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흑선내항 (黒船來航)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이것 좀 보시오. 섭정. 지금 내게 그 말을 믿으라고 한 말이오? 차라리 배가 침몰했다고 둘러댈 것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 ”
“ 봉행,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적은 저희도 처음인지라 ······. ”
“ 새로 나라가 들어서고 황제가 즉위했으니 자기네들이 먼저 사신을 보내와 입조조공을 바치라고 압박하고 명령한 놈들이 막상 사신을 보냈더니 황제가 없으니 사여품(賜與品)을 내어 줄 수 없다고 황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도 황당하건만, 어영부영 1년이 넘게 붙잡아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는 황제가 오지 않으니 물건만 놓고 그냥 돌아가라 그랬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란 건가? 믿을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소? 애초에 황제가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무엇보다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중원놈들이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모르고 사여품도 없이 물건은 두고 빈손으로 돌아가라 했다는 것도 그렇고. ”
목에 핏발이 서도록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던 사내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살의(殺意)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쏘아 보면서 계속 말을 했다. 허리춤에 찬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 네놈들이 이런 뻔히 보이는 거짓부렁으로 속이려 하다니? 내가 그리도 멍청해 보였는가? 아니면 우리 사쓰마가 그런 거짓말로 모면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게 보이던가? ”
류큐국 최고 의정기관인 평정소(評定所)에 난입해서 류큐국 대신들을 윽박지르는 자는 사쓰마에서 파견되어 상주하고 있는 재번봉행(在番奉行) 난고 타치로(南郷太次郞)였다.
“ 봉행께서는 제발 노여움을 거두시고 진정하시지요. 이게 저희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 나라가 세워졌으니 입조를 하라던 놈들이 이렇듯 무도한 도적놈들일 줄은 사쓰마에서도 미처 모르셨지 않습니까? ”
동석해 있는 류큐 삼사관(三司官)들이 이구동성으로 길길이 날뛰고 있는 난고 타치로를 진정시키고 달래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류큐 사람들을 감시하고 핍박하기 위해서 사쓰마에서 보낸 이자는 류큐 조정대신들이 달래려고 저자세를 취하자 더욱 기가 살아서 소리를 쳤다.
“ 그래서 우리 사쓰마가 잘못한 일이고 너희들은 시켜서 한 잘못 밖에는 없다 발뺌하는 것인가? 너희들이 잘했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겼겠느냔 말이다.”
사쓰마의 하급무사에 불과한 그가 한나라의 최고 의정기관에 난입해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것은 류큐국이 사쓰마번(薩摩藩)의 속방(屬邦)이기 때문이었다. 일개 번(藩)에 예속된 속번(屬藩)에 불과한 상황이 류큐의 현실이었다.
“ 머저리같이 배 가득 실어간 조공품은 압류 당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여지껏 천조를 칭하던 중원 놈들이 그런 짓을 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단 말이더냐? 이건 필시 너희 류큐놈들이 사쓰마를 배신하고 딴 꿍꿍이를 품었음이 분명하다. 난 번주(藩主)께 이일을 보고할 테니 너희들도 따로 알아서 해명하고 손실된 재화를 모두 배상하도록 해라. ”
한참을 뭐라 뭐라 욕하면서 날뛰던 난고 타치로는 제 분을 못 참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주먹으로 탁자를 쿵하고 쳤다.
그러고는 무례하게도 인사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평정소에서 나가 버렸다.
평정소에 남아 있는 류큐국 섭정(攝政)인 상원로(尙元魯)는 난고가 나간 뒤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어 쉬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 미천한 놈을 상전이라고 모셔야하는 자신들의 신세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 휴우, 여기 앉아 계시는 세분 법사들께서는 이를 어쩌면 좋겠소? 애초에 두 곳에서 천조를 칭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럴 것 같아서 중원의 정세를 보아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었는데, 자신들이 욕심에 차서 조공품을 잔뜩 실고 가도록 해놓고서는 이제와 저러니 말이오. ”
“ 그러게 말입니다. 애초에 우리 잘못은 가운데에 껴서 하라는 대로 한 것 밖에 없잖습니까? 저 영국(남경 후명잔당)이란 놈들이 이토록 상식도 예절도 모르는 무뢰배인 걸 모르고 입조한다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던 것은 사여품을 탐낸 저들 사쓰마의 실책이잖습니까? ”
유일반(酉日番) 법사(法司)인 향양필(向良弼)이 섭정의 말을 받아서 사쓰마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기도 했다. 그들은 사쓰마에게 재화를 만들어 바치는 노예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 그나저나 어쩌시겠습니까? 재번봉행이 사쓰마에 보고를 한다고 하니, 우리도 늦지 않게 사쓰마 번주에게 사죄사를 보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뭔가 대책을 내놔야 하지 않냐는 발언을 하는 이는 사일반(巳日番) 법사 마윤중(馬允中)이었다. 사쓰마가 류큐에 행패를 부리기 전에 뭔가 해서 무마해야 하기는 했다.
