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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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 가까이에 있는 유키의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가

고 있었다. 정원수가 많은  넓고 오래 된 집이었다.그 한쪽 모서리에는 소오낭이 

아직 해변의 별장 지대였던 시절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쥐죽은 듯이 고요한 풍

경이, 봄날의 해질녘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었다.정원의 여기저기에 심어진 벚

나무들에는 두툼하게 꽃봉우리가 져  있었다. 벚꽃이 다 피고 나면, 이윽고 목련

이 꽃을 피우리라. 그러한 식으로 색조와 냄새가  나날이 희미하게 변해 가는 것

을 통해 계절의 변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장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마키무라의 집은 판자로 만들어진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은 지붕

이 딸린 고풍스런 것이었다. 문패만이 아주 새로웠는데, 거기에는 또렷한 먹글씨

로 <마키무라>라고 씌여 있었다.  벨을 누르자, 잠시 후에 20대 중반의 키가 큰 

사나이가 나타나, 나와 유키를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머리를 짤게 깎은 붙임성

이 있는 사나이였다. 나에게나 유키에 대해서도 붙임성이 있었다. 유키와는 이전

에 몇 번 만남 적니 있었다. 하지만  고혼다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물론 고혼다 훨씬  더 세련되어 있었다. 그는 나를 

안마당으로 안내하면서, 자신은 마키무라 선생의 시중을 들고 있다고 말하였다.

  (자동차의 운전수 노릇을 하거나,  원고를 전달하고, 필요한 것을 조사하고, 골

프치는 데 모시고 따라가고, 마작 상대를 하고, 외국에도 따라가는 등 아무튼 무

슨 일이든 다 합니다)하고 그는 특별히 묻지 않았는데도 즐거운  듯이 내게 설명

하였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입주하고 있는 서생 같은 거죠.)

  (네)하고 나는 말했다.

  유키는 (지겨워)하고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

시 상대를 보고 말을 하는가 보다.

  마키무라 선생은  뒷마당에서 골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나무  줄기와 줄기 

사이에 녹색의 네트를  치고, 한가운데서 표적을 겨냥해 마음껏 공을  치고 있었

다. 골프채가 하늘을  가르자, 흇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의 하

나이다. 비참하고 서글프게 들린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골프라는 스포츠를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들어가자,  돌아다보며 골프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건

을 집어들어 정중히  얼굴의 땀을 닦고는, 유키에게 (잘 왔다)하고  말하였다. 그

녀는 아무 말도 안 들은 체했다. 눈을 딴 데로 돌리고, 잠바 주머니에서 껌을 꺼

내 종이를 벗겨서 입에 넣고는 쩍쩍 소리를  내며 씹었다. 그리고 포장지를 구겨

서 가까이에 있는 화분 속에 버렸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정도도 하지 않고)  하고 마키무라 선생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안녕하세요)하고 유키가 마지못해  인사했다. 그리고 잠바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채 어디론가 훌쩍 가버렸다.

 (이봐, 맥주를 가져와)하고  마키무라 선생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서생에게 말하

였다. 서생은 (네)  하고 아주 맑고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나갔다. 마키무라  선생은 크게 헛기침을 하고  땅에 침을 탁 뱉고는, 또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나의 존재는 무시하고, 한참 동안 가만히 

녹색의 네트와 하얀 표적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종합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동안 이끼가 끼어 있는 정원의 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소의 분위기가 내게는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이며 다소 우스꽝스럽

게 느껴졌다. 어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누가  잘 못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하

지만 아무래도 어떤  패러디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모두들  제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와 서생. 하지만 고혼다 같으면 

더 매력적이고 능숙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혼다는  무슨 일이

든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각본은 졸렬하더라도.

  (자네가 유키를 돌보아 주었다지)하고 선생은 말했다.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돌아

왔을 뿐이에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경찰 쪽이 고마웠습니다. 도

움을 받았어요.)

