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영천하, 조선만세-157화 (157/163)

〈 157화 〉 서쪽에서 부는 미풍, 동쪽에 이는 격랑 2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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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허, 그대처럼 유명한 문사가 유구사절과 같이 왔을 줄은 미처 몰랐소. 덕분에 내가 이렇게 직접 만나는 영광을 안게 되는구려. ”

대청국 호부시랑이자, 군기대신인 계지창(季芝昌)이 웃으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 그저 허명일 뿐입니다. 대청국에서 교유했던 친우들이 저를 과하게 평가해준 것일 뿐입니다. ”

계지창이 경계심을 풀고 자신을 환대하자 공손하게 읍을 한 이는 조선의 중인 역관출신 관료인 이상적(李尙迪)이었다. 그는 인재를 청하는 김좌근의 청에 김정희가 추천한 사람이었다. 양반 중심의 조선관계에서도 뛰어난 문장을 인정받아 중인출신임에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지난 전쟁 이래로 조선과 대치중인 청국에 유구 사절단의 통변으로 위장해서 다시 오게 된 것은 혹시라도 청국과 왕래할 일이 있다면 적임자는 이상적만 한 사람이 없다는 김정희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이상적은 조선보다도 청국의 문인사이에서 그 문장으로 더욱 유명한 사람이었다.

“ 그래? 우선(藕船,이상적의 호)께서 나를 보고자 하셨다고? 여러 문사들이 나에게 한번 만나보라 청하는데 거절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

그자신도 청국에서 문사(文士)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계지창은 장요손(張曜孫)이나 유희해(劉喜海)같은 이들이 조선에서 온 손님을 거론하며 꼭 만나보셔야 한다는 청에 시간을 내준 것이다. 이상적과 교유하던 문우(文友)들의 인맥을 이용하여 군기대신인 그를 만나려 한 조선김좌근의 계획이었다.

“ 저희 조선의 병조판서 대감께서 보내는 서신입니다. ”

“ 조선이 우리 청조의 강역에 군대를 보낸 이래 조선 대신의 친전을 처음 받는 구려. ”

그렇게 말하곤 계지창은 김좌근이 보낸 서찰을 찬찬히 읽었다. 김좌근이 보낸 서신을 모두 읽은 계지창은 서찰을 등불에 갖다대고는 태웠다. 그러고 한참을 무언가 생각을 한 후에 입을 열어 이상적에게 말했다.

“ 흐음, 그대는 이 내용을 알고 왔는가? ”

“ 저처럼 미천한 역관이 나라의 큰일에 어찌 간여하겠습니까? 허나 병조판서 김좌근 대감에게 대강의 이야기는 전해 듣기는 했습니다. ”

말을 전하는 이가 그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미 김좌근을 통해 대략의 이야기를 듣고, 이 위험한 길을 나선 이상적이었다.

김좌근이 전하는 이야기는 비록 조선과 청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서,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될 수는 없지만, 천하 만방으로부터 고립된 청국이 유구의 입조를 받아들였을 때의 이점을 적은 것이다.

유구의 입조를 받아, 부족한 자원을 유구를 통해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조선이 부렬전에 입조한 것으로 몇 년 간은 조선쪽에서 부렬전이 청국을 노려서 쳐들어 오지 않도록 막아주겠다는 한시적인 약속이었다.

조선도 준비가 덜 되어 청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 수는 없지만, 대신 영길리(조선에서는 부렬전으로 부르는)가 조선 방향에서 청국을 향해 싸움을 거는 것을 막는 담벼락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냔 내용이었다.

“ 자네 글을 잘짓는 걸로 유명하다더니, 이런 참람한 서신을 들고 범의 아가리에 들어올 정도로 담대하기까지 하군? ”

“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에 어찌 몸을 사릴 수 있겠습니까? 비록 미천한 역관이지만 저 또한 옛성현의 도를 공부하였습니다. ”

조선 측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계지창은 고민되었다. 다신은 예전처럼 서로 교린하는 이웃의 관계가 될 수는 없지만, 몇 년간은 조선쪽은 신경 쓰지 않도록 해 주겠다? 지금 청국에게 필요한 것은 힘을 추스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래 온 김에 시나 한수 써주게나. ”

문장으로 유명한 조선의 문인을 만났다. 골치아픈 나랏일은 다음에 생각하고 시 한수를 청하는 계지창이었다.

“ 그러지요. 그럼 지필묵을 좀 빌려 쓰겠습니다. ”

•••••••••••••••••••

❝ 불신 지옥!! 우상을 섬기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

신사(神社)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모여있는 신도들에게 설교하는 베텔하임이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신도들은 기독교 탄압을 피해 숨어살던 기독교인들과 베텔하임의 신사에서 주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모여든 에도 인근의 빈민들이었다.

