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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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두려울 정도의 완벽한 어둠이었다. 어느 하나도 형태있는 것을 식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마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기미마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흑색의 허무뿐이다. 

그런 진정한 어둠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순전히 관념적인 것으로 생각되게 

된다. 육체가 어둠 속으로 용해하고, 실체를 갖지 않는 나라는 관념이 마치 

심령파처럼 공중에 떠올라 온다. 나는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나, 새롭게 가야 

할 장소가 주어지지는 않고 있다. 나는 그 허무의 우주를 방황하고 있다. 악몽과 

현실의 기묘한 경계선을. 나는 얼마 동안 거기에 꼼짝 않고 우뚝 서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손발은 마비된 것어럼 본래의 감각을 잃고 있었다. 마치 

깊은 바다의 밑바닥에 침몰된 것만 같았다. 농밀한 어둠이 나에게 기묘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침묵이 나의 고막을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어둠에 눈을 익숙케 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눈이 익숙해진다는 그런 어중간한 어둠이 아닌 것이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흑색 물감을 몇 겹이고 몇 겹이고 덧칠한 것 같은 깊고 빈틈없는 

어둠이었다. 나는 포켓을 무의식적으로 더듬어 보았다. 오른쪽 포켓 속에는 

지갑과 키 홀더가 들어 있었다. 왼쪽에는 방의 카드 키와 손수건과 얼마간의 

잔돈. 하지만 그런 건 어둠 속에선 아무런 소용도 없다. 나는 담배를 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담배를 끊지않았던들 거기엔 라이터나 성냥이나 그런 게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걸 뉘우친들 별 수 없다. 나는 포켓에서 손을 

빼어, 벽이 있을 법한 쪽으로 뻗어 보았다. 어둠의 깊숙히에 나는 딱딱한 세로의 

평면을 느꼈다. 벼깅 거기에 있었다. 벽은 미끈하고 냉랭했다. 돌핀 호텔의 

벽치고는 너무나 냉랭하다. 돌핀 호텔의 벽은 이렇게 차지 않다. ㅣ히터가 

언제나 혼화할 정도로 공기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하고 나는 스스를 타일렀다. 진정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이건 그 여자아이가 조우한 것과 꼭 같은 사태인 것이다. 나는 그걸 

따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겁 먹을 건 없는 것이다. 그녀만 해도 

혼자서 조용히 이 상황을 돌파한 것이다. 물론 나로서도 할 수 있다. 안 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해야 한다. 그녀가 한 것과 꼭 같게만 

행동하면 좋은 것이다. 이 호텔엔 뭔가 기묘한 것이 숨겨져 있으며, 그건 아마도 

나 자신과도 관련되는 것일게다. 이 호텔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저 이루카 

호텔과 연관되어 있는 점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온 게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그녀와 같게 행동하고, 그리고 그녀가 보지 

못한 것을 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두려운가? 두렵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두려운 것이다. 알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싫은 기분이다. 깊은 암흑은 폭력의 입자를 나의 주위에 떠돌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바다뱀어럼 소리도 없이 슬슬 다가오는 걸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구제할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온 몸의 모공이 모조리 

막바로 어둠에 노출되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셔츠가 식은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다. 목구멍이 칼칼해진다. 침을 삼키기에도 굉장히 힘들어진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돌핀 호텔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여기는 어딘지 다른 장소인 것이다.나는 무엇인지를 딛고 넘어서, 이 

기묘한 장소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커다랗게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바보스런 일이지만,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의 <사랑은 

물빛>이 듣고 싶었다. 지금 그 음악이 들려온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얼마나 힘이 날 것인가. 리처드 크라이더만이라도 좋다. 지금이라면 

참을 수 있다.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라도, 패트리지 패밀리라도,무엇이라도 

좋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음악이 듣고 싶었다 너무너무 조용한 것이다. 이제 

그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쓰잘데 없는 걸 너무나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다. 머리 속의 공백을 무엇인가로 

채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공포 탓이다. 공뱌ㅐ 속으로 공포가 파고들어오는 

것이다. 모닥불 앞에서 탬버린을 두드리며 <빌리진>을 춤추는 마이클 잭슨. 

