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130화 (130/163)

〈 130화 〉 결론은 버킹검(Buckingham)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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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후제 폐하, 만세!! ”

“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

“ 여왕폐하 만세!! ”

버킹엄 궁 앞 광장에서는 저마다 축수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여왕이 그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명하고, 조선 선비들이 써온 두꺼운 상소문을 직접 접수한 후에 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본 메리 앤 에반스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김병국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김병국이 축수를 외치다 말고,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 벅차오름을 느낀 메리 앤 에반스가 자신의 팔로 김병국의 목을 감싸 안았다.

“ 해냈어요. 병국. ”

그녀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기쁨에 겨워 김병국도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메리의 얼굴을 향해 속삭였다.

그것은 김병국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그녀가 그들에게 합류하여 다른 부렬전 사람들이 지부상소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태후제 폐하께서는 아직도 그들의 상소를 가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김병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조선 선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애란의 불우한 백성들에게 동정심을 품고,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태후제 폐하께 알린 것이니 말이다.

“ 메리, 당신이 도운 덕분이오. ”

그 소리를 들은 메리는 활짝 웃은 뒤, 발뒤꿈치에 힘을 주어 까치발을 하고는 자신의 입술로 병국의 입을 감쌌다.

“ 헉······. ”

갑작스런 메리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김병국 또한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안고는 그녀와의 입맞춤을 즐겼다.

“ 해냈군요. ”

여왕폐하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본 젊은 청년 존 처칠은 외치던 축수를 그만 둔 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이 가득 묻어나는 어조였다.

“ 이게 모두 부렬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한 덕이 아니겠나? ”

며칠간 존 처칠 옆에서 함께 했던, 그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조선의 청년귀족이 빙그레 웃으며 존 처칠을 치하했다.

처음 시작은 사촌인 김병국의 애인인 부렬전 여인이 그들 옆에 앉으면서 였다. 하지만 그녀의 뒤를 이어 자신들에게 합류한 존 처칠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부렬전 사람들이 자신들의 뜻에 공감하여 함께했겠는가? 조선의 젊은 선비 김병덕은 진정으로 기쁨에 차서 존 처칠을 치하했다.

“ 그래요. 이게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여왕폐하께 청원 드린 덕분이죠. ”

존 처칠이 주저앉은 채로 김병덕을 쳐다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누구 한사람 덕이 아니다. 아직 아무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왕국의 국왕인 여왕이 자신들에게 공감했다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 아닐까?

“ 사해가 모두 동포라, 그 마음이 모두를 하나로 이은 것이지. ”

존 처칠의 말에 논어 안연편을 인용한 김병덕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존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 자네, 신관호 장군의 제자라 하였지? 내가 장군만큼은 아니지만 조선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교양으로 배우는 것이 활쏘기라네. 간혹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게나. ”

존 처칠은 자신과 불과 서너 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에 제자로 들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도 아직 배우는 입장의 학생이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싶었다.

“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는 활쏘기만 배우지 않는다네. 제대로 학문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도리인 인의예지는 배워야하지. 어떤가? 인의예지에 대해 배울 마음이 있다면 조선에 계신 신관호 장군 대신에 내가 가르쳐 주겠네. 그저 훗날 신관호 장군을 만났을 때 조금은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는 것을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일세.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자신의 스승인 신헌(신관호)에게 활쏘기를 속성으로 배우고는 못내 아쉬웠던 존 처칠이었다. 조선에 대해, 활쏘기에 관련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다.

•••••••••••••••••••

자신의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려 걷던 여왕은 몇 걸음을 걷다 멈춰 섰다. 그리고 조선의 청년귀족들과 아일랜드의 왕국신민들을 구원해달라며 청원을 올리던 신민들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린 채 그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 ······ ”

“ 폐하, 오늘은 그만 들어가시지요. ”

궁내부 장관 스펜서 백작이 막내 헬레나 공주를 출산한 후부터 몸이 차다며 항상 걸치던 숄을 조선 귀족에게 덮어준 여왕을 걱정하며 말했다. 스펜서 백작의 말을 들은 여왕은 다시 몸을 돌려 왕궁을 향해 걸었다. 옆에서 자신을 수행하는 스펜서 백작에게 여왕이 말했다.

