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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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없거니와, <하고 싶은 일> 도 

없었다. 나는 이루카 호텔에 숙박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 

근본 명제인 이루카 호텔이 없어져버린 셈이니 어찌할 수도 없었다. 손을 

들었다. 어떻든 로비로 내려가 그곳의 그 훌륭한 소파에 앉아서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워 보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 같은 건 세워지지 않았다. 거리를 

구경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려고도 생각했으나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으며, 도대체가 

삿포로까지 와서 영화관에서 시간 낭비를 한다는 것도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 무엇을 하면 좋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렇지, 

이발소에나 가자,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도쿄에 있는 동안은 

일이 바빠서 이발소에 갈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벌써 한 달 반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생각이었다. 현실적이며 건전한 생각이다. 틈이 

생겼으니까 이발소로 간다. 이야기가 맞는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발상이다. 나는 호텔의 이발소로 갔다. 청결하고 인상이 좋은 이발소였다. 

붐벼서 기다리게 되면 좋을텐데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평일의 아침이라 역시 

비어 있었다. 청회색의 벽에는 추상화가 걸렸고, 비지엠에는 작게 잭 루셰의 

플레이 바하가 걸려 있었다. 그런 이발소에 들어간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 

건 이미 이발소라고도 부를 수가 없다. 그러다간 대중탕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세무서의 대합실에서 팝송을 들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머리를 잘라준 건 스무 살이 넘어 지나 보이는 젊은 이발사였다. 

그도 삿포로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이 호텔이 생겨나기 전에 같은 이른의 

조그만 호텔이 이곳에 있었는데 하고 말해도, 예예하고 대답할 뿐 특별히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 건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투였다. 시원했다. 게다가 멘즈 

비기의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솜씨는 나쁘지 않아서, 나는 일견 

만족해서 그곳을 나왔다. 이발소를 나서서,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와 자,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했다. 겨우 45분이 소비되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얼마동안 

멍청하니 그 언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런트에는 어제의 안경을 쓴 그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좀 긴장한 듯이 보였다. 

왜 그럴까? 나의 존재가 그녀 속의 무엇인가를 자극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러는 중에 시계가 열 한시를 가리켰다. 점심 식사를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각이었다. 나는 호텔을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느 음식점을 돌아보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도대체가 식욕이 일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적당하게 눈에 띈 가게에 

들어가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았으나,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구름은 까딱도 하지 않고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하늘에 떠 있는 나라처럼, 도시의 머리 위를 무겁게 

덮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회색으로 몰 들어 보였다. 포크도 샐러드도 

맥주도 모두가 회색으로 보였다. 이런 날에는 정상적인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중심지로 가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양말과 내의를 사고, 예비용 전지를 사고, 여행용 

칫솔과 손톱깎기를 샀다. 야식용 샌드위치를 사고, 브랜디 작은 병을 샀다. 어느 

것도 특별히 필요해서 산 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메우기 위해 산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어떻든 두 시간이 소비됐다. 그 뒤 나는 큰길을 산책하고, 

특별히 목적도 없이 거리의 쇼윈도우를 기웃거리고, 그런 일에도 싫증이 나자 

다방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잭 런던의 전기를 읽었다. 이럭저럭 하는 

가운데 가까스로 해질녘이 되었다. 길고 지루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하루였다.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도 어지간히 힘든 일인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프런트 앞을 지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의 이른을 불렀다. 예의 안경을 낀 

접수부의 여자아이였다. 그녀가 거기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자, 그녀는 좀떨어진 카운터의 구석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는 

렌트카의 접수 데스크로 돼 있었지만, 간판 옆에 팜플렛이 쌓여 있을 뿐 담당 

계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동안 볼펜을 손바닥에서 뱅글뱅글 돌리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혼란과 곤혹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렌트카 상담을 하고 계신 척해주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곤 옆눈으로 힐끗 프런트 쪽을 보았다.

 [손님하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요.]

 [알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렌트카 요금을 당신한테 물어보고, 당신은 그에 대해 대답하고 있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냐.]

 그녀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미안합니다. 이 호텔은 굉장히 규칙이 번거로워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안경이 굉장히 잘 어울려.]

 [실례?]

 [그 안경이 당신한테 잘 어울려, 아주 귀여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잠깐 만지작였다. 그리고 기침을 

했다. 아마 잘 긴장하는 타입인 것 같다.

 [실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고 그녀는 기분을 바꾼 듯 말했다.

 [개인적인 일이에요]

 나는 가능하다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기분을 안정시켜 주고도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잠자코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말씀하셨던, 이전에 여기 있었던 호텔 이야기입니다만]

하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같은 이름의 돌핀 호텔이라는... 그건 어떤 호텔이었죠? 건실한 호텔이었나요?]

 나는 렌트카의 팜플렛을 한 장 집어들고 그것을 보고 있는 시늉을 했다.

 [건실한 호텔이라니 어떤 걸 의미하지, 구체적으로?]

 그녀는 흰 블라우스의 양쪽 깃을 손가락으로 끄집어 당겼다. 그리고 다시 

기침을 했다.

 [그... 제대로 잘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좀 별난 인연이 있는 호텔이랄까 그런 

거 아닌가요? 전 어쩐지 신경이 쓰여요, 그 호텔이.]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요전에도 느꼈던 것처럼 그것은 순진하고 깨끗한 

눈이었다. 내가 물끄러미 눈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아가씨가 신경이 쓰인다는게 무슨 말인지 나로선 잘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든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아가씨도 바쁜 것 같고.] 그녀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 

쪽으로 얼핏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아랫입술을 새하얀 이빨로 지긋이 깨물었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일이 끝나고나서 만나서 이야기하실 수 있겠어요?]

 [일은 몇 시에 끝나지 ?]

 [어딘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리로 

가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데스크에 마련돼 있는 메모 용지에 

볼펜으로 약속 장소와 간단한 약도를 그렸다.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여덟시 반까지는 가겠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 메모를 코트의 포켓에 간직했다. 이번엔 그녀가 내 

눈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를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주세요. 이런 일 하는 건 처음이에요. 규칙을 

깨다니.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이상하게 생각진 않겠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고 나는 말했다.

 [난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다지 남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남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지.] 그녀는 볼펜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거기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가 말한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입가에 애매한 

미소를 띠고, 그리곤 다시 집게손가락을 안경테 쪽으로 가져갔다.

