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83화 (83/163)

〈 83화 〉 흑선내항 (黒船來航) 2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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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협의사항 때문에 조선국 예조판서와 연합왕국 동양함대 조선분함대 사령관 클리포드는 자리에 앉아 논의를 하고 있었다.

연합왕국에서 파견된 커먼웰쓰 대사가 기거하며 집무할 대사관 설치를 위한 부지선정과 갑자기 논의하게 된 유구국에 관련된 몇 가지 사항 때문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

조선대표로 임한 예조판서 이가우(李嘉愚)는 나이가 환갑이 넘은 노신이어서 생소한 양인과의 협의에 어려움을 느꼈기에 흥선군이 이를 보좌하여 같이 협상을 위해 앉아 있었다.

부렬전 대표는 클맆포드 사령관 외에 대사관저 설립을 위해 연합왕국 외무부의 의뢰를 받아 외무부 특임서기관으로 임시로 채용된 죠셉 크로우(Joseph Archer Crowe)였다.

그는 원래 모닝 크로니클 과 데일리 뉴스의 기자였다. 그러던 중 조선 특파원 자격으로 조선에 파견될 때 연합왕국 외무부에 임시직원으로 기용되어 외교관 노릇까지 하고 있었다.

❝ 일단 대사관부지는 기존의 청국대사관자리를 불하해주신다는 말입니까?❞

전통적으로 중화천자국의 사신을 위한 태평관이나 모화관을 연합왕국사람들은 대사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 예, 전통적으로 천자국의 사신들이 사용하던 곳입니다. 부렬전의 위상에도 걸 맞는 장소일 겁니다. 단 원래 시설은 조선이 건립한 것이고, 조선임금님의 토지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양국이 우의를 나누는 한 영원히 부렬전 영토취급을 한다고 하니 태평관과 모화관 중 한군데만 취하셔야 할 겁니다.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겠습니까? ❞

이가우가 흥선군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협의에 나섰다.

❝ 뭐, 외교공관이 가까운 거리에 두 군데나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귀국이 내어주신 자료를 살펴보면 이 곳 모화관이 낫겠군요. 그런데 기존에 사용하던 청국에서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겠습니까? ❞

죠셉 크로우는 혹시라도 청국과 외교관계가 복구된 후에 대사관저를 두고 분쟁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에 확인하였다.

❝ 청국과의 외교는 단절이 된 상태고 청국사신들이 사용하던 모화관과 태평관은 원래 영빈관의 성격을 가진 조선의 시설이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

❝ 알겠습니다. 저희도 관저를 지킬 약간의 군병까지 관저에서 지내신다고 하니 도성 내에 있는 태평관보다야 성 밖의 모화관이 더 부담은 없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 뭐, 저희도 그 점을 고려해서 모화관자리가 적합하다고 판단한겁니다. 조선의 궁전과 정부시설 옆에 타국의 군인들이 주둔하는 것은 아무리 우방이라해도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니까요. ❞

클리포드가 군복 옷깃의 매무새를 고치며 말했다. 클리포드의 말이 끝나자 크로우는 한가지 양해사항을 말했다.

❝ 그런데 조선의 건축물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해 보이는데 우리 외교관이나 대표들이 태평관을 임시로 사용하고 그 사이에 모화관 자리에 서양식건물을 건립해도 되겠습니까? 모화관이 귀국의 시설물이라고 말씀하시니 그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크로우의 질문에 이가우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을 했다. 어차피 이에 관한 전권은 자신이 임금에게 받아 온 터라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 어차피 대사관의 땅이 부렬전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라 단지 서로간의 사신들이 상주하고 폐쇄되지 않는 동안 상국의 영토처럼 관리하는 것이고, 윤경(런던)의 우리 상주사신관헌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하셨으니 그렇게 하시지요. 상국의 비용으로 새로 지으시겠다는데 그것을 어찌 불허하겠습니까? ❞

