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결론은 버킹검(Buckingham)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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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차 ===
“ 불난 곳에 기름을 들이붓는 것도 아니고 ······, 이거 원? ”
연합왕국 내각 총리인 존 러셀은 방금 전 들어온 정보보고에 머리가 복잡해짐을 느끼고는 탄식했다.
조선왕국에서 양국 우호선린을 위해 남겨둔 일단의 젊은 조선귀족들이 아일랜드에 건너가 구호활동을 펼치다 뜬금없이 브리튼으로 되돌아온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구호활동에 지친 조선인들이 모금운동을 핑계로 안락한 런던으로 되돌아오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로는 – 신문기사에 분명히 여왕폐하께 아일랜드를 위한 청원을 드리기 위함이라고 적혀있었음에도 – 청원을 접수할 대표자 한사람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전원이 아일랜드에서 브리튼 본섬으로 귀환한다는 점과 아일랜드와 가장 활발한 소통창구인 리버풀에 도착한 후 철도를 통하지 않고, 걸어서 런던까지 온다는 황당한 계획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문화도 브리튼의 신사들 만큼이나 체면과 예의범절을 중시한다고 했다. 일년 가까이 아일랜드에서 구호활동을 했으니 신물날 법도 했으나, 전염병과 기아난민이 급증하는 이때에 몸을 빼려면 나름의 핑계가 필요했을 거라고 ······. 그리고 그 핑계거리로 난민을 위한 모금활동 만큼이나 그럴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라는 안이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중간 중간 도착하는 도시에서 각 도시의 유력자들이 개최하는 연회에서 구호금 모금과 구호활동의 시급함을 설파했다고 ······, 요즘 한참 핫한 신문기자인 윌리엄 러셀이 작성한 기사에서 읽었다.
그런데 조선인들은 그의 예측과는 어긋나게도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내각으로 – 당연히 여왕 폐하께 청원을 하기 위해서는 내각에 그 청원을 접수하는 것으로 생각했건만- 오지 않고, 버킹엄 궁으로 가서 자신들이 써왔다는 청원서를 버킹엄 궁에 직접 접수하겠다며 고집을 부리고는 그대로 버킹엄 궁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런 그들을 런던경시청에서 경관들이 출동하여 강제해산을 시키고 구금을 하였다는 보고를 방금 받을 것이다. 외무장관인 파머스턴 경과 조선과의 외교협상을 직접 주도했던 전임 총리인 필 내각의 애버딘 전 외무장관을 급히 호출한 러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소란을 일으킨 조선귀족들에게 적당한 혐의를 뒤집어 씌워 구금하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기껏 동아시아 정세를 안정시키고 내정에 치중하려는 이때에 조선왕국과의 외교마찰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왕과 친인척 관계인 젊은 귀족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국내 소란을 이유로 국외 추방하는 것도 악수가 될 것이다.
“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런 독이 든 성배같은 자리가 뭐가 좋다고 덜컥 수락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건지 ······. ”
러셀 총리는 긴급하게 불러들인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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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내각 총리대신인 로버트 필 경은 자신의 응접실에서 자신의 젊은 친구이자 자신의 내각에서 봉직했던 글래드스턴을 불러서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 러셀 그 친구가 애버딘 경을 급히 불렀다고 하더군. 글래드스턴? ”
찻잔을 들며 로버트 필 경이 글래드스턴에게 말했다.
“ 예, 저도 들었습니다. 총리대신께서 머리가 좀 복잡하시겠더군요. ”
“ 버킹엄 궁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 ”
“ 하하, 글쎄요? 일단 조선 귀족청년들을 구금한 것은 악수(惡手)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필 경의 질문에 글래드스턴은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조선의 젊은 귀족들을 구금한 것은 외교적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저 해산만 시키는 것으로 족할 것을 구금했다는 것은 아무리 그 곳이 버킹엄 궁 앞이어도 조선 측에서 향후 문제 삼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청년귀족들은 조선의 다음 대를 책임질 고관 후보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동아시아에서 연합왕국의 국가이익을 담보하는 데 중요한 키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망신까지 줄 필요는 없었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 하지만 치안 당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나? 여왕폐하께서 기거하시는 버킹엄 궁 앞에서 수십 명이 농성을 하는 데 말일세. ”
“ 일단 그들이 우리 왕국을 저들 관념으로 ‘상국’이라면서 존중하는데 여왕 폐하께 위해가 갈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미 우리 왕국은 한번 그것을 허용한 관례가 있습니다. ”
“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 ”
“ 다를 것 없죠. 자신들의 황위를 여왕폐하께 바치겠다며 농성을 하는 것과 아일랜드의 가련한 인민들을 구원해달라는 청원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
글래드스턴이 말한 전례(前例)라는 것은 로버트 필경이 내각 총리대신이던 때에 남차이나에서 온 정부관료들이 그들 말로 ‘따잉(大英,대영)’의 제관(帝冠)을 받아달라며 버킹엄 궁 앞에서 엎드려 장기농성을 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 무렵 로버트 필경의 내각은 장기 불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여러 가지 정정불안을 반전시킬 카드로 그 농성을 이용했다. 그때 필 경은 자신이 설립에 관여했던 런던 경시청에 소극적인 방관을 부탁했었다.
