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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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하게도-별로 그렇게 묘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그날 밤 나는 열두 

시에 침대에 들어 그대로 푹  잤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아침 여덟 시였다. 

엉터리 같은 수면 패턴이었지만, 어떻든 어김없이 아침 여덟  시에 눈을 뜨

는 것이다. 일주를 하고 나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기분은 좋았다. 배도 고팠다. 그래서  또 던킨 도너츠에 가서 커피 두 잔

을 마시고 도너츠 두  개를 먹고, 그리곤 어디로 간다는 목표도  없이 거리

를 어정어정 걸었다.

  길은 굳게  얼어붙어, 부드러운 눈이  숱한 깃털처럼 조용히  퍼부어대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끝에서 끝까지 흐리터분한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산책에 좋은  날씨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거리를 걷고  있으니 

정신이 해방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줄곧  계속되고 있던 무겁고 

답답한 압박감이 사라지고, 준엄한 냉기마저도 살갗에 상쾌하기만 했다. 도

대체 어쨌단 말인가? 하고 나는 걸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아직 어느  것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좋을

까?

  한 시간 가량  걸은 다음 호텔에 돌아오니 프런트에  예의 그 안경을 낀 

여자아이가 있었다. 카운터에는 그녀 외에도 또 한 사람  프런트 담당이 있

었고, 그쪽 여자아이가 손님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 통화를 하

고 있었다.  그녀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영업용 미소를 띠운 채  손가락에 

끼운 볼펜을 무의식적으로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

자 나는 무엇이든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해 보고 싶어졌다. 그것도  되도록 

이면 무의미한 것이 좋다. 의미를 이루지 않는 그런  싱거운 화제가 요구되

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로 가서, 전화가  끝나기를 참고 기다렸다.  그녀는 

내 얼굴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힐끗보았고,  영업 매뉴얼 그대로의  인상이 

좋은 미소는 여전했다. 

  "무슨 용무시죠?" 그녀는 전화를 마치자 나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실은 어젯밤, 이  근처의 수영 학교에서 여자아이 

둘이 악어에 먹혀  죽었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하고 나는 

되도록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글쎄요, 어떻게 된  거지요?" 하고 정교한 조화 같은 영업용  미소를 띤 

채 그녀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 눈을 보면 그녀가 화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뺨이 좀  불그레하고, 비강이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이야기

는 저희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실례입니다만 손님의  무슨 착각이

나 아닐까요?"

  "굉장히 큰 악어로,  본 사람의 이야기로선 덩치가  볼보의 스테이션왜건 

만큼이나 되고, 그것이 돌연 천창을 깨고 안으로 뛰어들어와선, 한 입에 여

자 아이 둘을 냉큼 삼켜 먹어치우곤, 디저트로 야자수를  절반이나 먹고 달

아났다고 하는데, 그건 이젠 잡혔습니까? 만일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면 밖

으로 나가는 건... "

  "죄송합니다만" 하고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내 이야기를 가로막았

다. "좋으시다면,  손님께서 직접 경찰에 전화로  문의해 보시는 게 어떠세

요? 그러는  게 차라리 확실치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아니면 현관을  나가 

오른쪽으로 곧장  가시면 파출소가 있으니,  그쪽에서 물으셔도 좋을  거예

요."

  "그렇군. 어디 그래 볼까"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맙소. 이력이 당신과 함

께 있기를."

  "죄송합니다." 하고 그녀는  안경 테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말했다. 

  방에 돌아와서 잠시 있으니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예요, 그거?"  하고 그녀는 노여움을  누른 것 같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무중에는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요전 번에 말했잖아요. 근무 

중에 그런 일 당하는 거 싫단 말예요."