낙타들조차 황홀한 듯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머리가 좀 혼란해 있다. 나의 

사고가 어둠 속에서 가벼이 메아리 친다. 사고가 메아리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머리 속에서 무의미한 이미지를 추방한다. 언제까지나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을 수도 없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 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는가? 나는 각오를 하고 어둠 

속을 더듬으며 천천히 오른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근육과 신경이 잘 

연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지만, 실제로는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암흑의 물 같은 어둠이 나를 푹 감싸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그 어둠은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중섐점까지. 

나는 지구의 중심점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이젠 두 

번 다시는 지상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무슨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나 생각하지 않고선 공포가 점점 몸을 지배해 

간다. 영화의 계속을 생각해 보자.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었지? 양사나이가 

나오는 데까지. 하지만 사막의 장면은 현재로선 그럴로 끝. 화면은 다시 

파라오의 궁전으로 되돌아간다. 휘황찬란한 궁전. 아프리카 전체의 부가 거기에 

모아져 있다. 누비아 인 노예가 온통 그 언저리에 대령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파라오가 있다. <미크로스 로자> 비슷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파라오는 분명 

초조해 있다. 이집트에서 무엇인가 썩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것도 이 

궁전에서, 무엇인가 잘못돤 일아 진행되고 있다. 아는 그것을 확실히 느낀다. 

그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발을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여자아이는 잘도 아런 일을 할 수가 있었군, 하고. 

나는 참으로 감탄하고 만다. 영문을 알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돌연 내던져져, 

그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혼자서 확인하러 가다니. 나조차- 이러한 

이공간적인 어둠이 존재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나조차- 이토록 겁을 

먹고 있는 데도. 가령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 어둠 속에 혼자서 내던져져 

있다면, 나는 앞으로 나가려는 생각도 미처 못했을 게다. 필시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옴짝 못하고 서서 가만히 있었을 게다. 나는 그녀 생각을 했다. 그녀가 

수영 경기용의 미끌거리는 옷을 걸치고, 수영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광경을 상상했다. 그리고 거기에도 영화배우를 하고 있는 나의 예전의 동급생이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를 실신할 만큼 동경하고 있다. 그가 크롤의 오른손 

내미는 법에 대해 주의를 주자,그녀는 황홀해하는 눈빛으로 내친구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밤이 되자 그의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나는 슬펐다. 

상심하기까지 했다. 그런 짓하면 안 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어. 그는 인상이 좋고 형식적으로 친절을 베풀 뿐이야. 그는 네게 

상냥한 말을 걸고 너를 절정에 도달하게 해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저 친절 

그것일 뿐이야. 그건 다만 단순한 전희의 문제일 뿐이지. 복도가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그녀가 말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서, 그녀는 그 나의 

동급생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옷을 부드럽게 벗기고, 몸으 

부분 부분을 하나 하나 칭찬했다. 그것도 본심으로 칭찬하고 있었다. 정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 감탄해 마지 않겠군. 하지만 그러는 중에 차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건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복도가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나는 벽에 손을 댄 채 오른쪽으로 꺾어 걸었다.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몇 겹의 베일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흐릿한 작은 불빛. 그녀가 

말한 그대로다. 나의 동급생은 그녀의 몸에 상냥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목덜미로부터 어깨로부터 젖가슴으로, 그렇게 천천히. 카메라는 그의 얼굴과 

그녀의 잔등을 비추고 있다. 그 다음에 빙그르르 카메라는 회전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아니다. 그것은 키키의 얼굴인 

것이다. 예날에 나와 이루카 호텔에 묵었던, 멋진 귀를 가진 고급 창녀인 키키. 

아무 말 없이 나의 인생으로부터 사라져버린 키키. 나의 동급생과 키키가 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컷 배치가 정연하다. 

너무나 정연한 것 같다. 평범하다 해도 좋을 만큼. 그들은 아파트의 한방에서 

서로 껴안고 있다. 창문 블라인드로부터 빛이 들어오고 있다. 키키. 어째서 

여기에 돌연 그 아이가 나온단 말인가? 시공이 혼란돼 있다. 시공이 혼란돼 

있다. 나는 빛을 향해 나갔다. 발을 내디디니 머리 속의 이미지가 쓱 사라졌다. 

