소임은 이제 다한 것이다.
종실의 일원으로서 이런 중요한 나랏일을 맡을 일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종친의 체면치레를 위한 명예직이나 전전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도락(道樂)이나 즐기면서 납작 엎드려 지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임금이 되지 못한 종친의 역할이란 딱 그 정도이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조선에 돌아가면 이곳에서 맛들인 가배와 흑차를 달여서 마실 궁리나 해보아야겠다. 이곳사람들처럼 다점이나 하나 개점해서 도성의 사대부들이 차를 마시면서 세상만사에 대해 논의할 장소나 하나 마련해 볼까? 그곳에서 여러 선비들의 고견을 들으며 난을 치는 생활도 괜찮을지 모른다.
아니다. 혹여 불충한 자들이 그 다점에서 음모라도 꾸미면 천수를 누리기는 틀린 일이겠구나. 때를 기다리면 어쩌면 내 자손이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에 손이 귀한 왕실이 아니던가? 그 때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자중하며 떨어지는 잎사귀에도 몸을 사려야할 때였다.
선수에는 그가 새로 만들어서 걸어놓은 조선태극기가 천조 부렬전의 영태극기과 함께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영태극기를 휘날리며, 조선이 나아가게 될 방향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흥선군은 복잡한 생각은 그만하고 차나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선실을 향해 내려갔다.
❝ 프린스 흥선, 우리 와인이나 한잔 하십시다. ❞
결국 조선유람을 오겠다며 끈덕지게 따라붙은 앙리5세가 불란서 머루주 병을 흔들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먼 길을 유람하면서도 자신이 즐기는 애주를 잔뜩 챙겨온 그였다. 마조각에서 수학한 김대건과 김병한의 말로는 불란서국 사람들은 저 머루주를 물처럼 애용한다고 하였지?
낮술이라, 그래 이런 날 낮술 한잔 정도야 괜찮겠지? 차는 다음에 마셔야겠다. 저 사람도 한 나라의 왕족으로 나만큼이나 답답한 삶을 살고 있으니 같이 한잔 대작하면서 서로 위로나 해줘야겠다.
❝ 알겠소이다. 내 곧 내려가리다.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