그들은 베텔하임의 설교에 고개를 굽신거리며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신도들의 그런 열렬한 반응에 베텔하임은 흥분되어 크게 외쳤다.

❝ 불신지옥!! 믿쑵니까? ❞

❝ 오오, 카미사마, 믿쑵니다. ❞

❝ 불신지옥!! 태평신국!! ❞

신도들은 베텔하임의 물음에 큰소리로 믿는다고 외치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절을 했다. 그들의 외침 중에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태평신국(太平神國)이란 소리까지 흘러 나왔다.

조선과 이기리스가 베텔하임을 에도에서 선교하도록 주선한 것만 아니면,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혹세무민한다는 죄명으로 막부에 의해 목이 잘릴지도 모를 소리였다. 아무리 흥분해서 나온 실언이라도 말이다.

“ 저 양반은 여전하군? ”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는 베텔하임의 목소리에 이곳에 식량을 전해주기 위해 들린 장순규가 말했다.

“ 아, 오셨습니까? ”

장순규의 모습을 본 류우간이 달려와 그를 맞았다. 장순규는 류우간을 위해 중원의 식재료와 고기를 가져다 주는 귀한 손님이었다. 장순규가 나타나면 며칠 간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 그래, 이곳에서 먹을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가져와야지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 먹이려면 말일세. ”

신도들에게 한끼라도 먹이라며 가져다 주는 식량의 양은 상당했다. 흥선군이 막부에 폐를 끼치기 싫고, 베텔하임과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따로 있다고 말해서 천하장안이 주기적으로 직접 중원과 부렬전 상회에서 구입한 식재료였다.

막부에서는 자신들의 돈이 들지 않고, 주변의 빈민들을 따로 구제할 필요가 없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 입장에서도 부랑자들이 이 주변에 모이면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저 사람들 먹을 소채류니, 두부 같은 것을 사려고 시장을 봐야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고기는 통 먹질 않으니 말입니다. ”

천하장안이 식량을 잔뜩 가져다 줘도, 백만이 넘게 사는 에도의 빈민들이 모여들다보니 식재료가 부족할 때가 있었다. 특히나 고기를 먹지 않는 왜놈들 식성을 맞춰주려면 나물과 두부에 가끔은 그래도 어패류를 구해서 먹여야 했다.

“ 그래서 다행이지. 저네들이 고기를 먹으면 부렬전 순대를 대려면 허리가 휘어질 것일세. ”

“ 맞아. 그나마 부렬전 군병들이 먹으려고 제주에 순대 만드는 공방을 만들었으니 그나마 이것도 가져올 수 있는거요. 여기 소금에 절인 생고기는 빨리 먹고 여기 순대는 그 다음에 먹도록 하게. 그리고 여기 수유와 건락은 저 양반 주면, 알아서 먹을 것이고. ”

제주에 와있는 부렬전 군병들이 먹을 고기를 위해, 조정에서 운영하던 말목장 몇 개소를 소와 돼지를 키우는 목장으로 돌렸다. 돼지와 소도 부렬전에서 가져온 종자로 조선 돼지나 소보다도 훨씬 커서 그곳에 갔던 천하장안들이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 가져온 식량 중 베텔하임과 그 가족들이 먹을 것으로 챙겨온 수유(酥油,버터)와 건락(乾酪,치즈)가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아, 이쪽은 저 양반에게 의술을 배우기 위해 온 조선 청년들일세. ”

장순규가 자기 뒤에 서있는 청년들을 가리키며 류우간에게 인사를 시켰다.

“ 안녕하십니까? 여기 있는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조선에서 온 청년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에 류우간도 포권을 한 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의술을 배우러 왔으면, 자신보다는 신분이 높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향 땅을 떠나 외국에 있는 입장에서 의술을 배우는 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도움 받을 일이 많을 것이다. 아무래도 모시는 분이 의원이라지만, 어느 누가 미친놈에게 진료를 받고 싶겠는가?

“ 다들 어리지만, 몇몇은 의원가문에서 어려서부터 의술을 익힌 인재들이니, 자네도 어디 아플 때 말하면 약을 내어줄 걸세. 높은 어르신들 명이라 청년들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우리네 의원들의 의술이 있는데, 뭣 하러 저런 미친 양인에게 의술을 배우라 하는 것인지? ”

찾아올 때마다 미친놈처럼 행동하는 베텔하임의 모습을 봤던 장순규인지라, 전도유망한 어린 청년들을 저런 미친놈에게 맡겨서 의술을 배우게 한다는 것이 영 떨떠름했다.