“ 뭐 어쩌겠소? 우리 중 누군가가 가야지요. 누가 가고 어떻게 무마할지를 의논해야하지 않겠소? ”
추일반(醜日番) 법사인 마덕무(馬德懋)가 향양필을 보면서 말을 했다. 이것은 이중에서 가장 연배가 어린 향양필에게 일을 미루는 것이었다.
그럴 만큼 사쓰마에 가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 그러면 영국 도적놈들에게 빼앗겨버린 재물의 벌충은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도 세금과 역(役)이 과도해서 인두세라도 줄여보겠다고 백성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판에 백성들을 어떻게 더 쥐어짭니까? 전 못 합니다. 지금도 과중한 수탈에 시달리고 있는 백성들을 보면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
또 눈물을 쥐어짜는 향양필을 보면서 섭정 상원로는 한숨을 내어 쉬면서 말을 했다.
“ 휴우, 어쩌겠소. 내가 봐도 백성들에게 염출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니 우리 관원과 귀족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보태고, 모자라는 재화는 전하의 내탕금에서 내어 주시길 청합시다. 그러고도 모자란 것은 백성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거둬들여야겠지요. ”
“ 애초에 사쓰마 놈들이 개국입조니 다른 때보다 크게 뜯어 먹을 수 있다며, 무리하게 재화를 싣고 가게 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비참한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놈들이 벌인 일이거늘 왜 우리가 고통 받으며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까?”
격분해 하는 삼사관(三司官) 마윤중이 격분해서 화를 터뜨렸다. 평정소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말이다.
“ 조용하세요. 사쓰마 놈들이 들으면 빌미를 또 주게 됩니다. 저놈들의 행패에 분하신 것은 알지만 우리에게 힘이 없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저들에게서 벗어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분해하고 울먹이는 삼사관들을 달래는 섭정 상원로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서 그렁그렁했다.
작고 약한 나라의 설움을 참아낼 수 없는 것은 류큐의 재상이랄 수 있는 섭정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한 사쓰마번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말은 자신도 기대하지는 않았다.
힘을 키울 기회조차 못 가질 정도로 사쓰마는 류큐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수탈했다. 거기에다가 중국이 갈라지기 전 청나라도 유구처럼 작은 번방은 그저 자신들의 위신을 세워주는 패에 불과했었다.
매번 사신을 보낼 때마다 은연중 류큐가 왜구들에게 부당하게 핍박받고 있음을 고하고 구해줄 것을 청했지만 그들은 모른 척 할 뿐이었다.
차라리 청조의 막강한 군대를 불과 일만 명의 정병으로 화북으로 몰아냈다는 영길리군사들이 류큐에도 건너와서 청조에게 했던 것처럼 사쓰마 놈들에게 혼쭐을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놈들이 상전으로 올라앉아도 사쓰마 놈들보다는 자애롭지 않겠는가?
••••••••••••••••••••••••••••••
“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대감. ”
흥선군은 선실에 틀어박혀 앉아서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환재 박규수는 답답한 선실에만 있기 힘들어서 갑판에 가서 바깥 숨을 좀 쉬다가 다시 선실로 들어가던 중 팔짱을 끼고는 뭔가 궁리하고 있는 흥선군을 보고는 말을 걸었다.
“ 아, 그냥 상국(上國)에서 본 문물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 입조의 대업을 무사히 완수하셨으니, 이제는 그만 부렬전에 대해 신경을 안 쓰셔도 되지 않습니까? ”
어차피 국정에 참여하는 데에 제약이 있는 종친의 몸인 흥선군이 부렬전 천조에 대해 생각해보았자 좋을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부렬전을 떠난 후에도 저렇게 골똘히 계속 뭔가를 궁리하고 있었다.