 [그럼, 나중에 또]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의례적인 눈인사를 하고선 자기 일자리로 

되돌아갔다. 매력적인 여자아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데가 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고, 백화점의 지하 식료품 

매장에서 사온 구운 쇠고기 샌드위치를 절반 먹었다. 이제 어쩌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걸로 우선 뭘해야 할지 결정된 셈이다. 기어를 낮게 놓아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상황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쁘지는 않다. 

나는 욕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또 수염을 깎았다. 잠자코, 조용히, 아무 노래도 

부르지 않고 수염을 깎았다. 애프터쉐이브 로션을 바르고, 이를 닦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물끄러미 거울 속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수로운 점은 딱히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로 용기도 솟아나지 않았다. 여느때나 다름없는 그저 내 

얼굴이었다. 나는 일곱 시 반에 방을 나서서 호텔 현관에서 택시를 타고 그녀의 

메모 용지를 운전수에게 보여주었다. 운전수는 잠자코 끄덕이고는 나를 그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택시 요금으로 1천엔 남짓한 거리였다. 5층짜리 건물인 

빌딩 지하에 있는 직고 아담한 바로, 문을 열자 알맞은 음량으로 제리 마리건의 

낡은 레코드 음악이 들려왔다. 마리건이 아직 크루 캣으로, 버튼아운 셔츠를 

입던, 체트 베이커라든가 B 불크마이어가 들어 있었던 무렵의 밴드. 예전에 곧질 

들었다. 애담 앤트 같은가수가 나오기 이전 시절의 이야기이다.

  애담 앤트.

  참으로 싱겁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서 제리 마리건의 

품위 있는 솔로를 들으면서 물을 탄 양주를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셨다. 여덟 

시 사십오 분이 되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하는 일이 길어지고 있겠지. 약속된 장소에 앉아 있는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았으며, 혼자서 시간을 소비하는 데엔 익숙해 있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물탄 양주를 홀짝거리고, 다 마시자 두 잔 째를 주문했다. 그리고 

특별히 볼 만한 것도 없기에 눈앞에 놓여 있는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온 것은 아홉 시 오 분 전이었다.

 [미안합니다]

 하고 그녀는 빠른 말로 사과를 했다.

 [하는 일이 늦어져서요. 갑자기 손님이 붐빈 데다가 교대할 사람이 늦게 

와서요.]

 [난 괜찮아. 신경 쓸 것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어차피 어디든 가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물탄 양주잔을 가지고 

이동했다. 그녀는 가죽장갑을 벗고, 체크무늬 머플러를 풀고, 회색의 오버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노랑색 엷은 스웨터에 다크 그린의울 스커트의 모습이 되자, 

그녀의 가슴이 생각보다 훨씬 풍만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귀에는 

고상한 순금 귀고리를 달고 있었다. 그녀는 브라디 마리를 주문했다. 마실 것이 

오자 그녀는 우선 한 모금 목을 축였다. 식사는 했느냐고 나는 물어 보았다. 

아직 안했지만 그다지 배는 고프지 않아요. 네 시에 가볍게 먹었으니까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는 브라디 마리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녀는 바삐 오느라고 그랬는지 그로부터 30분 가량을 가만히 

잠자코 앉아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나는 땅콩 한 개를 집어들어 그것을 

깨물어 먹고, 다시 한 개를 집어들어 깨물어서는 먹고 하는 짓을 되풀이하면서 

그녀가 안정을 되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번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굉장히 긴 한숨이었다. 자신도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 

고개를 들고 신경질적인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일이 고된가 보지?]

하고 나는 물었다.

 [네]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제법 고돼요. 아직 하는 일에 잘 익숙하지 못한 데다 호텔 자체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되고 해서 윗사람도 여러 가지로 신경이 예민하고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두손을 내놓고, 손가락을 깍지끼었다. 새끼손가락에는 

조그마한 반지를 끼고 있었다. 장식이 거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은반지였다. 

나와 그녀는 얼마동안 그 반지를 보고 있었다.

 [그 옛날의 돌핀 호텔 이야기입니다만]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취재라든가 그런 관계의 분은 아니겠지요?]

 [취재?]

하고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째서 또?]

 [좀 물어보았을 뿐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한참동안 벽의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약간 말썽이 있었 던지 윗사람들이 굉장히 경계하고 있어요. 매스컴에 

대해서요. 토지 매수라든가, 그런 일로 ...아시겠죠? 그런 걸 신문지상 같은 데서 

써 제끼면 호텔로선 곤란할 수밖에요. 손님 상대의 장사니까요. 이미지가 

나빠지겠죠?]

 [이제까지 뭔가 기사로 씌어진 적이 있나?]

 [한 번 주간지에요. 오직 비슷한 일이라든가, 퇴거 거부를 하던 사람을 회사가 

폭력배인가 우익을 동원해서 내쫓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그런 일.]

 [그래서, 그 말썽에 예전의 돌핀 호텔이 먹혀들었단 말인가?]

 그녀는 약간 어깨를 으쓱하고는 브라디 마리를 마셨다.

 [아마 그럴 거예요. 그래서 매니저도 그 호텔 이름이 나오자 경계를 한 것 

같아요, 당신에 대해서. 그렇죠, 경계했죠? 하지만 정말 전 거기에 대해선 

자세한 건 알지 못해요. 다만 이 호텔에 돌핀 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건, 그전의 

호텔과 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긴 들은 적이 있어요. 누구에게선가.]

 [누구에게?]

 [검둥이 중 한 사람에게서.]

 [검둥이?]

 [검정 옷을 입은 작자들 말예요.]

 [과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밖에 뭐든 돌핀 호텔에 대해 들은 건 없나?]

 그녀는 몇 번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왼쪽 손가락으로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무서워요, 나]

하고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무서워서 못 견디겠어요. 어쩌지도 못할 만큼.]

 [무서워? 잡지에 취재를 당하는 게?]

 그녀는 약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얼마동안 컵의 가장자리에 입술을 살며시 

대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렇진 않아요. 뭐 잡지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글세, 잡지에 

무엇이 나오든 저는 상관이 없어요, 안 그래요? 윗사람들이 당황해할 뿐이에요. 