❝ 예, 감사합니다. 대사관저 설치에 관한 건은 쉽게 해결이 되겠군요. 그러면 대사관 건립을 위해 당분간 로열네이비의 시설공병들이 귀측 수도 인근에 주둔하겠습니다. 아, 물론 대사관건립을 위한 행동 외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건설자재와 장비 반입에 대해서는 모두 허가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이의 있으신가요? ❞

❝ 없소이다. 단 도성에서 무장한 채로 돌아다니면 안 되니 우리가 지정해 드리는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될 것이오. 혹시라도 개별적으로 그 지역을 벗어나게 될 경우에는 우리 측에 통보 후 비무장으로 움직이시오. 대신 그럴 경우 신변 보호를 위하여 조선 군병들이 여러분들을 호위할 것이오.❞

❝ 좋습니다. 무장한 채로 출동할 정도의 사태라면 귀측이 알아서 합리적으로 판단해 주시겠죠. ❞

조선 측이 내건 제약을 클리포드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적대세력이 에워싸기라도 한다면 바다 위도 아니고 땅위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해군수병이 무장을 해봤자 크게 도움될 것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호국인 조선의 수도부근이 아닌가?

❝ 그럼 루추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지요. ❞

❝ 귀측에서 루추는 조선의 형제국이니 대신 논의하겠다고 하여 일단 의제는 꺼내지만 루추정부에서 승인한 사항입니까? ❞

흥선군은 중산왕 상육을 직접 설득해서 조선이 대신 협의하겠다고 했었다. 사실 유구로서는 다른 방법도 없고 타국에 왕실 전체가 피난 온 상황에서 직접 외교협상에 나서겠다고 하기에도 힘들었기에 흥선군과 조선의 호의를 믿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유구도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이므로 왜구들이 국권을 침탈할 때 보다는 같은 성현의 말씀을 따르는 조선이 낫지 않겠냐는 다소 희망찬 시각이 있었다.

❝ 유구국은 작은 소국으로 먼 부렬전 땅까지 직접 사절을 파견할 국력이 안 되므로 서역과의 교섭은 조선이 대신 해달라는 유구군왕 전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여기 이것은 유구군왕 전하께서 직접 압인하신 문서입니다. ❞

흥선군은 연합왕국 대표로 나선 클리포드와 크로우에게 유구군왕의 인장이 찍힌 위임장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들이 한자를 읽지 못해서 통역을 통해 확인하겠지만, 유구 중산왕 상육이 직접 작성하고 인장을 찍은 내용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

❝ 그렇다면 좋습니다. 앞으로 기선이나 기범선이 우리 로열 네이비의 주력 함선이 될 것이기에 루추의 나하항에도 저탄소와 기항하여 보급할 수 있도록 협약을 맺기를 원합니다. ❞

❝ 군병까지 주둔할 겁니까? ❞

❝ 주둔기지까지는 두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가까운 주산과 상해에 기지를 마련했기에 안정적인 보급과 기항만 가능하다면 관리는 루추에서 하면 됩니다. 세계 모든 곳의 항구에 충분한 병력을 파견할 수 있을 만큼 우리 해군병력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요. ❞

외무장관 애버딘은 툭하면 브리튼 제도의 모든 남자들을 바다너머로 내몰 것이냐며 확장주의자들에게 일침을 날린다지? 군인인 클리포드의 입장에서도 그건 옳은 말이었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보유하고 있는 함선의 정원을 못 채워서 징병을 위해 타국 시민들을 상대로 해상 납치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 그래도 유구가 그러한 시설을 지킬 수 있을까 걱정되는 군요. 그러면 대신 조선수군이 그 시설을 당.분.간. 지키도록 해야겠군요. 유구가 군비를 갖춰서 스스로 지킬 역량이 될 때까지는 말입니다. ❞

어차피 유구는 조선과 부렬전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청이나 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힘이 없으니 적당히 시설을 경비할 정도의 국력을 키워 줘야 조선의 부담이 덜어질 것이다.