덕분에 머나먼 동방제국에서 스스로 여왕폐하에게 제관을 바칠 정도로 왕국의 위세가 강성해졌다는 자부심이 왕국 신민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 자부심은 소소한 국민적 불만을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사소한 불편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당시 필내각은 위기의 순간을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 ······ ”
글래드스턴의 말에 로버트 필은 찻잔을 오른손에 든 채 아무 대꾸도 없이 생각을 했다. 그런 모습에 글래드스턴은 필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 경께서도 조선에서 온 우리 친구들이 폭력적인 사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무언가 위력을 행사하려 해도 누가 동조하겠습니까? 유력한 귀족이라고 해봤자 그들 나라에서나 그렇지 우리 연합왕국 내에서는 그냥 외모마저 다르게 생긴 외국인일 뿐입니다. ”
생각을 마쳤는지 필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는 글래드스턴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건 러셀 총리가 판단할 문제이지 나 같은 야인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 ”
“ 경께서는 아직 런던경시청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지 않습니까? 많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잠시 지켜보기만 하라는 언질만 줘도 경시청 사람들은 모두 경의 부탁을 들어줄 겁니다. ”
로버트 필이 무언가 자신의 생각이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자, 글래드스턴은 좀 더 강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그로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조선 친구들이 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왕국의 시스템을 정확히 모르는 그들의 행동이 오히려 문제해결을 단순하게 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런던 경시청 자체가 로버트 필이 광역도시에서 전문적인 치안 조직이 필요함을 역설한 후에 설립된 조직이었다. 그래서 그의 입김이 강하게 닿는 조직 중 하나였다. 그가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뇌부에 살짝 언질만 해줘도 그들은 필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여 줄 것이었다.
“ 하지만 내각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겠나? ”
그가 고민하는 부분이 자기 후임자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로버트 필의 2차 내각이 사퇴한 후 정파는 달랐지만 필의 지원 하에 내각을 구성한 러셀에게 정치적인 부담이 될까 우려한 것이다.
“ 지금도 충분히 곤란한 상태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곤란은 계속될 겁니다. 형태를 바꿔서 말입니다. ”
“ 그··· 럴··· 까? ”
필은 대답을 길게 끈 후 다시 생각에 잠겼다. 오른다리에 꼬아 올린 왼 무릎을 감싸 쥔 오른손의 중지로 무릎을 톡톡 치면서 생각을 계속했다.
“ 알겠네. 자네 충고 잘 들었어. ”
몇 분간의 고민이 끝났는지 로버트 필이 일어서면서 비서를 향해 말했다.
“ 이봐, 지금 스코틀랜드 야드(런던경시청 본부)에 연락해서 내가 좀 만나자고 한다고 전해주게나. 급한 일이니 가능한 빨리 만나겠다고 말해주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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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도시인 그레이트 런던의 치안을 담당하는 런던경시청(Metropolitan Police)의 본부가 위치한 곳은 통상 스코틀랜드 야드로 불리는 런던의 한 구역의 거리이름이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서로 다른 나라였을 때,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와 관련 있는 여러 가지 사연이 얽힌 곳이었다. 그리고 뭔가 수상쩍은 일을 획책하는 사람들은 런던 광역 경찰조직이 설립된 1829년 이래로 회피하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
어색한 침묵이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의 한 방에서 계속되었다. 보통은 이런 치안조직에서는 손님으로 온 사람이 더 어색해하고,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손님으로 방문한 로버트 필은 태연한 표정으로 런던 경시청에서 제공해준 차를 마시며 이곳의 주인들을 쳐다보았다.