제가 말하는 건 전연 다른 거예요. 그 호텔 전체에 대한 거. 저 호텔엔, 즉 

말이죠, 무슨 좀 이상한 데가 있어요. 좀 비정상이라고나 할까... 비뚤어진 데가 

있어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위스키를 다 마시고 다음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도 두 잔 째의 브라디 마리를 시켰다.

 [어떤 식으로 비뚤어졌다고 느끼지,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고 나는 물었다.

 [가령 뭔가 구체적인 것이 있다면?]

 [물론 있어요]

하고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있긴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말로 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선 여지껏 누구한테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느낀 일은 굉장히 구체적인 

것인데도, 막상 그것을 말로 해보면 그런 구체성 같은 것이 자꾸자꾸 

엷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사실적인 꿈처럼?]

 [꿈과는 또 달라요 꿈이라는 건, 저도 잘 꾸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퇴해 가요. 

그 사실성이.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아요. 언젠가도 똑같아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사실적이에요. 언제까지 가도 거기에 그대로 있다구요. 쓱 눈앞에 

떠올라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좋아요, 어떻게든 이야기해 보겠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1월달이었어요. 1월 초. 설이 끝나고 조금 지났을 무렵. 그날 저는 

늦당번이라서ㅡ늦당번을 자주 하진 않지만 그날은 사람이 없어서 하는 수가 

없었죠ㅡ그래서 아무튼, 일이 끝난게 밤중인 열두 시께였어요. 그 시간에 일이 

끝나면, 회사에서 택시를 불러선 모두를 순번으로 집까지 보내주는 거예요. 그땐 

전철도 없고 하니까. 그래서 열두 시전에 일을 끝내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16층까지 종업원용 얼리베이터로 올라갔어요. 16층엔 종업원의 탈의실이 있는데. 

전 거기에 책을 놓고 왔었거든요. 뭐 그런 거 다음날이라도 좋았지만 그게 읽다 

만 것이었고, 게다가 또 같은 택시로 귀가하기로 돼 있던 여자아이의 하는 일이 

좀 늦어져서요. 그래서 이왕 그렇게 시간이 남게 됐으니 내친 김이라 생각하고 

가지러 올라간 거죠. 16층엔 객실과는 별도로 그런 종업원용 설비가 있어요. 

탈의실이라든지, 잠시 쉬면서 차를 마시는 곳이라든지. 그래서 가끔가끔 가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저는 언제나처럼 밖으로 

나섰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래요, 그런 일이 있죠. 언제나 언제나 이골나게 

하고 있는 일이라든지, 늘 가는 눈익은 장소라든지, 그런 건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을 하죠, 반사적으로요. 저도 극히 자연스레 쓱 발을 내디뎠어요. 생각에 

잠겨 있었던가 봐요, 무엇엔가 필시. 무엇이었는진 기억하지 못하지만요. 코트의 

포켓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복도에 서서 문득 깨닫자 주위가 캄캄하지 

않겠어요. 아주 캄캄절벽.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엘리베이터의 문은 이미 

닫혀버렸겠죠. 정전인가 했어요, 물론.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우선 

첫째로 호텔은 확고한 자가 발전 장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정전이 된다 

해도 곧 그쪽으로 전환할 수 있거든요. 자동적으로, 참으로 순간적으로. 저도 

그런 훈련에 참여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원칙적으로 정전이란 

있을 수 없어요. 그리고요, 가령 만에 하나라도 자가발전 장치마저 고장났다. 

하더라도 복도의 비상등은 켜져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캄캄절벽이 될 

까닭이 없거든요. 복도는 녹색 빛으로 비춰지고 있을 테니까. 도대체 그렇지 

않을 까닭이 전혀 없거든요. 온갖 상황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런데 그때, 

복도는 마냥 캄캄하기만 했어요. 보이는 빛은 엘리베이터의 버튼과 층계 숫자 

표시뿐. 빨간 디지털의 숫자. 저는 물론 버튼을 눌렀죠.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자꾸 자꾸 아래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거 야단났구나 싶어 저는 

주위를 살펴봤어요. 물론 무서웠지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거 성가시게 됐구나 

그렇게도 생각했죠. 어째서 그랬는지 아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식으로 캄캄절벽이 돼버린다는 건, 뭔가 호텔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겠어요? 기계적으로라든지, 구조적으로라든지, 그런 거. 

그러면 또 야단법석이 벌어지지요. 휴일을 반납하고 일을 더하게 된다든지, 

훈련, 훈련으로 지고 새고 한다든지, 윗사람들이 신경질적이 된다든지. 그런 거, 

이젠 진절머리가 나거든요. 가까스로 안정된 셈인데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니 점점 화가 치밀어온 셈이죠. 무섭다기보단 

화나는 편이 더 심했던 거예요. 그래서 전, 어떻게 된 건지 좀 봐두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두세 걸음 걸어 보았어요. 천천히, 그랬던 뭔지 이상해요. 

즉 발소리가 여느 때와는 달라요. 저는 그때 굽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는 걷는 기분이 다르지 뭐예요. 여느 때의 카펫 감촉이 아니더란 

말예요. 좀더 딱딱한 거예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곰팡내가 난단 말예요. 호텔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저희 호텔은 말이죠, 완전히 공기 조절을 통제 제어 장치로 

운영하고 있어요.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죠. 보통의 공기가 아니라 좋은 공기를 

만들어 보내고 있어요. 다른 호텔처럼 너무 건조해서 코가 막히거나 하지 

않도록 자연스런 공기를 내보내고 있죠. 그래서 곰팡내난다 거나 하는 일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때 공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낡은 공기 그거였어요. 몇 

십 년 전의 공기. 어릴 적에 시골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갔다가 낡은 헛간을 

열고 맡아본 것 같은 그런 냄새예요. 여러 가지 낡은 것들이 뒤섞여 가지고 

가만히 침전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거, 저는 다시 한 번 엘리베이터를 

뒤돌아보았어요. 하지민 이번엔 이미 엘리베이터의 스위치 램프마저 꺼져 있지 

뭐예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전부 죽어버린 거예요, 완전히. 정말 무서웠어요. 

당연하잖아요? 캄캄한 어둠 속에 저 혼자만인 걸요. 무서웠어요. 하지만요, 

이상해요. 너무나도 주위가 조용하지 뭐예요? 글세, 정전이 되어서 캄캄절벽이 

됐단 말예요. 다들 떠들어대야 하겠죠? 호텔은 거의 만원이었고, 그런 상황이 

되면 굉장한 소동이 벌어져야 했겠죠? 그런데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조용하단 

말예요. 그래서 난 무엇이 무엇인지 영문을 모르게 됐어요.]