❝ 그 이상은 본국의 훈령이 있어야겠지만, 어차피 저탄소와 항구 사용권에 관한 이 협의는 현지 사령관인 저의 임시적인 협의이니 알겠습니다. 제 재량권이 허락하는 한도에서는 상관없습니다. 본국에서 나하항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면 우리 로열네이비 동양함대로서는 유구국을 작전반경에서 제외시키면 그만이니까요. ❞

루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뒤로 하고라도 본국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중국연안에서 보급할 기지를 확보했기에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루추는 우선순위에서 제외될 것이었다.

❝ 허허허, 상국에서 혹시라도 그런 명이 내려오면 유구는 우리 조선이 지켜줘야겠군요. ❞

조선과 부렬전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어디까지나 호의를 바탕에 둔 것이었다. 적어도 유구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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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편히들 즐기세요. 객고(客苦)에 힘이 드실 여러분께 내 신경을 못 써드릴 것 같아서 만히 미안하오. ❞

임금은 외국에서 조선을 찾아온 귀한 손님들을 초청해 궁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 아닙니다. 고귀하신 국왕전하께서 저희를 배려해주셔서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회에 초청까지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좌중에서 조선 임금을 제외하면 아마도 조선에서 가장 큰 권세가 있다고 할 수도 있는 클리포드 제독이 좌중을 대표해서 말했다.

❝ 술과 음식은 얼마든지 청하여 드시오. 우리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내어 드릴 테니 말이오. ❞

자신의 신하들을 대할 때면 항상 날카롭던 조선의 젊은 임금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 감사합니다. 전하 ❞

❝ 그러고 보니 수사께서는 곧 한양을 떠나신다고요? 내 수사께서 부임하시고 제대로 대접을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급히 연회를 열었소. 그러니 오늘은 모든 것을 잊고 편히 즐기시도록 하오. ❞

❝ 예, 저는 우리 대사관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이 되었으니, 이제는 본래 임지인 포트 해밀턴으로 가서 기지 이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산포에 항구를 세우고 기지를 세울 준비도 해야 하니 말입니다. 전하께서 이렇게 저희를 위해 연회를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하하하, 상국의 수사장군께서 한양을 떠나신다는데 당연한 것이오. 상국의 사신이 오셔서 묵을 관헌의 설치도 내 물심양면으로 도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

❝ 예, 우리 그레이트 브리튼과 조선왕국의 우호는 영원할 겁니다. ❞

클리포드와 덕담을 주고받은 후 임금은 눈을 돌려 유구군왕에게 말을 건넸다.

❝ 유구군왕께서는 평안히 잘 계셨습니까? 내 자주 뵙자고 청해야하는데 국사에 바빠서 귀한 손님께 비례를 끼친 것 같아 송구합니다. ❞

❝ 아닙니다. 조선임금께서 저희 류큐를 보살펴 주시는 데 어찌 그에 불만이 있겠습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서 류큐가 안정이 되어 전하께 폐를 끼치지 않고 류큐에 돌아가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

유구군왕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선임금에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 류큐의 장정들이 우리 조선에서 훈련받고, 문사들이 성현의 말씀을 익히기 위해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있으니 곧 돌아가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잠시간만 불편함을 참으시고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해서만 고민하시며 조선에서 편히 묵으십시오. ❞

그런 그의 청을 들은 조선임금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선에서 교육받은 군대와 문사들이 유구조정의 중핵이 된다면 유구는 조선의 충실한 맹방이 될 것이다.

“ 지금 들어오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

임금은 연회장에 생소하게 생긴 깡깡이를 들고 들어오는 여인을 보았다. 미색이 대단히 돋보이는 그 여인은 누가 봐도 조선의 여인은 아니었다.

임금의 의문에 흥선군이 답을 하였다.

“ 유구국 국장옹주 아기씨 옵니다. ”

자신의 딸이 샤미센을 들고 연회장에 들어서자. 중산왕은 조선임금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 제 비천한 여식이 작은 재주가 있어서 전하께 보여 드리겠다 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별볼일 없는 재주가 부끄럽지만 편히 들어 주시옵소서. ❞

❝ 오, 모낭쥬, 프렝세쓰(Oh, mon ange, princesse)~ ❞

국장옹주의 샤미센 연주는 그녀의 부친인 상육의 연주와 비교하면 경쾌하며 흥겹게 들려서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을 짓게 했다. 연주를 끝낸 상묘향은 가볍게 조선임금에게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 전하, 어떠셨습니까? ❞

중산왕 상육은 조용한 어조로 조선임금에게 감상을 물었다.