페이드아웃. 나는 침묵의 어둠 속을 벽을 끼고 나갔다. 나는 그 이상 더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보았자 별 수 없다. 다만 시간을 연장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발을 앞으로 내미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주의 깊게, 확실하게. 빛이 은은히 주위를 비치고 있다. 하지만 거기가 

어떤 장소인지가 확인될 만큼 발지는 않다. 다만 문이 보일 뿐이다. 본 적이 

없는 문. 그래, 그녀가 말했던 그대로다. 오래된 목재 문. 거기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다. 하지만 그 숫자까지는 읽을 수가 없다. 너무나 어둡고, 표도 

지저분하다. 어떻든간에 여기는 돌핀 호텔은 아니다. 돌핀 호텔에 이런 낡은 

문이 존재할턱이 없다. 그리고 공기의 질도 다르다. 이 냄새는 대체 무엇일까? 

마치 헌 종이 냄새 같다. 빛이 가끔씩 흔들흔들 흔들렸다. 아마 양초 불빛일 

게다. 나는 문 앞에 서서 한동안 그 빛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저 프런트의 

여자아이 생각을 했다. 그녀와 그때 잠자리를 함께 해 두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문득 생각했다. 나는 그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아이와 데이트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현실세계와 수영학교에 대해 질투가 일었다. 어쩌면 그것은 정확하게는 질투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확대되고 왜곡된 후회의 상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그것은 꼭 질투 그것이었다. 적어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질투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정말, 어째서 이런 데서 질투를 느낀단 말인가. 무엇에 

질투를 하다니, 굉장히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거의 느끼는 

적이 없는 인간인 것이다. 무엇에 질투를 하기엔 나는 필경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놀라울 만큼 강렬한 질투를 느끼고 있다. 그것도 

수영 학교에 대해서. 싱겁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의 누가 수영 학교에 

질투를 하는가?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나는 침을 삼켰다. 드럼통을 

금속 배트로 때린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저 침을 삼켰을 뿐인데도. 

소리가 기묘한 울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그래, 나는 

노크해야 하는 것이다. 노크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노크해 보았다. 주어없이 

마음먹고. 작게 똑똑. 들리지 않으면 좋을텐데, 라고 할 만큼 작은 소리로. 

하지만 되돌아 나온 소리는 거대했다. 그 소리는 마치 죽음 그 자체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그녀의 그때와 

마찬가지다. 얼마만한 시간인지는 모른다. 5초일지도 모르고, 1분일지도 모른다. 

오둠 속에서는 시간이 똑똑히 정해지지 않는다. 흔들려 움직이고, 끌어당겨지고, 

응축된다. 그 침묵 속에서 나 자신도 흔들려 움직이고, 끌어당겨지고, 응축된다. 

시간의 비뚤어짐에 맞추어서 나 자신도 비뚤어지는 것이다. 깜짝 하우스의 

거울에 비치는 상처럼. 그 다음에 그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바스락 하는 

과장된 소리. 옷자락 스치는 소리인 것이다. 무엇인지 마루바닥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발소리. 그것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슬리퍼를 끄는 듯한 사륵 

사륵하는 소리. 무엇인가 다가온다. 무엇인가 인간이 아닌 것, 하고 그녀는 

말했었다. 그녀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그것은 인간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다.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 하지만 여기에선 

존재하고 있다. 나는 달아나지 않았다. 땀이 잔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발소리가 다가옴에 따라서 기미ㅛ하게도 내 안의 공포는 

반대로 조금씩 엷어져 갔다. 문제 없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사악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건 

없다.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단 말이다. 나는 온갖 장소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일 강변이랑, 키키랑, 이루카 호텔이랑, 낡은 로큰롤이랑, 그 모든 것에게. 

향료를 칠한 누비아 인 여관들. 똑딱 똑딱 시간을 새기는 폭탄. 낡은 빛, 낡은 

음향, 낡은 목소리.

 [기다렸어요]

하고 그것은 말했다.

 [줄곧 기다렸어요. 안으로 들오와요.]

 그것이 누구인지 눈을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양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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