 마실 것이 나왔다. 나와 그녀는 한 모금씩 그것을 마셨다. 그녀는 컵을 아래에 

내려놓고 안경에 손을 댔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기분을 아실 수 있겠어요?]

 [대충 알 만해]

하고 나는 끄덕였다.

 [1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캄캄절벽이었다. 냄새가 다르다. 너무나 

조용하다. 어쩐지 이상하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요, 저는 그토록 겁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적어도 

여자로선 용감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전기가 꺼졌대서, 그것만으로 보통의 

아이처럼 빽빽 아우성을 치거나 그러진 않거든요. 그야 무섭긴 무섭지만, 그런 

것에 지면 안 된다고도 생각해요. 그래서 무엇이든간에 확인해 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손으로 더듬어 복도를 나가 보았어요.]

 [어느 쪽으로?]

 [오른쪽]

하고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서 그것이 틀림없이 오른쪽이었을 확인했다.

 [그래 오른쪽으로 나아갔지요. 천천히, 복도는 일직선이었어요. 벽을 끼고 

얼마동안 나가니까 복도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졌어요. 그리고 그 앞쪽에 

희미하게 빛이 보였어요. 굉장히 희미한 빛이. 훨씬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양초빛 

같았어요. 그래서 전, 누군가 양초를 찾아가지고 그걸 켰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튼 그리로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다가서서 보니까, 그 촛불빛은 아주 약간 

열린 문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이상한 문. 눈에 설은 문. 저희 호텔에 

그런 문은 있을턱이 없거든요. 하지만 아무튼 거기서 불빛이 흘러나왔어요. 저는 

그 앞에 서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죠. 안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이상한 사람이 나와도 곤란하고, 게다가 문도 전혀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시험삼아 살며시 문을 노크해 보았죠. 들릴락말락하게 

살며시, 똑똑. 하지만 그 소리는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게 울렸어요. 

주위가 굉장히 조용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어요. 10초 가량요. 

그  10초 가량을 전 그 문 앞에서 꼼짝 않고 있었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그 

무엇이랄까, 무거운 옷을 입은 사람이 방바닥에서 일어서는 것 같은, 그런 소리. 

그리고 발소리가 들렸어요. 굉장히 느릿느릿한 발소리. 살...살...살... 그렇게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는 것 같은 발소리. 그것이 한 걸음 한 걸음 문 쪽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녀는 그 소리를 떠올리듯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소릴 듣는 순간에 전 몸서릴 쳤어요. 이건 인간의 발소리가 아니야, 그런 

느낌이 들었죠. 근거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그렇게 느껴졌어요. 이건 인간의 

발소리가 아니라고.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처음 알았죠, 그때. 등골이 정말 

오싹한 거예요. 수사학적 과장이 아니고요. 전 도망쳤어요.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중에서 한 번인가 두 번 굴렀던가봐요. 스타킹이 망가졌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다만 도망쳤다는 기억밖엔 생각나지 않거든요. 달리는 

동안 줄곧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작동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그것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어요. 층계 숫자 표시도 

버튼도 제대로 전기가 켜져 있었고요. 한껏 버튼을 눌렀더니 엘리베이터가 

올라오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올라오는게 굉장히 느리지 뭐예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리지 뭐예요. 2층... 3층... 4층... 그런 느낌이에요. 어서 오라구, 어서 

와, 하고 계속 애태웠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무언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그녀는 한숨 들이키고 브라디 마리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손가락의 

반지를 뱅글뱅글 돌렸다. 나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음악은 

꺼져 있었다.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들리는 거예요. 발소리가. 살... 

살... 살... 그렇게. 방에서 나와서, 복고를 지나, 내쪽으로 걸어오는 거예요. 

무서웠어요. 아니 무섭다고 할 정도가 아니에요. 꾸욱 위가 치밀려 올라와 

목구멍 바로 가까이까지 와 있지 뭐예요.  그리고 온몸에서 땀이 솟구쳤어요. 

불쾌한 냄새가 나는 차가운 땀. 오한. 마치 살갗 위를 뱀이 기어가는 그런 느낌. 

엘리베이터는 그래도 오지 않았어요. 7층... 8층... 9층... 그리고 발소리는 

다가오고.]

 20초나 30초 동안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천천히 반지를 돌리고 

있었다. 마치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카운터 석에서 여자가 

뭐라고 말하고, 남자가 다시 웃었다. 어서 음악을 틀어주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무서움이란 경험해 보지 않고선 몰라요]

하고 그녀는 메마른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하고 나는 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었어요.]

하고 그녀는 어깨를 약간 으쓱했다.

 [문이 열리고, 거기서부터 정다운 불빛이 비쳐 나왔어요. 전 거기로 흘러 

들어갔죠. 그리곤 벌벌 떨면서 1층 버튼을 눌렀어요.  로비에 돌아가자 모두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글쎄 안그러겠어요, 전 새파랗게 질려서 말도 못할 만큼 

벌벌 떨고 있었으니까요. 매니저가 와서, 아니 웬일이냐고 묻겠죠. 그래서 전 

숨을 헐떡거리면서 설명했어요. 16층이 어쩐지 이상하다고요. 매니저는 그 말만 

듣더니 이내 남자아이 하나를 불러가지고 저와 셋이서 16층까지 올라갔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16층은 아무 일도 없지 

뭐예요. 전등도 휘황하게 켜져 있었고,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고요. 여느 때나 

꼭같아요. 탈의실에 가서 거기에 있던 사람에게도 물어봤지요. 그 사람은 줄곧 

깨어 있었지만 정전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겠어요. 확인하기 위해 

16층을 구석구석 다 돌아보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 뭐예요. 여우한테 

홀린 것만 같았어요. 아래에 내려오자 매니저는 자기 방으로 저를 부르더군요. 

그래 저는 필경 야단맞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더군요. 그리고 

좀도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전 자잘하게 전부 설명했어요. 

그 살살 하는 발소리 이야기까지. 어째 좀 싱거운 느낌이 들었지만요. 필시 

꿈이라도 꾸고 있었나 보군, 그렇게 일소에 부쳐지지나 않을까 하면서요.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어요. 되레 굉장히 진지한 얼굴을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있었던 일, 누구에게든 절대 아무 말도 하지마> 하고요. 

