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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로부터 달 표면의 그림 엽서가 온 1주일 뒤에, 나는 일 때문에
하코다테로 가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별로 매력이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일의 좋고 싫고를 선택할 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뿐더러 도대체가 나에게
돌아오는 어느 일을 놓고 보아도, 거기엔 좋고 싫고를 가릴 만한 차이는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반적으로 사물이란 것은 가장자리로 가면 갈수록
그 질의 차이가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주파수와 마찬가지다. 어느 한계점을
넘어버리면, 인접하는 두 음향의 어느 쪽이 높은가 하는 따위는 거의 분간해낼
수 없으며, 이윽고 분간은커녕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고 만다. 그것은 어느
여성지를 위해 하코다테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다는 기획이었다. 나와
카메라맨 둘이서 몇몇 가게를 돌며, 내가 기사를 쓰고, 카메라맨이 그 사진을
찍는다. 모두 5페이지. 여성지란 그런 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누군가 그런
기사를 써야 한다. 쓰레기 치우기나 눈 치우기와 다름없는 일이다.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이다. 좋고 싫고와는 관계 없이. 나는 3년 반 동안, 이러한 식의 무화적
우수리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문화적 눈 치우기란 말이다. 어떤 사정으로
그때까지 친구와 둘이서 경영하고 있던 사무실을 그만둔 다음, 나는 한 반 년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청히 살고 있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전해,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서는 실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이혼을 했다. 친구가 죽었다. 불가사의한 죽음이었다. 여자가
아무말 없이 사라져 갔다. 기묘한 사람들을 만났고, 기묘한 사건에 말려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나는 그때까지 경험한 적이 없을만큼 깊은 정적에
푹 휩싸여 있었다. 무시무시할 만큼의 농밀한 부재감이 나의 방 안에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 방 안에 반 년 동안 꼼짝 않고 틀어박혀 있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사들이는 것을 제외하면, 낮동안은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는 새벽녘 시간에 나는 목표도 없이 산책을 했다. 삶들이 거리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 되면 방으로 돌아와서 잠들곤 했다. 그리고 저녁
전에 잠이 깨어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서 먹고, 고양이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식사가 끝나면 방바닥에 앉아서 내 몸에 일어난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
생각해서 정리해 보았다. 순번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거기에 존재했을 터인
선택지를 리스트 업도 하고,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이모저모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 일을 새벽녘까지 계속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정처도 없이 무인의 거리를 헤매어 다녔다. 나는 반 년 동안 그 짓을 매일
매일 계속했다. 그렇지 1979년의 1월부터 6월까지. 나는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신문조차 펼치지 않았다. 음악도 듣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보자
않았으며,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술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유명해졌으며 누가 죽었는지, 나는 무엇 하나 알지를 못했다. 일체의 정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별히 알고 싶다고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나로서도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 꼼짝 않고 있어도, 나는 그 움직임을 피부로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가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미풍처럼 나의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다만 방바닥에 앉아서, 머리 속에 과거를
재현해대고만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반 년 동안 그것을 매일 매일
계속해도 나는 권태나 따분함이라는 것을 통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체험한 그 사건은 너무나도 거대했으며, 너무나도 많은 단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그리고 사실적이었다.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그것은 마치
밤의 어둠 속에 솟구쳐 선 모뉴멘트와도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모뉴멘트는 나
한 사람을 위해 솟구쳐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빠짐 없이 검증했다.
