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142화 (142/163)

〈 142화 〉 서쪽에서 부는 미풍, 동쪽에 이는 격랑 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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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오시지요. 전하. ❞

조선 국왕 이환이 들어서자, 누워있던 유구군왕 상육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조선 국왕은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 몸도 불편하신데 그냥 누워계시지요? ❞

❝ 아닙니다. 계속 누워만 있으면 더 안 좋습니다. 이렇게라도 가끔 앉는 거지요. 대신 전하 앞에서 불손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 용서하소서. ❞

가볍게 예를 차린 후에 안침(按枕)에 기대어 앉은 후에 상육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저를 조카로 대하시라 했잖습니까? 괘념치 마시고 편히 앉아계세요. 숙부님, 편찮으신 것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

❝ 전하께서 이렇게 친히 이 보잘 것 없는 제게 친림하시어 걱정해주시니 이 어찌 ······. ❞

상육의 상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헤 젊은 조선 임금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 조카가 숙부를 걱정하는 것이 무어 이상합니까? ❞

❝ 전하 ······. ❞

❝ 어찌되었든 쾌차하시어 모국인 유구국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구의 백성들이 숙부만 우러러보며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힘을 내시지요. ❞

❝ 전하, 이 은혜 어찌 갚아야 할지 ······. ❞

❝ 은혜라뇨? 유구와 우리 조선은 형제와도 같은 사이이고, 이제 유구군왕께서는 이제 사적으로 저와 숙질의 관계를 맺은 것 아닙니까? 그런 말씀 마시고 쾌차하시는 데만 신경 쓰시지요. 유구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악한 왜구무리들은 우리 조선과 부렬전이 막아드릴 테니 돌아가시어 선정을 베푸셔야지요. ❞

조선 임금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명으로 유구군왕의 곁에서 간병하는 내의원 정(正)에게 말했다.

“ 내의원에서는 숙부의 환후를 살피는 것에 각별하게 임하도록 하라. ”

“ 예, 전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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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구군왕 전하의 거소에 다녀오셨습니까? ”

이제는 제법 배가 불러서 풍성한 치마저고리를 걸쳤음에도 태가 나는 중전이었다. 임신중이라 살짝 부어있는 얼굴조차도 어여뻐 보이는 모습이었다.

유구군왕 상육의 문병을 다녀온 임금은 그길로 중전을 만나기 위해 교태전에 온 것이다.

“ 그렇소. 중전. 몸은 어떻소? ”

“ 내의와 궁인들이 성심으로 돌봐주어서 괜찮습니다. 뱃속의 아기씨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사옵니다. ”

“ 귀한 손이니 항시 몸을 조심하도록 하시오. 중전. ”

가뜩이나 손이 귀한 왕실이었다. 동복 뿐 아니라 이복으로도 남아는커녕 여아조차도 귀했다. 당장 임금만 해도 아무도 없는 독자였다. 그러니 오랜만에 그것도 중전의 회임에 온 나라가 관심을 기울이고,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 예, 전하. 뱃속에서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전하를 쏙 빼닮은 왕자님일 것입니다. ”

“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구료. 중전. ”

방금전 문병을 갔던 유구군왕의 생명은 언제질지 모르게 위태로왔지만, 다른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조선 임금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기쁨이 어려있는 표정이 떠올랐다.

•••••••••••••••••••

유구국 나하(流球國 那覇)

복건성에 대대로 뿌리내려 살던 아구 시씨(衙口施氏)의 후손인 시청식은 이곳 유구로 넘어와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었다. 영길리 군대가 중원을 휩쓸고, 이어진 명의 재건으로 중원 전체가 전란에 휩쓸린 후에 복건에 대대로 장사를 하며 살던 많은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뱃길로 여기저기에 흩어져 피난을 했다.

어떤이는 대만으로 어떤이는 서반아가 다스리는 비률빈(菲律賓,필리핀)으로, 어떤이는 마조각이나 향항이 있는 광주로 피난을 했다. 상인 집안의 후손이기는 해도 마땅히 재산과 인맥이 빈약하던 시청식은 복건에서 멀지 않은 유구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유구에 온 이후로 풍족하게 살지 못하고 고구마나 심어서 키울 작은 땅뙈기를 얻어서 농사지으면 지난 몇 년간 버티고 있었다. 언젠가 중원이 안정되고 다시 통일이 된 후에 고향 땅에 돌아갈 날을 기대하며 말이다.

“ 이보게, 그 소식 들었나? ”

그런 그에게 비슷한 처지로 복건성 안계현(安溪縣) 출신의 이덕망이 찾아와 최근 나하 시중에 도는 소문을 말하려했다.

