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148화 (148/163)

〈 148화 〉 서쪽에서 부는 미풍, 동쪽에 이는 격랑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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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귀하에게 우리 조정의 공식적인 요청을 전하러 이렇게 흥선군 저(邸)에 방문하였습니다. ❞

흥선군 저의 사랑채에 방문한 병조판서 김좌근은 노베르 릴리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확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흥선군으로부터 릴리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다는 언질을 받고는 릴리외에게 새로 건립되는 공학당(工學堂)을 맡아달라는 공식적인 제안을 가지고 그를 찾아왔다.

❝ 이미 흥선군에게서 들으셨겠지요?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귀하께서 마음을 정하셨다면, 곧 공식적으로 우리 주상전하께서 고신(告身)을 내리시어 성균관에 그대의 자리를 마련해주실 것이오. ❞

릴리외의 승낙의사만 확실히 들으면 즉시 인사명령장(告身)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하며, 은근하게 낮은 어조로 말하는 김좌근이었다.

❝ 아직 생각 중입니다. 조금만 더 고민할 시간을 주시지요? 그런데 만약 제가 그 제의를 수락한다면 지원은 어떻게 해주실 예정이십니까? ❞

사실 유럽에서 조금 뛰어난 기술자로 남는 것보다는 조선에서 공학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반쯤 마음을 정한 릴리외였지만, 학문을 익혀야 한다는 앙리 5세의 조건이 미심쩍어서 고민하는 릴리외였다. 뭔가 저 외로운 왕자님이 말하는 학문이란 것이 끔찍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건을 조율하고픈 기분이었지만, 자신이 근무하게 될 조선의 국립대학에서 주전공으로 가르치는 분야라고 하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우리 주상전하께서 사장하고 계신 내수사의 재화를 풀어서 원하시는 대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 추천하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도 모셔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김좌근은 공학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환경을 제시했다. 무언가를 만들려면 기본적인 도구와 설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릴리외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는 미처 몰랐다.

예산과 인력을 맞춰준다는 말에 릴리외의 마음이 거의 기울어졌다. 좀 더 많은 예산과 인력, 그것은 공학기술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낙원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동아시아 최초의 공과대학의 설립. 릴리외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뭐, 제가 추천한다고 해서 조선까지 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국왕전하께서 지원해주신다면 필요한 기자재는 모두 갖출 수 있겠군요. 좋은 방향으로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

릴리외의 말은 승낙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의 표정과 어조에서 읽은 김좌근은 싱긋 웃은 후에 일이 끝났다고 바로 일어날 수는 없는지라 화제를 바꿔서 릴리외의 옆에 앉아있는 앙리 5세에게 말을 걸었다.

❝ 그나저나 법국 국공전하께서는 중산왕 전하께서 병환이 깊어져서 근심이 크시겠습니다. ❞

❝ 아, 뭐, 그렇지요. 솔직히 별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유국국왕 전하께서 병이 깊으시면 공주께서 그만큼 슬퍼하실 테니 ······. ❞

유구군왕 상육과 그다지 친분이 없던 앙리 5세는 상육이 아프다는 말에도 크게 슬퍼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조선 군무대신이라는 김좌근의 말에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당황했다.

유구공주를 연모한다고 말만하고 쫓아다니기만 했지. 그녀의 가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뭔가 반성하는 것같은 모습의 앙리 5세를 본 김좌근은 너털웃음을 보이며, 앙리 5세에게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 하하하, 뭐 다 그런 거지요. 사실 처갓집 식구가 아프다고 해서 뼈가 시릴 만큼 슬퍼할 사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

그렇게 말하고는 이집의 주인인 흥선군에게 고개를 돌리는 김좌근이었다.

❝ 흥선군께서도 여러모로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부임이 이렇게 늦어서야 말입니다. 이러다 부렬전 부임이 무산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

❝ 뭐, 어쩌겠습니까? 유구 중산왕 전하를 조선까지 뫼셔온 제가 곧 훙거(薨去) 하실지도 모르는 사정을 알고도 부렬전으로 갈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어린 식솔들을 고려해서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두었으니 갈 때 좀 서두르면 부임 시기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

원래는 벌써 임지를 향해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내의원 어의들이 전하는 말이 곧 훙서하실지 모른다는 말에 부임을 미룬 상태였다. 쾌속선으로는 넉달이면 부렬전까지 도달할 수 있으니, 서두른다면 그리 크게 늦지 않을 것이다.