  "잘못했어" 하고 나는 정직히 사과했다. "무엇이든 좋으니 아가씨와 이야

기하고 싶었어.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쓰잘데없는 농담이었는지

도 몰라. 하지만 농담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야. 그저 아가씨와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특별히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긴장한다구요. 전에도 말했었잖아요? 근무를 하는 동안엔  난 굉장히 긴

장한단 말예요. 그러니 훼방 놓지 말아 달라구요. 약속하지 않았어요? 힐끔

힐끔 보거나 하지 않겠다고."

  "힐끔힐끔 보지 않았어. 이야기를 걸었을 뿐이야."

  "그럼 이후로 더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걸지 말아줘요. 부탁이에요."

  "약속하지. 이야길  걸지 않겠어. 보지도 않겠고,  이야기도 걸지 않겠어. 

화강암처럼 가만히  얌전하게 굴겠어. 저, 그런데  아가씨는 오늘밤은 한가

해? 아니면 오늘은 등산 교실이 있는 날이었던가?"

  "등산 교실?" 하고 그녀는 말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죠, 그거."

  "그래, 농담야."

  "가끔, 난 그런 농담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등산 교실이라니, 호호호."

  그녀는 벽에 씌어진 글자를  읽어내듯 메마른 평탄한 소리로 호호호하고 

다신 웃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대로  30분을 기다려 보았으나, 다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유머 감각은 때때로  전혀 상대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수가 있다.  나의 진지함이 때때로 전혀 상대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달리 할  일도 생각나지 않기에 다시  잠시 동안 밖을 걸어보기로  했다. 

잘만 하면 무슨 일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움직이는  편이 낫다. 무엇이나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 이력이 나와 함께 있기를. 

  한 시간 동안  걸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몸이 차가워졌을  뿐

이었다. 아직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열두 시 반에 맥도날드에 들어가 

치즈버거와 감자 튀김을 먹고 코카콜라도 마셨다. 그런 거  전연 먹고 싶지

도 않았다. 하지만 웬지 모르겠지만 때때로 마구 먹게 돼버린단 말이다. 아

마 몸이 정기적으로 이것저것 음식을 요구하는 그런 구조로 돼 있나 보다. 

  맥도날드를 나와서 다시 30분  동안 걸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눈이 

더욱 심하게 내릴 뿐이었다. 나는 코트의 지퍼를 맨 위까지 끌어올리고, 머

플러를 코 위에서 뚤뚤 말아 감았다. 그래도 추웠다. 

  몹시 소변이 마려웠다. 이런 추운 날에 코카콜라 같은  걸 마시니까 그렇

다. 어디 화장실이  있을 법한 곳은 없을까  하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거리의 맞은편에 영화관이  보였다. 몹시 초라해 보이는  영화관이었지만 

아마 화장실 정도는 있겠지. 그리고 소변을 보고 난 다음에, 영화를 보면서 

몸을 녹인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여가가 너무 많아서  주체하지 

못하는 판이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간판을 보았다. 국산 영화 2편 동

시 상영으로, 그중 한편이 <짝사랑>이었다. 내 동급생이 출연하고 있는 영

화다.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꽤나 참았던 소변을 시원하게 마치고 나서 나는 매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사서, 그걸 들고 안에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예상한 대로 엉성했지만 장내

는 따뜻했다. 나는  좌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았다. <짝사

랑>은 시작되어 벌써 30분이 지나 있었지만, 처음의 30분을 보지 않고서도 

줄거리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상상한  대로

의 줄거리였기 때문이다. 

  나의 동급생은  다리가 길고 근사하게  생긴 생물 선생이었다.  주인공인 

여자아이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예에 따라 실신할 만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검도부의 남자가 있었다. 아주 초보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엉터리 배우였다. 이런 영화라면 나라도 만들 수 있다. 

  단, 나의  동급생 (고혼다 료이치라는 게  그의 본명이었는데, 물론 제법 

훌륭한 예명을 가지고 있었다. 고혼다 료이치라는 건  유감이지만 여자아이

들이 공감을 품을 만한 이름은 아닌 것이다)은 언제나 아주 약간은 복잡한 

성격의 역을 맡고 있었다.

