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부-1화 (36/36)

        댄스 댄스 2

   지은이: 무라카미하루키

   옮긴이: 유유정

   출판사: 문학사상사

  일곱 시가 되어 유키가  훌쩍 돌아왔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어요, 하

고 그녀는 말했다. 어떡하겠니, 식사라도 하고 가겠니,  하고 마키무라 히라

쿠가 물었다. 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시장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집에 돌아

가겠어요,하고 말했다.

  "그럼 또 마음이 내키면  놀러 와라. 이번 달은 죽 일본에 있을  것 같으

니까 ". 하고 그녀의  부친은 말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일부러 와주었으나 

아무런 대접도 못해서 미안하고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

다, 하고 나는 말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인 프라이데이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정원  안쪽의 주

차장에 지프차로 키와 혼다와 일반 도로가 아닌 곳에서 달릴 수 있는 특제 

자전거 등이 보였다.

  "과소비적 생활 같군요" 하고 나는 프라이데이에게 말해 보았다.

  "에로문학 작가가 아닙니다." 하고 프라이데이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대

답했다. "이른바 작가 타입이  아닙니다. 어쨌든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요."

  "바보 같아." 하고 작은 목소리로 유키가 말했다. 

  나도 프라이데이도 못 들은 체했다.

  스바루에 올라타자 유키는 이내 시장하다고 말했다. 나는  바닷가에 자리

한 '헝그리 타이거'  앞에 차를 세우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알콜이 

제거된 맥주를 마셨다.  

  "무슨 이야기였어요?" 하고 그녀는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먹으면서 말했

다.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나는 대강 설명했다. 

  "그런 것일 줄 알았어요." 하고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분이 생각할 만한 일이에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했어요?."

  "사양했지, 물론. 그러한 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사리에 맞지 않는 이야

기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이따금 만나는 게 좋으리라고  생각

해. 서로를 위해서.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고, 생활  환경도, 사고 방식도, 살

아가는 방식도 많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둘이서 여러  가지를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렇게 생각지 않아?." 

  그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만나고 싶어지면 네가  전화를 걸어주면 돼. 사람과  사람이 의무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어.만나고 싶어지면  만나면 되는 거야. 우리는 서로가 누구

에게도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비밀을 공유하고 있

어. 그렇지? 틀리나?."

  그녀는 약간 망설이다가 "응." 하고 말했다.

  "그런 것은 내버려 두면 몸 안에서 자꾸  부풀어 오르는 수가 있어. 억제

할 수 없게 되는 ㄸ가  있는 거야. 이따금 공기를 뽑아주지 않으면, 펑하고 

폭발해 버려. 알겠어? 그렇게  되면 살아가기가 어려워져. 무엇인가를 혼자

서 떠맡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야. 너도 고통스럽고 나 역시  고통스럽

다고 느끼는 수가 있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

아.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내게 전화를 걸어주면  돼. 이것은 너의 아버지의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계

도 없어. 혹은 내가 너에 대해 세상 물정에 밝은  오빠나 아저씨 역할을 하

려 하는 것도 아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등해.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따금 만나는 게 좋아."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디저트를 먹어버리고는,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리고 옆의  테이블에서 온 가족이 비만한 체격으로 볼이  미어

져라 음식을 입에 넣으며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곁눈으로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와 딸과  어린 사내아이가 하나. 모두가 꽤나 살들이 

쪄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커피를 마시면서 유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예쁜 아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의 가장 깊은 부분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구불구불 복잡하게 구부러져 있는  구멍의 

깊숙한 아쪽이므로, 웬만해서는  도달할 턱이 없지만,그녀는 거기에 제대로 

돌멩이를 던져넣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열다섯이었으면  사라에 빠졌을텐

데, 하고 나는 스무 번째쯤 새삼스레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서른넷이

고, 열셋의 여자 아이와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잘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

이다.

  동급생들이 그녀를 괴롭히는 기분을 나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녀는 아마도 그들의  일상성을 넘어설 만큼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너무 예리하다. 게다가  그녀 쪽에서는 결코 그들에게 접근하려 하지  않는

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하고, 또 히스테릭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다. 그녀에  의해 자신들의 친밀한  공동체가 부당하게 깎아내려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고혼다와 다른 점이다. 고혼다는 타인이 자

신으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이를 제대로 유지, 제

어하고 있었다. 그는 타인에게  공포를 안겨주지는 않았다. 그의 존재가 자

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커져  버렸을 때에는 생긋 미소지으며 농담을 하

였다. 훌륭한 농담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기분  좋게 생긋 웃으며 보통의 

농담을 입에 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들 생긋  웃으며 즐거운 기분

이 될 수 있었다.  '좋은 녀석이야', 하고 모두들 생각했다. 이것이-아마  정

말 좋은  사나이 일 것이다.-고혼다였다.  하지만 유키는 그렇지가  않았다. 