  (음, 아니, 그건 좋아.  아무튼 이로써 모든 게 무마됐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요. 게다가 딸이 내게 무슨 일을 부탁한다는 건 드문 일이니까. 뭐, 그건 괜찮아. 

나도 경찰은  옛날부터 싫어해요. 60년에는 나도  곤욕을 치렀지. 가바 미찌고가 

죽었을 때, 나는 국회 주변에 있었어. 옛 얘기야. 옛날에는…….)

  그리고 그는  허리를 구부려 골프채를 주워  들고는, 나를 바라보고, 골프채로 

자신의 발을 툭툭 가벼이 치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고, 내 발을 내려다보고는 또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발과 얼굴의 상관 관계를 탐색하고 있는 것처럼.

  (옛날에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지)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했다. 

  나는 별로 열의가 없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골프를 치나?)

 (치지 않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골프를 싫어하는가?)

(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없어요.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는 웃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없을 턱이 없겠지. 대체로 골프를  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두들  골프를 싫어해요. 그렇게 돼 있어. 정직하게  말해도 돼. 정

직한 의견을 듣고 싶으니까.)

( 좋아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말해)하고 나는 정직하게 말하였다.

(왜?)

 (모든 게 우습게  느껴져요)하고 나는 말했다. (거창한 도구라든지 대단한  컷이

나 깃발, 입는 옷이나 신는  신발, 웅크리고 앉아 잔디를 살펴볼 때의 눈매나 귀

를 기울이는 모양 따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귀를 기울이는 모양?) 하고 그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냥 한 말이에요, 의미는  없어요. 다만 골프에 수반되는 모든 게 마음에  거

슬린다는 것뿐이에요. 귀를 기울이는 모양이라는 건 농담입니다.)하고  나는 말했

다.

  마키무라 히라쿠는 또 잠시 공허한 눈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

다.

  (자네는 약간 별난 편인가?) 하고 그는 물었다.

 (별나지 않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보통 인간이에요. 단지 농담이 재미가 없을 

뿐입니다. )

  이윽고 서생이 맥주 두 병과 컵 두 개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쟁반을 복도에 내려놓고, 오프너로 병마개를 따고는 컵에 맥주를 따랐다. 

그리고 또 빠른 걸음으로 이내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 마셔요) 하고 그는 복도에 걸터앉으면서 말하였다. 

 (들겠습니다) 하고 그는 복도에 걸터앉으면서 말하였다.

  (들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목이 갈증나 있었기 때문에 맥

주가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은 마실 수 없

다. 한 잔만이다. 

  마키무라 히라쿠의  나이가 몇인지 나는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을 듯했다. 그다지 키는 크지 않지만, 체격이 다부

져서 실제보다 더 몸집이 큰 사나이로 보였다.  가슴이 두텁고 팔이나 목도 굵었

다. 목은 너무 굵어  보였다. 좀더 목이 가늘었으면 스포츠맨 타입으로 보이기도 

했겠지만, 턱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그 뭉툭합과 귀 밑의 숙명적인  근육의 느슨

함이 오랜 세월에  걸친 불섭생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한 것은  아무리 골프를 

한대도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간다. 시간이 제 몫을 

뽑아간다. 

  내가 예전에 사진으로 본 마키무라 히라쿠는 몸이 홀쭉하고 날카로운 눈을 하

고 있는 청년이었다. 특별히  잘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남의 눈을 

끄는 데가 있었다. 과연 전도가  유망한 신진 작가다운 풍모였다. 이는 몇 년 전

의 일이었을 까? 15년이나 16년 전의 일이었을까? 눈매에는 아직 날카로움이 남

아 있었다. 이따금 햇빛이나 각도에  따라 그 눈이 맑아 보이는 수가 있었다. 머

리를 짧게 깍고 있는데, 군데군데 백발이 섞여 있었다. 아마 골프를 치기 때문이

리라, 햇볕에 잘 그을어 셔츠의  단추는 끼우지 않고 있었다. 목이 너무 굵기 때

문이다. 불그스레한 색깔의  폴로 셔츠를 몸에  잘 어울리게 입기는 어려운 일이

다. 목이 너무  가늘면 빈한하고 궁상맞아 보인다.  또 너무 굵으면 답답해 보인

다.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고혼다 같으면  틀림없이 잘 어울리게 입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 그만두자, 이제 고혼다에 관한 생각은 하지 말자.