❝ 생경하게 생긴 악기인데 소리가 아주 경쾌한 것이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구려. 내가 악에 대해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평생 악기만 익힌 악공만큼이나 잘 켜시는 게 옹주께서 재주가 아주 뛰어나신 것 같구려. 거기에 옹주의 용모 또한 훌륭하신 게 옛적 기록에 나오는 숱한 미녀들도 옹주에 비할 수 없을 것 같소. ❞

조선임금은 상묘향의 샤미센 음률보다는 그녀의 미색에 더 마음을 빼앗긴 듯한 표정과 태도였다. 중산왕은 강대국의 국왕이 자신의 딸에게 관심을 보이자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그와 그의 딸이 오늘 조선임금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해야 했다. 류큐의 장래와 류큐 상씨 왕가를 위해서 말이다.

❝ 그래서 말인데 저희 여식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팔불출 같은 소리지만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

❝ 무슨 말이오? ❞

❝ 이미 전하께서는 정비(正妃)마마께서 계신 걸 알지만은 후궁의 측실로라도 저의 여식을 취하시는 것을 청합니다. 우리 류큐와 조선의 우호를 위하여 가납해 주소서. ❞

연주가 끝나고 유구군왕과 조선임금이 서로 진중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자 그 내용이 궁금해진 앙리5세는 옆에 앉아 있는 통역에게 그들의 대화내용을 물었다.

❝ 이보시오. 우리 장인께서 뭐라고 하시는 거요? ❞

앙리5세에게 순진하게도 사실대로 통역을 해준 조선 통역덕분에 앙리5세는 충격을 받고 연회장에서 날뛰었다.

❝ 안 돼. 그녀는 내 천사란 말이야. 당사자도 허락한 거야? 고귀한 공주님께서 왕후도 아니고 측실정부(側室情婦)로 바쳐지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딨어? ❞

갑작스런 앙리5세의 발광에 흥선군이 깜짝 놀라서 그를 붙잡아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흥분해서 날뛰는 앙리5세를 억누르기에는 힘이 부쳤다.

❝ 이것 보시오. 전하. 진정하시오. 우리 조선임금님 앞이오. 자중하시오. ❞

❝ 아아악~~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꿈일 거야. 꿈이라고 ~ 흥선군, 뭐라고 말을 해주시오. 제발 ~❞

❝ 일단 다른 곳에 가셔서 이야기 합시다. ❞

흥선군은 다른 관원의 힘을 빌려서 앙리5세를 강제로 연회장에서 끌고 나갔다.

••••••••••••••••••••••••••••••

“ 아니, 불란서 왕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기에 어제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인가? ”

자신이 개최한 연회가 앙리5세의 난동으로 파장이 된 다음날에 궁에서 흥선군을 만난 임금은 앙리5세가 난동을 피운 이유를 물어왔다.

“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전하께 이런 꼴을 보이게 될 줄 미리 예측했다면 불란서 왕자가 조선에 유람 오겠다는 것을 어떻게든 만류하고 청을 거절했을 텐데 모든 것이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

“ 흥선군께서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필시 불란서왕자가 체통도 잃고 발광하게 될 사연이 있을 것 아닌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게. ”

“ 사실 불란서왕자께서는 우리 조선에 오게 된 이유가 장가를 들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임금은 눈을 반짝이며 흥선군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정무만 보는 생활은 아직 20세도 안된 젊은이에게 무료한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 그건 무슨 말인가? ”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불란서왕자가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종친의 어른께 스스로 선위를 하고 왕자로 격을 낮춘 것은 이미 알고 계시올 겁니다. ”

“ 그렇지. 우리 조선의 단종임금께서 세조대왕께 보위를 물린 것처럼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었는가? ”

앙리5세의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한 사연이 많았다. 하지만 조선 조정에서 그런 사정을 모두 털어 놓기에는 부담이 있었기에 단종과 세조이야기에 빗대어 윤색하여 보고를 했다. 그게 찬탈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정당화시켜야 하는 세조의 등극을 정당화 시켜줄 다른 나라의 사례이기도 했으니 말이었다.