“ 그래도 마마를 다스리는 의술이 있다는데, 안 배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청년 중 유난히 똘망똘망한 눈빛을 하고 있는 청년이 장순규의 말을 받아쳤다.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로 김정희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청년인 유홍기(劉鴻基)였다. 그는 두창(痘瘡,천연두)를 다스리는 의술이 있다는 말에 스승에게 청해 직접 이곳에 온 것이다.

그를 아끼던 김정희가 인재를 청하는 김좌근에게 잘 키워보라고 추천까지 했었기에 병조판서 김좌근과 스승인 김정희의 만류가 있었지만, 평소 의술에 관심이 많았던 유홍기는 두창을 다스리는 방법을 널리 전파하면 수많은 백성을 살릴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려 베텔하임에게 의술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다.

“ 난 그 말이 사실인지 믿지 못하겠어. 뭐, 하여간 잘 배워보게. 괜찮다싶으면 내 자네들에게 진료를 청하지. ”

다들 두창을 다스리는 신묘한 의술이 있다는 말에 배움을 청해온 청년들이었다. 장순규는 혹시라도 그런 신묘한 의술을 배운다면 자신이 기꺼이 청년들에게 진료를 청할 생각이었다.

다시 류우간에게 몸을 돌린 장순규는 류우간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 우간이 자네가 고생이 많네. 그래? 여기 교도들 먹일 식재를 사려면 돈이 제법 들 터인데 모자르지는 않은가? ”

“ 그렇잖아도 요즘 소채며, 두부며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걸 팔아먹는 장사치들만 폭리를 취하고 있죠. ”

류우간은 에도를 돌면서 본 것을 조선에 알리는 소중한 정보원이었다.

“ 그런가? 가뭄이나 그런 것 때문에 농사를 망쳐서 그렇겠지? ”

“ 아닙니다. 특별히 가뭄이 든 것도 아니고, 농사를 망쳤다는 이야기도 돌지 않습니다. 물론 장사치들은 항상 죽는 소릴 하지만, 원래 장사치들의 습성이 그런 거니 그네들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류우간은 지나는 말처럼 자신이 본 것을 전했다.

“ 아이고, 알았네. 알았어. 여기 은자를 좀 넉넉히 넣었으니. 식재료가 모자라지 않게 넉넉하게 사고, 자네도 맛난 것을 좀 사먹고 하게나. ”

그말에 별거 아니란 듯 말하며, 일본에서 통용되는 사각형 은자를 넣은 주머니를 류우간에게 건네는 장순규였다. 감시하는 왜놈들도 그들이 그냥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고, 생활비를 건네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실제로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도 그런 범주의 이야기일 뿐이니 말이다.

“ 아이고, 대인 감사합니다. ”

“ 그리고, 우리가 가져온 쌀은 알지? ”

장순규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류우간에게 당부했다.

“ 벌레 먹지 않도록 으슥한 곳에 잘 보관하게나. ”

“ 예,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벌레가 저를 제일 먼저 갉아 먹을 텐데, 어찌 보관에 소홀하겠습니까? ”

“ 그래, 그리고 이건 강남에서 파는 과자일세. 이왕이면 맛난 걸 가져오고 싶은데, 오래 보관되는 게 이런 것 밖에 없더군. 다음에 좀 괜찮은 게 있으면 또 구해오겠네. ”

“ 항상 감사합니다. 여기 일은 걱정 마시지요. ”

조선에서 보내온 귀한 쌀, 은 은밀한 곳에 벌레 먹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뤄야 할 것이다.

“ 그래, 알겠네. 자, 빨리 옮기게나. 저쪽으로. ”

장순규는 배에서부터 식량을 실어온 일꾼들에게 재촉했다.

•••••••••••••••••••

“ 대인, 밖에서 원군이 불러올 방도가 없겠습니까? ”

담수포도동지(淡水捕盗同知) 사밀이 상급자인 요옥과 달홍아에게 말했다. 사밀은 갑작스레 상륙한 유구군에게 기습당한 후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번자료(番子寮)까지 후퇴해서,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달홍아와 요옥의 군대와 합류했다.

“ 이미 복건은 역도들이 영길리에 나라를 들어다 바쳤다지 않소? ”

대만병비도(臺灣兵備道) 순찰사 요옥(姚莹)이 한숨을 쉬며, 사밀에게 말했다.

“ 이런 간악한 유구와 조선놈들이 ······. ”

사밀은 요옥의 모습을 보고는 천조가 이렇게까지 몰려있을 때 누대에 걸친 의리를 져버리고, 천조의 땅인 대만도(臺灣島)를 침략한 유구와 조선에 대한 원한이 치밀어 올랐다.