❝ 부임까지 늦추면서 기다리셨는데 중산왕 전하께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시기라도 하면 난감하시겠습니다. 허허. ❞

흥선군은 타인의 죽음을 농담 삼아 이야기 하는 김좌근의 말에 따로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앞에 놓인 떡을 한저름 집어 설탕을 찍어 입에 넣었다.

❝ 유구에서 가져온 설탕이 아주 달고 맛납니다. ❞

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 뒤에 삼키곤 유구산 설탕의 맛을 품평했다. 꿀이나 조청과는 다른 강한 단맛이 요즘 도성의 반가에 유행이었다. 지금 설탕도 임금에게 하사받은 것이다. 아마 좀 더 많은 물량이 들어오면 이렇게 임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재정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원하는 이들이 나라에 상응하는 재물을 바치고 대어 먹게 될 것이다.

❝ 그러게 말입니다. 당장이야 맛나고 좋긴 한데, 이 설탕도 걱정거리니 원 ······. ❞

흥선군의 말을 받아 김좌근이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 우리 처가에서 가져온 설탕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

자신의 찻잔에도 듬뿍 설탕을 넣고, 설탕을 찍은 떡을 한입 입에 넣은 앙리 5세가 김좌근의 말에 반문했다. 이제는 아예 유구를 처가라 칭하는 앙리 5세였다.

❝ 유구에 판매한 조선 물자를 사탕수수로 결재를 했는데, 비싸고 귀한 것이라 왕실과 도성안의 부유한 반가에서나 소비할 물건이지. 백성들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입니다. ❞

❝ 그러면 대금결재를 은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번거롭게 물물교환을 합니까? ❞

김좌근의 말에 앙리 5세가 반문했다. 앙리 5세의 생각에는 은으로 하면 될 거래를 번거롭게 현물거래를 하는 동아시아의 관행이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의 시장에만 가도 쌀이나 면포로 거래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었다. 더군다나 설탕이 필요없으면 당연히 다른 것으로 거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 유구가 그동안 왜구들의 약탈에 빈한하여, 사탕수수 외에는 대금을 결재할 도리가 없다하여, 사탕수수로 받는 겁니다. 도리대로라면 대국인 조선이 유구에 공짜로 주어야 되겠지만, 총통이며, 총기에 도검류까지 유구를 유구 사람들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공되는 모든 것들이 조선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한 물건이니, 어찌 대가를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해방(海防)하기 위한 군선을 무상으로 내어주는 것에도 조정에서 반대 의견이 많아서 힘들게 관철시켰습니다. ❞

실제로 조선에서 유구로 간 물건들은 많았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베푼다는 명목으로 보내진 미곡에 유구 스스로 지키도록 도검과 총통, 조총에 화약, 탄환까지. 사실 무상으로 인도한 군선은 부렬전에서 사여받은 최신식 양선을 유지하는데에도 벅차다는 계산으로 선령이 오래된 군선부터 차례로 폐선을 하거나 상인들에게 불하할 예정인 배였다.

어차피 폐선할 배를 공짜라는 명목으로 넘기고는 생색을 내는 조선조정이었다.

❝ 그 유구란 곳의 특산물이 사탕수수입니까? ❞

김좌근의 말에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릴리외가 질문했다. 사탕수수에 대해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는 평소의 관심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질문한 것이다.

❝ 예, 그렇습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

❝ 제가 조선에 오기 직전까지 연구하던 것이 그와 관련된 일이어서 ······, ❞

❝ 귀하께서는 기관의 전문가라고 들었는데? 사탕수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것을? ❞

애초에 릴리외가 불란서에서부터 기관에 대해 공부한 명망높은 이란 소리에 성균관에 공학당을 따로 설치하여 초빙하려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사탕수수에 대해 연구했었다니? 혹시라도 흥선군이 말을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사람을 모시려 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김좌근이 릴리외에게 그가 어떤 것에 대하여 연구했는지 물었다.