나는 그 사건을 통과한 일로 해서 물론 그 나름의 피해를 입고는 있었다. 많은
피가 소리도 없이 흘렀다. 얼마간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지만, 얼마간의
아픔은 뒤에야 찾아왔다. 그러나 반 년 동안 꼼짝 않고 그 방 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었던 것은, 그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정리하고 검증하는 데에 반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자폐적이 되거나, 외적 세계를 완강하게 거부하거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단순히 그것은 시간적인 문제였다. 다시 한번 자신을 제대로 회복하고,
재정비하지 위한 순수한 물리적인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을
재정비한다는 의미와, 그 다음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거기에 대해선 다시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우선 첫째로 평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고양이하고조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때때로 문을 노크했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편지도 몇 통인가
왔다. 나의 예전의 공동 경영자가 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써 왔다.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없다. 우선 급한 대로 이 주소로 편지를 써
놓는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말해
달라. 이쪽 일은 지금 현재로선 순조로운 편이다. 그렇게 써 있었다. 친지의
소식에 관해서도 적혀 있었다. 나는 몇 번인가 그것을 되읽어 보고,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파악까지에는 네번 또는 다섯 번 되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헤어진 아내로부터의 편지도 왔다. 편지에는 몇몇 실제적인
용무가 써 있었다. 매우 사무적인 어추의 편지였다. 그러나 끝머리에 자기는
재혼하기로 되었다. 재혼의 상대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써
있었다. 앞으로 알게 될 것도 없을 게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한 쌀쌀맞은
추였다. 그 뜻은, 나와 이혼했을 때에 사귀고 있던 상대와는 헤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그럴 테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대수로운 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즈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특별히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재미난 인물도 아니었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남자에게 끌리었는지 나로선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글쎄, 그건 타인과 타인 사이의 문제이다. 나에 대해선 아무 걱정도 낳고
있다, 그렇게 그녀는 쓰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든간에 제대로 착착 해가는
사람이니까. 제가 걱정하고 있는 건 앞으로 당신이 관련을 가지게 될 사람들에
대한 일이에요. 저는 요즈음 그런 일이 어쩐지 몹시 가정된답니다, 하고. 나는
그 편지도 몇 번인가 되읽고, 그리고 역시 책상 서랍에 쑤셔 넣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금전 면에서의 문제는 없었고, 그 다음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나의 방을
따스하고 평화로운 빛으로 충만하게 했다. 창문으로 들이비치는 햇살이 그리는
빛의 무테를 매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태양의 각도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봄은 또 내 마음을 갖가지 옛 추억으로 충만하게 했다.
사라져 간 사람들, 죽어버린 사람들. 나는 쌍둥이들에 대한 회상을 했다. 나는
그녀들과 셋이서 얼마동안 지냈었다. 1973년의 일이었다, 분명. 그 무렵 나는
골프장 옆에 살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우리들은 철망을 타고 넘어서 골프장
안에 들어가, 목표도 없이 거닐고, 골퍼들이 잃어버린 볼들을 줍곤 했다. 봄날의
해질녘은 나에게 그런 정경을 회상하게 했다.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입구와 출구. 죽어버린 친구와 둘이서 다니던 조그마한 스낵 바 일도 생각났다.
우리는 거기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이제껏 인생에서 가장 실체가 있는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묘한
일이다. 거기서 틀어줬던 옛 음악도 생각났다. 우리는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그런 장소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고밖엔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젠 죽어버렸다. 온갖 것을 끌어안고 그는 죽어갔다. 입구와 출구. 봄은
점점 깊어만 갔다.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 갔다. 밤의 어둠의 색깔도 변화했다.
소리도 다른 울림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계절은 초여름으로 바뀌었다. 오월달
끝무렵에 고양이가 죽었다. 당돌한 죽음이었다. 아무런 조짐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고양이는 부엌 한구석에서 둥글게 꼬부라져 죽어 있었다.
아마 저 자신도 영문을 모르는 채 죽어버렸을 게다. 시체는 식어빠진 구운
통닭처럼 빳빳해지고, 털 뭉치는 살았을 때보다 한층 지저분해 보였다.
<정어리>라는 이름의 고양이. 그의 생활은 결코 행복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누군가로부터 깊이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특별히무엇인가를 깊이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불안한 듯한 눈으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읽으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그런 눈으로. 그런 눈짓을 할
수 있는 고양이란 좀처럼은 없다. 하지만 어떻든 죽어버렸다. 한번 죽어버리면,
그 이상 잃어버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죽음의 훌륭한 점이다. 나는
고양이의 시체를 슈퍼마켓의 종이봉지에 넣어서 자동차의 뒷좌석에 놓고, 근처
철물점에서 삽을 샀다. 그리고 실로 오래만에 라디오의 스위치를 맞춰, 록
뮤직을 들으면서 서쪽으로 향했다. 대개는 시시한 음악이었다. 프리트우드 맥,
아바, 메리사 맨체스터, 비이지이즈, 도너 서머, 이글즈, 보스턴, 쿠모도어즈,
존덴버, 시카고, 케니 로긴즈... 그런 음악들이 거품처럼 떠올랐다간 꺼져갔다.