  (자네는 뭔가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지) 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하였다.

  (글을 쓴다고 할  만한 게 못 됩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한 

문장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에요. 뭐든 좋아요.  글자가 씌어져 있으면 돼요. 하지

만 누가 쓰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쓰고 있는 겁니다. 눈을 치우는 일과

도 같아요. 문화적인 눈 치우기.)

  (눈 치우기) 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하였다. 그리고 옆에 놓여 있는 골프채

를 힐끗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표현이야.)

  (고맙습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는 좋아한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

어요. 그러한 차원의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유효한 눈 치우기의 방법이라는 것

은 확실히 있어요. 요령이라든지 노하우라든지,  자세라든지, 힘을 기울이는 방식 

따위는 말예요.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건 싫어하지 않아요.)

  (명쾌한 대답이군)하고 그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수준이 낮으면, 머리 자체가 매우 단순해요.)

  (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15초쯤 잠자코 있었다. (그 눈 치우기라는 표현

은 자네가 생각했나?)

  (그래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어디서든 사용해도  괜찮을까? 그 '눈 치우기'라는  말. 재미있는 표현이

야. 문화적인 눈 치우기.)

  (네. 좋습니다. 특별히 특허를 받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어) 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귓불

을 만지면서 말하였다. (이따금  나도 그렇게 느껴요. 이런 문장을 쓰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말야, 이따금.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어. 세계가 훨씬 작았어. 

반응 같은 것이 있었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

었지. 사람들이 모두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어. 미디어 자체

가 작았어. 작은 마을 같았어요.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컵의 맥주를 다 마시고, 병을 집어들어 양쪽 컵에 따랐다. 나는 사양했지

만, 무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무엇이 정의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어. 모두

들 알지 못하고 있어. 그러므로 눈 앞의  일을 다투고 있을 뿐이야. 눈 치우기야. 

자네 말이 맞아.)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나무의 줄기와  줄기 사이에 쳐진 녹

색의 네트를 바라보았다.  잔디밭 위에는 하얀 골프공이 삼사십 개쯤  떨어져 있

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마키무라 히라쿠는 다음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

각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본인은 별로 그러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모두들  그가 이야기하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

문이다. 할 수  없이 나도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죽 

귓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는 마치 새 지폐 뭉치를  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딸아이가 자네를 따르고 있어) 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했다. (그애는  누구

나 따르는 애가  아녜요. 아니 거의 아무도  따르지 않아요. 나하고는 별로 말도 

하지 않아. 엄마하고도 별로 말을 하지 않지만, 적어도 엄마에 대한 존경심은 있

어. 나는  존경하고 있지 않아, 전혀.  오히려 무시하고 있어. 친구도  전혀 없어. 

몇 개월 전부터  학교에도 다니고 있지 않아요. 집에 틀여박혀  시끄러운 음악만 

듣고 있지. 문제아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고,  실제로 담임 선생도 그렇게 말했어. 

타인ㄱ 라 어울릴 수가 없어. 하지만 자네는 따르고 있거든. 왜 그럴까?)

  (왜 그럴까요?)하고 나는 말했다.

  (마음이 맞는가?)

  (그럴지도 몰라요.)

  (딸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약간 생각해  보았다. 마치 면접 시험을  치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직하게 말해랴 하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어려운  연령

이에요. 어느 경우라도 어려운데,  가정 환경이 엉망 이어서 회복되기 어려울 정

도로 어려워지고 있어요. 아무도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 않아요. 아무도 책임

을 지려고 하지 않아요.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요. 그녀의 마음을 열어 줄 수 있

는 사람이 없어요. 심하게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부모가 너무 

유명해요. 얼굴이 너무  예뻐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요.  그리고 약간 보

통이 아닌 점이  있거든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고  할까...... 약간 특수한데가 

있어요. 하지만  원래는 순진한 아이에요. 제대로  돌보아 주면 온전하게 자랍니

다.)