❝ 사탕수수 원액을 정제하는 기술입니다. 전통적인 방법에 비하여 그 정제 효율이 훨씬 높습니다. 그것을 설명하자면 ······. ❞

릴리외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을 그려 설명을 하려는 생각에 평소 들고 다니는 설계도 작성용 연필을 꺼내서 설계도면을 그릴 때 쓰는 넓은 종이까지 펼쳤다.

❝ 잠깐, 자네가 익혔다는 기관은 원래 말없이 마차를 끄는 물건이 아닌가? ❞

이번에는 흥선군이 릴리외에게 물었다. 분명 불란서의 대학당(Grandes Écoles)에서 기관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까지 했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사탕수수 즙을 정제하는 기술이라니?

❝ 그건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증기기관의 아주 기초적인 역할이지요. 기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그것도 모르시면서 저를 영입하려 하신 겁니까? 일단 제가 특허를 출원한 장치의 얼개는 말입니다. ······. ❞

릴리외의 타박에 흥선군과 김좌근은 할 말을 잃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앞의 짙은 갈색 피부의 사내는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더 거물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렬전에서 기관을 접한 조선인들은 그것만으로도 천하의 신기한 기물이라고 탐냈는데, 그 기관을 기초적인 것이라 하며 그보다 더한 것을 궁리하고 있다는 릴리외는 도대체 어떤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 ······ ❞

릴리외가 신나서 종이에 개념도를 그리며, 자신이 연구하던 기술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의 설명은 전문적인 기술용어나 개념어로 영어와 불어를 마구 섞어서 하는 통에 그들을 통역하기 위해 앉아 있는 역관이 아무런 통역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구라파와 통교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역원에 소속된 역관이래도 일상에서 쓰는 말 정도나 통변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도 부렬전 말에 한정된 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최근까지 관심을 두고 있던 사탕수수 정제기술에 대해 신나서 설명하는 릴리외의 아메리카 억양의 영어와 불어는 더더욱 해석 불가였다.

릴리외의 입에 기름칠 한 것같은 설명에 흥선군과 김좌근이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는 이유였다.

❝ 아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전통적인 방법보다 사람은 덜 쓰고, 연료도 덜 쓰면서도, 순도가 높은 설탕을 아주 많이 뽑아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간단한 것을 전공자도 아닌 문돌이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하나? 이래서 기술자, 공돌이들은 ······, 쯧. ❞

릴리외가 신나서 떠드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앙리 5세가 짜증을 터트리면서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누벨 오를레앙 억양의 프랑스어와 역시 누벨 오를레앙 사람들이 쓰는 느릿하면서도 약간은 천박한 억양의 영어를 대충 알아먹은 앙리 5세의 깔끔한 정리였다.

앙리 5세의 핀잔에서 릴리외가 설명하는 기술의 핵심을 알아들은 흥선군과 김좌근은 앞에 있는 고수머리의 흑갈색 살색의 사내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월척이었다.

❝ 예, 결론만 말씀드린다면 그렇습니다. 그런 결론이 도출되려면 이 장치의 이 부분을 주목하실 필요 ······. ❞

앙리 5세의 정리에도 아직 설명할 것이 남았는지 다시 설명을 시도하는 릴리외였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짜증을 터뜨리며 앙리 5세가 면박을 줬다.

❝ 알았소. 알았어. 당신 똥 굵소. 그거 백날 설명해봐야 여기 알아들을 사람 없으니 그만 하시고. 조선 디저트를 그 설탕에 찍어 입에 넣기나 하시오. 충분히 당신의 효용을 알겠으니 말이오. 프린스 흥선. 더 들을 필요 없는 것 맞지 않소? ❞

❝ 아, 아, 뭔가 대단한 설명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예, 일단 릴리외씨가 대단한 사람이란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병판대감. ❞

흥선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김좌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아, 그렇습니다. 뭔가 대단한 소릴 듣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궁리해보아야겠지만, 일단 유구에서 실어오는 사탕과 사탕수수를 좀 더 형편이 되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그런 얘기 아니었습니까? ❞

❝ 예,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산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창안한 방식은 말입니다. ······. ❞

앙리 5세가 겨우 멈춘 그의 장황한 설명이 다시 시작되려 했다.