유키는 자기 한 사람을 떠맡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자신 주

변 인간들의 감정의 움직임까지  세밀히 생각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만큼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그럼으로써 타인을  통해 스스로도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고혼다와

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고단한 인생이다. 열 살의 여자 아이에게 있어

서는 너무 고단한 편이다. 어른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고단한 일인 것이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되어갈지, 나는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잘 풀리

면, 모친처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어떤 방법을 발견하고 획득하여, 예술

적인 분야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이 어떠한 분야든 간에, 

그녀가 지니고  있는 힘의 방향성에  맞기만 한다면, 그녀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만큼의 일을 하리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키무라 히라쿠가 말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내부에는 힘이 있고, 재능이 있다.  비범한 데가 

있다. 눈치우기 같은 게 아닌가.

  혹은 그녀가 열여덟이나 열아홉이  될 때까지는 아주 보통의 여자아이로 

변해 있을지도 모 

른다. 그러한 예를  나는 더러 보았다. 열서넛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예리한 소녀가, 사춘기의  계단을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그 광채를  상실하

여 간다.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져 버릴 듯한  예리함이 둔화되어 간

다. 그래서 (예쁘긴 하지만 그다지 인상적이라 할 수  없는) 아가씨가 된다. 

그래도 본인은 그런대로 행복해 보인다.

  유키는 둘 가운데 어는 성장 과정을 거쳐가게 될지,  물론 나로선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기묘하게도  인간에게는 각기 절정이라는게 있다. 거기에 올

라가 버리면, 다음에는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다. 그리고 그 절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ㄱ찮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그 분수령이 다가온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자는  절정에서 죽는다. 많은  시인이나 작곡가들은 질풍처럼  살면서 

너무 급격히 꼭대기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죽었다. 파

블로 피카소는 여든  살이 넘어서도 힘찬 그림을  그리다가 그대로 편안히 

죽었다. 이 점만은 끝나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 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절정 -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되돌아보면, 

이는 인생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든다. 약간의 기복은 있었다. 

꾸역꾸역 올라가거나 내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아무것도 만들어낸 게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있고, 누군

가로부터 사랑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암아 있지 않다. 기묘하

게 평탄하며, 풍경이 단조롭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에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팩맨 같다. 잇따라 미로 속의 점선을 먹어 간다. 목적도 없이, 

그리고 언젠가는 확실하게 죽는다.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양사나이가 말했다. 그러니

까 춤을 추는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모두 감탄할 만큼 능숙하게.

  나는 생각하기를 중지하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니 유키가 테이블 맞은편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괜

찮아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쩐지 의기소침해져 있는 것  같아요, 몹시. 

내가 무슨 심한 말을 했나요?"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언짢은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럴지도 몰라."

  "그런 일을 곧잘 생각해요?"

  "이따금."

  유키는 한숨을 쉬고, 잠시 테이블 위의 종이 냅킨을 접으며 놀고 있었다.

  "몹씨 쓸쓸해지는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밤중에 그러한 일을 문득 생각

하나요?"

  "물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왜 지금 여기서 그러한 일을 갑자기 생각했죠?"

  "아마 네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 하고 나는 대답했다.

  유키는 그녀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공허한 눈으로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

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값은 유키가 치러  주었다. 아빠가 돈을 잔뜩 주었으니까 ㄱ찮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계산서를 갖고 카운터로 가서, 주머니에서 1만 

엔짜리 지폐 대여섯 장을 한꺼번에 꺼내고는 그 중의 한 장으로 값을 치르

고, 거스름돈을 제대로 세어 보지도 않고 다시 가죽  잠바의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분, 내게 돈을  건네주면 다 된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엉터리야. 그래서  오늘은 내가 대접해 드리는 거예요.  우리는 대

등하잖아요, '어떤  의미에선' 언제난 대접만  받아왔으니까, 때로는 괜찮지 

않았어요."

  "잘 먹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후배를 위해 한 마디 한다면, 그

러한 짓은 클래식한 데이트의 매너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럴까요?"

  "데이트를 하면서 식사를 한 후에, 아가씨가  스스로 계산서를 갖고 카운

터로 가서 돈을 치르면 안돼. 남자에게 먼저 치르게 하고, 나중에 돌려주는 

거야. 그게 세상살이의  매너야.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요.나는  물

론 손상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든 간에  인색한  인간이 

아니니까. 어쨌든 나는 괜찮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남자도 세상에는 

꽤 많이 있어, 세계는 아직도 인색하거든."

  "바보 같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난 그런 남자와는 데이트 따윌  하지 

않아요."

  "그건 말하자면 하나의 식견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스바루를 몰고 나왔다. "하지만 사람은 불합리하게  사랑에 빠지는 수가 있

어. 좋아하는 상대방만을  고를 수 없는 수도 있어.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너도 브래지어가 필요해질 나이가 되면, 아마 그걸 알 수 있을 거야."

  "갖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하고 그녀는 주먹으로 내 어깨를  마음껏 쳤

다. 그래서 나는  하마터면 붉게 칠해진 커다란 쓰레기통에 자동차를  부딪

칠 뻔했다.

  "농담이야."하고 나는  차를 멈추고 말했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모두들 

농담을 하고 서로 웃거든. 혹은 그게 시시한 농담일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그러한 일에 익숙해져야 해."