“ 무얼 말인가? ”

“ 조선에서 이곳의 사탕수수를 사들인다더군? ”

“ 이곳의 사탕수수는 모두 왜놈들이 거둬가는 거였잖아? ”

처음에 유구에 왔을 때 제법 괜찮은 땅마다 심어진 사탕수수 밭을 보고는 집안 피붙이들처럼 사탕수수 장사를 해서 먹고살 궁리를 했던 시청식이었다. 그가 사탕수수 매매에 뛰어드는 걸 포기하게 된 것이 왜국 사쓰마 해적놈들이 유구의 사탕수수를 헐값에 수매해서 독점하는 모습을 보고는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덕분에 귀퉁이의 척박한 땅을 비싼 값에 사서 고구마나 키워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언제 군대에 끌려가 개죽음 당할지 모르고, 전비(戰費)를 대느라 버는 족족 세금으로 뜯기는 중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왜놈들이 독점하고 있는 사탕수수 매매에 뛰어들었다가는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터였으니, 그런 처지라도 만족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왜구놈들이 안보이게 된 게 몇 달 전 영길리수군이 나하에 방문한 후였다. 유구군왕마저 납치해간 영길리 놈들이 중원에 이어 여기까지도 전쟁터로 만드는 것인가 싶어서, 다음에 어디로 피난을 가야하는가 고민하던 터였다.

“ 맞아, 지난번에 영길리 수군이 왜국 사쓰마 놈들을 모두 몰아낸 이후로 사탕수수가 썩어나도록 쌓이질 않았는가? 그걸 모두 조선에서 거둬간다고 하더군. ”

그렇잖아도 사탕수수를 뺏어가던 왜놈들이 사라진 이후 사탕수수를 처치할 곳을 잃어버린 유구 곳곳에는 사탕수수밭을 엎어버리고, 고구마를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시청식도 저 사탕수수를 팔 곳이 없을까 궁리하던 터였다. 그런데 자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왜놈들 대신 조선놈들이 선수를 친 모양이었다.

“ 그럼 여기 유구사람들은 사쓰마에 작물을 헐값에 뺏기는 신세에서 나아질 것도 없군. ”

낙담한 투로 한숨을 쉬며 이덕망에게 푸념하듯 말하는 시청식이었다.

“ 아냐, 조선이 유구에 들여오는 물건의 대가로 사탕수수를 내놓는다더군. 사쓰마처럼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할 정도로 헐값에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대가를 받는 모양이야? ”

그렇게만 된다면 사탕수수밭을 갈아 엎은 후에 고구마밭으로 바꾸던 농가에서 다시 사탕수수를 재배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대만이나 광주로 피난간 친척들을 수소문해 남아도는 사탕수수의 판로를 알아볼 생각을 했던 시청식이었지만, 그마저도 조선 놈들에게 기회를 뺐긴 거다.

“ 그런데 조선에서 사탕을 먹던가? 원래 사탕수수는 광주에서 주로 사들이지 않던가? ”

“ 원래 대만에서 재배한 사탕수수를 주로 내다팔던 곳이 광주이긴 했지만 ······. ”

“ 그네들이라고 단맛을 싫어하겠는가? 단지 사탕수수를 사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재화가 없었던 거겠지? ”

하기야 그렇겠다. 단맛을 싫어하는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 그런 곳에서 갑자기 형편이 나아져서 사탕을 들여다 먹는다고? ”

“ 그거야 내가 알 바인가? 그들도 형편이 되니까 유구에 지천으로 나는 사탕수수를 사들이는 것 아니겠나? ”

“ 그거야 그렇겠지? ”

“ 어찌되었든 우리가 이곳에 뿌리내릴 방도가 생길 것도 같으이. ”

이제야 본론을 말하려는 이덕망이었다. 표정을 바꾸며 시청식의 얼굴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시청식은 반문했다. 사탕수수를 재배할 정도의 밭을 살 돈이 없었다. 괜찮다 싶은 땅에는 모두 사탕수수를 이미 재배하고 있었다. 지금 숨겨둔 자금은 나중에 중원에 돌아갈 때 쓸 돈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장사밑천으로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 무슨 수로? 고구마 키울 땅뙈기나 겨우 얻어서 연명하는 형편에 ······. ”

“ 지금 천하가 쪼개지는 통에 대만에서 키운 사탕수수도 판매처가 애매해지지 않았는가? 원래 단 것이야 살만한 자들이 먹는 귀한 식재인데, 전화에 휩싸인 중원의 형편에 언감생심 그걸 누가 사들이겠는가? 이런 때에 새로 사탕수수를 들여다 먹는 곳이 새로 생겼으니 말이야. ”

“ 옳거니. 대만에 사는 피붙이들을 통해 그곳의 사탕수수를 조선에 내다 팔자는 말이로군 그래? 유구에서 거둬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말이야? ”