  그는 잘 생기고 인상이  좋을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학

생 운동에 관련되어 어쩌고 저쩌고 하든지, 애인을 임신시킨  채 버리고 어

쩌고 저쩌고 하는 그러한 퍽도 진부한 상처였는데 그런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회상이 원숭이가 점토를 벽에  던

지는 것처럼  엉성하게 삽입되곤 했다.  야스다 강당(동경대학의 대강당)의 

공방전의 실사 필름이 끼여들기도 했다.  나는 그만 '의의 없다!' 하고 작은 

소리로 외쳐 볼까 하고도 생각했으나 너무 싱거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아무튼, 무엇보다도 고혼다는 그러한 상처를 입은 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열성적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형편이  없

었고, 감독에게는 재능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대사의 절반은 부끄러울 

만큼 치졸한 것이고, 어리둥절하게 하는 무의미한 장면이  지루하게 계속도

기도 했다. 여자아이의 얼굴이 줄곧 의미도 없이 클로즈업 되곤 했다. 그러

니 그가 제아무리 한껏 연기를 해도 주위로부터 들떠보일  수밖에. 나는 그

에 대해 차츰 가엾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있으면 애처러운 것이다. 하지

만 생각해 보면 그는 어느  의미에선 예전부터 줄곧 이런 종류의 애처러운 

인생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군데 베드 신이 있었다. 고혼다가 일요일 아침에  자기 아파트 방에서 

여자와 함께 자고  있는 장면에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손수 만든 쿠키인지 

뭔지를 들고  찾아오는 장면이다. 정말, 내가  상상한 것과 꼭같지  않은가. 

고혼다는 내가 예상한  대로 침대 속에서도 상냥하고 친절했다. 아주  느낌

이 좋은 섹스 .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날 법한 겨드랑이 밑. 섹시하게 흩날리

는 머리카락. 그는 발가벗은 여자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다. 카메라가 휙 돌

아가듯 이동하면서 그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것은 키키였다. 좌석 위에서  내 몸은 얼어붙었다. 뒤편에서 데굴 데굴 

데굴 하는 병  굴러가는 소리가 들여왔다. 키키다.  저 복도의 어둠 속에서 

보았던 이미지 그대로다. 진짜로 키키가 고혼다와 자고 있는 것이다. 

  연결돼 있다, 하고 나는 느꼈다. 

  키키가 나오는 장면은 거기뿐이었다. 그녀는 그 일요일  아침에 고혼다와 

함께 잔다. 그것뿐, 고혼다는  토요일 밤에 어딘가에서 술이 취해서 그녀를 

길거리에서 만나 자기 아파트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한 

번 그녀를 안는다. 거기에 제자인 주인공 여자아이가 찾아온다. 일이 안 되

려고 문에 열쇠 잠그는 걸 잊었다. 그런 장면이다. 키키의 대사는 또 한 마

디뿐. '뭐래요?' 하고 말할  뿐. 주인공 여자아이가 쇼크를 받고 달려나가버

린 다음에 고혼다가  망연자실해 있는데 키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형

편없는 대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유일한 대사였다. 

  "뭐래요?"

  그 목소리가 정말 키키의 목소리인지 어떤지는 나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

 았다. 나는 그토록 정확하게 키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고, 

 게다가 영화관의 스피커의 음향도 형편이 없었다. 하지만 키키의  몸에 대

 해선 기억이 있었다. 등의 형상이다 목줄기나 미끈한 젖가슴은  내가 기억

 하고 있는 바 그대로의 키키였다. 

  나는 몸을  굳게 경직시킨 채 스크린  속의 키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시간으로 5분이나 6분, 아마 그 정도였던가 싶다. 그녀는 고혼다의 

 포옹을 받고 애무를 받고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감고, 입술을  희미하게 떨

 고 있었다. 조그맣게 한숨도 쉬었다. 그것이 연기인지 어떤지 나로선 판단

 이 서지 않았다. 아마 연기일 테지.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이니까.