  "흠." 하고 그녀는 말했다.

  "흠." 하고 나도 말했다.

  "바보처럼." 하고 그녀는 말했다.

  "흉내내지 말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흉내내기를 중지하였다. 그리고 자동차를 주차장에서 몰고 나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을 치면 안 돼, 농담이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 짓을 하면 어디에고 부딪쳐 둘 다 죽어  버리게 돼. 이게 제2의 데

이트 매너야. '죽지 않고 살아 남을 것.'

  "흠." 하고 유키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유키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의 

힘을 빼고 녹초가 된 듯한  자세로 시트에 기대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

었다. 이따금 졸고 있는 듯했지만,  깨어 있을 때와 졸고 있을 때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이미 음악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시험 삼아 존 콜트레인

의 (발라드) 테이프를 돌려 보았지만, 그녀는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

았다. 무슨 곡이 흘러 나오고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콜트레인의 솔로에 맞추어 작은 목소리로 허밍하면서 자동차를 몰았다.

  소오낭으로부터 밤중에  도쿄로 돌아오는 길은  지루한 길이다. 나는  앞 

자동차의 미등에 죽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별로 이야기할 것도 없다. 

수도 고속 도로로 접어들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죽 껌을 씹고 있었다. 그

리고 한 가치의 담배를  서너 번 빨더닌 창밖으로 버렸다. 두  가치를 피우

면 언짢은 말을 해주려고 했는데, 한 가치밖에 피우지 않았다. 그만큼 눈치

가 빠른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안다. 물러설 때를 알고 있다.

  아카사카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나는 자동차를 멈췄다.  그리고 

"도착했어요, 아가씨." 하고 말했다.

  그녀는 껌을 포장지로  싸서 대시 보드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른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자동차에서  내려, 그대로 가버렸다. 잘 가라는 인사말

도 하지 않고, 문도 닫지  않고,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복잡한 나이다. 혹은 

단순한 생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건 마치 고혼다가 출연하고  있

는 영화ㄹ 줄거리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상처입기 쉽고  복잡한 나이의 소

녀. 아니, 고혼다 같으면 나보다 훨씬 더 능숙하고  솜씨 좋게 해낼 것이다. 

그가 상대라면  유키도 달아올라 사랑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영화가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런, 또 고혼다에 관한걸 생각하고 있군. 

나는 고개를 젓고는, 조수 자리로 옮아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문을 닫

았다. 쾅. 그리고  프레디 하버드의 (레드 클레이)를 허밍하면서 집으로  돌

아왔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역까지 신문을 사러 갔다. 아홉 시전이었

으므로, 시부타니 역 앞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봄철

인데도 미소짓고 있는 사람은 손꼽을 수 있은 정도로 별로 눈에 띄지 않았

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어쩌면  미소가 아니라, 그저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

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매점에서 두 가지의 신문을 산 다음,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었다. 어느 신문에도 

메이의 기사는 이제  실려 있지 않았다.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전재을  하고 

있는 일이며, 도지사 선거에 관한  일, 중학새의 비행에 관한 일 따위가 실

려 있었다.  하지만 아카사카의 호텔에서  아름답고 젊은 여자가  교살당한 

일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다. 마키무라  히라쿠가 말한 

것 처럼, 흔해빠진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들 금방 잊어버린다. 

물론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살인

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 두 명의 형사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 영화라도 볼까 하고 신문의 영화란을 펼쳐보았다. (짝 사랑)

은 이미 끝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혼다에 관한 일을 생각해 내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메이에 관한  일을 알려 두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기

회에 그가 조사라도 받게 되고, 그때 내 이름이 나오게 되면, 나는 매우 난

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경찰에서 또 추궁당할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머

리가 아팠다.

   나는 던킨 도너츠에 있는 핑크색의 공중 전화가  앞으로 다가가, 고혼다

의 맨션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물론 그는 나오지 않았다.  녹음 전화였다. 

나는 좀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연락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

문을 휴지통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걸어오면서 왜  베트남과 캄보디아

가 전쟁 따위를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잘 알 수 없다. 복잡한  세계

다.

  조정을 하기 위한 하루였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한 하루가 있다. 현실적이 

되어, 현실적인 현실과 맞붙어 씨름을 해야 하는 하루.

  우선 나는 몇 개의  셔츠는 세탁소에 갖다 주고, 몇 개의  셔츠를 찾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고, 전화 요금과 가스 요금을 지불

했다. 집세도 불입해 두었다. 구둣방에   들러 뒤축을 새 것으로 갈아 끼웠

다. 자명종의 전지와 카세트 테이프도 여섯 개나 샀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

와 음악을 들으면서 방안을  정리하였다. 욕조를 깨끗이 씻었다. 냉장고 속

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내부를 깨끗이 닦고, 식품을 점검하고  정리하였

다. 가스레인지를 닦고, 더러워진  환풍기를 손질하고, 바닥을 닦고, 창문을 

닦고, 쓰레기를 한데 모아두었다.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갈아 끼웠다. 청소

기로 청소를  하였다. 이만큼의 일을  하는데 두 시까지  걸렸다. 스틱스의 

(미스터 로보트)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걸레로 블라인들를 닦고  있느

데, 전화 벨이 울렸다. 고혼다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한번 만나 천천히 이야기할 수 없을까?  전화론 좀 이야기하기 곤란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 하지만 그게 급한 일인가?  지금 일정이 좀 빡빡해. 영화와 TV의 

비디오 촬여이 겹쳐 있어. 2,3일 지나면 편하게 천천히 이야기할 수 있겠는

데."