•••••••••••••••••••

“ 이보게 청식이, 이곳 정말 좋은 곳이군. 유구에 있는 우리 피붙이들 모두 데리고 와서 그냥 여기에 뿌리내리고 살아도 되겠네. 그려? ”

이덕망이 시청식에게 웃으며 말을 했다. 며칠 전 상륙한 후 살펴본 이곳은 그가 시청식에게 설명 들었던 그대로였다. 높은 산자락 너머 뒤편에 이렇게 좋은 땅이 숨어있는 것을 청나라 놈들은 몰랐던 것이다.

큰 강줄기가 흐르고 평지가 넓게 펼쳐졌다. 이곳이라면 조금만 개간을 하면 무슨 농사를 지어도 풍작일 것이다.

“ 아예 여기에 우리만의 나라도 세우고 말이지? ”

“ 그거 좋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던가? 나라를 세우고 서로 왕이 되고, 귀하신 분이 되어 대대손손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그려. 걱정했던 생번 토인들도 없는 것 같고 말일세. ”

청조에 신속하지 않는 생번들의 땅이라고 하여 걱정을 했었지만 그들이 각오하고 기다리던 생번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접근하면 그들을 구슬려서 거래를 트려던 이들은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좋다 싶은 곳에 움막을 짓고 개간을 위해 숲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제법 소란스럽게 움직이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어쩌면 생번의 땅이란 것도 과장된 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곳에 사탕수수농장을 만들어서 한몫 잡을 생각에 부푼 사람들은 희망에 차서 땅을 일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래를 해서 이익을 나눌 필요 없는 주인 없는 땅이라니? 다들 개꿀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 그러게? 진짜 생번들이 왜 안 보이는 거지? 어쨌든 저쪽에 사탕수수를 심고, 저기 강을 끼고 있어서 물을 대기 좋은 곳에는 벼를 심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

“ 그거 좋겠네. 유구에서는 곡물을 키우기가 좋지 않아서 그동안 고구마만 줄곧 심어서 먹었잖는가? 사람이면 쌀을 먹어야지. ”

“ 그거 좋네. 어쨌든 잘될 일만 남았네. 사람을 더 데려오려면 저쪽에는 집을 지어서 마을을 만들면 되겠구먼. ”

유구에서 온 유민, 시청식과 이덕망은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떠드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수풀의 잎새가 흔들렸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 채진 못했지만 말이다.

•••••••••••••••••••

“ 전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

“ 무엇인가? 혹시 중전의 산통(産痛)이 시작되기라도 한 것이냐?  ”

석수라를 마치고, 대왕대비전과 대비전에 문안을 드리러 가려던 참이었다. 임금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내관도 임금의 다음 일정이 어떤지 모를 리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내의원에서 이제 곧 중전의 출산이 임박했음을 고했는데? 설마?

“ 유구 중산왕 전하께서 전하를 뵙자고 청해왔습니다. ”

임금의 그런 상상을 깨는 내관의 한마디였다.

“ 숙부께서? 숙부께서는 몸이 불편하신데 어찌된 소리인가? ”

설마 자신을 알현하기 위해 창덕궁까지 오실 정도로 회복했단 말인가? 아침에 들은 보고로는 용태에 변함이 없다고 했었는데?

“ 그것이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중산왕께서는 자신이 거동을 할 수 없으니 전하께서 자신의 거처인 경운궁(慶運宮)으로 친림(親臨)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하였사옵니다. ”

“ 그래? 숙부께서 무슨 하실 말씀이 있기에? 알았다. 어서 나갈 차비를 하라. ”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유구군왕의 거처로 내어준 경운궁으로 가봐야 할 것이다. 병석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가 결례를 무릅쓰고 자신을 보기를 청했다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내일 조회에서 신료들이 이건을 가지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서 중산왕을 만나러 가야할 것이다.

“ 예, 서둘러 준비하겠나이다. ”

내관의 대답소리를 듣고는 익선관을 고쳐 쓰는 임금이었다. 대왕대비전과 대비전에 문안은 좀 미뤄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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