친절하게 타이르는 듯한 어투로. <무슨 착오인 것 같은데, 다른 종업원들이 

겁을 먹으면 안 되니까 잠자코 있어> 하고요. 좀더 권위주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런 경험을 한 건 

재가 처음이 아니지 않느냐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가 한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무엇인가 질문하는 편이 좋을 듯 싶었다.

 [그래 다른 종업원이 그런 이야길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하고 나는 물었다.

 [무슨 당신의 체험에 통하는 이상한 일이라든지, 색다른 일이라든지, 야릇한 

알이라든지? 지나가는 소문 같은 거라도 좋으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요, 저는 느끼는 걸요. 거기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게 

있다고. 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매니저의 반응도 그랬고요, 그리고 거기엔 

어쩐지 비밀스런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거든요.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이상해요. 제가 이전에 근무하던 호텔에선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 걸요. 물론 이만큼 큰 호텔은 아니었으니까 사정이 조금은 다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 다른 걸요. 이전 호텔에도 괴담 같은 건 

있었지만요.ㅡ어느 호텔에나 한 가지쯤은 그런 거 있잖아요ㅡ 저희들은 그런 거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가 않아요. 웃어버리고 말 분위기가 

아녜요. 그래서 더욱 무서운 거예요. 아니면 호통을 치던가 말예요. 그랬으면 

아도 어쩌면 무슨 착오라도 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든 유리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후로 16층에 기본 적은 있나?]

하고 나는 물었다.

 [몇 번이나]

 하고 그녀는 평탄한 소리로 말했다.

 [일터니까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할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가는 건 

낮동안이고 밤엔 안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안가요. 이젠 두 번 다신 그런 꼴 

당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늦은 당번도 안 하기로 했어요. 하고 싶지 

않다고 윗사람한테 말했어요. 분명하게.]

 [이제까지 누구한테도 그이야기 하지 않았겠지?]

 그녀는 한 번만 짤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 이야기한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이야기할래야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는 걸요. 그리고 어쩌면 선생님이 그 일에 대해서 무슨 

짚이는 데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 16층의 사건에 대해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녀는 멍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은 모르지만...선생님은 이전의 돌핀 호텔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그 호텔이 

없어지게 된 사정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그래서 무엇인가 제가 경험한 일에 

대해서 짚이는 데가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특별히 짚이는 일은 없는 것 같았는데]

 하고 나는 좀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 호텔에 대해 특별히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아냐. 작은, 그다지 

인기있는 호텔은 아니었지. 4년 전쯤에 그 호텔에 묵고 거기 주인과 알게 되고, 

그래서 다시 찾아온 거야. 그것뿐이야. 나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고.]

 이루카 호텔이 보통의 호텔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로선 

이 이상 더 이야기의 범위를 확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오후 제가 돌핀 호텔이 건실한 호텔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했어요. 그건 왜 그랬어요?]

 [그 이야기란 건 아주 개인적인 일이거든]

 하고 나는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하게 되면 길어지지. 하지만 지금 아가씨가 이야기해준 건 아마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생각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약간 낙담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비뚤어뜨리고 한참동안 자신의 손등을 보고 있었다.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군. 어렵게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 탓은 아니에요. 그리고 아무튼 이야기하게 돼서 좋았어요. 이야길 하고 

나니 얼마만큼 기분 전환이 됐거든요. 이런 건 가만히 혼자서 안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잖아요.]

 [그렇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품고 있으면 머리 속에서 그것이 자꾸자꾸 

부풀어오르지.]

 나는 두 손을 펼쳐서 풍선이 부푸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잠자코 끄덕였다. 

그리고 반지를 뱅글뱅글 돌리고 마지막에 손가락에서 빼어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보세요. 제 이야기 믿어주시죠? 그16층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자신의 보면서 강조하듯 다시 말했다.

 [물론 믿지]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하지만 그런거, 이상한 이야기잖아요?]

 [분명 이상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은 있는 법이야. 나는 이해해. 그래서 

아가씨가 하는 말은 믿어. 무엇과 무엇이 문득 연결되는거야. 무엇인가의 

계기로.]

 그녀는 그 일에 대해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이제까지 경험한 적이 있어요?]

 [무서웠어요, 그때?]

하고 그녀가 물었다.

 [아니, 무섭다고 할건아냐]

하고 나는 대답했다.

 [즉 말이지, 여러 가지 연결방식이 있는 거야. 내 경우엔...]

 하지만 거기서 돌연 할 말을 잃었다. 먼 곳에서 누군가 전화 코드를 잡아 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모르겠는데, 하고 

말했다.

 [제대로 말할 수가 없군. 하지만 그런 일이란 분명 있어. 그러니까 믿지. 다른 

누가 믿지 않더라도 나는 아가씨가 하는 말을 믿어. 거짓이 아니야.]

 그녀는 얼굴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까지의 미소와는 좀 느낌이 다른 

미소였다. 개인적인 미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야기를 다 했다는 데서 

좀 느긋해졌던 것이다.

 [왜 그럴까요?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잘은 모르겠지만 기분이 안정돼는 

것만 같아요. 전 굉장히 사람을 가리는 편이라서, 초면의 사람과는 그다지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데, 선생님과는 별 저항감 없이 이야기 할 수 왔었어요.]

 [그건 우리들 두 사람 사이엔 어딘가 모르게 통하는 데가 있어서 

그런게아닐까]

하고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게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쁜 느낌을 주는 

한숨은 아니었다. 다만 단순히 호흡을 조정했을 뿐이었다.

 [저, 뭐 좀 먹지 않을래요? 갑자기 배가 고파오는 것 같아요.]

 나는 어딘가로 제대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권해 보았지만, 

그녀는 여기서 가볍게 먹는 정도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웨이터를 불러 

피자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호텔에서 하는 일이며, 삿포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그녀는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스물 셋이었다. 고교를 나와 호텔의 종업원 

교육을 하는 전문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다음, 도쿄의 호텔에서 2년간일하고, 그 

다음에 돌핀 호텔의 모집 광고에 응모해서 채용되어 삿포로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삿포로로 오는 것은 그녀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양친이 

아사히카와 근처에서 여관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괜찮은 여관이에요. 오래 전부터 해왔고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럼, 여기서 당신은 견습이랄까 수습이랄까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셈이겠군, 

가업을 승계하기 위한?]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또 안경테로 손을 가져갔다.