  (하지만 아무도 돌보아 주고 있지 않아요.)

  (그래요.)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귀에서 손을 떼고, 한참 동안 그 손가락 끝

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야.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어요. 우선 첫째로, 이혼했을 때에  분명히 서류를 교환했거든. 나는 일

체 유키의 일에 관영하지 않기로 말야. 할 수 없었어. 나도 그 무렵에는 꽤 여자

를 밝히고 있었으니까.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지.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렇게 유키를 만나는 데도 사실은 아메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구. 쓸모 없

는 이름이지, 아메와 유키야. 어쨌든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둘째로, 아까

도 말한 것처럼 유키는 나를 전혀  따르고 있지 않아. 무슨 말을 하든, 내 말 따

위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나로선 그러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구. 딸아이야 귀

엽지, 물론. 단 하나뿐인 자식인 걸. 하지만 글렀어. 손을 쓸 길이 없어.)

  그리고 또 녹색의 네트를 바라보았다. 해질녘의  어둠이 이미 상당히 깊어져가

고 있었다. 잔디밭 위에  흐트러져 있는 하얀 골프공들은, 바구니에 가득 담겨진 

관절의 뼈들을 흐트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하고 나는 말

햇사. (어머니는 자신의 일을 해내기에도  힘에 겨워 온 세계를 뛰어다니고 있으

니, 아이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죠. 아이가  있는 것조차 늘 잊어버려요. 돈도 치

르지 않은 채  훗카이도의 호텔방에 남겨두고는, 이를 생각해 내는  데 사흘이나 

걸렸어요. 사흘이에요. 도쿄로 데리고 돌아오니, 딸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혼자

서 아파트의 방에  틀혀박인 채 로큰롤 음악을 듣고, 프라이드  치킨이나 케이크 

따위만 먹으며  지내고 있어요. 학교에도 가지  않아요. 친구도 없어요.  이런 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시 정상이 아닙니다.  뭐, 남의 가정  일이니까요. 이런 

말을 하는 건  지나친 참견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너무 심해요. 혹은 내 생각이 

너무 현실적이고, 상식적이고, 지나치게 중산 계급적인 것일까요?)

  (아냐, 백  퍼센트 자네 말이  맞아)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 나로서도 할 말이  없어. 2백 퍼센트 자네 

말대로야. 그래서  상의할 게 있어요. 그렇게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와달라고 

한 거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말이 죽었다. 인디안의  북 치는 소리도  멎었다. 너무 

조용하다. 나는 새끼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요컨대, 자네가 유키를 돌보아줄 수 없을까)하고 그는 말했다. (돌보아 준다고 

해도 대수로운 게 아냐. 이따금 그애와 만나주기만 하면 돼. 하루에 두 시간이나 

세 시간. 그리고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함께 온전한 식사를  해주면 돼. 그렇게

만 해주면  돼요. 일을 맡기는 거니까  제대로 돈은 치르겠네.  말하자면,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  가정 교사 같은 거라고  생각해 주면 돼요. 자네의  수입이 지금 

얼마쯤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수입에 가까운 액수는 보증할  수 있다고 생각

해. 그리고 그 밖의  시간은, 자네가 좋을 대로 사용하면 돼. 다만  하루에 몇 시

간 정도만 유키를 만나 주었으면 좋겠어.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이에 대해서는 

아메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어요. 그녀는 지금 하와이에 있어. 하와이에

서 사진을 찍고 있지.  대충 상황을 설명했더니, 아메도 자네에게 부탁하는 데는 

찬성했어. 그녀도  그녀 나름으로 유키의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인간이 약간 색다를 뿐이야. 신경이 정상이  아니라구. 재능은 있지만 말야, 굉장

히. 머리가 이따금 돌아버려. 퓨즈가 끊어지는  것처럼. 그러면 모든 걸 잊어버려

요. 현실적인 일은 통 다루질 못해. 뺄셈도 변변히 못하는 걸.)