  "바쁜데 정말  미안해. 하지만 사람이  하나 죽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의 고통돤 친구인데, 경찰이 움직이고 있어."

  그는 수화기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용한 능변의 침묵이었다. 나

는 그때까지 침묵이라는 것은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일 뿐이라

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혼다의 침묵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고

혼다가 지니고 있는 그밖의  모든 자질들과 마찬가지고 단정하고 냉정하면

서 어딘지 지적이  것이었다. 이상한 표현이라고는 생각되지만,귀를 기울이

면 그의 두뇌가 가장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알았어. 오늘 밤에  만날 수 있을 거야. 늦어질지도  모르겠는데, 괜찮겠

니?"

  "괜찮아."

  "아마 한 시나 두 시쯤에 전화를 걸게  될 거야. 안됐지만 지금으로선 그 

전에는 아무래도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좋아, 괜찮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어."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고혼다와  주고 받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두 생

가해내 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  죽었어. 우리의 공통된 친구인데,  경찰이 움직이고 

있어.'

  이는 마치 범죄 영화 같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혼다가 과련되

면, 모든게 영화의 장면처럼 되어  버린다. 왜 그럴까? 현실이 조금씩 후퇴

하여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있는  듯한 기

분이 되어 간다. 아마 그는 그러한 마력 같은 것을 갖고 있는가 보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마세라티로부터 내려오는 고

혼다의 모습을 상상했다. 매력적이다. 래디얼 타이어의 선전  같다. 나는 고

개를 젓고는 블라인드의  나머지 부분을 닦는다. 이제 그러한 생각은  그만 

하자, 오늘은 현실적인 자세를 갖는 날이다.

  다섯 시에  나는 하라주쿠까지 산책을  하고, 타케시타 가에서  엘비스표 

바지를 사려고 찾아  보았다. 하지만 엘비스표 바지는 손쉽게 발견되지  않

았다.

  키스표자 자니표, 아이언  메이딘표, AC/DC표, 모터헤드표, 마이클  잭슨

표, 프린스표  따위는 잔뜩 있었지만,  엘비스표는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가게에서 겨우 'ELVIS. THE KING'이라 표시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그것

을 샀다. 나는 농담으로 점원에게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표 바지는 없는지 

물어보았다. 작은 보자기만한 리본을 달고 있는 열일곱이나  열여덟쯤 되어 

보이는 여자 점원이 놀라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게 뭐죠? 들어본 적이 없어요. 뉴 웨이브나  펑크니 하는 것들 말인가

요?"

  "대체로 그 중간쯤인데."

  "최근엔 새로운 게 잔뜩 나오고 있어요, 정말 거짓말 같아요." 하고 그녀

는 말하고는 혀를 찼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정말."하고 나는 동의했다.

  나는 이어 '루오카'에서 맥주를  마시고,튀김을 먹었다. 그렇게 길었던 시

간이 흐르고, 해가 기울었다. 동이  트고 석양이 지고 나는 한 명의 평면적

인 행상인으로서 목표도 없이 그저 점선을 계속 파먹어  간다. 사태는 전혀 

진전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디에도 접근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도중에 자꾸 복선이 증가 되어 왔다. 그리고 키키와 이어

지는 중요한 선은 툭  끊어져 버렸다. 나는 옆길로 자꾸 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메인 이벤트에  도달하기 전에, 부속된 연예와 관련되어 시간

과 노력을 헛되이 소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대체  주요 경

기는 어디서 진행되고 있을까? 그리고 정말 하고 있는 것일까?

  밤중까지 할 일이 없었으므로  일곱 시부터 시부야의 영화관에서 폴뉴먼

의 (평길)을 보았다. 나쁘지  않은 영화였지만, 도중에 몇 번 이나 다른  생

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줄거리가 토막토막 분리되어 버렸다. 스

크린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 키키의 벌거벗은 등허리가 문득 나타나는  듯

한 느낌이 들어,  그만 그녀에 관한 일을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키키 - 너는 내게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영화의 끝 표시가 나오자, 나는 

거의 줄거리를 알지 못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거리를 조

금 걷다가, 이따금 들르는 바에 들어가 땅콩을 먹으면서  보드카 김렛을 두 

잔 마셨다. 그리고 열 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면서 고혼다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기다렸다.  나는 이따금 전화기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전화기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ㄸ문이다.  편집

증적이다.

  나는 책을 덮어  두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땅에 묻은  '갈매기'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그건  이미 뼈만 남아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땅 속은 

조용하리라. 그리고 뼈 역시 조용하다. 뼈는 새하얗고  깨끗하지, 하고 형사

는 말하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다. 나는  숲의 땅 속에 그것을  묻었다. 