 [승계 한다느니 그런 앞날의 일까진 전혀 생각지 않고 있어요, 아직은. 저는 

다만 단순하게 좋은 거예요, 호텔에서 일하는 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오고, 

묵고, 가버리고, 그러는 게. 그런 속에 있으면 아주 마음이 놓여요. 안심이 돼요. 

어릴 적부터 그런 환경에 있었어요. 익숙해 있는 거겠죠.]

 [과연]

하고 나는 말했다.

 [어째서 과연이에요?]

 [프런트에 서 있으면 아가씨는 어쩐지 호텔의 요정처럼 보여.]

 [호텔의 요정?]

하고 그녀는 웃었다.

 [멋진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멋지겠어요.]

 [아가씨 같으면 노력하면 될 수가 있지]

하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호텔엔 아무도 머물지 않아. 그래도 좋아? 다들 왔다간 그저지나쳐갈 

뿐인데.]

 [그렇군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무엇이건 머물면 무서울 것만 같아요. 어째서 그럴까? 겁이 많아서 

그럴까? 다들 왔다간 가버리고 말아요. 하지만 그래서 안도하거든요. 안 그래요? 

하지만 전 안 그래요. 어째서 그럴까? 모르겠어요.]

 [아가씨는 이상하진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았을 뿐이야.]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어떻게 그런 걸 선생님이 알아요?]

 [어떻게 알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좋으니 듣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조금만 했다. 서른 넷이고, 이혼 경험이 있고, 글을 쓰는 반둥건둥한 

일을 하고 생계를 꾸리고 있다. 스바루 중고차를 타고 있다. 중고차라지만 카 

스테레오와 에어컨디셔너가 달려 있다. 자기 소개. 객관적 사실. 하지만 그녀는 

좀더 내가 하는 일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숨길 필요도 없고 해서 나는 

말해 주었다. 최초에 했던 여배우 인터뷰 이야기와 하코다테의 음식점 취재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일이란 아주 재미날 것 같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재미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 글 쓰고 있으면 긴장이 느슨해지지. 

하지만 쓰고 있는 내용은 제로인 거야. 아무런 의미도 없어.]

 [예를 들면 하루에 열 다섯 곳이나 레스토랑이며 요리점을 돌고, 내놓는 요리를 

한 입씩 먹어보고, 나머지는 전부 남겨놓는 일. 그런 것이 어딘가 결정적으로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전부를 다 먹을 순 없잖아요?]

 [물론 그럴 순 없지. 그런 짓을 하면 사흘이면 죽어버려. 다들 나를 바보인 줄 

알지. 그런 짓을 하고 죽어도 아무도 동정하지 않아.]

 [그럼, 하는 수가 없지]

하고 나는 되풀이 말했다.

 [그건 알고 왔어. 그러니까 제설 작업 같은 거야. 하는 수 없으니까 하고 있는 

거야. 재미나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구.]

 [제설 작업]

하고 그녀는 말했다.

 [문화적 제설 작업]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이혼에 관해 알고 싶어했다.

 [내가 이혼하고 싶어서 이혼한 건 아냐. 그녀 쪽에서 어느 날 돌연나가버린 

거야. 남자와 함께.]

 [상처받았어요?]

 [그런 처지에 서게 되면,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소 상처를 받게 되겠지.]

 그녀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내 눈을 보았다.

 [미안해요. 묘한 질문을 해서. 하지만 선생님은 어떻게 상처를 받는지 제대로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는 걸까?]

 [키이스 헤링의 배지를 코트에 다는 것처럼 되지.]

 그녀는 웃었다.

 [그것뿐?]

 [내가 말하고 싶은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 건 만성화 된다구. 일상 생활에 함몰해서 어느 것이 상처인지 알 수 없게 

돼 버리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지. 상처라는 건 그런거야. 이거다 

하고 끄집어내어 보여 줄 수도 없는 것이고,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건 

대수로운 상처는 아냐.]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잘 알아요.]

 [그래?]

 [그렇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 역시 여러 가지로 상처를 받았어요. 

꽤나]

 하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럭저럭 하다가 결국 도쿄의 호텔도 그만뒀어요. 상처를 받은 거예요. 

고통스러웠고. 나란 사람은 어떤 종류의 일은 제대로 남처럼 처리하질 

못하거든요.]

 [으음]

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도 상처를 입고 있어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때때로 문득 죽어버리고 

싶어요.]

 그녀는 다시 반지를 뺐다가 다시 제자리에 끼웠다. 그러고 나서 브라디 마리를 

마시고 안경을 만졌다. 그리고서 방긋 웃었다. 우리는 제법 술을 마셨다. 몇 

잔을 주문했는지 모를 만큼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보고, 내일 아침은 일찍 나가야 하니까 이젠 가겠다고 했다. 집까지 

택시로 보내주겠다고 나는 말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차를 타면 10분쯤 되는 

곳에 있었다. 내가 술값을 치렀다. 밖으로 나서니 아직 눈발이 희끗희끗 

흩날리고 있었다. 대단한 눈은 아니지만 길바닥은 얼어붙어서 미끌미끌했다. 

그래서 우리는 단단히 어깨를 끼고 택시 타는 데까지 걸었다. 그녀는 좀 취해서 

휘청거렸다.

 [저 말이지, 그 토지 매수의 말썽에 관해서 기사를 쓴 주간지 말인데]

하고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그 주간지 이름은 기억하고 있나? 그리고 대강의 발매 날짜와.]

 그녀는 그 주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신문사 계열의 주간지였다.