“ 그렇지? 원래 단맛이란 게 한번 맛들이면 쉬이 잊지 못하지 않는가? 일단 조선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형편이 나아져서 유구의 사탕수수를 거둬가는 거라고 해도, 한번 그렇게 먹은 사람들이면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계속 들여다 먹지 않겠는가? ”

“ 유구의 사탕수수면 조선 사람들이 충분히 먹지 않겠는가? ”

조선에 부가 넘친다면, 벌써부터 남방의 사탕을 매입해서 먹지 않았겠는가? 유구의 사탕수수가 판매처를 잃고 일시적으로 쌓여있는 상황에 사먹는 것이니. 필시 제법 부유하고 형편이 되는 사람들만 먹는 귀한 음식일 터였다. 그정도면 땅이란 땅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유구의 사탕이면 충분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사탕수수를 사들여 팔아봤자 가격만 폭락하고 재미도 못 볼 것이다.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조선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사탕을 먹는다면 모를까?

“ 허허. 이보게. 그동안 사탕수수를 꽁으로 먹다시피 하던 왜놈들도 있지 않는가? 전체를 살펴보면 천하에 설탕을 먹는 사람이 는 것 아닌가? 그동안 왜놈들을 먹이던 유구사탕수수로는 수요가 분명 모자르게 될 것일세. ”

“ 그런가? 그럼 대만에 사탕수수를 재배할 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겠군. ”

“ 그래, 대만에 찾아보면 아직 빈 땅이 제법 있다니 그걸 먼저 취해서 농장을 만드는 거지. ”

이둘은 대만 동쪽에 널려있다는 빈땅에 사탕수수를 재배할 땅을 먼저 취해서 싼값에 사탕수수를 조달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구에 있는 복건성 유민들은 자본이 빈약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둘만으로는 밑천을 만들기 힘들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본을 만들어야 겠다.

“ 그러면 일단 여기 피난 온 사람들을 모아서 자본을 모아야겠어. ”

•••••••••••••••••••

❝ 이보시오. 프린스 흥선. 이왕 나온 것 좀 더 여행을 하는 것이 좋지 않았겠소? 꼭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오? ❞

도성에 들어서고도 쉽새 없이 투덜거리는 앙리 5세였다. 놀러간다고 꾀어서는 자기 볼 일만 보고 몇 군데 들르지도 않은 채 도성으로 돌아오게 되자 골이 잔뜩 난 그였다.

❝ 너무 한꺼번에 놀려고 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학업에서 손을 오래 떼면 다시 익히는 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힘이 더 듭니다. 그러니 다음에 또 여행을 하시지요. ❞

그런 앙리 5세의 투정에 그를 다루는 데에 도가 트게 된 흥선군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 이제 곧 브리튼으로 간다고 했잖소? 그러면 날 데리고 여행갈 사람이 어디 있다고? ❞

입을 빼쭉 내밀고는 투덜거리는 앙리 5세였다. 그래도 국장공주 때문에 다시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 앙리 5세였다.

❝ 이곳에서 친우를 사귀고, 그들과 어울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성균관 학사들과 친분을 쌓으시고 교류하시면 학문도 일취월장 하실 겁니다. ❞

흥선군의 저택에 당도하자 그들이 오는 모습을 본 하인이 그들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 대감나리 오셨습니까? ”

“ 그래 집안에 별일은 없었는가? ”

하인의 인사에 흥선군은 집을 오래 비웠다가 돌아온 주인이 으레 하는 말을 건넸다. 보통은 별일 없었다는 말이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하인은 좀 곤란하다는 듯 흥선군에게 대답했다.

“ 그것이 불란서 국공전하를 뵙기 위해 아미리견이란 곳에서 불란서 사람이 와 계십니다. ”

앙리 5세가 학문을 익히기 위해 장기간 조선 체류가 결정이 되자 어차피 부렬전에 부임하게 된 흥선군의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앙리 5세와 가장 친분이 두터운 조선 사람이 흥선군인데다가 어차피 오랫동안 비워질 흥선군의 집이기에 하인들과 함께 흥선군의 집에 기거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앙리 5세를 찾아온 손님도 흥선군 저택에 기거하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런가? ”

“ 그런데 그 분의 외양이 아무리 봐도 불란서 국공전하와 너무나 달라서 그 말의 진위가 의심됩니다만? ”

“ 그거야 불란서 국공전하께서 만나 뵈면 알 수 있는 일 아니겠나? 이쪽으로 어서 뫼시게. ”

“ 예, 알겠습니다. ”

아직은 조선말이 서툰 앙리 5세는 흥선군과 하인의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리고 이 동방의 먼나라에 그를 찾아올 프랑스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아메리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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