박규수는 그런 흥선군이 걱정되었다. 같은 문하에서 배우고 익힌 아끼는 후배이기도 했던 것이다.
“ 아무래도 부렬전의 문물을 조선에 적용시키려면 재화가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재화를 어디서 염출(捻出)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 애초에 성상께서 대감께 명하신 일은 모두 달성했습니다. 여기서 더 뭔가를 하려다간 말 많은 이들에게 빌미나 주게 되어 다치기 십상이니 그에 관련한 일은 이제 그만 생각하시고 시간이 나시면 난이나 치시지요. ”
“ 아니요. 아닙니다. 성상께서 제게 명하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해서 그럽니다. 분명 성상께서는 조선과 왕실의 위엄을 높이 세울 수 있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입조에 성공하여 적어도 동역(東域)에서는 제일번국의 지위를 갖게 되었으나, 우리가 부렬전에서 본 것을 되짚어 보면 뭔가 빠진 느낌입니다. ”
흥선군은 박규수를 처다 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 분명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입조에 성공한 것으로 조선과 왕실의 위엄이 높이 세워지고 백성을 편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계속 말하는 흥선군이었다. 그는 추사의 문하에서도 어떤 일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때면 마치 자신이 정승이라도 된 양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자신의 명줄을 위협하는 일일 수 있음에도 말이다. 자신의 학우를 그만큼 신뢰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 당장 천조에서 원군을 보내고 군영을 지어 아라사와 청조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했지만, 우리의 힘으로 그런 것을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의 필요가 다 했을 때 버림받게 될 겁니다. ”
히죽 웃으며 흥선군이 농처럼 말을 던졌다.
“ 마치 창기들이 어릴 때는 이놈 저놈 사내들이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눠볼까 싶어서 줄을 서서 사랑해 주지만, 나이가 차 늙으면 제 몸 하나 의탁할 데 없게 되는 것 마냥 말입니다. ”
분명 저 말하면서 한양에 두고 온 기생 계집아이를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히죽 이죽 웃는 게 말이다. 그래도 흥선군이나 박규수나 점잖은 체면에 입으로 낼 수는 없는 말이긴 했다. 밤에 옷고름 풀어헤치고 놀아나는 기생집에서의 술자리라면 모를까?
“ 그래서 말인데, 분명 이 먼 원방에 나왔을 때, 아직 도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배에 올라서 물위에 띄어진 채 조선으로 흘러가고만 있으니 ······. ”
“ 어차피 물위에 띄워진 배 위에서 무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삿된 생각이랑 그만 하시고, 무료하시다면 지필묵을 들여서 평소 즐기시는 난이나 치시지요. ”
“ 글쎄요. 마음이 답답한 것이 지금은 난이나 치고 있을 때는 아닌 듯 싶습니다. ”
그 말을 하고는 흥선군은 걸상에서 일어나 선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 바람이라도 쐬시게 갑판에 나가시려는 겁니까? ”
“ 아, 그 신보의 탐보꾼과 한담이나 나눌까 합니다. 그 이름이 뭐라 했었죠? 그 친구 그림도 제법 잘 그리고 해서 제가 난을 칠 때 옆에서 영길리 말을 연습할 겸 해서 말동무를 했더니 제법 마음에 들더군요. 그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혹시 압니까? 제가 답답해하는 것에 대한 묘책이라도 알게 될지 말입니다. 어차피 이 답답한 선실에 처박혀서 궁리만 한다고 해서 대단한 생각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
“ 죠셉 크로우(Joseph Archer Crowe)라는 친구 말씀하시는 건가요? ”
“ 아, 맞습니다. 그 친구. ”
박규수의 대답을 들은 흥선군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선실을 나섰다.
그런 흥선군의 뒤를 쳐다보며 박규수는 생각했다. 신보(新報)일을 하는 자는 조선에는 없는 일이라 탐보꾼이니 정탐꾼이니 부르고 있지만, 부렬전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처우를 보면 사대부에 준하는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 무슨 꾼이라고 칭하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다. 뭔가 적당히 점잖게 칭할 호칭을 따로 만들어 봐야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 그런 일을 하는 부렬전 사람들을 많이 볼 것이고, 우리 조선에도 그런 자들이 생겨날 터인데 점잖은 호칭이 있어야 상스럽지 않게 그런 이들이 일을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