 [아마 지난 해 가을이었던가,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우리는 눈이 희끗희끗 내리는 속에서 5분 가량 택시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내 팔을 줄곧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로이 지낸 건 오랜만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한가로이 지낸 건 오랜만이었다. 우리들 두 

사람 사이엔 무엇인지 상통하는 데가 있어, 하고 나는 새삼스레 생각했다. 바로 

그렇기에 만났을 때부터 첫눈에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별 거리낄 것 없는 잡담들을 했다. 눈이라든가 추위라든가, 

그녀는 근무 시간이라든가, 도쿄라든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이후 그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고민했다. 이제 한 번만 밀어붙이면 

그녀와 함께 잘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은 그저 아는 

것이다. 그녀가 나와 함께 자고 싶어하는지 어떤지 그것까지는 물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와 자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 건 

눈매나 호흡이나 말투나 손놀림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도 

물론 그녀와 자고 싶었다. 자도 성가시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와서는 가버릴 뿐인 것이다. 그녀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로선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그녀와 함께 잔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의 한구석에서 아무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열 살 아래이고, 

어딘 지 불인정하고, 게다가 어지간히 술에 취해서 다리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건 표를 해놓은 카드로 트럼프 게임을 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정당한 게 아니다. 하지만 섹스의 영역에서 공정이라는 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고 나는 자문해 보았다. 섹스에서 공정성을 구한다면 어째서 

차라리 선태류로나 되지 않느냐, 그러는 게 이야기가 간단하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도 정론이었다. 나는 그 두 가치관 사이에서 한동안 

고민하고 있었는데, 택시가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그녀가 아주 

시원스럽게 그 갈등을 해소해 주었다.

 [저, 여동생하고 둘이서 살고 있어요]

하고 그녀가 내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상 이것 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버리자, 나는 다소 안도했다.  택시가 아파트 앞에 머물자 그녀는 

미안하지만 무서우니 문 앞까지 바래다주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말했다. 밤이 

늦어지면 때때로 복도에 이상한 사람이 있는 수가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운전수에게 5분이면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그녀의 팔을 

잡고 입구까지 얼어붙은 길을 걸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계단을 3층까지 

올라갔다. 쓸데없는 물건이 붙어 있지 않은 단순한 철근조 아파트였다. 

306이라는 번호가 붙은 문 앞까지 오자, 그녀는 백을 열고 손을 집어넣어 키를 

찾아내었다. 그리곤 나를 향해 어딘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마워요, 

즐거웠어요, 하고 말했다. 나도 즐거웠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키를 다시 백 속에 집어넣었다. 자물쇠가 열리는 짤깍 하는 메마른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흑판에 씌어진 기하 

문제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그런 눈매였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당혹해하고 있었다. 나에게 제대로 안녕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벽에다 손을 집고 그녀가 무엇인가 결심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결심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잘 자요. 여동생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4초나 5초 동안 입술을 꼭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여동생과 살고 있다는 거, 그거 거짓말이었어요]

하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혼자 살고 있어요.]

 [알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서서히 낯을 붉혔다.

 [어떻게 그걸 알죠?]

 [어째서일까? 그저 알게 되지]

하고 나는 말했다.

 [선생님, 나쁜 사람이군요]

하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군,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 말해둔 것처럼 남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하지. 무슨 허점을 

이용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러니 무슨 거짓말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녀는 얼마동안 망설이고 있더니, 이윽고 체념한 듯이 웃었다.

 [그렇군요. 거짓말 같은 거 할 필요가 없었겠네요.]

 [하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레 거짓말을 했어요. 저도 제나름으로 상처를 받았어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요.]

 [나 역시 상처받고 있어. 키이스 헤링의 배지조차 가슴에 달고 있어.]

 그녀는 웃었다.

 [으음, 안으로 좀 들어와 차라도 마시고 갈래요? 좀더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나도 아가씨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겠어.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애. 아가씨와 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애. 어째서일까?]

 그녀는 간판의 작은 글씨를 읽을 때와 같은 눈매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제대로 설명 할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하고 나는 말했다.

 [이야기할 것아 많을 때엔 조금씩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가 한 밀에 대해 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기를 

단념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저어]

하고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문이 15센티 가량 열리고 그녀가 얼굴을 보였다.

 [다시 가까운 날에 아가씨를 불러도 괜찮을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문에 손을 댄 채 깊숙히 숨을 들이쉬었다.

 [아마]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문이 닫혔다. 택시 운전수는 무료한 듯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다. 내가 혼자서 자리에 돌아와 호텔 이름을 말하자, 그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정말 돌아가는 겁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필경 이젠 됐으니 가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요. 분위기 상으로, 보통은 대개 

그렇게 되기가 십중팔구거든요.]

 [그럴 테지]

하고 나는 동의했다.

 [오랫동안 이런 직업을 갖다 보니, 대개 육감은 틀리지 않더라구요.]

 [오랫동안 하다 보면 틀리는 수도 있죠. 확률적으로.]

 [그야 그렇지만]

하고 운전수는 약간 미심쩍은 듯한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손님,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나는 이상해져 있는 것일까? 방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이를 닦으면서 좀 후회했지만 결국 그대로 깊이 잠들고 

말았다. 나의 후회는 대체로 언제나 그다지 오래 계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아침에 우선 나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방의 계약을 3일 연장했다.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계절은 성수기가 아니다.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그러고나서 신문을 사가지고 호텔 가까이의 던킨 도너츠 하우스에 들어가 

플레인 머핀을 두 개 먹고, 커다란 컵에 커피를 두 잔 마셨다. 호텔의 아침 

식사란 하루만 지나도 싫증이난다. 던킨 도너츠가 제일이다. 값이 싸고 커피도 

더 청할 수 있다. 다음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삿포로에서 제일 

큰 도서관으로 가달라고 했더니 어김없이 데려다 주었다. 도서관에서 나는 

그녀가 알려준 주간지의 백넘버를 찾아보았다. 돌핀 호텔의 기사가 나와 있는 

건 10월 20일 호였다. 나는 그 부분의 카피를 떠 가지고 근처 다방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진득히 앉아 그것을 읽어보았다. 난삽한 기사였다.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몇 번이고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자는 알기 쉽게 

쓰려고 한껏 노력한 듯했지만, 그 노력도 사태의 복잡성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꼼꼼히 읽으면 그런대로 대략의 

윤곽은 알 수 있었다. 기사의 타이틀은 <삿포로의 토지 의혹. 검은 손이 

농간하는 도시 재개발>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찍은, 완성을 목전에 둔 

돌핀 호텔의 사진도 실려 있었다. 요약하면 이런 줄거리였다. 우선 첫째로 

삿포로 시의 일부에서 대규모의 토지 매점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2년 동안에 

수면 밑에서 토지의 명의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땅값이 의미도 없이 뛰어올랐다. 

기자가 그런 정보를 얻고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해보니, 토지는 여러 회사에 

의해 매입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명의만의 유령회사였다. 회사의 등록도 돼있고 

세금도 냈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사무실도 없고 사원도 없다. 그리고 그 

유령회사에 연결돼 있었다. 실로 교묘하게 명의상 토지전매가 행해지고 있었다. 