“ 저희야 필 경을 존경하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노골적인 청탁은 ······? ”
스코틀랜드 야드의 공동 수장 중 한명이자 군 출신으로 현장 치안경찰력(治安警察力)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찰스 로완(Chales Rowan)이 곤란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에 로버트 필은 천연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제가 말입니까? 설마? 런던의 치안을 책임지시는 여러분께 청탁이라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좀 더 나은 처분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조언을 할 뿐이지요. 더군다나 두 분께서도 아일랜드 출신이잖습니까? 가련한 동포를 위해 나선 이방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
“ 그래도 버킹엄 궁 앞에서 그런 소란을 일으키면 시민들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여왕폐하에 대한 위해의 가능성도 있기에 어떻게든 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법률전문가인 또 한명의 경시청장인 리차드 메인(Richard Mayne)이 역시나 난감해 하며 말했다. 그는 경시청이 설립될 때 법률적인 판단이나 전문적인 수사인력을 구성할 때 영입된 사람이었다.
“ 듣자니 여러분이나 내각의 지시에 의한 것도 아니고, 현장의 경관들이 선제적으로 판단하여 대처한 것이라면서요?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문제를 관례를 따지지도 않고 현장에서 판단하다니요? 최소한 상급부서에 문의는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
리차드 메인의 말에 로버트 필이 지적했다.
“ 분명 그 경관들은 자신의 상급부서에 확인절차를 ······. ”
“ 그런 정도의 판단이면 그 상급부서란 것도 격이 많이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면 의회나 내각 같은? 아니면 여왕폐하께 직접 문의를 했어야지요? ”
“ 아, 아니 그것은 ······. ”
그래, 물론 안다. 너무 비약한 얘기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 일을 일일이 의회나 내각의 인준을 얻어서 처리해야한다면 세상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로버트 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우겨야 한다. 양심에 찔리는군.
“ 제가 많은 것을 조언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저 그들에 관한 처리는 관례를 따지자면 예전 차이나 인들이 여왕폐하께 제관을 바치기 위해 농성을 했던 그 때의 기준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은근한 어조로 자신이 총리대신으로 재직할 때 역시나 우회적인 압력으로 만들어 낸 전례를 강조했다. 분명 그 때 이방인들이 버킹엄 궁에서 시위를 하는 단 하나의 전례가 만들어졌었다.
“ 하하, 그럼 그렇게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
군 생활하는 내내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속에서 부당한 압력을 많이 받아봤던 로완이 살짝 웃으며 로버트 필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대답했다. 그런 로완과는 달리 법정변호사 출신으로 법령적용에 다소 신중한 메인은 다짐하듯이 필에게 반문했다.
“ 혹시라도 추후에 책임소재가 문제된다면 ······? ”
“ 나머지는 의회에서 처리할 겁니다. 두 분은 걱정하시고 제 조.언. 대로만 해주시면 됩니다. ”
특별히 조언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로버트 필은 정치적인 문제로 해법을 찾을 것임을 암시했다.
“ 후~, 알겠습니다. 그럼 의원님만 믿고 그들은 훈방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완 경, 괜찮겠습니까? ”
이 사안이 정치적 쟁점이 될 것임을 이해한 메인 역시 동의했다.
“ 쓰읍, 알겠습니다. 그럼 경력(警力)들에게 그렇게 통고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또 농성을 시도하면 어쩌지요? ”
로완은 젊은 조선귀족들이 동일한 시도를 또 한 경우에 대한 지침을 미리 얻고자 했다.
“ 그저 전례대로, 전례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는 제가 책임지고 의회에서 아무런 뒤탈 없게 처리하겠습니다. ”
그래, 전직 총리대신이며 현직 하원의원인 로버트 필이 직접 찾아와서 말할 정도면 그들의 책임으로 비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여왕폐하께 피해가 없기만 하다면 문제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 야드(런던경시청)의 두 수장은 둘 다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가문의 근원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스코틀랜드나 노르망디까지 이어지지만 말이다.
고향 땅의 동포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공직에 있는 입장 상 자신의 직분 밖의 일에 대해 사적인 감정으로 개인적 입장을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윗선에서 무마해줄 용의가 있다는 데 야박하게 굴 것도 없었다. 고향 사람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한 것인데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