시시하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친 에이저로부터 푼돈을 앗아내기 위한 쓰레기
같은 대량 소비 음악. 하지만 나는 곧 서글픈 기분이 되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것뿐인 것이다. 나는 핸들을 잡으면서, 우리들이 틴 에이저였던
시절에 라디오에서 흐르고 있던 시시한 음악을 몇 가지인가 생각해 내보려고
했다. 낸시 시나트라. 음, 그건 하잘 것 없었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몽키즈도
엉터리였다. 엘비스만 해도 다분히 쓰잘 데 없는 곡을 잔뜩 부르고 있었다.
토리니 로페스 녀석도 있었지, 팻분의 대개의 곡은 나에게 세수비누를 생각나게
했다. 페비언, 보비 라이델, 아네트, 그리고 또 물론 허먼즈 허미츠, 그건
재앙이었다. 꼬리를 물고 연신 등장해온 무의미한 영국인들의 밴드. 머리카락이
길다랗고, 기묘한 바보스러운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얼마나 생각해낼 수
있을까? 허니캄즈, 딥 클라크 파이브, 젤리와 페이스메이커즈, 프레디와
드리머지... 끝도 없다. 사후경직을 생각하게 하는 제퍼슨 에어프레인, 톰 존즈-
이름을 듣기만 해도 몸이 굳어진다. 그 톰 존즈의 추악한 크론인 엔겔벨트
훈퍼닝. 무엇을 듣건 광고 음악으로 들리는 허브 알파트와 티파나 브러스. 저
위선적인 사이몬과 가펑클. 신경질적인 잭슨 파이브. 비슷비슷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았다. 언제든 언제든 언제든, 사물의 존재 양식은 같은
것이다. 다만 연호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 들어섰을 뿐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
없는, 쓰고 버릴 음악은 어느 시대에건 존재했고, 이제부터 앞날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처럼. 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꽤 긴
시간을 차를 몰았다. 도중에서 롤링 스톤즈의 <브라운 슈거>가 나왔다. 나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멋진 곡이었다. 제법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정확하게 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1971년이건 1972년이건, 이제 와선 어는 쪽이건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왜 그런 일을 일일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적당하게 산이 깊어진
곳에서 나는 고속도로를 내려와, 적당한 나무숲을 찾아서 거기에 고양이를
묻었다. 숲속 깊은 곳에 삽으로 1미터가량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백화점
종이봉지로 뚤뚤 뭉친 채로 정어리를 던져 넣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미안하지만 우리에겐 이게 걸맞은 거야, 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정어리에게 말해
주었다. 내가 구덩이를 묻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작은 새가 계속 울어대고
있었다. 플롯의 고음부 같은 음색으로 우는 새였다. 구덩이를 깡그리 메워버린
후, 나는 삽을 차의 트렁크에 놓고, 고속도로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음악을
들으면서 도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로드 스튜어트와 가일즈 밴드가 나왔다.
그 다음에 아나운서가 여기서 올디즈를 한 곡, 하고 말했다. 레이 찰즈의 <본
투루즈>였다. 그건 구슬픈 곡이었다.
[난생 줄곧 잃어 버리기만 했어]
하고 레이 찰즈가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대를 잃어버리려고 해.]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까, 나는 진정 슬퍼졌다. 나는 진정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때때로 그런 일이 있다. 무엇인가 하찮은 일에 내 마음의 가장 연한
부분이 건드려지는 것이다. 나는 도중에서 라디오를 끄고, 서비스 센터에 차를
멈추고, 레스토랑에 들어가 야채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세면실에 들어가
손에 묻은 흙을 깨끗이 씻고, 샌드위치를 한 조각만 먹고, 커피를 두 잔 마셨다.
고양이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곳은 캄캄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종이봉지에 흙이 닿는 소리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걸맞은 거야. 네게나 내게나. 나는 한 시간 동안 그 레스토랑에서 야채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꼭 한 시간 후에 제비꽃빛
제복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앞에 와서, 그 접시를 치워도 좋으냐고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사회로 되돌아가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