“ 스펜서 백작, 총리대신과 야당 당수들에게 버킹엄 궁으로 오라고 호출해 주시겠어요? ”

“ 폐하께서 부르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올 겁니다. ”

그들을 언제 불러 모으면 되겠냐는 말을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스펜서 백작이었다.

“ 아뇨, 그들도 모레에 입궁하라 하세요. 내일은 조용히 이걸 읽어 봐야하니까요. ”

그렇게 말하며 여왕은 조선 청년귀족들이 자신에게 올린 아일랜드 관련 보고서를 흔들어 보였다. 제법 두꺼운 양의 보고서는 단순히 아일랜드 사람들을 구원해달라는 내용만 적혀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아일랜드에서 직접 보고 들은 사실과 어떻게 구호를 행했는지에 관한 경위까지, 거기에 어떤 식으로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대안까지 담겨있지 않을까?

“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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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차   ===

태후제께서 명하신 대로 하루를 쉬고 나온 조선 선비들이었다. 태후제의 명에 따라 다시 나오긴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래도 상소를 가납해 주셨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해주시기 위해 자신들을 불렀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래서 그동안 탈진해서 쓰러졌던 이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버킹엄 궁 앞 광장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태후제께서 상소를 가납해 주셨을 때 모였던 이백여 명 정도의 숫자였던 부렬전인들은 태후제께서 직접 상소를 접수하고 이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명하셨다는 모닝 크로니클의 호외(號外)에 호기심과 열광,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어 오늘은 천여 명에 육박했다.

그들은 그동안 모닝 크로니클의 정규 제호와 호외에서 묘사되고 기사에 삽입된 삽화에 묘사된 하얀 색의 코트를 대신하는 흰색 헝겊 쪼가리들을 겉에 걸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불보를 어떤 이들은 포목상에서 방금 전에 사온 것 같은 흰색 헝겊 쪼가리를, 좀 더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격식을 따지는 젠트리들은 하얀색 천으로 조선 청년귀족들이 입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생긴 형태의 코트를 재단사에게서 직접 지어입고 이 자리에 나타났다.

일단 태후제께서 걸치시던 넓은 목도리(Shawl)를 직접 받은 영예를 안은 김병기는 어깨에 태후제께서 걸쳐주신 그대로 붉은 색 숄을 걸치고 도끼를 들고 나오기는 했다. 상소를 읽어보시고 자신의 청원을 최종적으로 거부하신다면 그 도끼로 자신의 머리라도 치시라고 다시 한 번 청원하기 위함이었다.

조선 선비들은 김병기의 그 모습을 못내 부러워하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용체(龍體)에 걸치시던 포(布)를 직접 하사받는 성은을 입은 것이 아닌가? 김병기가 걸치고 있는 저 붉은 색의 포는 분명 대대손손 가보(家寶)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조선 선비들은 오늘 태후제께서 다른 선비들에게도 김병기가 걸치고 있는 붉은 색의 포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랑거리가 될 물품을 하사하시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 폐하께서 오늘 다시 나오라 하시어서 이렇게 나오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말씀이 없으시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

“ 직접 나오셔서 상소문을 가납하여 주셨는데, 설마 그렇게 하시기야 하겠습니까? 기다려 보시지요? ”

“ 그렇겠지요? 그러면 다시 나오실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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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헨리, 하루 땡땡이 쳤으니까 오늘은 열심히 일하란 말이지. 저기 니네 가족들 부끄럽지 않게 말이야. 알겠지? ”

러셀기자는 이틀 만에 다시 그의 취재본부를 꾸리면서 도일가의 신출내기 삽화가인 헨리를 갈궜다. 러셀의 갈굼에 발끈한 헨리는 러셀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그러시는 러셀 씨도 그저께 하루 땡땡이 쳤잖습니까? ”

“ 그래서 하는 말이야. 오늘은 여왕폐하께서 나오실 거야 분명히 말야. 그 장면을 머리에 잘 기억해두었다가 스케치하란 말이지. 알았지? ”

결국 그날 러셀의 땡땡이는 편집장인 앤드류 도일에게 들켰다. 저명한 삽화가인 헨리의 부친인 존 도일이 앤드류에게 러셀이 취재는 하지 않고 시위 현장에 들어가서 땡땡이 치고는 취재까지 자기에게 맡겼다고 귀띔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존 도일과 앤드류는 가까운 친척일 것이다. 어쩐지 뭔가 찜찜하더라니······.