쇼핑 백에 담아 가지고.

  아무 말도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력감이 조용히 소리도  없이 물처럼 방 안에 차 있었

다. 나는 무력감을 밀어 헤치듯이 목욕실로 가서 (레드 클레이)를 휘파람으

로 불면서 샤워를 하고, 부엌에  선 채로 캔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눈을 감

고 스페인 어로 하나에서 열까지 센 다음, "끝났다."하고 소리 내어 말하고

는 손뼉을 치자 무력감은 바람에 날려가듯이 휘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나

의 주술이다. 혼자서 지내는 인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이다.

  열두 시 반에 고혼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지만, 가능하면  지금부터 자네 차를  몰고 우리 집까지 와줄  수 

있겠나?"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 집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지?"

  기억하고 있다고 나는 말했다.

  "하도 어수선해서  결국 시간을 제대로  잡지 못했어. 하지만 차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자네  차를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운전수가 들으

면 곤란할 테니까."

  "그렇군." 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 출발하겠어. 약  20분 후에는 거기에 

도착할 거야."

  "그럼 그때 만나지." 하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부근의 주차장에서 스바루를  몰고 나와, 그의 맨션까지 갔다. 1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관의 '고혼다' 라는 본명이 씌어져 있는  벨을 누르

자, 그는 금방 내려왔다.

  "늦어져서 미안해. 굉장히  바빴어. 지독한 하루였어." 하고 그는 말했다. 

"지금부터 또 요코하마까지 가야  해. 내일 아침 일찍 영화 촬영이 있거든. 

그때까지 잠시 눈을 붙여 두어야겠아. 호텔은 잡아 두었어."

  "그럼 요코하마까지 배웅하겠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면 그  동안에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그렇게 해주면 도움이 되겠는데." 하고 그는 말했다.

  고혼다는 스바루에 올라타자, 신기한 듯이 차 안을 둘러보았다.

  "안정이 돼." 하고 그는 말했다.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으니까."하고 나는 말했다.

  "과연." 하고 그는 말했다.

  고혼다는 놀랍게도 정말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 

잘 어울렸다. 선글라스는  끼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투명한 렌즈의 보통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안경도 썩 잘 어울렸다. 매우  지성적으로 보였다. 

나는 차를 몰고 깊은 밤의 한적한 도로를 제3게이힌 입구를 향해 달렸다.

그는 대시 보드 위에  놓여 있던 비치 보이즈의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잠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운데." 하고 그는 말했다. "예전엔  이 노래를 곧잘 들었어. 중학 시

절이야. 비치 보이즈  - 뭐라고 할까, 특별한 음성이었어. 친밀하고  달콤한 

음성이야.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바다 내음이 풍기며, 옆에서  예쁜 아가씨

가 제멋대로 뒹굴고 있는 듯한 음성이야.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러한 세계

가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어제 까지나 모두들  젊고 

언제까지나 모든 게 빛나고 있는 듯한 그러한 신화적  세계야. 영원한 사춘

기. 동화야."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그래."

  그는 마치 무게를 다는 것처럼 손바닥 위에 테이프를 올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건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 되지는 않아. 모두들  나이를 

먹어. 세상도 변해. 신화라는 건 모두 언젠가는  죽어버려. 영원히 존속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맞아."

  "그러고보니, (굿 바이브레이션) 이후의 비치 보이즈의 노래는 거의 들어

보지 못했군. 웬지 듣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렸어. 더 딱딱한 노래를 듣

게 되었어 . 크림,  더 후, 레드 제프린, 지미 핸드릭스... 메마른  시대가 된 

거야. 비치 보이즈의 노래를 듣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어. 하지만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지. (더 파걸) 따위 말야. 동화야. 하지만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굿 바이브레이션) 이후의 비치 

보이즈도 나쁘지 않아.  들을 만한 가치는 있어.(20/20)이나  (와일드 허니), 

(홀랜드), (서프즈 업) 따위도 나쁘지 않은 음악야. 난 좋아해.  초기의 것들 

만큼 광채를 발하고 있지는  않아. 내용도 혼란스러워. 하지만 어떤 확실한 

의지의 힘이  느껴지는 거야. 브아이언  윌슨의 점점 정신적으로  침체되고 

마지막에는 밴드에  거의 공헌하지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모두 

힘을 합쳐 살아  남으려는 그러한 필사적인 마음이 전달되어 오거든.  하지

만 확실히 시대에는 맞지 않았어.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나쁘지 않아."

  "이 다음에 들어 보겠어." 하고 그는 말했다.

  "틀림없이 마음에 안 들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테이프를 집어넣었다. (팬 팬 팬)이 흘러나왔다.  고혼다는 테이프에 

맞추어 잠시 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리워." 하고 그는  말했다. "믿어지나? 이게 유행한건 이미 20년  전의 

일이야."

  "마치 바로 어제처럼 생각되는군." 하고 나는 말했다.

  고혼다는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이따금 자네는 복잡한 농담을 하는군." 하고 그는 말했다. 