  (잘 알 수 없군요)하고 나는 힘없이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아셔야 합니다. 그 

애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애정이에요. 누가  무상으로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사

랑해준다는 확신이에요. 그러한 것을 내가 유키에게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

한 일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뿐이에요.  그것을 당신이나 당신의 부인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이 첫째고, 둘째로 그 연령의 여자이이에게는 아무래도 동

성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연민을 서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솔직하

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동성의 친구, 그러한 친구가 있기만  해도 꽤 편안해

져요. 나는 남자고, 나이차이도 너무 많아요. 그뿐만 아니라, 도대체 당신이나 부

인도 나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열세 살 짜리 여자 아이라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얼,이에요.  무척 예쁘고, 게다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자 아이

에요. 그러한 아이를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나이에게 맡겨도  되는 겁

니까? 나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도대체?  나는 얼마 전까지 살인 문제와 

관련되어 경찰에 끌려다니고 있었어요. 만일 내가 범인이었다면 어떠시겠어요?)

  (자네가 죽였나?)

  (설마)하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부녀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죽이지 

않았어요.)

  (그럼, 됐잖아.  나는 자네를 신용하고 있어.  자네가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죽이지 않았겠지.)

  (어떻게 신용할 수 있죠?)

  (자네는 사람을 죽일 타입이  아냐. 그리고 소녀를 강간할 타입도 아냐. 그  정

도는 보면 알 수 있어요)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유키의 

육감을 믿고 있어. 그 애에게는 이잔부터 굉장히 육감이 예리한 데가 있었지. 보

통 육감의 예리함과는 좀  달라. 뭐라고 할까, 이따금 기분이 나빠질정도로 예리

하다구. 영매같은데가 있어. 함께 있으면,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그애가 보고 있

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이따금 있거든. 그러한 느낌을 알 수 있겠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한 점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 그러한 괴상한 점.  다만 어머니

쪽은 예술에 그것을 집중시키고 있어.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재능이라고 부르

지. 그러나 유키는 그러한 집중시킬 대상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아. 그냥 목적없이 

넘쳐흐르고 있는 거야. 물통에서 물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처럼. 영매 같은 거지. 

어머니 혈통의  피야, 그것은. 내게는 그러한  점은 별로 없어.  상식을 벗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어머니나 딸아이도  나따위는 변변히 상대를 하지 않아. 나도 그 

두 사람과 함께  지내기에는 약간 피곤해졌어. 당분간 여자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자네는 분명히 알 수 없을 거야. 그 아메와 유키와 함께 지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아메와 유키라구,  쓸모 없는 이름이야. 마치  일기 예보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물론 둘 다 좋아해요. 지금도  이따금 아메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

를 하지. 하지만 두번 다시 함께 지내고  싶지는 않아. 그건 지옥이야. 내게 작가

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하더라도-있었지-그 생활  때문에 아주 깨끗이 사라져 버

렸어, 솔직히 말해. 하지만 재능이 없어진 형편치고는 내가 비교적 잘 해 왔다고 

스스로도 생각하네. 눈 치우기야. 자네가 말하는  유효한 눈 치우기야. 능숙한 표

현이야.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나를 신용할 수 있으냐, 없는냐는 것이었죠.)

  (그래, 나는 유키의 육감을 신용하네.  유키는 자네를 신용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자네를 신용해.  자네도 나를 신용해도 돼. 나는 그렇게  나쁜 인간이 아냐. 

이따금 변변치 못한 문장을  쓰지만, 나쁜 인간은 아냐.) 그는 또  헛기침을 하고

는 땅에 침을 뱉었다.  (어때, 해주지 않겠나? 유키를 돌보아주는 일을? 자네  말

은 나도 잘 알  수 있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확실히  부모의 역할이야. 하지

만 그건 여느 경우와는 좀  다르다구. 아까도 말한 것처럼 손을 쓸 길이 없거든. 