다행스럽게도 존 도일이 여왕 폐하께서 시위자들의 정면에 나타나는 장면을 그린 삽화가 상당히 잘 나온 데다가 그날의 기사를 상당히 맛깔나게 잘 쓴 덕분에 잔소리를 심하게 듣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기사가 형편없었다면 안 그래도 쥐꼬리인 급여가 감봉될 뻔 했다.

대신 오늘 여왕 폐하께서 시위대들에게 다시 나오라 했으니 뭔가 특종거리가 있을 거라고 제대로 취재하라는 당부를 편집장에게서 들었다. 그리고 좋은 기사를 물어 온다면 상당한 상여금이 있을 것이라는 당근까지 제시했다. 확실히 편집장의 장인이 모닝 크로니클의 사주(社主)이다보니 이런 것은 좋았다. 다른 때도 좀 쓰면 더 좋을 텐데.

그래서 오늘 유난히 헨리에게 잔소리가 심한 러셀이었다. 그저께처럼 연륜있는 존 도일이 삽화를 그려주면 좋으련만, 존 도일이 오늘은 반드시 군중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못 박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헨리와 성실하게 취재를 해야 했다.

“ 예, 예, 걱정 마시죠. 참 나, 하루 땡땡이도 아니고, 고작 두 시간 땡땡이에 다들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

헨리는 시위에 참여하고 고작 두 시간 만에 해산한 그저께를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땡땡이치고 먹은 욕에 비해 많이 밑지는 장사였다.

“ 그러게 말이다. 너네 아버지께서 그렇게 좁쌀만 한 소갈머리를 가지신 분인지 몰랐다. 야. ”

“ 뭐, 아버지께서 좀 꽁한 데가 있기는 하죠. 아오, 내가 왜 그날 러셀 씨를 쫓아가서 일하겠다고 했는지? 그것만 아니면 나도 저 무리 중 어딘가에 있을 텐데. ”

“ 우리도 현장에 있잖아? 그러니 그만 투덜대라고. ”

“ 관찰하는 입장이랑 저 현장에 참여하는 입장이랑 같습니까? ”

오늘이야 말로 광장에 모여있는 인파속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건데? 못내 아쉬운 헨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와 형들에게 촉탁을 퇴짜 맞아서 돌아가는 러셀 기자를 붙잡고 일거리를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당당하게 삽화가라는 직업을 말할 수 있게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 그래, 그렇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일이란 게 참 그래? 하지만 훌륭한 언론인이 되려면 그런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극!뽁! 알겠냐? 이 애송이. ”

또 버릇처럼 오른손으로 헨리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러셀 기자였다. 그런 러셀의 장난에 헨리는 언제나처럼 발끈하여 짜증을 폭발했다.

“ 아!! 쫌, 전 화가가 될 거라니까요. 왜 자꾸 언론인 타령을 합니까? ”

“ 그래도 ······, 가끔은 이일이 보람되다고, 어린 친구. ”

러셀은 자신의 버킹엄 궁을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예? ”

“ 못 들었으면 됐어. 잘 보기나 해. ”

그런 그들의 눈앞에 왕궁에 들어가기에 걸맞은 외양을 갖춘 마차가 몇 대인가 지나가며 버킹엄 궁에 들어갔다.

•••••••••••••••••••

버킹엄 궁

“ 폐하, 분부하신대로 내각 총리대신과 야당의 토리 보수파의 스탠리 경, 토리 필파벌의 필 경이 알현을 위해 도착했습니다. 지금 바로 그들을 만나시겠습니까? ”

궁내부 장관인 스펜서 백작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여왕에게 보고를 했다. 여왕이 명한대로 내각총리대신인 러셀 경과 토리 보수파의 수장인 스탠리 경, 토리 필파벌의 수장인 필 경이 모두 접견실에서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도착했다.