  "모두들 별로 이해해 주지  않지만 말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농담

을 하면  대개 모두들 진담으로 받아들여.  지독한 세상이야 농담 하나  할 

수 없으니."

  "하지만 분명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하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서는  도시락에 장난감 개똥을 집어넣는게  고급 농

답인 줄 알고 있다구."

  "진짜를 넣는 편이 농담으로서는 더 고급이지."

  "정말."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는  잠자코 비치 보이즈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걸즈), (409), (캐치 어 웨이브) 따위의 예전의 주목  했었던 곡

들뿐이었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와이퍼를 움직

였다간 잠시 멈추고, 또 움직였다. 그 정도의 비였다. 부드러운 봄비.

  "중학 시절이라고 하면, 자네는 어떤 일을  생각해 내나?" 하고 고혼다가 

내게 물었다.

  "보기 싫고 혐오스러운 자신이라는 존재."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밖에는?" 

  나는 약간 생각해  보았다. "자네가 과학 실험 시간에 가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있던 일이 생각나는군."

  "왜     또?"      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그는     말했다.                                                                                                                                      

                

"불을 붙이는 방식이 말야, 뭐라고 할까, 아주  세련돼 보였어. 자네가 불을 

붙이면 그게 인류의 역사에 남을 위업처럼 보였다구."

  "그건 좀 과장된 얘기군."하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하고

자 하는 말은  알 수 있어. 자네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요컨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행위 얘기겠지. 몇 번인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리고 그  때문에 예전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 나 자신은 그런 

두드러진 행위를  하려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고 

있었을 거야.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죽 모두들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보

고 있었어.  주목을 받고 있었어. 그러므로  당연히 의식하거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다소 연기적으로 돼.  그러한 게 몸에 배어 버리지. 요컨대 연기

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므로 배우가 되었을  때는. 어쩐지 마음이 놓였

어. 앞으로는 이제 당당히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무릎  위에 놓인 두 손바닥을  마주 포개었다. 그리고 그것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지독한 인간은 아냐. 나는 내 나름

대로 순수한  인간이고 또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쉽다구. 죽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냐." 

  "물론."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의미로 말한 게 아냐. 내

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다만 자네가 가스 버너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 세련

되어 있었다는 것 뿐이야. 한 번 더 구경하고 싶을 정도지."

  그는 즐거운 듯이 웃고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닦는 모양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좋아, 그럼 이  다음에 해 보자."  하고 그는 말했다. 

"가스 버너와 성냥을 준비해 두었어."

  "실신했을 경우에 대비하여 베개를 가져가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킥킥거리며 웃고는 또 안경

을 썼다. 약간 생각하고는,  카 스테레오의 볼륨을 낮췄다. "괜찮다면, 자네

가 말한 그 죽은 사람 이야기를 이제 해보지 않겠나?

  "메이." 하고 나는 와이퍼 너머의 앞쪽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녀가  죽

었어. 피살되었어. 아카사카의  호텔에서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죽었어.  범

인은 알지 못하고 있어."

  고혼다는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3초나 4초쯤 걸렸다. 그리고  이해하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의 표정

이 변화하는 걸 몇  번이고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쇼크를  받고 있는 

듯했다.

  "피살된 날짜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정확한  날짜를 가르쳐 주었다.  고혼다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처럼 

또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혹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

무 가혹해. 죽일 이유라고 하나도 없어. 좋은 아이였어. 그리고 - ."

  그는 또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좋은 아이였지." 하고 나는 말했다. "동화나 옛날 이야기처럼."

  그는 몸의 힘을  빼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피로가 급격히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가두어둘 수 없다는 것처럼. 그는 그 피로를 

죽 몸 속의 어딘가  남의 눈에 띄 지 않는 곳에  가두어 두고 있었던 것이

다. 피로한 고혼다는 여느 때보다 약간 늙어 보였다. 하지만 피로마저도 그

의 몸에 걸쳐지면 매력적으로  보였다. 인생의 액세서리 처럼 보였다. 하지

만 물론 이러한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 역시  정말 피

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다

만 무슨 일을 하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뿐이다. 마치  무엇에 손을 가져

가든 간에 그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그 전설에 나오는 임금님처럼.

  "곧잘 셋이서  아침까지 이야기를 했어."  하고 고혼다는 조용히 말했다. 

"나와 메이와 키키 셋이서 말야. 즐거웠어. 친밀한  기분에 잠길 수 있었어. 

자네는 동화라고 하지만, 동화도  그처럼 손쉽게는 손에 들어오지 않ㅇ. 그

래서 나는 소중히 하고 있었지. 하지만 하나씩 사라져 가는군."

  그리고 둘 다 죽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전방의  노면을 바라

보고 그는 대시  보드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와이퍼를  정지시켰다가 

움직이곤 했다. 비치 보이즈는 작은 목소리로 옛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태

양과 서핑과 자동차 레이스에 관한 노래를.

  "어떻게 자네는 그녀가 죽은 걸 알았지?" 하고 고혼다는 내게 물었다.