2천만엔에 팔린 토지가 6천만엔으로 전매되고, 그것이 2억엔에 팔려 있었다. 

여러 가지 유령회사의 미로를 하나 하나 끈질기게 더듬어 갔더니 그 행방은 

하나였다. 비산업이라고 하는, 부동산을 취급하는 회사였다. 이것은 실재하는 

회사였다. 아카사카에 커다랗고 패셔너블한 본사 빌딩을 갖고 있다. 그 비산업은 

공공연하게는 아니지만 에이 그룹이라는 복합체에 연결돼 있었다. 철도며 호텔 

체인이며 영화회사며 식료품 체인이며 백화점이며 잡지. 크레디트 금융에서 

손해보험까지를 산하에 수용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거기에 에이 그룹은 

정계에도 거대한 파이프를 갖고 있었다. 기자는 계속 그 끝까지 추궁했다. 

그러자 좀도 흥미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비산업이 매점하고 있던 지역은 

삿포로 시가 재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던 토지였던 것이다. 지하철 건설이며, 

청사 이전이며, 그러한 공공 투자가 그 지역에 시행되기로 돼 있었다. 그 자금의 

대부분은 국가에서 나오게 돼 있었다. 정부와 홋카이도와 삿포로 시가 타협해서 

재개발 계획을 짜고 최종 결정에 이르렀다. 장소며 규모며 예산, 등등.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결정한 지역의 토지는 요 몇 년간에 누군가의 손에 

단단히 매점되어 있었다. 정보가 에이 그룹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그리하여 

계획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이전부터 토지의 매점이 지하 깊숙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즉 그 최종적인 결정은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결정돼 있었던 것이다. 그 

매점의 첨병이 돌핀 호텔이었다. 우선 돌핀 호텔이 일등지를 확보했다. 그 거대 

호텔이 에이 그룹의 헤드쿼터의 역할을 맡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지역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람의 눈을 끌고, 사람의 흐름을 바꾸고, 그 

지역의 변모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것은 면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다. 그것이 

고도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가장 거액의 자본을 투자하는 자가 가장 유효한 

정보를 입수하며, 가장 유효한 이익을 얻게끔 된다. 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본 투자라는 것은 그러한 것을 내포한 행위인 것이다. 자본 투자를 하는 자는 

그 투자 액에 상응한 유효성을 요구하게 된다. 중고차를 사는 사람이 타이어를 

발로 걷어차고 엔진을 살펴보고 하듯이, 1천억의 자본을 투자하는 자는 그 

투하의 유효성을 세세히 검토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조작도 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선 공정성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기에는 투자 자본의 액수가 너무 큰 것이다. 강압적인 일도 한다. 가령, 

토지 매수에 응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디서인지 해결사 같은 자들이 나선다. 

거대 기업이라는 건 제법 그런 루트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회사는 

정치가로부터, 소설가. 록 싱어, 폭력배에 이르기까지, 입김이 들어간 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일본도를 휴대한 해결사 패거리가 들이닥친다. 경찰도 그러한 

사건에는 그렇게 열심히 손을 쓰려 하지 않는다. 경찰의 제1위까지 이야기는 

이미 통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패랄 것도 아니다. 시스템인 것이다. 그것이 

자본 투자란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많건 적건 그런 일은 있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그 자본의 그물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치밀해지고 강해졌다는 

사실이다. 거대 컴퓨터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사상이 그 그물 속에 고스란히 수용되어 있다. 집약과 세분화에 의해 

자본이라는 것은 일종의 개념으로까지 승화되어 있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종교적 행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본이 갖는 다이내미즘을 

숭상했다. 그 신화성을 숭상한다. 도쿄의 땅값을 숭상했으며, 번쩍거리는 폴셰가 

상징하는 것을 숭상했다. 그것 이외에는 이 세계에는 이미 신화 따위가 남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도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간에, 우리들은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었다. 선악이라는 기준도 

세분화되었다. 궤변론적인 것이다. 선 가운데에도 유행을 좇는 악과 유행을 좇는 

악과 유행을 좇지 않는 악이 있었다. 유행을 좇는 선 가운데에도 정연한 것과, 

헐렁한 것이 있고, 최신 유행에 정통한 것과, 속물 근성인 것이 있었다. 

짝짓기도 즐길 수 있었다. 미소니의 스웨터에 투르살리의 팬티를 걸치고, 

폴리니의 구두를 신는 것처럼 복잡한 스타일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한 

세계에서 철학은 자꾸 자꾸 경영이론을 닮아갔다. 철학은 시대의 다이내미즘에 

근접하는 것이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지 않았지만, 1969년의 세계는 아직 

단순했다. 기동대원에게 돌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은 

자기 의사 표명을 다할 수가 있었다. 그런 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궤변론적인 

철학 밑에서 도대체 누가 경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 쓴단 말인가? 그것이 현재인 것이다. 구석 구석에 

그물이 쳐져 있다. 그물 바깥에는 또 다른 그물이 있다.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돌을 던지면 그것은 되돌아 자기에게로 온다. 정말 그런 것이다. 기자는 전력을 

기울여서 그 의혹을 추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제 아무리 목청을 높였다 

해도, 아니 목청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 기사는 미묘하게 설득력을 잃고 있었다. 

호소하는 힘을 갖지 못했다. 그로선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의혹일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고도 자본주의의 당연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 

것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그런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거대 자본주의가 부정하게 정보를 입수하여 토지를 매점하고, 또는 

정치적 결정을 강요하고, 그 말단에서 폭력배가 작은 신발 가게 주인을 

협박하거나, 인기 없는 작은 호텔의 경영자를 구타했다 해서, 누가 그런 일에 

신경을 쓸 것인가? 그런 것이다. 시대는 물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서 있는 장소는, 우리들이 서 있었던 장소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훌륭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잘 조사되어 있었고 정의감에 넘쳐 있었다. 

하지만 추세는 아니었다. 나는 그 기사의 카피를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나는 이루카 호텔의 지배인 생각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실패의 그림자로 뒤덮인 그 불행한 사나이에 대해서. 그에게는 이 시대를 타고 

넘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추세가 아니다> 하고 나는 소리내어 말해 보았다. 

웨이트리스가 지나다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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