지난 이십여 일간의 일정처럼 오늘도 테라스 창 너머의 인파들을 보면서 여왕이 말했다.

“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

“ 예, 폐하. ”

스펜서 백작이 비서실장(Lord Steward)인 포티스큐 백작을 통하여 여왕의 말씀이 접견실에 전달되도록 조치했다.

“ 스펜서 백작, 지금 왕실에서 쓸 수 있는 금전이 얼마 정도인가요? ”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면서 여왕은 스펜서 백작에게 물었다.

“ 이래저래 필수적인 예산을 제외하고, 계산한다면 대략 2천 파운드 정도는 당장 인출할 수 있을 겁니다. ”

2천 파운드면 500파운드(약 230㎏)의 은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 적지 않은 돈이지요? ”

여왕은 그 액수를 듣고는 스펜서 백작에게 물었다.

“ 예, 그렇습니다. ”

“ 하지만 왕국의 굶주리는 신민들을 먹이기에는 부족한 돈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

“ 아무래도 800만이나 되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겁니다. 운송료나 기타 다른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니 말입니다. ”

여왕의 물음에 스펜서 백작은 당장 생각나는 대로 계산해도 2천 파운드가 아일랜드 사람들을 먹이는 데 부족한 금액임을 인정했다.

“ 그렇다면 이만 파운드짜리 수표를 끊어주세요. 지금 당장 ”

“ 여왕폐하, 그 정도 자금을 모두 난민구조에 쓰실 겁니까? ”

당장 염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버킹엄 궁의 살림살이부터 여왕의 품위유지비까지 줄여야 할 것이다. 전제군주와는 달리 운영되는 왕국의 체제를 생각한다면 의회에서 필요한 비용을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일단 내가 가진 것을 내놓아야하지 않겠어요. 모자라다면 왕실재산을 처분해서라도 만들어야겠죠. 이제 들어오실 분들과 대화를 시작하려면 말이죠. 필요하다면 더 내놓죠. 내가 가진 것이 줄어드는 것이 왕국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 보다 낫지 않겠어요? ”

스펜서 백작을 쳐다보며 여왕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긴 며칠 전까지 의회의 소심한 몇몇은 50여년 전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참상이 브리튼에서 재현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었다. 물론 지금의 왕국은 그때의 프랑스 왕국보다 훨씬 건강한 재정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여왕의 단호한 어조와 눈빛을 본 스펜서 백작은 어떠한 반론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 예, 하명하신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스펜서 백작은 부드러운 린넨이 깔린 쟁반에 올려져있는 한 장의 종이를 여왕에게 바쳤다.

“ 폐하, 여기 있습니다. ”

“ 이 것 한 장의 가치가 은 5000파운드(lb) 상당이라고요? ”

여왕은 스펜서 백작이 자신에게 가져온 종이조각을 집어 들어 살펴보면서 말했다. 이 한 장이 5000 파운드(lb) 무게의 은과 같은 가치라?

“ 예, 폐하. ”

“ 창을 열어주세요. ”

시종들이 창을 열자 여왕은 자신이 들고 있는 수표를 군중들을 향해 펼쳐 보였다. 물론 모여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행위였다. 모두를 향해 보이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한 이가 연합왕국의 군주인 빅토리아라면 그 무게는 함부로 취소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니었다.

수표를 흔들던 여왕은 스펜서 백작을 향해 살짝 웃음을 띤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종이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 스펜서 백작,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직접 알려주시겠어요? 모두에게 공표했으니 이제 물릴 수는 없겠죠? 그럼 저는 저를 기다리는 분들을 만나야 하니까 부탁드려요. ”

“ 예, 폐하. ”

정중하게 대답한 스펜서 백작은 여왕이 내민 수표를 정중히 받아서 린넨이 깔린 쟁반에 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여왕은 이제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어른’들이 있는 접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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