  "경찰에 불려갔어." 하고 나는 설명했다. "그녀가 내 명함을 갖고  있었던 

거야. 지난 번에 주었지. 키키에  관한 일을 알게 되면 가르쳐 달라면서 말

야. 메이는 그것을 지갑 속에 깊숙히 넣어두고 있었어. 왜 그런 걸 갖고 다

녔을까? 하지만 아무튼  갖고 있었다구. 그리고 난처하게도 그것이  그녀의 

신원 확인에  이어지는 유일한 유류품이었어. 그래서  내가 불려갔지. 사체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  여자를 아는가고 묻더군. 강하게 생긴 형사  두 명

이 말야. 모른다고 했지. 거짓말을 했어."

  "왜?"

  "왜? 자네의 소개를 받아 둘이서 창녀를 데리고 놀았다고 말하면 좋았겠

나?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해?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자네의 

상상력은 어디로 갔나?"

  "미안해." 하고 그는 솔직히 사과했다. "나도 약간 머리가 혼란되어 있어. 

쓸데없는 질문이었네. 그것쯤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어. 시시해.  그래 어

떻게 되겠어?"

  경찰은 전혀 신용하지 않았어.  프로니까 말야,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

면 냄새를 맡아  알 수 있어. 사흘 동안 곤욕을  치렀지. 법에 걸리지 않도

록, 몸에 자국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괴로움을 당했어. 꽤  지독했어.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과는 달라. 따로 잠을 잘 장소도 없어서 유치장에서 잤지. 

자물쇠로 잠그지는 않더군.  하지만 자물쇠로 잠가두지 않더라더  유치장은 

유치장이야. 마음이 어두워져. 나약해져."

  "알 수 있어. 나도 예전에  2주일 동안 들어가 있었어. 입을 다물고 있었

지. 아무튼 입을 다물고  있었지. 하지만 두려웠어. 2주일 동안 한  번도 태

양을 볼 수 없었네. 이제 두 번 다시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 

그런 기분이 든다구. 그 자들은 사람을 쓰러질 ㄸ까지 마구 패거든. 맥주병

으로 고기를 두들기는 것처럼  말야. 그는 손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흘 동안 곤욕을 치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당연하지 않아,  그렇다고 도중에 '사실은...' 하고  말하기 시작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  짓을 하면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게 돼버리지. 그러한 

곳에서는 한번  입밖에 낸 말은 끝까지  사수하는 수밖에 없어. 무슨  일이 

있든간에 딱 잡아떼는 수밖에 없어. 

고혼다는 약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됐군.내가 그녀를  소개한 탓에,자

네가 골탕을 먹었어. 말려들어 버렸어."

  "자네가 사과할 건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때는 그때니까. 그때는 

나도 즐거웠어. 그리고 이번 일은  이번 일이고. 그녀가 죽은 것은 자네 탓

이 아냐."

  "그건 그래. 하지만  어ㅉ든 자네는 나를 위해 경찰에서 거짓말을  해 주

었어. 내가 말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혼자서 곤욕을 치렀어. 그건 내 탓

이야. 내가 관련되어 있었기 ㄸ문이야."

  나는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는 가장 중요

한 부분을  그에 설명하였다. "그건 이제  괜찮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사과하지 않아도 돼. 감사하지 않아도 돼. 자네에게는  자네의 입장이 있고,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네. 문제는  말야, 내가 그녀의 신원을 밝힐 수 없

었다는 점이야. 그녀에게도 가족은 있을 테고, 범인도  붙잡히길 바랐어. 나

도 모조리 이야기해 주고 싶었네.  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어. 난 그게 괴

로워. 메이 역시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채 혼자  죽어버렸으니 쓸쓸하지 않

겠어?"

  그는 오햇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들어 버리지 않

았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비치 보이즈의 테이프가 대충 끝났으므로, 

나는 버튼을 눌러 테이프를 꺼내었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노면의 엷은  빗물을 스쳐가는 균일한 소리가 들릴 뿐이었따.  한

밤중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경찰에 전화를 하겠어."  하고 고혼다는 눈을 뜨고 조용히 말했다. 

"익명으로 전화를 하겠어. 그리고 그녀가 속해  있던 클럽의 이름을 알려주

는 거야. 그러면 그녀의 신원도 알 수 있고 수사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훌륭해."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는  정말 머리가 좋아. 과연 그러한 방

법이 있었군. 그러면 경찰은  클럽을 덮치겠지. 메이가 살해당하기 며칠 전

에 자네가 그녀를  지명하여 집으로 불러들였음을 알게 돼. 당연히  자네는 

경찰에 불려가겠지. 그렇게 되면 내가 사흘 동안 곤욕을  치르면서도 꾹 참

으며 입을 다물고 끝까지 비밀을 지킨 의미가 어디에 있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아.  난 정말 머리가  돈 모양이야. 

혼란되어 있어."

  "혼란되어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한 때는 가만히 있으면 돼. 그

러면 모든 게 지나가 버려. 시간 문제야. 호텔에서 여자가 목졸려 살해되었

을 뿐이야. 흔히 있는 일이고, 조만간 모두들  잊어버린다구. 자네가 책임을 

느낄 성질의  것이 아냐. 자네는 그저  목을 움츠리고 조용히 하고  있으면 

되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돼. 지금 자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면 일이 복

잡해져."