자네밖에는 의뢰할 수 있는 상대가 없어.)

  나는 내 잔속의 맥주 거품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로

서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기묘한 집이다. 세 명의 별난 사람과 서생인 프라이데

이. 우주의 로빈슨 가족같다.

  (그녀와 이따금  만나는 건 상관없어요)하고 나는  말했다. (다만 매일은  만날 

수 없어요. 내게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의무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

지 않아요. 만나고 싶을 때 만나겠어요. 돈은  필요 없습니다. 현재 금전 상의 어

려움은 없고,  그녀와 친구로서 어울리는 만큼,  내가 그 정도의  돈을 치릅니다. 

그러한 조건으로밖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군요. 그녀를  나도 좋아하고, 만날 수 

있으면 나로서도 즐거울  거예요. 하지만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어요. 좋죠. 그

녀가 어떻게 되었다  하더라도, 최종적인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신들에게 있

으니까요. 이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라도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마키무라 히하쿠는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귀 밑의 근육이 흔들렸다. 골프로

는 그 근육의 느슨함을  제거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생활의  전환이 필요한 것

이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가능하다면 훨씬 전에 해냈을 것

이다.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알 수 있고, 조리가 닿는 이야기야)하고 그는 

말했다. 자네에게 책임을 떠맡기려 하고 있는 건 아냐, 책임 따위는 느낄 필요가 

없네. 우리에게는 자네밖에  선택할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고개  숙여 부

탁하고 있는 거야. 책임 따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돈에 관한 건 또 

언제든 그때 가서 생각하세. 나는 빚을 지면 잊지 않고 분명히 갚는 인간이니까. 

그것만은 기억해 달라구. 하지만  지금은 자네 말 대로인지도 몰라. 자네에게 맡

기네. 지네가  좋을 대로하면 돼. 돈이  필요하거든 나한테나 아메에게나 어디든 

좋으니까 연락해 줘요. 양쪽 다 금전 상의 어려움은 없으니까. 사양할 거 없어.)

  나는 아무 말로 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자네도 꽤 완고해 보이는 사나이군)하고 그는 말했다.

  (완고하지는 않아요, 내게는 내  나른대로의 생각의 시스템이라는게 있을 뿐이

에요.)

  (시스템)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귓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이제 그

러한 것은 별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아. 손으로 만든 진공관 앰프와 마찬가지야. 

노력과 시간을 들여  그러한 것을 만들기보다는, 오디오 숍에 가서  신품인 트랜

지스터 앰프를 사는  편이 싸게 먹히고, 소리도  좋아. 부러지면 곧 수리를 하러 

오구, 신품을 살 때에는,  신품 대금의 일부로 중고품을 판매자가 인수하기도 하

지. 생각의 시스템 운운할 시대가 아냐. 그러한 가치를 갖고 있던 시대도 확실히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지. 사고 방식도 그래. 적

당한 것을 사 갖고 와서  연결하면 돼. 간단하다구. 그날부터 이내 사용할 수 있

지. A를 B에 삽입하면 되는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낼 수 있지. 낡아져 구애

되어 있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돼요. 눈치 빠르게 행동할 수가 없어. 남들이 귀

찮게 여긴다구.)

  (고도 자본주의 사회)하고 나는 요약하였다.

  (그애)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했다. 그리고 또 잠시 침묵에 잠겼다.

