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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가 되자 마침내 할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할 수 있는 일은 어떻든
전부 했다. 손톱도 깎았고, 목욕도 했고, 귀 소제도 했고, 텔레비전의 뉴스도
보았다. 엎드려 팔 굽혀 펴기도 했다. 저녁 식사도 했다. 책도 마지막까지 다
읽어버렸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종업원용 엘리베이터를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너무 일렀다. 종업원들의 왕래가
끊기는 열두 시가 지나기까지 가다리는 게 좋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국
26층을 바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창 밖의 막막한 어둠을 보면서
마티니를 마시고, 이집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지내고 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이 수영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까? 아마 파라오 일족이라든지 귀족이라든지, 그러한
상류층의 사람들일 게다.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제트 세트 이집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일강의 일부를 어떻게 해서 전용 풀 같은 것을 만들고, 거기서
세련되고 멋스러운 수영을 가르쳤을 것이다. 영화배우가 된 내 친구와 같은
인상이 좋은 교사가 붙어 있어서, 높은 사람들에게
[예, 전하. 훌륭하옵니다. 다만 크롤의 오른손을 조금만 더 곧바로 내미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옵니다]
그런 소리를 제법 그럴싸한 얼굴로 말하곤 했을 게다. 나는 그러한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잉크처럼 짙은 블루의 나일 강물,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악어나 평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창칼을 든 병정, 서걱이는 갈대, 파라오의
왕자들. 그리고 왕녀는 어떨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도 수영을 배웠을까?
예컨대 클레오파트라. 조디 포스터 같은 느낌의 젊은 날의 클레오파트라. 그녀도
내 친구 수영 교사를 보고 실신했을까? 아마 했겠지.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이니까. 그런 영화를 만들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거라면 보러 가도
좋다. 수영 교사는 비천한 태생의 인간은 아니다. 이스라엘 아니면 앗시리아
언저리의 왕족의 아들인데, 전쟁에 패배해 이집트로 끌려와 노예가 된다. 하지만
노예가 되어서도 인사의 좋음을 추호도 잃지 않는다. 그런 데다 찰튼
헤스톤인지 키크 더글러스인지와는 다르다. 흰 이를 보이고 방긋 웃으며,
우아하게 소변을 본다. 우클렐레를 들게라도 하면 나일 강 기슭에 서서
<로카프라 베이비> 라도 노래하기 시작할 것만 같다. 이런 역은 그 아니고선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파라오 일행이 그의 앞을 지나게 된다. 그는
강기슭에서 갈대를 베어 모으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강물에서 배가 뒤집힌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텀벙 강물에 뛰어들어, 멋진 크롤솜씨로 거기까지
헤엄쳐 가서, 작은 여자를 껴안고 악어와 경쟁하면서 기슭까지 돌아온다. 굉장히
우아하게. 과학 실험 반에서 가스 버너를 켤 때처럼 굉장히 우아하게. 그것을
파라오가 보고 있다가 감탄을 하고 그렇지, 저 청년을 왕자들의 수영 교사로
하자고 마음먹는다. 앞번의 교사는 말버릇이 고약해서 바로1주일 전에 밑창
없는 우물에 던져 넣은 것이다. 그런 연휴로, 그는 왕립 수영 학교의 선생이
된다. 어쨌든 인상이 좋아서 다들 그에게 열중하게 된다. 밤이 되면 여관들이
몸에 갖가지 향료를 칠해대고는 그의 침대로 기어든다. 왕자들과 왕녀들도
그에게 심복한다. 여기서 수영복의 여왕과 임금님과 나를 범벅해 놓은 것 같은
볼 만한 신이 끼인다. 그와 왕자, 왕녀들이 모두들 싱크로나이즈드 같은 짓을
해서 파라오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파라오는 몹시도 즐거워하고, 그래서
또 그의 주가가 오른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코에 걸거나 하지 않는다. 겸허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방긋이 미소를 품고, 품위있게 소변을 본다. 여관이
침대로 들어오면 전희에 한시간을 들여 제대로 절정에 도달하게 해주고, 끝나고
나서는 머리칼을 만지면서 [최고였어] 하고 말한다. 친절한 것이다. 이집트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리하게 이미지를
환기하려 하자 아무래도 20세기 폭스사의 <클레오파트라>가 떠오르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과 렉스 하리슨이 나왔던 형편없는 영화.
길다란 자루가 달린 부채로 팔락팔락 엘리자메드 테일러를 부채질하고 있던,
헐리우드적으로 이국적인 다리가 길고 피부가 검은 여자들, 갖가지 대담한
포즈를 취해, 그를 즐겁게 해준다. 이집트 여자들은 그런 일에 익숙한 것이다.
때문에, 조디 포스터적인 클레오파트라가 그에게 실신할 만큼 열중하게 된다.
진부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선 영화가 되지 않는다. 그로서도 조디
클레오파트라에게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조디 클레오파트라에게 열중하는 건
그만이 아니다. 새까만 아비시니아 왕자도 그녀에게 애태우고 있다. 그녀만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춤추고 싶을 만큼 그녀가 좋은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마이클 잭슨이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는 사랑 때문에
아비시니아로부터 아득한 사막을 넘어서 이집트까지 찾아온 것이다. 카라반의
모닥불 앞에서 탬버린이나 그 비슷한 걸 가지고 <빌리진>을 부르며 춤을 춘다.
별빛을 받아 눈이 번쩍 빛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수영 교사와 마이클
잭슨 사이에 갈등이 있다. 사랑의 칼싸움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소리도 없이 슬슬. 나는 안에 들어가 15층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다시 이야기를 계속 연결해 보았다.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치려 해도 그쳐지지 않는 것이다. 무대는 일변해서 황폐할 대로
황폐한 사막이다. 사막의 깊숙히에 있는 동굴에서는 파라오에게 추방 당한
예언자가 아무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죽은 듯이 고독하게 살고
있다. 그는 눈꺼풀이 벗겨졌지만 어떻게든 사막을 횡단해서 기적적으로 연명한
것이다. 양가죽을 쓰고 강렬한 일광을 패해, 그는 암흑 속에서 살고 있다.
벌레를 먹고 풀을 씹으면서. 그리고 심령의 눈을 얻어 미래를 예언한다.
오고야말 파라오의 몰락을, 이집트의 황혼을, 그리고 세계의 전환을. 양사나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이런 곳에 돌연 양사나이가 나오는 건가? 문이 또
슬슬 소리도 없이 열렸다. 나는 멍청하니 생각에 골몰하면서 밖으로 나섰다.
양사나이. 그는 이집트 시대로부터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건 모두 내가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의미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포켓에 손을
쑤셔 넣은 채 어둠 속에 서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암흑? 정신을 차리니
주위는 캄캄한 어둠이었다. 조그마한 빛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혀버리자 주위에는 칠흑의 어둠이 내렸다. 내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젠 음악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랑은 물빛>도 <여름날의
사랑>도 들려오지 않았다. 공기는 냉랭하고, 곰팡내가 났다. 나는 그런 어둠
속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