  목소리가 너무 차가웠는지도 모른다. 표현이 좀 과격했는지도 모른다. 하

지만 내게도 감정이라는 게 있다. 내게도...

  "미안해."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를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닐세.  단지, 나 

역시 괴로웠다구.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해주질 못했어. 그뿐이야.  자네 

탓이 아냐."

  "아냐, 내 탓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새 테이프를 끼웠다. 벤킹이 (스패니

시 하렘)을 노래하고 있었다. 요코하나 시내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각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덕분에 나는  고혼다에게 이전에은 느

낄 수 없었던 친밀한 감정을 품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가져

가, 이제 됐네, 끝난 일이니까, 하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 죽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하나 차갑게 따아ㅔ 묻혀버

린 것이다. 그것은 내 힘을 넘어선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누가 죽였을까?" 하고 한참 있다가 그는 말했다.

  "글세."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한 장사를 하고 있으면 온갖 상대를  다 

만나게 돼.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동화 같은 일뿐마이 아냐."

  "하지만 그 클럽은 신원이 확실한 사람밖에는  상대하지 않아. 그리고 조

직이 확실하게 중개를  하고 있으니까, 조사해 보면 누가 상대였는지  금방 

알 수 있어."

  그때는 아마 클럽을 통하지  않았겠지. 그러한 느낌이 들어. 장사하는 이

외의 개인적인 상대였거나, 아니면 클럽을 통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거야, 틀림없이. 어느 경우든 선택한 상대가 나빴어.

  "가엾게도." 하고 그는 말했다.

  "그 아이는 동화를 너무  믿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아이가 믿고  있

었던 것은 이미지의 세계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한 게  계속될 턱이 없

지. 그러한 걸 계속시키는 데는 정확한 룰이 필요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룰을 존중하며 지켜주는 건 아니니까. 상대를 잘못 택하면  지독한 꼴을 당

하게 돼."

  "이상하게 여겨졌어." 하고  고혼다는 말했다. "왜 그토록 예쁘고  머리가 

좋은 아이가 창부  노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야. 이상하게  생각 되었어. 

그정도의 아이라면  더 좋은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깔끔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테고, 돈  많은 사나이를 발견할 수도 있었을 거야. 모델이 

될 수도 있어.  왜 창부 노릇 따위를 하고  있을까? 확실히 돈은 벌리겠지. 

하지만 그아이는  그토록 돈에 흥미가 있는  건 아냐. 아마 그녀는  자네가 

말하는 그 동화를 찾고 있었을 거야."

  "그럴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와 마찬가지로, 나와  마찬가지로, 그

밖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각기 구하는 방식이 달라. 그래서 

이따금 엇갈림이나 오해가 생겨나다구. 그리고 사람이 죽는 수도 있어."

  나는 뉴그랜드 호텔 앞에 차를 멈췄다.

  "오늘은 자네도 여기서 묵고 가지 않겠어?" 하고 그는 내게 물었다.

  "방은 잡을 수 있을  거야. 룸서비스로 술을 가져오게 하여, 둘이서 조금 

마시고 싶어. 이상태로는 어차피 이내 잠이 올 것 같지 않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시는 건 이 다음으로 미루고 싶군. 나도 약

간 피로해 있어. 되도록  이면 이대로 집에 돌아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

고 잠들고 싶어."

  "알았어." 하고 그는 말했다.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이면 급히 생각할  필

요는 없네. 괜찮아, 줄곧 죽어 있으니까. 좀 더  기운을 얻은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돼. 내가 하는 말 알아  듣겠어? 죽어 있는 거야. 아주 완전히 죽

어 있어요. 해부되고  냉동된 채로 있는 거야. 자네가 책임을  느끼든, 무엇

을 느끼든간에 되살아나지 않아."

  고혼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은 잘 알 수 있어."

  "잘 자게." 하고 그는 말했다.

  "이 다음에 가스버너에 불을 붙여주면 돼."

  그는 미소지으며 차에서 내리려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내 얼굴을 바

라보았다. 

  "이상한 얘기지만, 내게는  자네밖에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20년 만에  만나고, 그것도 오늘 만나는  게 두 번째인데 말야.  이상

해."

  이렇게 말하고 그는  가버렸다. 그는 트렌치 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봄의 

가랑비를 맞으며 뉴그랜드 호텔의 현관으로  들어갔다. '카사블랑카'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름다운 우정이 싹트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그에  대해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하

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점이  이상하다고 느

끼고 있었다. 이것이 '카사블랑카'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탓이 아니다.

  나는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을 들으면서 곡조에 맞추어  핸들을 두드리

면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리운 (에브리데이 피플)

  나는 평범한 인간이고

  너도 엇비슷하다

  하는 일은 달라도 

  우리는 비슷한 친구들이야

  우하하, 에브리데이 피플 

  비는 여전히 조용히 얌전하게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밤  사이에 식물의 싹

을 이끌어 내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비. '아주 완전히 죽어 있다.'고 나는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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