  주위가 꽤 어두워져 있었다. 가까이에서 개가 신경질적으로 잦고 있었다. 누가 

서투르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치고 있었다. 마키무라  히라쿠는 복도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무엇을 생각하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 

이후로 아무래도  기묘한 사람들만 만나고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혼다, 

두 명의 고급  창부(한 명은 죽었다), 터프한 2인조 형사,  마키무라 히라쿠와 서

생인 프라이데이. 어두운  마당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개 짖는 소리나  피아노 소

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현실이 점점 용해되어 어둠 속으로  녹아 흡수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들이  그 본래의 형태를 상실하며 뒤섞여 

버리고, 의미를 상실하면서 하나의 카오스가 된다. 키키의 등을 어루만지는 고혼

다의 우아한 손가락이나,  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 삿포르의 거리,  (좋다)고 말하

는 메이, 형사가  툭툭 손바닥을 치고 있던  플리스틱 자, 어두운 복도 안쪽에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양사나이의 모습 따위도 모두 용해되어 하나로 되어

갔다. 피로해진 걸일까?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피로해져 있지는 않았다. 다

만 현실이 용해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용해되어  하나의 둥근 카오스의 공 모양

을 이루고 있다.  마치 일종의 천체 같은 형태를. 그리고  피아노 소리가 울리고, 

개가 짖고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 누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이봐)하고 마키무라 히라쿠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하고 그는 말했다. (그 살해된 여

자를. 신문을  보았어. 호텔에서 살해되었잖아.  신원 불명이라고 씌여져 있더군. 

명함 한 장만이 지갑에  들어 있어. 그 인물에게 연유를 묻고  있다고 나와 있었

어. 자네 이름은  나와 있지 않더군.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자네는 경찰에서 아

무 것도 모른다고 버티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모르는 게 아니잖아?)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저 문득) 그 골프채를 집어들어 칼처럼 앞으로 반듯이 내밀고는, 그것을 가

만히 바라보았다. (그러한 느낌이 들었어. 무엇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느

껴져, 문득. 자네와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점점  그러한 느낌이 든다구, 세밀한 

일에 일일이 구애되면서, 큰  일에 대해서는 묘하게 관대해져. 그러한 패턴이 드

러나 보인다구. 재미있는 성격이야. 그러한  의미에서 유키를 닮았어. 살아가기가 

힘겨워져. 남이 이해하기  어렵고, 쓰러지면 치명적이 돼요. 그러한  의미에서 자

네와 유키는 동류야. 이번 일만 해도  그렇지. 경찰은 손쉽게 넘어가지 않으니까. 

이번은 잘되었지만, 다음에도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네. 시스템도 졸지만, 버티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이미 그러한 시대가 아니거든.)

  (버티고 있는 것도 아녜요)하고 나는  말했다. (댄스 스텝 같은 거예요. 습관적

인 겁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어요. 음악이  들리면 몸이 자연히 움직여요. 주위가 

변해도 관계없습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스텝이어서, 주위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너무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헛디뎌 버리니까요.  단지 서투를 

뿐이에요. 멋쟁이가 아녜요.)

  마키무라 히라크는 또 잠자코 골프채를 응시하고 있었다.

  (별나)하고 그는 말했다. (자네는 내게 무엇인가를 연상시켜. 무엇일까?)

  (무엇일까요?)하고 나는  말했다. 무엇일까?  피카소의 '네덜란드 풍의  꽃병과 

수염을 기른 3명의 기사'일까?

  (하지만 나는 자네가  썩 마음에 들었고, 자네라는 사람을 신용하네.  미안하지

만 유키를 돌보아  주게. 언제든 분명히 사례를  하겠어. 나는 빚을 지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야. 이 말은 아까도 했지?)

  (들었습니다.)

  (그럼 됐어)하고 마키무라 히라쿠는 말했다. 그리고 골프채를 살며시 툇마루에 

걸쳐놓으며 (좋아)하고 말했다.

  (신문에는 그밖에 무슨 얘기가 나와 있었습니까?)하고 나는 물었다.

  (그밖에는 거의 아무 것도 나와 있지 않더군. 스타킹으로 교살되었다,  일류 호

텔이라는 건 도회의 맹점이다 하고 씌어져 있었어.  이름이나 그 밖의 사항도 모

두 알 수 없다. 신원을 조사하고 있다고  나와 있더군. 그뿐이야. 흔히 있는 사건

이야. 금방 모두들 잊어버려요.)

  (그렇겠죠)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지)하고 그는 말했다.

  (아마 그렇겠죠)하고 나는 말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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