“ 그런데 구라파에서는 격이 맞는 신분들끼리 통혼하는 습속이 있는데 불란서 왕자와 격이 맞으려면 각국의 왕공족 정도는 되는 집안과 맺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불란서에서는 아직도 앙리왕자를 복위시키려는 파벌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서 그 다툼이 끊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왕자에게 격이 맞는 가문들이 혹시라도 자기네 여식이 정쟁에 휘말려 불행하게 될까 두려워해 불란서 왕자에게 딸을 내어주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

“ 호오, 그러한가? ”

원래 남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법, 임금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몸까지 기울이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태도를 취했다.

“ 그 사정이 딱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마침 조선으로 유람행차를 오겠다하기에 조선에 오게 되면 소신이 전하께 종친의 서녀나 얼녀라도 짝으로 지어 달라 주청을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 아무런 허락도 구하지 않고 소신이 제 멋대로 경솔한 말을 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옵니다. 신을 벌하여 주소서. ”

“ 아니오. 그거야 못해줄 것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일과 아까 연회에서 난동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

임금에게 말씀드리기 민망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임금 앞에서 무례를 행한 앙리5세의 처분을 가볍게 하려면 반드시 말씀을 드려야 했다.

“ 그것이 조선으로 오던 길에 부렬전 수사장군이 젊을 적 유구국과 연이 닿아서 잠시 머물겠다고 하여 유구에 들렸을 때 우연히 보게 된 유구국 국장옹주의 미색에 홀려서 그만 반하였습니다. ”

“ 하하하, 그래서 유구군왕이 자신의 딸을 내게 내어주겠다는 말에 그렇게 날뛰게 된 것이군. 하기야 국장옹주의 미색이 정말 천하절색이긴 합디다. 하하하 ”

“ 예, 그러하옵니다. 전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나이다. ”

“ 아니오. 흥선군이 무슨 잘못이 있소? 내 이름으로 약조를 한 것도 아니고, 짝을 못 찾아 장가를 못 드는 타국 왕족의 중신을 부탁해보겠다는 말이야 나라도 그런 딱한 사정을 듣게 되면 그 정도 말은 건네서 위로하려 할 것이오. ”

임금은 어제 연회가 불미스럽게 파장된 불쾌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앙리5세의 딱하지만 재미있는 사연에 웃으며 말을 했다.

“ 그러면 불란서 왕자에 대한 처분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신만을 벌하여 주시고 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자는 서역의 대국 불란서의 왕자이고 언제 다시 보위에 오를지 모릅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두면 후일 조선에 큰 복록이 되어 돌아 올지도 모릅니다. ”

흥선군은 자신의 친우인 앙리5세에게 임금이 관대함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구라파 대국의 왕족이라 직접적인 형벌을 가하지는 못하겠지만, 불미스런 일로 조선에서 쫓겨나기만 해도 구라파에서는 앙리5세의 평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가뜩이나 형편없는 앙리5세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리라.

“ 걱정하지 마시오. 물론 내 앞에서 경거망동을 했으니 그에 맞게 처벌을 내려야겠지만, 그의 신분이 부렬전의 위세에 버금간다는 서역의 대국 법란서의 왕자라 하니 그걸 감안해서 처분해야 하지 않겠소? 일단 법란서 왕자는 숙소에서 근신시키도록 하시오. 내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소. ”

임금은 손을 내저으며 흥선군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 예, 알겠나이다. 전하. ”

흥선군은 임금의 관대함에 부복하며 생각을 했다. 임금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웃으며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벌은 아닐 것이고,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종친의 여식을 짝지어 줄 것인가? 그리고 천하절색인 국장옹주를 유구군왕의 제안대로 정말로 후궁에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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