  하지만 나로선 키키가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매우 혼란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령 그것이 연기가 아니

 었다고 한다면, 그녀는 정말 고혼다의 포옹을 받고 도취해 있다는 것이 되

 며, 가령 연기였다고 한다면, 내  안에서의 그녀의 존재의식이 혼란해지게 

 된다. 그렇다. 그녀는 연기를 하거나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어떻든 나는 그 

 영화에 대해 몹시 질투를 했다. 

  수영 학교, 그리고  영화. 나는 여러 가지 것에 질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건 좋은 징후일까?

  그런 다음에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문을 연다. 그리고 그녀는 두  남녀가 

 알몸으로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숨을 삼킨다. 눈을  감는다. 

 그리곤 달려가 버린다.  고혼다가 망연자실해 한다.  키키가 말한다. '뭐래

 요?' 망연자실해 있는 고혼다 얼굴의 클로즈업. 페이드 아웃. 

  그저 그것뿐, 키키는 다시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줄거리 따위

 는 생각지 않고 다만 물끄러미 주의깊게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녀

 의 모습은 그저 그때뿐,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혼다와 어

 디선가 서로 알게 되어, 그와 함께 자고, 그리고  그와 인생의 한 신에 입

 회하고, 그리고 사라져 간다. 그러한 배역인 셈이다.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

 로. 문득 나타났다가, 입회했다가, 사라져 간다. 

  영화가 끝나고, 장내의 조명이 들어왔다. 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

 직도 몸을 경직시킨 채 물끄러미 허연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건 현

 실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그것은 전혀  현실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키키가 영화에 나오는가? 그것도  고혼다와 

 함께. 우습다. 나는 필시 어딘가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회

 로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상상력과 현실이 교차하여 혼란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밖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영화관을 나와서  한동안 그 주위를 걸어다녔다. 그리고 줄곧  키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래요' 하고 그녀는 나의 귀밑에서 속삭여대고 있었

 다.

  뭐라는 건가?

  하지만 그건 키키였다. 틀림없이  그랬다. 나의 포옹을 받을 때에도 그녀

 는 그런 얼굴을 하고, 그런 식으로 입술을 떨고, 그런 식으로 한숨을 쉬었

 던 것이다. 그건 연기 같은  건 아니다. 정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영화란 

 말이야, 그건.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건 단순한 환상이었단 달인가?

  한 시간 반 후에 나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짝사랑>을 보았다. 일요일 

 아침, 고혼다는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 여자의 등이 보였다. 카메라가 돌아

 간다.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키키였다. 틀림없다. 주인공인 여자아이가 들

 어온다. 숨을 삼킨다. 눈을 감는다. 달려나가 버린다. 고혼다는 망연자실해 

 한다. 키키가 말한다. '뭐래요?' 페이드 아웃.

  페이드 아웃.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나로선  그것이 전혀 믿겨지지가 않았다. 무슨 착

 각일 것이라고 느꼈다. 어째서 키키가 고혼다와 잔단 말인가?

  다음날, 나는 다시 한 번 영화관에 가 보았다. 나는 가만히 그 장면이 오

 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굉장히 초조해하면서. 가까스로 그 장면이 되었다. 

 일요일 아침, 고혼다는 여자를 껴안고 있다. 여자의 등이 보였다. 카메라가 

 돌아간다.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키키다. 틀림이 없다. 주인공인 여자아이

 가 들어온다. 숨을 삼킨다. 눈을 감는다.  달려나가 버린다. 고혼다는 망연

 자실해 한다. 키키가 말한다. '뭐래요?'

  나는 어둠 속에서 한숨을 쉬었다.

  오 케이, 이건 현실이다. 틀림이 없다.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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