“ 허참, 북방의 조선이 대만까지 올줄은 ······. ”

대만진(臺灣鎭) 총병 달홍아도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한탄했다. 영길리 오랑캐나 남경의 역도들이 대만도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은 항상 예상하고 있었지만, 천조의 충실한 번국이었던 유구와 조선이 쳐들어 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그래도 저들이 담수청(淡水廳)을 통해 남하하니 길목만 막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소? ”

요옥이 자세를 바로하며, 대만에 있는 군대의 총책임자인 달홍아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대만도 북부는 산세가 험준하기에 산과 산 사이의 협곡에 난 길목만 지키면 남쪽의 평야지역까지 적들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었다.

“ 하지만 우리가 유구와 조선의 이적들을 막자고 병사를 모두 북쪽으로 돌리면 바다를 통해 영길리 놈들이 쳐들어오지 않겠습니까? ”

총병 달홍아는 고개를 흔들며, 대만 방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만약 지금의 사태가 영길리에 입조했다는 조선과 영길 리가 함께 꾸민 일이라면, 북쪽에 신경이 쏠렸을 때 영길 리가 해안을 노리지 않을 리 없었다.

“ 그렇다고 섬에 갇혀있는 우리가 저들과 싸움을 피하며 버틴다는 것은 그냥 말라죽자는 것 아니오? ”

“ 게다가 화약도 얼마 없습니다. 이대로 찔끔찔끔 저들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

“ 영길리야 우리가 건재한 이상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저들의 침입을 다섯 차례나 막아낸 우리 아닙니까? ”

“ 하지만 그건 몇 명 되지도 않는 자들이 염탐하러 온 것 아니오? ”

휘하 장수들의 갑론을박을 듣고 있던 요옥이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제지하며, 말했다. 워낙에 영길리 군과 싸울 때마다 지던 청군이었다. 그래서 대만병비도 소속의 군대가 거둔 성과를 대승으로 포장해서 선전했을 뿐이었다. 여기도 그때 현장에 없던 장수들은 그 내막을 정확히 모르는 일이었다.

“ 그래도 그 이후로 몇 년간 대만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저들이 피를 흘려 대만을 얻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유구와 조선 놈들만 물리치면 다시는 대만을 탐내지 않을 겁니다. ”

“ 병량이야 남쪽 농지에서 거둬들인 것이 충분하지 않소? 이대로 길목만 막아서 북방을 지키고, 해방을 하면, 쉽게 뺏기지 않을 거요. ”

요옥이 휘하 장수의 주장에 북쪽 협곡을 틀어막고, 방비를 튼튼히 하자는 의견을 다시 냈다.

“ 길목이라뇨? 신죽현성(新竹縣城) 이북으로 제대로 된 성채가 어디 있습니까? 섬 북쪽을 모두 내어주잔 말씀이신가요? ”

신죽현성이면 대만도의 북변을 모두 내주자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 하지만 조정에서 증원을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소모한 물자를 보충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소? 섬을 지키자면 정병 일만 오천에 향용과 의군을 합쳐 오만 밖에 안되는 병사들을 지킬 수 있는 곳에만 배치해야하지 않겠소? ”

“ 화약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이곳 대만은 초전을 만들어 염초를 캐기 쉽지 않는 곳입니다. 거기다 섬 북방을 포기하면 유황이 어디서 구할 겁니까? 대만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북쪽의 이적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우리입니다. ”

총병 달홍아가 단호하게 요옥에게 말했다. 화약이 없다면 해방을 위해 만들어진 포대가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염초야 비가 많이 오는 대만이라도 초전을 일궈서 어떻게든 소량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화약을 만들 유황은 섬 북부에서 채취할 수밖에는 없었다. 북경의 조정에서 영길리와 남경의 역도들을 일소할 때까지 대만을 지키기 위해서도 섬의 북단지역을 뺏길 수 없는 이유였다.

“ 병비도 대인, 제가 휘하 정병을 데리고, 유구군과 일전을 벌여 그들을 물리치겠습니다. 유구놈들을 모조리 일소하면 영길리 놈들은 대만에서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겁니다. ”

요옥은 말없이 달홍아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본 후에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 총병, 그렇다면 반드시 이겨야 할 것이오. 할 수 있겠소? ”

“ 예, 대인, 소관 달홍아, 이기지 못한다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

* 성에 의지해 지키자는 말은 지도에서 보시듯 대만북부를 모두 포기하자는 말과 다름 아닙니다. 현재 타이페이 주변의 성곽을 19세기 말에 수축된 성으로 작중 시점에는 (1848) 수축되지 않았습니다. 신죽현성의 다른 이름이 담수청성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담수청, 갈마란청 등 행정구역을 정했지만, 실질적인 지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담수청 조차도 한화된 평포족과 일부 한족들의 개척이 진행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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